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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허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 빛과향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이맘때, 나는 무소속이었다. 만 15세는 넘은지라 경제활동 능력은 있되, 오직 용돈을 소비하는 방식으로만 그 능력을 발휘하는, 대통령, 경제부총리 나아가 온 사회 구성원의 우환이었던 청년 실업자. 그게 바로 나였다. 그 누추한 상황에서도 나의 정신세계는 고고했다. 돈? 까짓거 못 버는 게 아니라 안 버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겠노라고,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 노래도 ‘거위의 꿈’ 같은 것만 들었다. 1년을 그렇게 지내니 잇몸 속에 엄지손가락만한 종양덩어리가 생겼는데, 나는 그 물질이 고통과 스트레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꿈을 향해 매진한' 1년은 그렇게 괴로웠다.
지금 나는 어느 법인에 속해있다. 25년 내 삶의 단 하루도 회사 합격 소식을 듣던 날만큼 기쁘지 않았다. '회사까지 레드 카펫이 깔린 것 같았다'는, 촐삭맞은 합격 수기도 사내 게시판에 썼다. 헌데 그건 잠시였다. 한 4개월을 다니고 나니 알았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것이라도 일단 일상으로 다가온 순간, 그건 별게 아니었다. 회사 생활은 회사 지하 식당 메뉴만큼이나 단조로웠다. 어제 고등어 튀김이 나왔으면 오늘은 가자미 튀김이 나오는, 그런 식이었다. 주위를 둘러봤더니,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이렇게 10년 20년이 흘러가는 건가? 두려워졌다. 그래서 작년의 목표의식이, 그래서 가졌던 역동성이 그리웠다. 나에게 악성 종양을 선사한 작년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읽고 반성했다. 아니 반성이 아니라 인정했다. 인간이란 다 그렇고 그런 존재라는 걸 알았다. 세상만사가 가당찮다는 이 아저씨가 보기에, 인간의 감정은 두 가지란다. 첫째는 고뇌. 원하는 걸 못 가졌을 때, 인간은 괴로워한다. 둘째는 권태다. 그걸 가지면 인간은 지루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됨됨이가 고귀해서.” 인간은 별 게 아닌데 스스로 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밥 가지고 만족을 못한다는 얘기다. (매슬로우는 이런‘욕구의 위계’를 삼각형으로 표현했었다. 그 끄트머리 ‘자아실현’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태생적으로 욕심이 많아서, 좀처럼 행복해지기 어려운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가? 그는 말할 것이다. “그럼 죽든지?”
쇼펜하우어는 72살에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말 다소 죄송하지만, '호상'인 셈이다. 삶이 별거 아니라고 외치던 사람은 그렇게 살만큼 살았다. 별 것 아닌 이 세상에 구차한 애착이 있었던 걸까. 어쨌든 나는, 이 우매한 독자는, 그 사실을 보고 '티끌같은 세상일지라도 사는 게 낫나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으면 팍 죽어버리고 싶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이 세상에 진지하게 대해야 할 것은 단 하나도 없다'며 세상을 가소로워하던 이 염세주의자의 이야기를 새겨 들어볼 만하다.
2006.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