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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이노우에 아레노, 권남희 역,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문학수첩, 2014.
Inoue Areno, [KYABETSUITAME NI SASAGU], 2011.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내 안의 남성성이 사라지는 것인가? 세상에, 환갑의 세 여자에게 반하다니...(그윽한 눈길로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쪽 취향은 아닙니다...ㅠㅠ) 인생에서 60이라는 나이는 (예전하고 다르겠지만) 여전히 이별과 상실의 슬픔은 익숙하지 않고, 남모르는 그리움이 있다. 이노우에 아레노의 소설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는 여성적이고, 발랄하고, 원숙하고, 맛깔스럽다. 추억이 깃든 제철 음식은 일본 특유의 서정성이 느껴지는데,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과 함께하면 한껏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아주아주 공감하는 내용이라서 두 번을 읽었다.
신마이, 히로스, 복숭아 국수,
고구마 도장, 모시조개 튀김, 콩밥,
머위 꽃, 양배추 볶음, 옥수수,
오이, 붕장어와 장어
도쿄의 조그만 동네 상점가, 반찬가게 코코야에는 60대 세 명의 여자가 일하고 있다. 사장인 코코는 항상 으하하하하 웃으며 분위기를 주도하지만, 이혼한 전남편에게 미련이 남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개업부터 함께 한 마쓰코는 속마음하고 다르게 삐딱하고, 연하의 첫사랑으로부터 실연당한 후 독신으로 산다. 신입인 이쿠코는 오래전에 어린 아들을 잃고, 최근에는 남편마저 떠나보냈다. 이혼, 독신, 사별의 삶을 사는 세 여자는 음식을 만들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코야는 계절에 따른 음식을 준비하는데, 반찬가게의 노동 강도는 상당하다. 이른 시간에 장을 보고, 그날의 메뉴를 정하고, 아침 6시부터 준비해 오전 11시에 모든 음식을 진열한다. 손님들이 다녀가고 한가해진 오후 2시 30분에 같이 점심을 먹고, 오후 8시 30분에 영업을 종료해 계산을 마감하면 밤 10시이다. 코코와 마쓰코는 같이 한잔하러, 이쿠코는 곧장 집으로 간다.
"나 스스무 군이 마음에 들었어."
이쿠코와 마쓰코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잠시 후 이쿠코가 "알았어"라고 하더니, 온화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나도 마음에 드는걸"하고 덧붙였다.
코코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자신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선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놀란 것은 마쓰코까지 불쑥, 그러나 역시 결연한 목소리로 "나도"라고 말했을 때였다.(p.47)
코코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차로 3시간이나 걸리는 전남편을 찾아간다. 휴일에 이혼한 남편의 가정을 거리낌 없이 방문하는 정서가 놀라운데, 여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마쓰코는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지금도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하고 결혼한 남자를 잊지 못한다. 이쿠코는 밤마다 아들과 남편을 추모한다. 아들은 두 살 때, 남편은 그로부터 34년이 지나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사고를 두고 평생 남편을 원망하고 살았는데, 반년 전에 갑작스럽게 남편이 죽었다. 이들은 낮에 가게로 쌀 배달을 온 청년을 보면서... 이혼한 남편을, 헤어진 연인을, 죽은 아들을 떠올린다. 각자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이성의 감정 외에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그 아저씨가 된 아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는데, 오늘 밤은 어렴풋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마이인 가스가 스스무, 그 청년의 조금 나이 든 모습을 상상하면 되지 않을까. 낮에 그를 본 순간, 이건 우리 소우네,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소년이나 청년을 볼 때마다 소우의 그림자를 찾아왔지만, 상대편으로부터 아들의 느낌이 밀려든 것은 처음이었다.(p.25)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본의는 아니지만, 마쓰코는 인정한다. 남자 하나 없이 아줌마뿐인, 얼굴이 기름으로 번질거리고 머리카락에 간장 냄새 배게 하는 곳이라 해도.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 한편으로, 이곳 이외의 장소로도 갈 수 있을 거라는 몽상도 한다.(p.53)
이쿠코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난감했다. 실제로 '꽤 미인인 편'이었는지 어땠는지는 둘째 치고, 요리를 비롯한 집안일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깔끔하게 해왔고, 남편에게 거칠게 말한 적도 없다. 싸움도 거의 하지 않았다. 남편의 동료나 지인들은 '좋은 아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 슌스케에게는 '좋은 아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쿠코는 그 사실을 거의 확신하고 있다. 엉겁결에 "못된 마누라였어"라고 즉답한 것은 그 탓이다.(p.76)
마쓰코가 줄곧 그려왔던 그런 피로연이었다. 정말로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손을 넣어 그대로 꺼내 온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내내 머릿속에 그려온 정경이었다. 다만 이날 결혼한 것이 마쓰코가 아니었을 뿐. 상좌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은 가미조 슌과 그 아내가 된 사람이었다.(p.115)
왜 또 보냈냐고, 슌스케가 죽었으니 머위 꽃 선물도 이제 끝내지, 그걸로 됐지 않느냐고, 시누를 멀리하겠다는 게 아니라, 슌스케는 이제 없는데 슌스케가 있던 시절과 다를 바 없이 뭔가가 이어져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슬퍼지기 때문이라기보다 뭔가 책망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p.145)
무서운 것은 마쓰코와의 결혼이었어. 마쓰코가 아니라면 무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선을 봤어. 그런데 실패였어. 무섭지 않은 여자와의 결혼은 길게 가지 못하더라고.(p.191)
애초에 정상이라 해도 35년 전에 아들을 잃은 뒤의 자신은 줄곧 이상했다. 그리고 이상한 대로 어떻게든 계속 움직이던 자신 속의 쳇바퀴가, 슌스케의 죽음으로 그때와는 또 다른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1년 조금 지난 지금은 움직이는 법이 또 바뀌었다. 사는 건 그런 건지도 모른다.(p.195-196)
"나 결혼할 거라 그랬잖아! 전남편이 붕장어를 보내주면 그 사람이 질투한다고!"(p.215)
60세를 넘긴 세 여자의 이별과 상실의 슬픔 그리고 그리움에 관해서이다. 전남편하고의 관계를 이제는 깨끗이 정리해야 하는 코코, 헤어진 연인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쓰코의 이야기도 좋지만, 세상에 없는 아들과 남편을 그리워하는 이쿠코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지난 1년 동안의 내 모습이 투영되기도 하고... 아, 아늑하고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