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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이드 게임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9월
평점 :
이케이도 준, 민경욱 역, [노사이드 게임], 인플루엔셜, 2022.
Ikeido Jun, [NO SIDE GAME], 2019.
이케이도 준의 [노사이드 게임]은 럭비와 경영을 접목한 소설이다. 스포츠 시리즈는 지금까지 3권인데, 야구를 소재로 하는 [루스벨트 게임](인플루엔셜, 2020.)과 육상을 소재로 하는 [육왕](비채, 2023.)이 있다.
"고귀라...... 노사이드라는 말이 있더군."
기미시마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조용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스트로스의 제너럴 매니저가 되고 알아봤지. 그랬더니 영어권 럭비 용어에는 없는 말이었어. '원 포 올, 올 포 원'도 마찬가지고."
둘 다 럭비 정신을 예찬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결국은 둘 다 일본식 럭비 용어라는 소리지. 그런데 그게 마음에 쑥 들어오는 건,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무사도 정신이나 청렴함이라는 미의식 같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p.47)
'노사이드(No Side)'는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럭비 용어인데, 격렬한 사투가 끝나면 적도 아군도 없이 서로의 건투를 빌어준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는 스포츠의 숭고한 정신인 것은 맞지만, 그 이면에는 상당한 부조리가 있다.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매니지먼트로 다가서면, (내용이 현실에 기반한 사실이라면) 일본의 럭비는 답이 없다! 사회고발 저널리즘을 읽는 기분이다.
"인사부에서 들으셨죠? 요코하마공장의 총무부장은 '도키와자동차 아스트로스'의 제너럴 매니저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아스트로스는 도키와자동차의 럭비팀 이름으로, 일본럭비협회 산하 사회인리그인 플래티나리그에 소속된 '명문' 팀이었다.
그 팀의 제너럴 매니저를 기미시마가 맡게 된 것이었다.(p.22)
대기업 도키와자동차의 본사 경영전략실에서 7년을 근무한 기미시마 하야토는 요코하마공장의 총무부장으로 발령된다. 차기 사장으로 유력한 영업본부장 상무이사에게 각을 세우다가 사내 정치에 밀려 좌천된 것이다. 소형 엔진을 제조하는 주력 공장인데, 총무부장은 회사 럭비팀의 제너럴 매니저(단장)를 겸임해야 한다. 도키와자동차의 아스트로스는 사회인(실업) 플래티나리그에 소속된 명문 팀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미시마는 럭비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 시작은 아주 익숙하다.
기미시마가 물었다. "너무 기본적인 질문이라 죄송한데요, 감독에 따라 팀 구성이 그렇게 많이 달라지나요?"
...
"그야 물론 달라지죠. 회사의 사장이 바뀌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경영 자원이 같더라도 경영전략이 달라진다는 말인가요?"(p.35-36)
16억 엔에 가까운 적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나요?"
도키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아니면 럭비팀을 소유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게다가 예상보다 훨씬 식구도 많네요."
팀은 총 80명. 그중 선수는 약 50명이었다.
럭비는 15명이 경기하는 스포츠였다. 그렇다면 포지션 하나에 서너 명의 선수층이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나머지 스태프 약 30명에는 럭비팀장도 겸하고 있는 신도 공장장과 기미시마 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런 관리직 외에 코치나 매니저, 트레이너, 물리치료사나 영양관리사, 팀 닥터, 그리고......
"분석가까지 있네요."(p.38-39)
제너럴 매니저가 우선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하나는, 감독의 사임으로 새로운 감독을 찾아야 한다. 모든 운동 경기가 그렇듯이 럭비도 감독에 따라 팀 구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었던 감독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이사회에 보고할 팀의 예산안 작성이다. 선수 50명과 스태프 30명인 팀은 연간 16억 엔 이상을 사용하는데, 놀라운 것은 이게 모두 적자이다. 기미시마의 눈에는 아스트로스가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아무런 수익 창출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부조리는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
럭비에는 15명이나 되는 선수가 필요하다. 야구 9명, 축구 11명보다 많다. 농구라면 3분의 1의 인원으로 팀이 된다. 첫 번째 전제로 일단 그만큼의 인건비가 더 든다는 소리다.
그런데 경기 수는 많지 않다.
작년 시즌 아스트로스의 경기는 리그전과 순위결정전, 거기에 컵 쟁탈전까지 합쳐도 15회에 불과했다.(p.55-56)
기미시마가 말했다. "플래티나리그는 아마추어이지만, 농구는 프로야. B리그는 경기도 많고 팀 경비도 럭비보다 적게 들지. 하지만 그런 점을 제쳐두더라도 수익 구조에서 가장 다른 점은 막대한 방영권을 포함한 후원사 수입이야. 그것만 20억 엔이 넘어. 물품 판매도 10억 엔이지. 일본럭비협회를 볼까? 방영권 수입이 4억 엔, 물품 판매는 4천만 엔에 불과해. 하늘과 땅 차이지. 그 차이를 만드는 게 바로 경영자의 차이야."(p.57)
이 남자의 근간에는 선민사상이 있었다.
럭비는 귀족 스포츠이고 선택받은 자만이 가치를 안다. 아랫것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아도 대기업 경영자들의 옹호를 받아 재정은 윤택하고 곤란함이 없다. 구태의연한 이 남자 탓에 럭비계가 치른 대가가 너무 컸다.(p.391)
플래티나리그는 경기당 평균 3천 명대의 관중, 다른 프로 스포츠하고 단순 비교해서 비효율적인 특성, 경기의 수는 많지 않고, 입장 수익은 협회의 운영비로 들어간다. 만성 적자, 채산성 없는 사업, 대기업에 의존적인 구조... 자립하지 못하고 덩치만 큰 아이와 같다. 문제는, 무엇보다 협회는 아마추어리즘을 본질로 여긴다는 것이다. 럭비는 신성한 귀족 스포츠이기에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 그들만의 숭고한 정신은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개혁을 거부하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 리그를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기업은 언제 팀을 해산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럭비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돈을 내고 좋은 선수만 모은다고 강해지지 않아. 일시적으로 강해지겠지만 오래 갈 수 없지. 그런 팀보다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역의 사랑을 받는 팀을 만들며 성장했으면 좋겠어. 강해지기 위해서는 인기가 없으면 안 돼. 우리의 발로 단단히 설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p.61)
"자네도 나도, 이 팀도, 그리고 도키와자동차라는 회사도, 더 나아가면 일본이라는 나라도, 혹은 세상이 다 그래. 결국에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옳은 것들만 남지. 반대로 도리에서 벗어나면 언젠가 대가를 치르는 법이야. 자정작용이 사라졌을 때 이 시스템은 끝나."(p.430)
기미시마는 아스트로스의 자립을 목표로 한다. 충성스러운 팬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과 연계한 활동, 럭비 교실, 주니어 팀 창설, 자원봉사를 통한 교류... 입장 수익과 부가 수익을 늘리고, 팀만이 아닌 협회의 개혁을 요구한다. 문제의식과 구체적인 개혁안은 일본 럭비를 향한 작가의 열망을 볼 수 있다. 이외에 명감독의 선임 과정, 라이벌 일본모터스의 사이클론스와 접전, 스토브리그에서 유망주의 발굴, 예산 삭감과 팀 해체 위기, 사내 정치의 복수, 결승전의 짜릿한 승리... 등을 포함해 기업 스포츠의 운영 현실을 이야기한다. 럭비의 정신을 오용하는 사람을 향한 쓴소리! 럭비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고, 뻔한 결말인데도 재미있다. 아, 우리 협회도 잘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