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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걸즈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평점 :
주인공이 요즘 거침없는 두 명의 십대 소녀라 그런지 거침없는 말투에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소설이다.
마구 머리쓰며 읽을 필요없이 그저 두 소녀가 어떻게 방황하다 제자리를 찾아가는지 그녀들의 투닥거리는 대화에 귀기울이며 모래바람 날리는 실크로드 여행길을 따라가면 된다. 우연히 읽는 이가 실크로드 여행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면 그 추억을 떠올리며 읽어도 될 것이고, 나처럼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만 슬쩍 지나친 사람이라면 주인공 은성과 미주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좋을것이다.
그리고 가벼운 어투로 지나가듯 말하고 있지만 많이 생각해볼 문구들도 참 많았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도 나쁘지만, 내일 일을 오늘 미리 생각하는 것도 나쁘다. - p.53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해. 후회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래도 덜 후회하며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지금 네 나이, 가장 열정이 넘치는 나이잖아. 온 몸에 힘이 불끈불끈 솟는 때잖아. 그런데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게 문제야. 십 대의 에너지는 십대에 다 써 버려야 되는 것 같아. 에너지는 축적되는 게 아니라서." - p.139
모범 답안은 미리 만들어진 그럴듯한 답이다. (중략) "사는 게 쉽지 않으니까, 그냥 쉽게 모범 답안을 따르려는 건지도 몰라. 미리 정해진 답을 따르면 쉽잖아. 그럴듯하기도 하고." - p.225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등을 돌리는 것처럼 무서운 건 없기 떄문이었다. 하지만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건, 잘못을 하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 p.264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에 달라지지 않는 건 하나도 없다. - p.269
만화를 좋아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꿈도 접어야하고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물건을 훔치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던 얌전한 소녀 보라와 아비없는 자식이란 소리에 욱하고 싸움하다 비행청소년으로 찍혀버린 소녀 은성이, 그리고 그들을 인솔하여 70일간의 '실크로드 도보 횡단' 을 떠난 세 여자의 좌충우돌 성장기.
그들은 때론 다투고, 충돌하지만 소박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중국의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삶을 직접 경험하여 화해하고 웃고 울고 성장한다. 읽다보면 보라가 그저 얌전하고 무조건 순종적인 소녀도 아니고, 은성이도 그저 아무나 패는 날라리 학생이 아니라 할머니와 엄마를 생각하는 맘이 큰 보통의 여자아이인걸 알게된다. 그들을 알면알수록 그녀들이 참 좋아진다.
소설은 참 경쾌하고 재밌는데 아주 약간 나는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이 책을 좀 더 몇 살 어린 내가 봤으면 좋았을꺼란 아쉬움? 나는 책 속 두 주인공처럼 어리지 않다. 나는 사고를 쳐도 되는 어린아이가 아니고, 내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 멋지고 좋은 일에도 선뜻 도전할 수 없는 어른이다. 꿈만 꾸어도 좋은 아이가 아닌 것이 아쉽다.
내가 기고만장하게 사고 치고 다닐 수 있는 건 어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나이가 들면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어른이 되면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쉽게 사고 치지 못하고, 사고만 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일에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 p.145
어느새 이렇게 빨리 시간이 흐른 것일까? 이제는 청소년 문학을 읽으며 그들의 밝은 정열을 느끼는 것을 즐거워하던 시기도 지나고 그야말로 재미없는 현실에 시든 어른이 되었나보다. 왠지 이제는 내 길 앞의 그 끝이 오아시스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기분만 든다.
'이렇게 멀리 왔는데 내 바로 코앞이 오아시스가 아니라면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하지?'
하는 막다른 생각.
내 앞길에 있는 것이 오아시스인지, 신기루인지, 확신도 없고, 혹여 길을 잘못 들었다한들 책 속 은성과 보라처럼 얼마든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을 쉽게 바꾸고 다시 나아갈 시간이 아무래도 내겐 그들보다 적게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인듯하다.
그래서 더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지금 나를 주저앉힌 이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고 벌떡 엉덩이를 치켜들고 새롭게 나아갈 힘을 주는 나만의 낙타의 방울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