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담 - 운명적인 만남을 원한다면 목숨을 걸어라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장혜영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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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요시 리카코, 정혜영 역, [결혼기담], 대원씨아이, 2021.

Akiyoshi Rikako, [KONKATSU CHUDOKU], 2017.

결혼에 관해서는 우리나 일본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나이 들어감의 서글픔, 일생을 함께할만한, 놓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바람... 등이 얽히고설켜 있다. 모든 게 순조로우면 좋으련만, 작가의 고약한(?) 글솜씨는 네 남녀의 결혼을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특히 막판 비틀기가 일품인데,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한순간에 끔찍하고 냉혹한 이야기로 돌변한다. 아키요시 리카코의 소설 [절대정의](아프로스미디어, 2018.), [작열](마시멜로, 2020.), [결혼기담]을 연이어 읽었다.

이상적인 남자

결혼 활동 매뉴얼

이과 여자의 결혼 활동

대리 결혼 활동

순전히 결혼이 목적인 사람의 결혼 활동은 매우 치열하다. 거센 나이의 압박을 극복해야 하고, 격렬한 쟁탈전을 벌이며,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전략적이어야 하고,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아, 복잡하고 심란하다... 이런 세상을 꼬집고 싶었을까? 끊임없이 경쟁하는 결혼 활동의 이면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고, 등장하는 여자는 전부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후회가 눈물이 되어 흐른다. 앞으로 여섯 달만 지나면 마흔이다. 최근엔 새로운 만남의 기회조차 없다. 다음번 사랑이 과연 있을까? 아니, 있다 해도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가 가능할까?(p.10)

행복한 반면, 한편으로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왜 지금까지 혼자였을까?

...알수록 더 괜찮은데, 그럴수록 더 이상하다. 어쩌면 뭔가 치명적인 걸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p.22)

서른 살의 화려함하고는 다르게 마흔 살을 앞둔 여자는 절박하다. 친구들은 다 결혼했는데, 자신은 이 나이에 새로운 만남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오리는 결혼상담소 페이트(FATE)를 찾아간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괜찮은 남자를 소개받는다. 수수한 스타일의 미남자, 결혼 상대로는 이상적인데... 왜 이런 남자가 아직 혼자인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건 아닌지? 남자의 뒤를 조사한다. 나이 든 여자의 심리, 결혼을 앞둔 여자의 불안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이나와는 경제 관념이 안 맞는지도 모른다. 이건 결혼을 고려할 때 치명적인 단점이 아닐까......?

문득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은 매뉴얼 책 속의 문장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남자에게 지나치게 돈을 쓰게 만드는 여자는 배우자감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애당초 그렇게 행동하는 시점에서 그 여자는 당신을 결혼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p.84-85)

요리도 잘하고 바지런한 여자.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마음도 넓고, 돈을 아끼는 것조차 즐길 줄 안다. 아마 이런 여자가 배우자로서는 이상적이리라.

남자는 바보다. 이렇게 좋은 여자인데 아무도 야스코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자신을 포함해서.(p.94)

서른 살에 집에서 고독사한 친구를 보고 케이스케는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거리 미팅에서 미인인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만나는데, 운 좋게 미인인 여자와 연결되어 데이트한다. 갈수록 고급 레스토랑과 명품 소비 등으로 씀씀이는 커지고, 어느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는 상대를 배려하고 야무진 모습을 보이는데, 점점 못생긴 여자에게 끌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외모가 성격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 다 사람 나름이다! 나는 예쁘고 성격 좋은 여자를...;;

그러나 다테오를 본 순간, 난생처음으로 에미의 가슴에 불이 지펴진 것이다. 이 사람을 만나고 싶어. 이 사람과 이야기해보고 싶어. 그의 신부가 되고 싶어...(p.116)

"하지만 이런 건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냐? 나처럼 툴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다들 머릿속으로 마음에 있는 사람의 취향을 분석하고 거기에 가까워지기 위해 대책을 세우잖아."(p.144)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서 로봇을 개발하는 에미는 TV 프로그램 <미션 천생연분>에 출연한다. 지방 도시의 남자를 대상으로 여성이 고백하는 설정으로, 얼굴이 세상에 공개되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첫눈에 반한 남자를 만나기 위한 도전을 시작하는데, 이과 전공을 살려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확률을 높인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여자의 집념은 대단하다.

바빠서 시간을 못 내는 자식 대신 그 부모가 결혼 활동을 하는 일명 '대리 결혼 활동'. 잡지나 뉴스에 나온 걸 봤을 때, 마스오는 "세상 말세로군" 하며 혀를 찼었다.(p.168)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뛰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식사는 뭘 좋아할까. 오랜만에, 양복점에서 맞춘 양복을 입고 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깨닫고 마스오는 문득 손놀림을 멈췄다. 뭐지, 이 달콤하게 들뜨는 기분은.

혹시 히사에에게 느낀 이 기분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연정이었던가...(p.189-190)

이제는 부모가 바쁜 아들을 대신해서 결혼 활동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스오는 이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아내의 주도로 아들의 결혼을 돕기로 한다. 이벤트에 참가한 부모는 상대 부모를 만나 자식의 정보를 교환하고, 마음에 들면 만남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아들의 결혼은 뒷전이고, 맞선 상대의 엄마에게 연정을 느끼는데...

교훈적인 이야기가 한순간에 뒤통수를 때린다. 네 개의 단편이 모자라서 아쉽다. 두어 개 더 포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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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김현화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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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요시 리카코, 김현화 역, [작열], 마시멜로, 2020.

Akiyoshi Rikako, [SHAKUNETSU], 2019.

지난주에는 이노우에 아레노의 소설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문학수첩, 2014.)를 읽으며 등장하는 세 여자에게 순정을 느꼈고, 이번 주에는 [절대정의](아프로스미디어, 2018.)와 [작열]을 읽으며 두 여자에게 몸서리를 쳤다. 아키요시 리카코의 소설에 나오는 여자는 하나같이 집념이 강하다. 정의의 집착, 복수의 의지가 대단한데... 불현듯 인생을 똑바로 살아야 하고, 몸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이것이 문학의 힘인가 보다.

"파편은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날아간단 말이야.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라게 할 때가 있어. 위험천만하지."

짙은 갈색 바닥 위에는 청소기로도 빨아들이지 못한 먼지처럼 자잘한 가루가 남아 있었다. 마치 진짜 뼛가루 같았다. 그리고 종이봉투 안에 마구잡이로 포개져 있던 흰 파편이 유골함에 담긴 뼈처럼 보였다.(p.11)

원하지 않은 불행, 어떤 이유로든 삶이 깨지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깨끗이 치워도 파편의 조각은 어딘가에 있다가, 어느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또 다른 위협이 된다. 어긋난 인연은 불행을, 날카로운 파편은 복수의 원한을 남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복수의 집념은 어디까지인가? 작열하는 지옥에서 한 여자의 복수극이 펼쳐진다.

하지만 나는 이 남자의 아내다. 이 남자를 위해 식사를 차리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몸을 허락한다.

나는 히데오에게 뭐든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는 상대는 히데오가 아닌 다다토키다.(p.147-148)

증오하는 상대를 곁에 두고 충동을 억누르며 사랑하는 척해야 하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다.

결코 저물 리 없는 증오라는 태양에 온몸이 타들어 갔고 절망의 사막에 맨발이 달구어졌으며 분노의 화염이 몸속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열하는 지옥 속에서 악착같이 나아갔다.

언젠가 이 업보가 집어삼키겠지(p.149)

사키코는 복수를 위해 원수의 아내가 되었다. 눈물을 감추고, 애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죽은 전남편 다다토키는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현남편 히데오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얼굴을 바꾸고, 신분을 속여서 그와 결혼했다. 의사인 히데오가 일을 나가면 그때부터 집안을 뒤지며 증거를 찾는다. 어린 시절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삶이 깨졌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불행을 극복하고 사는데, 누군가 그를 죽여서 복수의 원한을 남겼다.

지금까지 히데오와 아무리 데이트를 하고 친밀한 시간을 보내도 다다토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늘 절대적으로 다다토키를 위해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나마 다다토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떳떳하지 못한 마음만 가득했다. 그건 분명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즐겁기 때문이다. 히데오와 함께한 외출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p.189)

사키코는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고 애쓰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찾지 못한다. 히데오는 다정다감하고, 환자 가족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의 대상으로 평판이 좋다. 무엇보다 사키코를 진심으로 대하는데, 아이를 낳아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복수의 대상인데, 당혹스러움... 길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곧바로 응급처치로 생명을 구하는 것을 보면서, 설마 의사가 살인을? 의문이 생긴다. 날이 갈수록 살의의 충동은 애정으로 바뀌고, 결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심경의 변화, 심리의 묘사가 좋다. 원한의 복수를 끝마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다 묻고 이대로 살 것인지? 신분이 탄로 나서 어쩌면 내가 살해당할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 시작은 일본 미스터리인데, 갈수록 영미 스릴러의 느낌이다. 평범함이 소중한 인생이 있다. 거짓된 결혼이지만, 역설적으로 잠시의 행복... 어긋난 인연이 아니고 처음부터 둘이 만났더라면,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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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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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요시 리카코, 주자덕 역, [절대정의], 아프로스미디어, 2018.

Akiyoshi Rikako, [ZETTAI SEIGI], 2016.

오랜만에 읽은 이야미스(일본어로 싫다는 뜻을 지닌 '이야'와 미스터리의 줄임말인 '미스'의 결합, 불쾌한 느낌의 추리소설)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가 떠오르고, 성경적 세계관에서 율법주의 바리새인을 현실에서 만난 기분이고, 심각하게 상황윤리를 고민하게 한다. 극단적인 설정으로 허구의 과장이 지나치지만, 그러므로 소설 속 범죄를 옹호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아,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 당신을 초대합니다.

오셔서 저에 대해 많이 추억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가키 노리코(p.90)

가즈키, 유미코, 리호, 레이카는 연보라색으로 고급스러운 봉투의 우편물을 받는다. 5년 전에 죽은 친구로부터. 아니, 정확히는 그들이 죽인 노리코의 초대장이다. 살인으로 끝난 우정... 악연이 궁금하다.

"아내가, 그러니까 노리코의 엄마가 잘못된 것을 무척 싫어했어요. 언제나 옳은 일을 해야 한다며 엄격하게 훈육을 해 왔습니다. 이전에는 노리코가 반발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2년 전에 통금 시간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노리코를 찾으러 나간 아내가 차에 치여서 그만......"(p.22)

고교 동창인 다가키 노리코(高規範子, 이름이 고규범자...;;)는 이름에 '규범(規範)'이 들어가 있다. 공부 잘하는 완벽한 아이, 모두에게 규범과 같은 존재, 고지식하고 강한 정의감은 모범이 된다. 이것의 배경은 엄격한 가정교육과 규범을 지키지 않았을 때 엄마가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융통성 없이 옳은 일에만 관심을 두는 정의의 신봉자가 되어 남모르는 희열을 느낀다. 친구들은 학교에서 곤란한 일을 겪거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노리코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고마움과 함께 뭔지 모를 불편함이 있다.

"융통성? ... 그것이 정의보다 중요한 거야? ... 어쨌든 나는 옳은 일에만 관심이 있어. 잘못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단 말이야."

그렇게 잘라 말한 노리코는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말에는 억양이 없었고 목소리도 인공 음성 같았다. 마치 사이보그 같았다. 사이보그는 인간다운 미묘한 감정이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올바른 것에 대해 프로그램 된 일만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상처를 받든 파멸되든 사이보그는 관심이 없다.(p.46)

"나는 마사히코 씨의 편도 유미코의 편도 아니야. 나는...... 정의의 편이야."

정의의 편. 그 말이 이렇게 차갑게 느껴질 줄이야.

유미코의 머릿속에 악당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히어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히어로는 오직 정의를 위해 악과 싸우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정의의 히어로가 공격을 할 때마다 주위의 자연이나 건물은 파괴되고, 자동차나 기차는 나가떨어지고,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이리저리 허둥지둥 도망친다. 그렇다면 그건 몬스터가 하는 짓과 다를 것이 없지 않나. 결국, 정의의 히어로는 정의에 집착한 몬스터가 아닌가.(p.139)

리호는 어느 날, '전라로'라는 말의 쓰임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노리코의 존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 해도, 노리코에게 지적을 받으면 고마운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그냥 불쾌할 뿐이다.

전라의 정의.

정의의 누디스트.

노리코의 정의는 너무나 드러나 있고, 노골적이고, 보는 사람이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든다. 어디든 상관없이 상대를 가리지도 않고, 망측스럽게 '정의'를 드러내며 달려든다. 융통성과 배려라는 옷을 두르지 않은 알몸의 정의 앞에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을 수밖에 없다.(p.190)

"내가 세무서에 고발할 거거든."

노리코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

레이카는 조심스럽게 정면에 있는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명이 노리코의 얼굴에 기분 나쁜 음영을 만들어, 웃고 있는 입이 귀까지 찢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마치 야차를 연상시키는 형상이었다. 지금까지 보살처럼 보였던 노리코의 얼굴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 것이다.(p.266)

졸업하고 15년이 지나 동창회를 통해서 인연은 계속된다. 가즈키는 프리 저널리스트로, 노리코와 유미코는 가정주부로, 리호는 학원 사업으로, 레이카는 중견 배우로 살고 있다. 재회의 기쁨은 잠시이고 이들은 극심한 피로를 마주하는데, 노리코의 정의감은 합법과 불법을 따지며 친구들의 삶에 관여한다. 차라리 모르는 사이라면 당하지 않았을 것을... 저작권을 검증하고, 이혼 문제에 개입하고, 가정사에 참견하고, 사생활을 간섭한다. 노리코는 정의밖에 모르는 정의의 사이보그, 정의의 몬스터, 정의의 누디스트, 정의의 야차이고... 정의의 포식자였다. 그리고 5년 전 그날, 사건이 일어났다.

노리코는 언제나 논리정연하고 백 퍼센트 옳다. 그 화살이 나에게로 향하지 않는다면, 내가 잘못한 게 없다면... 오히려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해서 노리코보다 네 명의 친구들에게 마음이 갔다. 그들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기를 응원했는데, 이것은 논리적 모순으로 일일이 설명할 수 없다. 사랑과 공의를 온전히 실천하신 그분(?)이 아니고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불쾌함을 일본 미스터리의 진정한 매력으로 여기고 이야미스에 환장한 적이 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짜릿한 자극으로 정서가 메마른 느낌이 좋다...;;ㅎㅎ 경멸과 살의의 충동, 정의의 배신이라는 측면에서 참신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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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이드 게임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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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이도 준, 민경욱 역, [노사이드 게임], 인플루엔셜, 2022.

Ikeido Jun, [NO SIDE GAME], 2019.

이케이도 준의 [노사이드 게임]은 럭비와 경영을 접목한 소설이다. 스포츠 시리즈는 지금까지 3권인데, 야구를 소재로 하는 [루스벨트 게임](인플루엔셜, 2020.)과 육상을 소재로 하는 [육왕](비채, 2023.)이 있다.

"고귀라...... 노사이드라는 말이 있더군."

기미시마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조용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스트로스의 제너럴 매니저가 되고 알아봤지. 그랬더니 영어권 럭비 용어에는 없는 말이었어. '원 포 올, 올 포 원'도 마찬가지고."

둘 다 럭비 정신을 예찬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결국은 둘 다 일본식 럭비 용어라는 소리지. 그런데 그게 마음에 쑥 들어오는 건,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무사도 정신이나 청렴함이라는 미의식 같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p.47)

'노사이드(No Side)'는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럭비 용어인데, 격렬한 사투가 끝나면 적도 아군도 없이 서로의 건투를 빌어준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는 스포츠의 숭고한 정신인 것은 맞지만, 그 이면에는 상당한 부조리가 있다.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매니지먼트로 다가서면, (내용이 현실에 기반한 사실이라면) 일본의 럭비는 답이 없다! 사회고발 저널리즘을 읽는 기분이다.

"인사부에서 들으셨죠? 요코하마공장의 총무부장은 '도키와자동차 아스트로스'의 제너럴 매니저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아스트로스는 도키와자동차의 럭비팀 이름으로, 일본럭비협회 산하 사회인리그인 플래티나리그에 소속된 '명문' 팀이었다.

그 팀의 제너럴 매니저를 기미시마가 맡게 된 것이었다.(p.22)

대기업 도키와자동차의 본사 경영전략실에서 7년을 근무한 기미시마 하야토는 요코하마공장의 총무부장으로 발령된다. 차기 사장으로 유력한 영업본부장 상무이사에게 각을 세우다가 사내 정치에 밀려 좌천된 것이다. 소형 엔진을 제조하는 주력 공장인데, 총무부장은 회사 럭비팀의 제너럴 매니저(단장)를 겸임해야 한다. 도키와자동차의 아스트로스는 사회인(실업) 플래티나리그에 소속된 명문 팀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미시마는 럭비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 시작은 아주 익숙하다.

기미시마가 물었다. "너무 기본적인 질문이라 죄송한데요, 감독에 따라 팀 구성이 그렇게 많이 달라지나요?"

...

"그야 물론 달라지죠. 회사의 사장이 바뀌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경영 자원이 같더라도 경영전략이 달라진다는 말인가요?"(p.35-36)

16억 엔에 가까운 적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나요?"

도키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아니면 럭비팀을 소유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게다가 예상보다 훨씬 식구도 많네요."

팀은 총 80명. 그중 선수는 약 50명이었다.

럭비는 15명이 경기하는 스포츠였다. 그렇다면 포지션 하나에 서너 명의 선수층이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나머지 스태프 약 30명에는 럭비팀장도 겸하고 있는 신도 공장장과 기미시마 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런 관리직 외에 코치나 매니저, 트레이너, 물리치료사나 영양관리사, 팀 닥터, 그리고......

"분석가까지 있네요."(p.38-39)

제너럴 매니저가 우선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하나는, 감독의 사임으로 새로운 감독을 찾아야 한다. 모든 운동 경기가 그렇듯이 럭비도 감독에 따라 팀 구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었던 감독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이사회에 보고할 팀의 예산안 작성이다. 선수 50명과 스태프 30명인 팀은 연간 16억 엔 이상을 사용하는데, 놀라운 것은 이게 모두 적자이다. 기미시마의 눈에는 아스트로스가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아무런 수익 창출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부조리는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

럭비에는 15명이나 되는 선수가 필요하다. 야구 9명, 축구 11명보다 많다. 농구라면 3분의 1의 인원으로 팀이 된다. 첫 번째 전제로 일단 그만큼의 인건비가 더 든다는 소리다.

그런데 경기 수는 많지 않다.

작년 시즌 아스트로스의 경기는 리그전과 순위결정전, 거기에 컵 쟁탈전까지 합쳐도 15회에 불과했다.(p.55-56)

기미시마가 말했다. "플래티나리그는 아마추어이지만, 농구는 프로야. B리그는 경기도 많고 팀 경비도 럭비보다 적게 들지. 하지만 그런 점을 제쳐두더라도 수익 구조에서 가장 다른 점은 막대한 방영권을 포함한 후원사 수입이야. 그것만 20억 엔이 넘어. 물품 판매도 10억 엔이지. 일본럭비협회를 볼까? 방영권 수입이 4억 엔, 물품 판매는 4천만 엔에 불과해. 하늘과 땅 차이지. 그 차이를 만드는 게 바로 경영자의 차이야."(p.57)

이 남자의 근간에는 선민사상이 있었다.

럭비는 귀족 스포츠이고 선택받은 자만이 가치를 안다. 아랫것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아도 대기업 경영자들의 옹호를 받아 재정은 윤택하고 곤란함이 없다. 구태의연한 이 남자 탓에 럭비계가 치른 대가가 너무 컸다.(p.391)

플래티나리그는 경기당 평균 3천 명대의 관중, 다른 프로 스포츠하고 단순 비교해서 비효율적인 특성, 경기의 수는 많지 않고, 입장 수익은 협회의 운영비로 들어간다. 만성 적자, 채산성 없는 사업, 대기업에 의존적인 구조... 자립하지 못하고 덩치만 큰 아이와 같다. 문제는, 무엇보다 협회는 아마추어리즘을 본질로 여긴다는 것이다. 럭비는 신성한 귀족 스포츠이기에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 그들만의 숭고한 정신은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개혁을 거부하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 리그를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기업은 언제 팀을 해산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럭비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돈을 내고 좋은 선수만 모은다고 강해지지 않아. 일시적으로 강해지겠지만 오래 갈 수 없지. 그런 팀보다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역의 사랑을 받는 팀을 만들며 성장했으면 좋겠어. 강해지기 위해서는 인기가 없으면 안 돼. 우리의 발로 단단히 설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p.61)

"자네도 나도, 이 팀도, 그리고 도키와자동차라는 회사도, 더 나아가면 일본이라는 나라도, 혹은 세상이 다 그래. 결국에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옳은 것들만 남지. 반대로 도리에서 벗어나면 언젠가 대가를 치르는 법이야. 자정작용이 사라졌을 때 이 시스템은 끝나."(p.430)

기미시마는 아스트로스의 자립을 목표로 한다. 충성스러운 팬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과 연계한 활동, 럭비 교실, 주니어 팀 창설, 자원봉사를 통한 교류... 입장 수익과 부가 수익을 늘리고, 팀만이 아닌 협회의 개혁을 요구한다. 문제의식과 구체적인 개혁안은 일본 럭비를 향한 작가의 열망을 볼 수 있다. 이외에 명감독의 선임 과정, 라이벌 일본모터스의 사이클론스와 접전, 스토브리그에서 유망주의 발굴, 예산 삭감과 팀 해체 위기, 사내 정치의 복수, 결승전의 짜릿한 승리... 등을 포함해 기업 스포츠의 운영 현실을 이야기한다. 럭비의 정신을 오용하는 사람을 향한 쓴소리! 럭비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고, 뻔한 결말인데도 재미있다. 아, 우리 협회도 잘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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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이노우에 아레노, 권남희 역,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문학수첩, 2014.

Inoue Areno, [KYABETSUITAME NI SASAGU], 2011.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내 안의 남성성이 사라지는 것인가? 세상에, 환갑의 세 여자에게 반하다니...(그윽한 눈길로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쪽 취향은 아닙니다...ㅠㅠ) 인생에서 60이라는 나이는 (예전하고 다르겠지만) 여전히 이별과 상실의 슬픔은 익숙하지 않고, 남모르는 그리움이 있다. 이노우에 아레노의 소설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는 여성적이고, 발랄하고, 원숙하고, 맛깔스럽다. 추억이 깃든 제철 음식은 일본 특유의 서정성이 느껴지는데,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과 함께하면 한껏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아주아주 공감하는 내용이라서 두 번을 읽었다.

신마이, 히로스, 복숭아 국수,

고구마 도장, 모시조개 튀김, 콩밥,

머위 꽃, 양배추 볶음, 옥수수,

오이, 붕장어와 장어

도쿄의 조그만 동네 상점가, 반찬가게 코코야에는 60대 세 명의 여자가 일하고 있다. 사장인 코코는 항상 으하하하하 웃으며 분위기를 주도하지만, 이혼한 전남편에게 미련이 남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개업부터 함께 한 마쓰코는 속마음하고 다르게 삐딱하고, 연하의 첫사랑으로부터 실연당한 후 독신으로 산다. 신입인 이쿠코는 오래전에 어린 아들을 잃고, 최근에는 남편마저 떠나보냈다. 이혼, 독신, 사별의 삶을 사는 세 여자는 음식을 만들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코야는 계절에 따른 음식을 준비하는데, 반찬가게의 노동 강도는 상당하다. 이른 시간에 장을 보고, 그날의 메뉴를 정하고, 아침 6시부터 준비해 오전 11시에 모든 음식을 진열한다. 손님들이 다녀가고 한가해진 오후 2시 30분에 같이 점심을 먹고, 오후 8시 30분에 영업을 종료해 계산을 마감하면 밤 10시이다. 코코와 마쓰코는 같이 한잔하러, 이쿠코는 곧장 집으로 간다.

"나 스스무 군이 마음에 들었어."

이쿠코와 마쓰코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잠시 후 이쿠코가 "알았어"라고 하더니, 온화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나도 마음에 드는걸"하고 덧붙였다.

코코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자신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선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놀란 것은 마쓰코까지 불쑥, 그러나 역시 결연한 목소리로 "나도"라고 말했을 때였다.(p.47)

코코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차로 3시간이나 걸리는 전남편을 찾아간다. 휴일에 이혼한 남편의 가정을 거리낌 없이 방문하는 정서가 놀라운데, 여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마쓰코는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지금도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하고 결혼한 남자를 잊지 못한다. 이쿠코는 밤마다 아들과 남편을 추모한다. 아들은 두 살 때, 남편은 그로부터 34년이 지나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사고를 두고 평생 남편을 원망하고 살았는데, 반년 전에 갑작스럽게 남편이 죽었다. 이들은 낮에 가게로 쌀 배달을 온 청년을 보면서... 이혼한 남편을, 헤어진 연인을, 죽은 아들을 떠올린다. 각자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이성의 감정 외에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그 아저씨가 된 아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는데, 오늘 밤은 어렴풋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마이인 가스가 스스무, 그 청년의 조금 나이 든 모습을 상상하면 되지 않을까. 낮에 그를 본 순간, 이건 우리 소우네,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소년이나 청년을 볼 때마다 소우의 그림자를 찾아왔지만, 상대편으로부터 아들의 느낌이 밀려든 것은 처음이었다.(p.25)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본의는 아니지만, 마쓰코는 인정한다. 남자 하나 없이 아줌마뿐인, 얼굴이 기름으로 번질거리고 머리카락에 간장 냄새 배게 하는 곳이라 해도.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 한편으로, 이곳 이외의 장소로도 갈 수 있을 거라는 몽상도 한다.(p.53)

이쿠코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난감했다. 실제로 '꽤 미인인 편'이었는지 어땠는지는 둘째 치고, 요리를 비롯한 집안일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깔끔하게 해왔고, 남편에게 거칠게 말한 적도 없다. 싸움도 거의 하지 않았다. 남편의 동료나 지인들은 '좋은 아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 슌스케에게는 '좋은 아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쿠코는 그 사실을 거의 확신하고 있다. 엉겁결에 "못된 마누라였어"라고 즉답한 것은 그 탓이다.(p.76)

마쓰코가 줄곧 그려왔던 그런 피로연이었다. 정말로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손을 넣어 그대로 꺼내 온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내내 머릿속에 그려온 정경이었다. 다만 이날 결혼한 것이 마쓰코가 아니었을 뿐. 상좌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은 가미조 슌과 그 아내가 된 사람이었다.(p.115)

왜 또 보냈냐고, 슌스케가 죽었으니 머위 꽃 선물도 이제 끝내지, 그걸로 됐지 않느냐고, 시누를 멀리하겠다는 게 아니라, 슌스케는 이제 없는데 슌스케가 있던 시절과 다를 바 없이 뭔가가 이어져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슬퍼지기 때문이라기보다 뭔가 책망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p.145)

무서운 것은 마쓰코와의 결혼이었어. 마쓰코가 아니라면 무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선을 봤어. 그런데 실패였어. 무섭지 않은 여자와의 결혼은 길게 가지 못하더라고.(p.191)

애초에 정상이라 해도 35년 전에 아들을 잃은 뒤의 자신은 줄곧 이상했다. 그리고 이상한 대로 어떻게든 계속 움직이던 자신 속의 쳇바퀴가, 슌스케의 죽음으로 그때와는 또 다른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1년 조금 지난 지금은 움직이는 법이 또 바뀌었다. 사는 건 그런 건지도 모른다.(p.195-196)

"나 결혼할 거라 그랬잖아! 전남편이 붕장어를 보내주면 그 사람이 질투한다고!"(p.215)

60세를 넘긴 세 여자의 이별과 상실의 슬픔 그리고 그리움에 관해서이다. 전남편하고의 관계를 이제는 깨끗이 정리해야 하는 코코, 헤어진 연인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쓰코의 이야기도 좋지만, 세상에 없는 아들과 남편을 그리워하는 이쿠코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지난 1년 동안의 내 모습이 투영되기도 하고... 아, 아늑하고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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