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니의 바이올린
허닝 지음, 김은신 옮김 / 자유로운상상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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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5년 전, 친구를 기다리며 혼자 보았던 <피아니스트> 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책이다. 그래서 무척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피아니스트>... 난 이 영화를 혼자 그것도 비디오방에서 봤다...;; 왜 하필 그 영화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여자가 혼자 비디오방 가기도 참...쉽지 않은데... 사소하지만, 이것도 작은 운명이었을까? 사실 전쟁, 그것도 유태인에 대한 이야기인줄도 모르고 그저 시간을 때울 심산으로 골라봤던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 속 주인공, 유태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기 직전, 쇼팽의 <야상곡> 을 연주한다. 나중에 독일장교에게 숨어살던 곳을 발각당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는 그 곡을 연주했던걸로 기억한다. 잔인한 사상이 불러온 참혹한 전쟁 속에서 진실로 아름다운 음악이 마음을 움직여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되던 그 순간에 어울리는 실로 감동적인 연주였다.
 
 모든 전쟁은 다 끔찍하다. 마크 트웨인이 지은 <전쟁을 위한 기도> 란 책에서 그는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한쪽의 승리는 다른 한쪽의 피의 역사 위에 세워진다. 세상에 명분있는 전쟁이란 없고, 모든 전쟁은 무의미한 학살일 뿐이다.'
 
 그저 자신의 가족과 땅을 지키기 위한 전쟁도 끔찍한데, 독일에서 시작된 이 전쟁, 아니 일방적인 학살은 도대체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의 보존이라니.. 이런 말도 안되는 역사가 있었다는게 참 끔찍스럽다. 끔찍했었던 역사라고만 알지,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한 터라 그 당시 유일하게 독일 나치의 학살을 피해 전세계로 피난을 떠난 유태인 난민들을 받아준 나라가 중국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제서야 중국에 정착한 유태인들에 대해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그 유명한 <태평양전쟁>, <진주만공습>..역사 시간에 그렇게나 자주 들었던 우리나라의 그 가슴아픈 시기에 유태인들도 고난을 겪었단걸 함께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새삼스레 동질감이 느껴지면서 책을 읽으며 더 분노하고 슬퍼하고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당시 우리나라처럼 조각조각 갈라진 채 피폐해져있던 중국, 그곳에서도 욕심을 부리고 우월주위에 빠져있던 일본, 함께 고난을 이겨내며 국경을 초월해 우정을 나누던 사람들,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감동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흘러나오는...야상곡처럼 감동스런 음악, '이날'. 
 곧 영화로 책 속에서 몇번이나 사람들을 구해내고 힘을 주던 이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도 두근두근한다.
 
 전쟁 관련 영화에서는 꼭 음악관련 장면이 빠지지 않는다. 피로에 지친 군인들을 위한 파티장면이나 다음번 전투에선 자신이 죽을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날 하루 무사함에 기뻐하며 술집에서 노래하는 장면, 군인들을 위로하는 연주회, 하다못해 다음 전투를 위해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연주 등.. 음악은 그렇게 전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내일을 위한 용기를 북돋아주는 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 <피아니스트> 나 이 책에서는 그보다 한단계 더 나아가 사람을 살리는 의사 역할까지도 한다. 이 부분은 책 속 자선연주회 장면을 읽고나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그렇게 저자는 주인공인 세계 일류 바이올리니스트 리랜드의 입을 통해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음악은 최종적으로 대포와 총을 무력하게 만들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실입니다. 음악이야말로 인류 공통의 언어이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이니까요. 이런 언어는 하느님만이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 p.128
 
 리랜드의 신념과 믿음,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진심이 담긴 음악이었기에 만인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준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같은 언어가 아니라도.. 진실된 음악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한번 듣고 가사의 내용을 몰라도 외국노래를 좋아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독일군에게 딸을 잃고 딸이 만들어준 소중한 바이올린을 품에 안고 유일하게 유태인 난민을 받아주는 중국으로 피난을 온 일류 바이올리니스트, 리랜드 비센돌프. 그렇게 정착하게된 중국에서 그는 아버지를 잃은 루샤오넨, 루양 남매를 만나 루양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며 우정을 쌓게 된다. 리랜드가 딸을 잃은 이야기와 바이올린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셋 사이가 돈독해졌던 그 순간(p.94),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서야 '고작' 바이올린이 아니라 '그런' 바이올린을 어떻게...가 되었다. 멜라니의 바이올린은 그렇게 아버지를 구하고 또 루양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한다. 죽어서도 사람들을 구한 멜라니. 살아있었다면 루샤오넹과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바로 음악 외에 작가가 중요하게 다룬 부분이 '우정' 같다. 잔혹한 시기를 함께 겪는 와중에 생겨난 중국인들과 유태인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 우정.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과 희생적인 우정이 담뿍 담긴 소설이었기에 비,록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에 대한 소설이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아프기만 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본인에게 억압을 받긴 했지만 중국인들과 함께 자유와 우정을 나누었던 유태인들의 제2의 고향이라는 중국. 하지만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나에게 중국은 또 어떤 의미를 줄까? 미국국적을 가진 작가지만 자신이 태어난 곳을 잊지 않고, 그 자랑스런 역사를 알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중요한 사실에 관심을 갖게하는 글을 쓰는 멋진 작가를 새로 알게 되어 참 좋았다.
 
 "갑자기 끝없이 펼쳐졌던 바다가 둘로 쪼개지면서 바다 밑으로 길이 나는 게 아니겠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치솟아 있는 물기둥 가운데로 홍해를 건너 자유를 향해 떠난 거지!" - p.175 (중략)
 "이것은 역사이자 현실이고, 내가 상하이에 왜 왔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해! 물론 상하이를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 - p.176
 
 "중국인들이 상하이를 '상하이탄' 이라고 부르는 것은 깊은 물속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에서 한 말인 것 같습니다.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은 상하이를 모험가의 낙원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인들의 표현법은 아주 낭만적인데 그들은 상하이를 세계의 만화경이라고 한답니다. 비센돌프 선생님! 만약 선생님 혹은 유태인들에게 상하이에게 적절한 이름을 붙이라고 한다면 어떤 이름을 붙여 주시겠습니까?"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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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나의 10가지 약속
가와구치 하레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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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와 오래오래 함께해 주세요
2. 나를 믿어 주세요. 그러는 만큼 나는 행복하답니다.
3. 나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말을 안 들을 때는 이유가 있답니다.
4. 나에게 말을 자주 걸어 주세요. 사람의 말을 할수는 없지만, 들을 줄은 안답니다.
5. 나를 때리지 말아 주세요. 마음만 먹으면 내 쪽이 강하다는 걸 잊지 마시고요.
6. 내가 나이가 들어도 잘 대해 주세요
7. 나는 10년 정도밖에 못삽니다. 그러니 가능한 한 나와 함께 있어 주세요.
8. 당신에게는 학교도 있고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신밖에 없답니다.
9. 내가 죽을때, 부탁드리는데요, 곁에 있어주세요
10, 부디 기억해 주세요, 내가 내내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 p.211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개를 참 많이도 키웠지만, 이런 십계명같은 건 생각해본적도 없다.
게다가 채 속 아카리가 고운 옷을 차려입었던 날, 그 옷을 더럽힌 삭스의 맘을 모르고 화만 냈던 것처럼 나 역시 이유없이 말썽을 부린것만 같을 때 화만 냈었다. 그리고 이사갔던 아카리가 호시의 파리행을 배웅하고자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잠시 집을 나간 삭스와 다리 위에서 다시 재회하던 때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마음으로 통했던 기억도 없다.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 본 적이 없는듯하다. 특히 아카리가 9번과 10번행을 읽기 전 잠시 망설일 때, 나는 눈물이 났다. 헤어짐이 슬프기도 했지만, 나는... 나에게는 그렇게 마지막을 지켜주었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제대로 무언갈 해준게 없구나 싶었다.
 
나는 미래에 내가 키울 애완동물을 자주 상상한다. 때론 고양이 7마리, 때론 고양이 한마리와 강아지 한마리... 사실 고양이 쪽으로 맘이 기울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언젠가 개는 5시간 이상 혼자 두면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데, 고양이는 개인적인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후부터이다. 이래서야.. 내가 정말 펫을 키워도 되는건지... 이 책 속의 덜렁쟁이 엄마도 개를 키우기 전, 일단 무조건 반대하는게 아니라 개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를 먼저 알아보게 하고 많이 생각하게 한다. 그러고도 개와 나의 10계명이란 걸 이해하고 외우게 하고서야 개를 키우게 헸는데, 그런데 나는 아직 진심으로 동물을 키울 준비가 안된듯 하다.
 
"만약 당신이 길을 잃었거나 소중한 무엇을 잃었으면, 주위를 둘러보아라. 반드시 내가 있을 테니까...... 그런 의미야."
"흠." "사실은 실연에 관한 노랜데, 헤어진 사람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누군가가 항상 지켜봐 준다는 뜻 아니겠니? 깊은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으면, 내가 당신을 붙잡아 주겠다고 노래하고 있는 셈이지."
그러나 그렇게 나를 지켜봐 줄 존재가 나타나리라고는 그다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얼이 빠져 있으므로 한눈을 팔고 있을 꺼고, 아빠는 너무 바쁘다.
- p.19
 
"만남이란 진실로 우연이란다. 사람의 경우 만나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함께 살게 돼. 하지만 개의 경우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으니까 만남이 곧 운명인 거지."
"운명......" "삭스는 태어나자마자 너와 살기 시작했으니까, 개의 언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해."
"......" "가족도 이미 삭스의 얼굴을 잊고 있을지도 몰라. 만약 다른 데 맡길 곳이 있다면 우리 집이 아닌 편이 삭스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구나."
- p.84
 
삭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와 만났다. 한 번 도망갔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우리 집을 선택해 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이 들 때까지의 수개월을 나와 보낸 탓에, 삭스는 개의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 p.86
 
22살까지 울어본 적이 없는 소녀 아카리, 그녀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던 날 엄마를 떠나보내고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던 날 난데없이 나타난 앞발 발목 하나만 하얀 색인 강아지 한마리와 병원일에 바쁜 아빠와 함께 살아간다.
어머니의 부재, 일에 바쁜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갑작스레 연락이 끊겼던 첫사랑과의 급작스런 재회와 사고, 그와중에 겪게되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들.. 이 모든 사건들 사이에는 항상 강아지 삭스가 함께 한다.
매순간 순간 감동이 전해진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 강아지 삭스와 만나게 된 진짜 이야기....
 
책 속에서 흘러나오던 신디 로퍼의 '타임 애프터 타임' 음악을 나도 찾아 들으며 무지개다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내 옛 친구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때 만나면 참 미안하다고, 보고싶었다고 말해줘야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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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물들다 1 - 흔들리는 대지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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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하면 먼지와 모래가 풀풀 날리는 끝없는 고원, 바위산, 천옷을 두르고 헤벌쭉 웃고 있는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떠오른다.
아니면 '자유에의 의지' 로 그 끝없는 열정을 맘 속에 잊지 않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하지만 그런 사실로도 그들이 이라크 지역 사람들처럼 위험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적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며 욕심없이 살아가는, 연민과 부러움이 반반씩 섞여 바라보게 되는 그저 내 이웃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그들에 대해 하는 것도 없고 딱히 적극적으로 도와줄 일들도 없지만...
 
올 초에 읽은 박동식의 <열병> 이 나에게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처음 알게 해 준 책이다. 내가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그렇게 오래된 일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을까.. 하고 부끄러움이 들게 했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제목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점점 사라지는 아니 이제는 사라져버린 (하지만 그들이 아직도 맘속깊이 잊지 않고 간직하고 살아간단걸 역시 <열병> 이란 책에서 알게되었다.) 티베트 고유의 특이하고 조금은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를 아름답고 감성적인 언어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주욱 술에 취한 아버지와 관계를 맺어서 바보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티벳 최고 통치자를 부르는 말인 '투스' 의 둘째 아들의 입을 통해서.
 
최고권력자의 아들이지만 본인은 바보이기 때문에 최고권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를 통해 그와 그의 가족, 티벳 사람들의 진정한 생활상을 느낄 수 있었다. 본인은 담담히 말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한족의 교묘한 계략과 점점 자주성을 빼앗기고 사라져가는 티벳 사람들의 슬픔도. 하나 새롭게 알게 된게 있다면 티베트 사람들이 마냥 순박한 시골사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도 전투적이고 정열적인 과거가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모든 것들이 더 아름답고 그립고 슬프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진기술은 정말 절묘하게 시간을 맞춰 우리 땅에 들어왔다. 마치 우리의 종말을 상징하는 그림을 남기기 위해 온 것 같았다. 물론 당시에 지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더욱 번성할 수 있는 징조라고 간주했다. - p.51
 
색에 물들다.. 글쎄.. 그들은 어디에 물이 들었나. 양귀비의 빨간 색에, 아니면 순결하고 숭고한 색인 하얀 색에, 그것도 아니면 권력을 칭하는 한족의 검은색에...?
 
바보는 정말 바보일까? 그가 투스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그의 고향은 어떻게 될지..
다음 이야기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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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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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가 사실 처음부터 '아이를 위한 이야기' 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우리가 알던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등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는 후에 각색되어진 것이고 원작은 사실 대부분 아이들이 읽기에는 잔인한 이야기들이었다고. 나도 오래전 조금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모두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정말 잔인하거나 비윤리적인 이야기가 많았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이 딱히 동화스럽거나 아이들이 읽을만한 내용의 책이 아닌데도 떡 하니 책의 제목을 '동화' 라고 지었다. 그것도 그냥 동화가 아닌 '암흑동화'.
 
단편공포소설 모음집인 <ZOO> 를 읽고 그 특이한 작가의 정신세계에 빠지게 되어 작가 이름만 보고 선택한 책인데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작가의 첫 장편이라는 말에 끌리기도 했는데, 역시나 그 분량만큼 하고픈 말도 맘껏 담은 것 같고, 단편보다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표현으로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다. 다소 어긋난 시간순과 다중인물의 시점이 번갈아 진행되는 복잡한 구성과 원체 특이한 느낌을 담은 표현력이라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읽기는 했으나 이해하기 힘든 정도는 아니며, 오히려 몰입되어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이 책 제목을 보니 얼마전 '아역배우' 라는 이름과 이미지 때문에 아역배우에서 진정한 '배우' 로 거듭나기가 매우 어렵다는 뉴스기사를 읽은 생각이났다. 배우면 다 같은 배우지, 나이가 많은 배우들은 '성인배우' 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아역배우' 라는 작은 틀에 매여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우리도 '동화' 라는 작은 틀을 만들어 두고 책 선택의 폭을 조금 줄이게 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글쎄, 이 책의 저자 오츠이치가 이렇게 말하는것 같다.
어때? 이 책도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 넣어둘꺼야? 하고...

 
비디오 속 그녀는 아우라 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얼굴은 나와 같지만 그곳에 비치고 있는 것은 별개의 인물이었다. 나는 암흑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 p.73
 
하지만 대부분의 꿈은 눈을 뜸과 동시에 내용을 잊어버렸다. 기억이 되살아나면 마찬가지로 지금의 자신도 잊어 가는 건가. 지금 이렇게 고뇌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는 의식도 흐려져 가는 건가. - p.280
 
나는 설령 기억이 돌아와도 절대 지금의 자신을 잊고 싶지 않다. 사소한 일로 상처 입고 불안해했던 것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다. - p.283
 
이 책 속에는 기억, 꿈, 눈, 암흑 이런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인간의 말을 하는 까마귀와 장님소녀와의 우정, 우산끝에 찔려 한쪽 눈을 잃고 기억까지 잃어버린 소녀, 그리고 눈을 이식받게 되면서 보이게 되는 어떤 소년의 추억 등
읽으면서 역시나 특이한 작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처음부분을 읽을때부터 도대체 극장가에서 살았다고 영화를 보며 까마귀가 인간의 말을 독학한다는 생각을 몇 몇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점차 복잡해져가는 이야기의 구조.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나오고 저마다의 기억을 이야기 한다.
 
나도 전에 내 기억에 대해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나 자신의 어떤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죽는다면 그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걸까 하는... 그때는 나 자신이 죽었으니 깜깜한 암흑천지고 생각이란 것 자체가 없겠지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듯 또 누군가도 계속 '나 자신' 이 주체가 되어 생각을 할텐데 그 때의 '나' 는 누구인지. 내가 죽어도 세상은 계속 존재할텐데 그 이후, '나' 라고 생각하는 그 누군가는 나의 환생일까? 사실 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보는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의 연장선이고 '나' 를 생각하는 다른 '나' 가 '나' 일리는 없는건 당연하겠지만, '나' 라는 생각의 주체로 계속 세상을 보고 있다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나' 가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 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뭔가 대단히 복잡한가?...; 설명을 제대로 한건지 모르겠다.
 
이 책속에서도 '나미' 라는 소녀는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기억을 잃고, 눈을 이식받고, 그 눈의 원래 주인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 나는 과연 누구인지. 기억을 잃기 전 '나미' 는 타인처럼 느껴지지만, 결코 전의 '나미' 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지금의 새로운 '나미' 도 잊고 싶지 않아하는 이 소녀가 왠지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반가웠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 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조금 다르게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인간은 추억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언젠가는 죽어 없어지지만 타인이 나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한, 나는 그 속에서 계속 함께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강하게 확신시켜 준다. 책 속 주인공인 '나미' 는 기억을 잃고 불안해하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불안불안한 자신의 모습도 인정하게 된다. 그건 새로운 기억과 추억을 잃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온 왼쪽 눈은 꿈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상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평소에는 평범한 눈처럼 기능하지만, 거기에 열쇠가 끼워지면 꿈이 흘러나온다. 그 열쇠가 바로 그네이고 레일인 것이다. - p.59
 
방문자. 그 말이 가슴속 깊이 가라앉았다. 내가 스스로를 어딘가에서 무슨 착오로 이 세상에 오고 만 여행자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틀림없이 '나미' 지만 '나미' 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일까. 어디서 온 걸까. 다시 말해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 있었다. 어떤 우연의 작용으로 이 세계에 도착해 이 가에데초라는 곳에 있다. 나는 방문자. - p.162
 
범인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가르쳐 주고 싶었다. 범인 빼앗은 인생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 p.168
 
과거는 흘러간다. 죽어 사라진다. 마을에서 길이나 선로가 사라져 가듯, 인간도 없어진다. 그리고 그때까지와는 조금 다른 세상이 되어 간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지금은 없는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 p.253
 
스미다가 이야기해 준 것같이 하는 일 없이 보내는 시기라는 것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저 여름 햇살을 받으며 흐르는 시간을 느낀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 p.272
 
작가는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세상은 암흑천지고 우리는 잠깐 살다가는 방문자일뿐이지만, 그래도 그 삶 하나하나는 저마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고...
<끔찍한 공포의 세계를 특이하고 아름답고 몽환적인 표현으로 보여주는 작가 오츠이치에게 더 깊이 빠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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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걸즈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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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요즘 거침없는 두 명의 십대 소녀라 그런지 거침없는 말투에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소설이다.
마구 머리쓰며 읽을 필요없이 그저 두 소녀가 어떻게 방황하다 제자리를 찾아가는지 그녀들의 투닥거리는 대화에 귀기울이며 모래바람 날리는 실크로드 여행길을 따라가면 된다. 우연히 읽는 이가 실크로드 여행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면 그 추억을 떠올리며 읽어도 될 것이고, 나처럼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만 슬쩍 지나친 사람이라면 주인공 은성과 미주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좋을것이다.
그리고 가벼운 어투로 지나가듯 말하고 있지만 많이 생각해볼 문구들도 참 많았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도 나쁘지만, 내일 일을 오늘 미리 생각하는 것도 나쁘다. - p.53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해. 후회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래도 덜 후회하며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지금 네 나이, 가장 열정이 넘치는 나이잖아. 온 몸에 힘이 불끈불끈 솟는 때잖아. 그런데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게 문제야. 십 대의 에너지는 십대에 다 써 버려야 되는 것 같아. 에너지는 축적되는 게 아니라서." - p.139
 
모범 답안은 미리 만들어진 그럴듯한 답이다. (중략) "사는 게 쉽지 않으니까, 그냥 쉽게 모범 답안을 따르려는 건지도 몰라. 미리 정해진 답을 따르면 쉽잖아. 그럴듯하기도 하고." - p.225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등을 돌리는 것처럼 무서운 건 없기 떄문이었다. 하지만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건, 잘못을 하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 p.264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에 달라지지 않는 건 하나도 없다. - p.269
 
만화를 좋아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꿈도 접어야하고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물건을 훔치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던 얌전한 소녀 보라와 아비없는 자식이란 소리에 욱하고 싸움하다 비행청소년으로 찍혀버린 소녀 은성이, 그리고 그들을 인솔하여 70일간의 '실크로드 도보 횡단' 을 떠난 세 여자의 좌충우돌 성장기.
그들은 때론 다투고, 충돌하지만 소박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중국의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삶을 직접 경험하여 화해하고 웃고 울고 성장한다. 읽다보면 보라가 그저 얌전하고 무조건 순종적인 소녀도 아니고, 은성이도 그저 아무나 패는 날라리 학생이 아니라 할머니와 엄마를 생각하는 맘이 큰 보통의 여자아이인걸 알게된다. 그들을 알면알수록 그녀들이 참 좋아진다.
 
소설은 참 경쾌하고 재밌는데 아주 약간 나는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이 책을 좀 더 몇 살 어린 내가 봤으면 좋았을꺼란 아쉬움? 나는 책 속 두 주인공처럼 어리지 않다. 나는 사고를 쳐도 되는 어린아이가 아니고, 내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 멋지고 좋은 일에도 선뜻 도전할 수 없는 어른이다. 꿈만 꾸어도 좋은 아이가 아닌 것이 아쉽다.
 
내가 기고만장하게 사고 치고 다닐 수 있는 건 어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나이가 들면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어른이 되면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쉽게 사고 치지 못하고, 사고만 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일에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 p.145
 
어느새 이렇게 빨리 시간이 흐른 것일까? 이제는 청소년 문학을 읽으며 그들의 밝은 정열을 느끼는 것을 즐거워하던 시기도 지나고 그야말로 재미없는 현실에 시든 어른이 되었나보다. 왠지 이제는 내 길 앞의 그 끝이 오아시스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기분만 든다.
 
'이렇게 멀리 왔는데 내 바로 코앞이 오아시스가 아니라면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하지?'
 
하는 막다른 생각.
내 앞길에 있는 것이 오아시스인지, 신기루인지, 확신도 없고, 혹여 길을 잘못 들었다한들 책 속 은성과 보라처럼 얼마든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을 쉽게 바꾸고 다시 나아갈 시간이 아무래도 내겐 그들보다 적게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인듯하다.
그래서 더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지금 나를 주저앉힌 이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고 벌떡 엉덩이를 치켜들고 새롭게 나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낙타의 방울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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