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키요시 리카코, 주자덕 역, [절대정의], 아프로스미디어, 2018.

Akiyoshi Rikako, [ZETTAI SEIGI], 2016.

오랜만에 읽은 이야미스(일본어로 싫다는 뜻을 지닌 '이야'와 미스터리의 줄임말인 '미스'의 결합, 불쾌한 느낌의 추리소설)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가 떠오르고, 성경적 세계관에서 율법주의 바리새인을 현실에서 만난 기분이고, 심각하게 상황윤리를 고민하게 한다. 극단적인 설정으로 허구의 과장이 지나치지만, 그러므로 소설 속 범죄를 옹호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아,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 당신을 초대합니다.

오셔서 저에 대해 많이 추억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가키 노리코(p.90)

가즈키, 유미코, 리호, 레이카는 연보라색으로 고급스러운 봉투의 우편물을 받는다. 5년 전에 죽은 친구로부터. 아니, 정확히는 그들이 죽인 노리코의 초대장이다. 살인으로 끝난 우정... 악연이 궁금하다.

"아내가, 그러니까 노리코의 엄마가 잘못된 것을 무척 싫어했어요. 언제나 옳은 일을 해야 한다며 엄격하게 훈육을 해 왔습니다. 이전에는 노리코가 반발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2년 전에 통금 시간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노리코를 찾으러 나간 아내가 차에 치여서 그만......"(p.22)

고교 동창인 다가키 노리코(高規範子, 이름이 고규범자...;;)는 이름에 '규범(規範)'이 들어가 있다. 공부 잘하는 완벽한 아이, 모두에게 규범과 같은 존재, 고지식하고 강한 정의감은 모범이 된다. 이것의 배경은 엄격한 가정교육과 규범을 지키지 않았을 때 엄마가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융통성 없이 옳은 일에만 관심을 두는 정의의 신봉자가 되어 남모르는 희열을 느낀다. 친구들은 학교에서 곤란한 일을 겪거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노리코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고마움과 함께 뭔지 모를 불편함이 있다.

"융통성? ... 그것이 정의보다 중요한 거야? ... 어쨌든 나는 옳은 일에만 관심이 있어. 잘못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단 말이야."

그렇게 잘라 말한 노리코는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말에는 억양이 없었고 목소리도 인공 음성 같았다. 마치 사이보그 같았다. 사이보그는 인간다운 미묘한 감정이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올바른 것에 대해 프로그램 된 일만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상처를 받든 파멸되든 사이보그는 관심이 없다.(p.46)

"나는 마사히코 씨의 편도 유미코의 편도 아니야. 나는...... 정의의 편이야."

정의의 편. 그 말이 이렇게 차갑게 느껴질 줄이야.

유미코의 머릿속에 악당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히어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히어로는 오직 정의를 위해 악과 싸우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정의의 히어로가 공격을 할 때마다 주위의 자연이나 건물은 파괴되고, 자동차나 기차는 나가떨어지고,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이리저리 허둥지둥 도망친다. 그렇다면 그건 몬스터가 하는 짓과 다를 것이 없지 않나. 결국, 정의의 히어로는 정의에 집착한 몬스터가 아닌가.(p.139)

리호는 어느 날, '전라로'라는 말의 쓰임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노리코의 존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 해도, 노리코에게 지적을 받으면 고마운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그냥 불쾌할 뿐이다.

전라의 정의.

정의의 누디스트.

노리코의 정의는 너무나 드러나 있고, 노골적이고, 보는 사람이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든다. 어디든 상관없이 상대를 가리지도 않고, 망측스럽게 '정의'를 드러내며 달려든다. 융통성과 배려라는 옷을 두르지 않은 알몸의 정의 앞에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을 수밖에 없다.(p.190)

"내가 세무서에 고발할 거거든."

노리코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

레이카는 조심스럽게 정면에 있는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명이 노리코의 얼굴에 기분 나쁜 음영을 만들어, 웃고 있는 입이 귀까지 찢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마치 야차를 연상시키는 형상이었다. 지금까지 보살처럼 보였던 노리코의 얼굴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 것이다.(p.266)

졸업하고 15년이 지나 동창회를 통해서 인연은 계속된다. 가즈키는 프리 저널리스트로, 노리코와 유미코는 가정주부로, 리호는 학원 사업으로, 레이카는 중견 배우로 살고 있다. 재회의 기쁨은 잠시이고 이들은 극심한 피로를 마주하는데, 노리코의 정의감은 합법과 불법을 따지며 친구들의 삶에 관여한다. 차라리 모르는 사이라면 당하지 않았을 것을... 저작권을 검증하고, 이혼 문제에 개입하고, 가정사에 참견하고, 사생활을 간섭한다. 노리코는 정의밖에 모르는 정의의 사이보그, 정의의 몬스터, 정의의 누디스트, 정의의 야차이고... 정의의 포식자였다. 그리고 5년 전 그날, 사건이 일어났다.

노리코는 언제나 논리정연하고 백 퍼센트 옳다. 그 화살이 나에게로 향하지 않는다면, 내가 잘못한 게 없다면... 오히려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해서 노리코보다 네 명의 친구들에게 마음이 갔다. 그들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기를 응원했는데, 이것은 논리적 모순으로 일일이 설명할 수 없다. 사랑과 공의를 온전히 실천하신 그분(?)이 아니고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불쾌함을 일본 미스터리의 진정한 매력으로 여기고 이야미스에 환장한 적이 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짜릿한 자극으로 정서가 메마른 느낌이 좋다...;;ㅎㅎ 경멸과 살의의 충동, 정의의 배신이라는 측면에서 참신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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