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김현화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아키요시 리카코, 김현화 역, [작열], 마시멜로, 2020.

Akiyoshi Rikako, [SHAKUNETSU], 2019.

지난주에는 이노우에 아레노의 소설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문학수첩, 2014.)를 읽으며 등장하는 세 여자에게 순정을 느꼈고, 이번 주에는 [절대정의](아프로스미디어, 2018.)와 [작열]을 읽으며 두 여자에게 몸서리를 쳤다. 아키요시 리카코의 소설에 나오는 여자는 하나같이 집념이 강하다. 정의의 집착, 복수의 의지가 대단한데... 불현듯 인생을 똑바로 살아야 하고, 몸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이것이 문학의 힘인가 보다.

"파편은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날아간단 말이야.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라게 할 때가 있어. 위험천만하지."

짙은 갈색 바닥 위에는 청소기로도 빨아들이지 못한 먼지처럼 자잘한 가루가 남아 있었다. 마치 진짜 뼛가루 같았다. 그리고 종이봉투 안에 마구잡이로 포개져 있던 흰 파편이 유골함에 담긴 뼈처럼 보였다.(p.11)

원하지 않은 불행, 어떤 이유로든 삶이 깨지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깨끗이 치워도 파편의 조각은 어딘가에 있다가, 어느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또 다른 위협이 된다. 어긋난 인연은 불행을, 날카로운 파편은 복수의 원한을 남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복수의 집념은 어디까지인가? 작열하는 지옥에서 한 여자의 복수극이 펼쳐진다.

하지만 나는 이 남자의 아내다. 이 남자를 위해 식사를 차리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몸을 허락한다.

나는 히데오에게 뭐든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는 상대는 히데오가 아닌 다다토키다.(p.147-148)

증오하는 상대를 곁에 두고 충동을 억누르며 사랑하는 척해야 하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다.

결코 저물 리 없는 증오라는 태양에 온몸이 타들어 갔고 절망의 사막에 맨발이 달구어졌으며 분노의 화염이 몸속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열하는 지옥 속에서 악착같이 나아갔다.

언젠가 이 업보가 집어삼키겠지(p.149)

사키코는 복수를 위해 원수의 아내가 되었다. 눈물을 감추고, 애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죽은 전남편 다다토키는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현남편 히데오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얼굴을 바꾸고, 신분을 속여서 그와 결혼했다. 의사인 히데오가 일을 나가면 그때부터 집안을 뒤지며 증거를 찾는다. 어린 시절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삶이 깨졌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불행을 극복하고 사는데, 누군가 그를 죽여서 복수의 원한을 남겼다.

지금까지 히데오와 아무리 데이트를 하고 친밀한 시간을 보내도 다다토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늘 절대적으로 다다토키를 위해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나마 다다토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떳떳하지 못한 마음만 가득했다. 그건 분명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즐겁기 때문이다. 히데오와 함께한 외출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p.189)

사키코는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고 애쓰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찾지 못한다. 히데오는 다정다감하고, 환자 가족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의 대상으로 평판이 좋다. 무엇보다 사키코를 진심으로 대하는데, 아이를 낳아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복수의 대상인데, 당혹스러움... 길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곧바로 응급처치로 생명을 구하는 것을 보면서, 설마 의사가 살인을? 의문이 생긴다. 날이 갈수록 살의의 충동은 애정으로 바뀌고, 결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심경의 변화, 심리의 묘사가 좋다. 원한의 복수를 끝마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다 묻고 이대로 살 것인지? 신분이 탄로 나서 어쩌면 내가 살해당할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 시작은 일본 미스터리인데, 갈수록 영미 스릴러의 느낌이다. 평범함이 소중한 인생이 있다. 거짓된 결혼이지만, 역설적으로 잠시의 행복... 어긋난 인연이 아니고 처음부터 둘이 만났더라면,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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