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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담 - 운명적인 만남을 원한다면 목숨을 걸어라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장혜영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1년 3월
평점 :
아키요시 리카코, 정혜영 역, [결혼기담], 대원씨아이, 2021.
Akiyoshi Rikako, [KONKATSU CHUDOKU], 2017.
결혼에 관해서는 우리나 일본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나이 들어감의 서글픔, 일생을 함께할만한, 놓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바람... 등이 얽히고설켜 있다. 모든 게 순조로우면 좋으련만, 작가의 고약한(?) 글솜씨는 네 남녀의 결혼을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특히 막판 비틀기가 일품인데,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한순간에 끔찍하고 냉혹한 이야기로 돌변한다. 아키요시 리카코의 소설 [절대정의](아프로스미디어, 2018.), [작열](마시멜로, 2020.), [결혼기담]을 연이어 읽었다.
이상적인 남자
결혼 활동 매뉴얼
이과 여자의 결혼 활동
대리 결혼 활동
순전히 결혼이 목적인 사람의 결혼 활동은 매우 치열하다. 거센 나이의 압박을 극복해야 하고, 격렬한 쟁탈전을 벌이며,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전략적이어야 하고,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아, 복잡하고 심란하다... 이런 세상을 꼬집고 싶었을까? 끊임없이 경쟁하는 결혼 활동의 이면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고, 등장하는 여자는 전부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후회가 눈물이 되어 흐른다. 앞으로 여섯 달만 지나면 마흔이다. 최근엔 새로운 만남의 기회조차 없다. 다음번 사랑이 과연 있을까? 아니, 있다 해도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가 가능할까?(p.10)
행복한 반면, 한편으로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왜 지금까지 혼자였을까?
...알수록 더 괜찮은데, 그럴수록 더 이상하다. 어쩌면 뭔가 치명적인 걸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p.22)
서른 살의 화려함하고는 다르게 마흔 살을 앞둔 여자는 절박하다. 친구들은 다 결혼했는데, 자신은 이 나이에 새로운 만남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오리는 결혼상담소 페이트(FATE)를 찾아간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괜찮은 남자를 소개받는다. 수수한 스타일의 미남자, 결혼 상대로는 이상적인데... 왜 이런 남자가 아직 혼자인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건 아닌지? 남자의 뒤를 조사한다. 나이 든 여자의 심리, 결혼을 앞둔 여자의 불안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이나와는 경제 관념이 안 맞는지도 모른다. 이건 결혼을 고려할 때 치명적인 단점이 아닐까......?
문득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은 매뉴얼 책 속의 문장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남자에게 지나치게 돈을 쓰게 만드는 여자는 배우자감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애당초 그렇게 행동하는 시점에서 그 여자는 당신을 결혼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p.84-85)
요리도 잘하고 바지런한 여자.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마음도 넓고, 돈을 아끼는 것조차 즐길 줄 안다. 아마 이런 여자가 배우자로서는 이상적이리라.
남자는 바보다. 이렇게 좋은 여자인데 아무도 야스코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자신을 포함해서.(p.94)
서른 살에 집에서 고독사한 친구를 보고 케이스케는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거리 미팅에서 미인인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만나는데, 운 좋게 미인인 여자와 연결되어 데이트한다. 갈수록 고급 레스토랑과 명품 소비 등으로 씀씀이는 커지고, 어느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는 상대를 배려하고 야무진 모습을 보이는데, 점점 못생긴 여자에게 끌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외모가 성격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 다 사람 나름이다! 나는 예쁘고 성격 좋은 여자를...;;
그러나 다테오를 본 순간, 난생처음으로 에미의 가슴에 불이 지펴진 것이다. 이 사람을 만나고 싶어. 이 사람과 이야기해보고 싶어. 그의 신부가 되고 싶어...(p.116)
"하지만 이런 건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냐? 나처럼 툴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다들 머릿속으로 마음에 있는 사람의 취향을 분석하고 거기에 가까워지기 위해 대책을 세우잖아."(p.144)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서 로봇을 개발하는 에미는 TV 프로그램 <미션 천생연분>에 출연한다. 지방 도시의 남자를 대상으로 여성이 고백하는 설정으로, 얼굴이 세상에 공개되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첫눈에 반한 남자를 만나기 위한 도전을 시작하는데, 이과 전공을 살려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확률을 높인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여자의 집념은 대단하다.
바빠서 시간을 못 내는 자식 대신 그 부모가 결혼 활동을 하는 일명 '대리 결혼 활동'. 잡지나 뉴스에 나온 걸 봤을 때, 마스오는 "세상 말세로군" 하며 혀를 찼었다.(p.168)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뛰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식사는 뭘 좋아할까. 오랜만에, 양복점에서 맞춘 양복을 입고 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깨닫고 마스오는 문득 손놀림을 멈췄다. 뭐지, 이 달콤하게 들뜨는 기분은.
혹시 히사에에게 느낀 이 기분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연정이었던가...(p.189-190)
이제는 부모가 바쁜 아들을 대신해서 결혼 활동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스오는 이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아내의 주도로 아들의 결혼을 돕기로 한다. 이벤트에 참가한 부모는 상대 부모를 만나 자식의 정보를 교환하고, 마음에 들면 만남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아들의 결혼은 뒷전이고, 맞선 상대의 엄마에게 연정을 느끼는데...
교훈적인 이야기가 한순간에 뒤통수를 때린다. 네 개의 단편이 모자라서 아쉽다. 두어 개 더 포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