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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의 바이올린
허닝 지음, 김은신 옮김 / 자유로운상상 / 2008년 6월
평점 :
책 표지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5년 전, 친구를 기다리며 혼자 보았던 <피아니스트> 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책이다. 그래서 무척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피아니스트>... 난 이 영화를 혼자 그것도 비디오방에서 봤다...;; 왜 하필 그 영화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여자가 혼자 비디오방 가기도 참...쉽지 않은데... 사소하지만, 이것도 작은 운명이었을까? 사실 전쟁, 그것도 유태인에 대한 이야기인줄도 모르고 그저 시간을 때울 심산으로 골라봤던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 속 주인공, 유태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기 직전, 쇼팽의 <야상곡> 을 연주한다. 나중에 독일장교에게 숨어살던 곳을 발각당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는 그 곡을 연주했던걸로 기억한다. 잔인한 사상이 불러온 참혹한 전쟁 속에서 진실로 아름다운 음악이 마음을 움직여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되던 그 순간에 어울리는 실로 감동적인 연주였다.
모든 전쟁은 다 끔찍하다. 마크 트웨인이 지은 <전쟁을 위한 기도> 란 책에서 그는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한쪽의 승리는 다른 한쪽의 피의 역사 위에 세워진다. 세상에 명분있는 전쟁이란 없고, 모든 전쟁은 무의미한 학살일 뿐이다.'
그저 자신의 가족과 땅을 지키기 위한 전쟁도 끔찍한데, 독일에서 시작된 이 전쟁, 아니 일방적인 학살은 도대체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의 보존이라니.. 이런 말도 안되는 역사가 있었다는게 참 끔찍스럽다. 끔찍했었던 역사라고만 알지,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한 터라 그 당시 유일하게 독일 나치의 학살을 피해 전세계로 피난을 떠난 유태인 난민들을 받아준 나라가 중국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제서야 중국에 정착한 유태인들에 대해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그 유명한 <태평양전쟁>, <진주만공습>..역사 시간에 그렇게나 자주 들었던 우리나라의 그 가슴아픈 시기에 유태인들도 고난을 겪었단걸 함께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새삼스레 동질감이 느껴지면서 책을 읽으며 더 분노하고 슬퍼하고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당시 우리나라처럼 조각조각 갈라진 채 피폐해져있던 중국, 그곳에서도 욕심을 부리고 우월주위에 빠져있던 일본, 함께 고난을 이겨내며 국경을 초월해 우정을 나누던 사람들,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감동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흘러나오는...야상곡처럼 감동스런 음악, '이날'.
곧 영화로 책 속에서 몇번이나 사람들을 구해내고 힘을 주던 이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도 두근두근한다.
전쟁 관련 영화에서는 꼭 음악관련 장면이 빠지지 않는다. 피로에 지친 군인들을 위한 파티장면이나 다음번 전투에선 자신이 죽을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날 하루 무사함에 기뻐하며 술집에서 노래하는 장면, 군인들을 위로하는 연주회, 하다못해 다음 전투를 위해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연주 등.. 음악은 그렇게 전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내일을 위한 용기를 북돋아주는 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 <피아니스트> 나 이 책에서는 그보다 한단계 더 나아가 사람을 살리는 의사 역할까지도 한다. 이 부분은 책 속 자선연주회 장면을 읽고나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그렇게 저자는 주인공인 세계 일류 바이올리니스트 리랜드의 입을 통해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음악은 최종적으로 대포와 총을 무력하게 만들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실입니다. 음악이야말로 인류 공통의 언어이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이니까요. 이런 언어는 하느님만이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 p.128
리랜드의 신념과 믿음,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진심이 담긴 음악이었기에 만인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준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같은 언어가 아니라도.. 진실된 음악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한번 듣고 가사의 내용을 몰라도 외국노래를 좋아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독일군에게 딸을 잃고 딸이 만들어준 소중한 바이올린을 품에 안고 유일하게 유태인 난민을 받아주는 중국으로 피난을 온 일류 바이올리니스트, 리랜드 비센돌프. 그렇게 정착하게된 중국에서 그는 아버지를 잃은 루샤오넨, 루양 남매를 만나 루양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며 우정을 쌓게 된다. 리랜드가 딸을 잃은 이야기와 바이올린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셋 사이가 돈독해졌던 그 순간(p.94),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서야 '고작' 바이올린이 아니라 '그런' 바이올린을 어떻게...가 되었다. 멜라니의 바이올린은 그렇게 아버지를 구하고 또 루양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한다. 죽어서도 사람들을 구한 멜라니. 살아있었다면 루샤오넹과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바로 음악 외에 작가가 중요하게 다룬 부분이 '우정' 같다. 잔혹한 시기를 함께 겪는 와중에 생겨난 중국인들과 유태인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 우정.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과 희생적인 우정이 담뿍 담긴 소설이었기에 비,록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에 대한 소설이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아프기만 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본인에게 억압을 받긴 했지만 중국인들과 함께 자유와 우정을 나누었던 유태인들의 제2의 고향이라는 중국. 하지만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나에게 중국은 또 어떤 의미를 줄까? 미국국적을 가진 작가지만 자신이 태어난 곳을 잊지 않고, 그 자랑스런 역사를 알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중요한 사실에 관심을 갖게하는 글을 쓰는 멋진 작가를 새로 알게 되어 참 좋았다.
"갑자기 끝없이 펼쳐졌던 바다가 둘로 쪼개지면서 바다 밑으로 길이 나는 게 아니겠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치솟아 있는 물기둥 가운데로 홍해를 건너 자유를 향해 떠난 거지!" - p.175 (중략)
"이것은 역사이자 현실이고, 내가 상하이에 왜 왔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해! 물론 상하이를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 - p.176
"중국인들이 상하이를 '상하이탄' 이라고 부르는 것은 깊은 물속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에서 한 말인 것 같습니다.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은 상하이를 모험가의 낙원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인들의 표현법은 아주 낭만적인데 그들은 상하이를 세계의 만화경이라고 한답니다. 비센돌프 선생님! 만약 선생님 혹은 유태인들에게 상하이에게 적절한 이름을 붙이라고 한다면 어떤 이름을 붙여 주시겠습니까?" - p.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