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론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3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성염 옮김 / 한길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2008. 5. 9. ~ 2008. 6. 11. 

내가 키케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3여년전 법대 3학년 법철학 강의시간 때였다. 물론 1학년 헌법 수업시간 때에도 자연법사상에 대한 강의시간에 교수님이 키케로에 대해 언급을 하긴 했었지만, 1학년 시절에는 워낙 법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기 때문에 키케로는 고사하고 자연법에 대한 개념조차 뜬구름이었을 시기였다.

당시 키케로에 대해 놀라웠던 것은 2,100년전에 살았던 그가 '법과 법률을 구분'했다는 점과 '자연법'에 대한 관념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기원전 106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43년에 죽었으니, 우리로 치자면 고조선이 망할 즈음에 그가 태어났고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할 즈음에 그가 죽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키케로는 법률가로서는 정말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키케로의 법률론에 담겨 있는 내용 중 가장 비중이 많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법률가들의 특색인 자기 자랑이고, 제1부에는 법에 대한 일반원리, 제2부에서는 종교제관법안에 대한 설명, 제3부에서는 로마의 정부조직법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그런데, 법률론에 담겨 있는 법에 대한 키케로의 놀라운 사상은 그의 사후 2,100년후에도 형식적 법실증주의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우리들을 매우 부끄럽게 한다.

- 우리는 법이 성립하는 출처를 저 최고법에서 포착해야 할 것이니, 최고법은 여하한 성문법도 생기기 이전에, 심지어 어떤 도시국가도 성립되기 이전에 아주 오랜 세월 전에 먼저 생겨났네. p.71

- 백성들의 제도나 법률로 제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정당하다고 여기는 생각은 어리석기 짝이 없네. 그러면 참주들이 제정한 법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하다는 말인가? p.88

- '법률'이라는 명사를 해석하는 그 자체에, 정당함과 법도를 선택하겠다는 구속력이 내포되어 있고 그렇게 하겠다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음이 분명하네. p.124

- 인민이 위해가 되는 무엇을 비록 법률로서 채택했다고 할지라도, 그런 법률은 어떤 이유로도 인민에게 법률이 될 수 없네. 그렇게 볼 때에 법률이란 정당한 것들과 부당한 것들의 분별이지. p.125

- 퀸투스, 자네는 호민관직의 폐해를 명백하게 간파했지만, 무릇 사물을 비판함에 선한 점들은 제외하고 악한 점만 열거하고 폐단들만 선정하는 것은 불공정하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통령직 역시 비난을 받을 수 있지. p.209

또한 키케로는 이미 2,100년전에 오늘날의 법률가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 법률가들은 간혹 단일한 지식에 근거한 내용을 한정없이 세분하는 버릇이 있다네. 그것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의도일수도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좀더 어려운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것이겠지. p.162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키케로와 카이사르를 대비한 그녀의 평이 종종 나오는데,  그녀는 키케로에 대해 글만 잘 썼지, 구두변론은 잘 못하는 엉터리 변론가라는 식으로 혹평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솔직히 '로마인이야기'에서 표출되는 카이사르에 대한 그녀의 맹목적인 사랑을 생각해 본다면 키케로에 대한 그녀의 평가는 그다지 객관성이 없어 보이고, 게다가 본인이 직접 그 시대를 살아본 것도 아니면서 무슨 근거로 단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수십세기 전 과거에 대해 알 수 있는 근거라고 해봤자, 그 시대의 동영상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 바에야, 과거의 인물들이 남긴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을 뿐인데 말이다. 나나미의 평가와는 다르게 키케로의 연설 자체는 매우 뛰어났었다는 연구논문이 많다.

다만, 정치인 또는 인간으로서의 키케로에 대한 평가는 그의 글에 대한 평가와는 좀 다르긴 한 것 같다.

그가 평생의 자랑으로 삼은 카틸리나 음모 사건에 대한 것도 연구자들의 카틸리나에 대한 평가는 키케로의 주장과는 좀 다르고, 그가 남긴 저작에서와는 다르게 키케로는 가난과 육체노동자들을 매우 경멸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더러운 근성의 벌레와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치부에 관심이 많았고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였으며 고리대금업도 하고, 말과 행동이 다른 전형적인 속물적 지식인이라 하여 세네카와 같은 스토아철학자는 그를 매우 경멸했었다고 하며, 그 유명한 로마사학자인 몸젠은 키케로를 이중인격자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키케로는 지식인에 해당할 지는 모르겠지만, 지성인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참으로 감탄할 만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키케로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신문이나 각종 잡지에 그럴 듯하고 휘황찬란한 글을 쏟아내는 자들, 소위 오피니언리더 혹은 사회지도층(개인적으로 맘에 들지 않는 단어이다)은 많지만 그들이 과연 실제로도 자신들의 글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는지 의구심이 간다.

법률가들은 부동산투기억제법이나 인권에 대한 읽기 좋은 정의감에 충실한 책 또는 글을 많이 기고하지만, 뒤로는 치열하게 투기에 앞장서는 모습, 반인권적인 행태를 많이 보아 왔다.

또한 권력에 따라서 자기의 양심을 팔고 다니는 법학자들도 부지기수인 것을 보면(대표적으로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낸 김아무개 교수는 박정희 시절 유신헌법에 대해서 영도적 대통령제라고 극찬했다고 하는데, 민주화되고서는 자기가 무슨 민주투사였던 것처럼 교과서를 썼다), 하늘이 내리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참된 지식인이 아닐까....

이 책은 옮긴이의 후기까지 포함해서 251페이지에 달한다. 그렇게 분량이 많은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을 한달동안 3회독을 했다. 그만큼 법률론 자체는 곱씹어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물론, 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1회독해서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익숙한 '집정관'을 '통령'으로 번역했는데, 이미 굳어진 용어라면 '집정관'으로 통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번역도 잘되어 있고, 각주해설이 충실해서 부가적인 지식들도 많이 얻었다. 키케로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법률론'만큼은 법대생들이라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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