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들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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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들.. 제목을 다시한번 들여다 본다. 나쁜 것들이란 말이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까닭이다. 이 책속의 주인공은 도대체 무엇을 두고 나쁜 것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향해 뱉어낸 독백이었는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작가의 생각속에 이런 것이 바로 나쁜 것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세가지 모두가 다 맞는 듯 하다. 주인공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말하는 것도 같고, 주인공이 누군가를 향해 뱉어내는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작가의 의중이 숨겨진 말같기도 하다. 무엇이 되었든 그 세가지 모두가 좋은 것이 아니었다는 건 공감한다. 그러나 그렇게 독백을 뱉어내기 이전에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누군가를 탓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결국 나로부터 비롯되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감정 몰입이 힘들었다. 책이 어렵거나 어려운 말이 많아서? 그렇지는 않다. 책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황과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나를 엄청난 무게로 짓눌러왔던 까닭이다. 답답했다. 얼른 그 안의 감정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뭐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거지?  자꾸만 흩어지는 혼자만의 감정을 추스리며 책장을 넘기고 그 마지막을 덮는 순간 나는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 말해주고 싶었다. 한번만, 딱 한번만이라도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는 없겠느냐고.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모든 아픔은 상처를 남긴다. 단지 그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 아픔부터 알아주었으면 한다. 너도 아프겠지만 너보다 내가 더 많이 아프니 제발 내 상처부터 봐달라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그렇게 내 아픔부터 챙겨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아이의 아버지였고, 또 한 여자의 남편이었기에 저만의 아픈 기억만을 끌어안고 있기엔 너무 이기적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한 남자가 자동차 사고로 눈앞에서 아내와 큰 딸을 잃었다. 불행하게도 그들을 잃었던 싯점은 과거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와 겹쳐 있었기에 그 남자는 더욱이나 힘겨웠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딸이 있었다. 자신과 똑같이 눈앞에서 엄마와 언니를 잃었던 어린 아이. 남자에게는 그 어린 딸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픔과 고통만을 생각한 채 어린 딸을 방치했다. 그리하여 그 어린 아이는 두번의 상처를 입었다. 가슴속 깊이 각인되어질만큼. 엄마와 언니를 잃었다는 고통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또하나의 고통을 여물지 않은 가슴속에 받아들여야만 했다는 말이다. 서로가 치유되지 못한 고통을 안은 채 세월이 흐른 후 딸은 배우가 되었지만 끝내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했다. 온갖 못된 짓으로 아버지를 괴롭혔지만 자신의 결혼생활조차도 제대로 꾸려갈 수 없었다. 우울하고 불행한 나날의 연속, 그러면서도 끝없이 아버지와 대치한다. 괴롭히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괴롭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 남자가 현실을 부정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듯 하다. 딸 역시 그렇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사랑은 오지 않을거라고 스스로가 결론을 내려버린 채 역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따지고 든다면 어찌되었든 어린 아이를 먼저 보호해주었어야 할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부분이 더 나쁘게 보인다. 솔직하게 말해본다면 나 역시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딸중의 한명인 까닭에, 나는 딸의 입장에 더 많은 공감을 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답답함에 시달려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듣는 이의 입장은 모른다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아버지의 말투에 화가 나기도 했다. 딱 한번만이라도 딸을 이해하려고, 보듬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내 마음까지도 풀렸을 것만 같다.

 

어찌되었든 가족이라는 화두가 새삼스럽게 낯선 느낌으로 찾아온다. 내 부모, 그리고 내 부모의 부모가 살았던 시절속의 가족과 지금 현재의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분명 다르다. 가족애라느니 정이라느니 아무리 외쳐봐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나만 그렇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비뚤어진 문명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놓치고 살아가는 것중의 하나를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된다. 끝없는 메아리로 영원히 우리 주변을 맴돌지도 모를 그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나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바로 이 책의 마지막을 덮는 그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비생각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의 고통과 관련해서는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들에게 초래한 피해 상황을 확이한 후에야 놀라서 얼이 빠지고 기겁을 한다. 길거리 싸움판에서 멋모르고 휘두른 주먹 한 방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일처럼.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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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페스티벌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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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서 우아하게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한다. 물, 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는 왜 그런지 낭만적이다. 고요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친 얼굴로 달려들기도 한다. 그런 물 위를 정지된 시간처럼 시나브로 움직이는 새들의 모습은 여유로움 그 자체다. 그 수면 밑으로 우리의 생각보다 더 바쁜 움직임이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일단은 보여지는 그림이 멋진 까닭에 그것까지 챙겨야 하는 게 우리 몫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정도의 제목이라면 감춰진 곳, 베일에 가려진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걸 누구나 상상하지 않을까 싶지만  '물밑'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때문인지 색다른 뭔가가 있을것만 같았다. 썩어버린 곳에 과감하게 칼을 댈 줄 아는 일본소설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전에 TV에서 보았던 씁쓸한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마을에서 그 마을 사람에 의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는데 그 일이 밖으로 알려져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찾아가기 시작했다. 무작정 피해자를 찾아나선 방송도 물론 약간의 무리수를 두기는 했다. (항상 그렇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언론은 그것의 본질적인 면을 찾기보다 어떤 사건을 그저 헤집을대로 헤집어 까발리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는해도 당장 자신이 처한 상황조차도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 피해자의 입장보다 그 일로 인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집값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건 왠지 서글프게 보였다. 도덕적 해이... 남의 아픔쯤은 나의 이익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그렇게 차갑고 냉정한 사회의 한 단면이 이 책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몰입도가 상당히 강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 마을의 풍경이 머리속에 그려질 정도로 글은 섬세했다. 등장하는 인물마다 각각의 특성이 그대로 전해져오니 그야말로 스릴과 공포가 느껴진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말 그대로 긴장감과 박진감이 몸을 사리게 한다. 그렇게까지 잔혹하다거나 지저분한 표현은 없어도 그 마을사람들의 마음 하나 하나가 이상하리만치 깊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아무일 없다는듯이 웃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들. 거기에 마지막 반전은 이 소설의 정점을 찍기라도 하겠다는 양 나를 기다렸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속마음은 숨긴채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다는 설정이 섬뜩했다. 투명가면속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표정은 어땠을까? 결국 그 썩은 부위를 오려내기 위해 다부진 결심으로 문을 나서는 주인공의 발걸음이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오랜만에 이런 작품을 만난 것 같다. 단숨에 읽었지만 남는 여운은 길다.

 

몇해 전에 주산지에 가 본적이 있다. 영화로 사진으로 내게는 늘 아름답게만 비춰지던 주산지. 하지만 내가 본 주산지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영화나 사진에서처럼 그렇게 빛나지도 않았다. 물이 빠져버린 그림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거칠게 드러난 나무뿌리는 왠지 쓸쓸했고 불행해 보였다. 사실 물 들어오기전의 모습이 그 나무 본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물속에 갇힌 나무의 모습만을 아름답게 생각해야 했는지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쪽이 좀 그랬었다.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어쩌면 그것과 같은 우리의 잘못된 오류가 아닐까? 다시 느낀다. 만들어진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을. 그 짧은 행복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걸.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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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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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 그려 사람 하나 죽게 됐네

사람이 사람이면 설마 사람 죽게 하랴

사람아 사람을 살려라 사람이 살게

 

사랑... 결론적으로 말해보자면 사랑은 진부하다. 거기다가 고루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랑은 이미 우리에게 식상한 그 어떤 것처럼 비치곤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곁에 머무는 사랑이 너무 쉬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더 보태자면 사랑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며 개인적이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혼자하는 사랑이 오히려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이 하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사랑은 정말이지 지독하게도 자기위주의 감정일 뿐이다. '너를 위해서' 라고 말을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엔 '사실은 나를 위한거야' 라는 속내가 엿보인다. 가끔은 처절하다는 표현으로 다가오는 사랑.. 몸서리칠 정도로 슬프고 끔찍하다, 는 뜻도 함께 안고 있는 그 말처럼 사랑은 정말이지 슬프고 끔찍한 명제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애써 포장한다. 아름답다고. 아름다운 거라고. 아름다워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보여지도록 노력하며 산다.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김형경의 글은 읽는 중간중간에 내 속을 후벼팔듯이 들이대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녀의 글에 쉽게 무너지는 이유가. 모두가 포장을 풀어헤치지 못한 사랑의 겉모습만 바라보며 미소지을 때 과감하게 '아름답다'는 포장지를 찢어버리고 그 안에 든 것의 실체를 바라보라고 소리치고 싶어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당신안의 사랑이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지 않겠느냐고.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없이 들으며 사는 세상이 지금이다. 그래서 그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속에 우리가 산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 남자구나' 했던 남자 세중에게 어떤 '느낌'을 부여했던 것도 연희 자신이었다. 그래놓고는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아름다운 사랑을 꿈꿨다. 환상적인 그 어떤 것이 있을거라고 기대했다. 사랑은 그렇게 처음부터 서로를 향한 환상에서부터 시작되어졌다. 그 환상이 깨지기까지의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작정 떠났던 그 여행길에서 눈에 갇히고서야 마주했던 그 사랑은 결국 '그 집' 에서만 허용되어지던 아주 짧은 환상의 세계였다. 눈이 그치고 '그 집'을 나와야 했을 때 그들의 사랑은 포장지가 벗겨지고 마침내는 자신이 그토록이나 보고 싶어했던 사랑의 허상을 보게 되지만, 작가의 말처럼 사랑은 그 집에서 죽은 게 아니었다. 사랑은 비로소 그 집에서 완성되었다, 라고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생각나? 그때 그 산속에서는 다르게 말했던 거. 현실의 법칙에 맞추어 살 줄 몰랐고, 현실에 적응하는 노예성의 시기를 거치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현실에 살기 위해 필요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던 거."

"그동안 나도 생각이 좀 달라졌어. 그들이 몽상가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패배자는 아니라는 거, 몽상가들이 이 세상에 대해 갖는 긍정적이고 고유한 기능이 있다는 거, 그런 것을 믿고 싶어졌어."

 

현실... 현실은 정말로 이율배반적이다. 명쾌하게 이것, 이라고 말할 수 없는 두 명제를 우리앞에 들이민다. 그래놓고는 선택이라는 과제를 낸다. 그 수많은 선택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도, 대신해주어도 안된다는 암묵적인 계시조차 보인다. 누구나 꿈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누구나 꿈을 꾸며 살지는 않는다. 누구나 꿈이 이루어질거라고 말하지만 누구나 그 꿈의 정상에 도달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이 속한 현재를 거부하며 그보다 더 큰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면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까닭에 현재보다 더 큰 꿈을 꾸고, 더 먼 거리에 있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거라고. 세중과 연희가 필연적으로 가야했던 '그 집'에는 세사람이 머물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꿈을 안고서. 그런데 중요한 건 아무리 크고 먼 꿈을 향해 달려간다해도 지금 처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거였다. 연희와 세중이 눈속에 갇혀 홀린듯 제자리를 맴돌다 어쩔 수 없이 '그 집'에 머물러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집'에서 살았던 남자와 여자와 사내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일런지도 모르겠다. 세사람 모두 외면하고 싶어하는 각각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믿음이 없어도 지속될 수 있는 관계속에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외로움이 숨어 있었다. 어느 순간 불현듯 믿음이라는 녀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면 그때부터 외로움은 이름표를 바꾼다.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 믿음조차도 자신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느닷없이 찾아온 두려움을 지독한 사랑의 몸짓으로 이겨냈다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는 자괴감으로 인해 연희와 세중은 생각한다. 차라리 '그 집'에서 죽고 싶다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환상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비록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해도. 이야기를 마치기전에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연희와 세중을 다시 만나게 해 준 작가에게 왠지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늘 외면하고 싶어하는 자신만의 환상과 마주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서. 그렇게해서 당당하게 현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두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에 대해서. 또다시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환상을 향해 과감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연희와 세중을 통해 작가는 내게 말한다. 현실은 현실일 뿐이라고. 그리고 또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고.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현실과 환상은 어쩌면 평행선을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서로를 버릴 수 없기에.

 

이 책이 오래전에 <성에>라는 제목으로 나왔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책의 개정판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성에>를 읽지 못했기에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제목만으로는 무언가로 긁어내야만 사물이 보이는 한겨울 창문에 서린 성에처럼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은 거북스러웠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먼 곳이었다고 생각했었지만 돌아와 보니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는 설정도 쉽게 지나쳐버릴 수 없었다.  눈속에 갇혀버린 외딴집, 그 집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하나씩은 품고 있을 자신만의 집이 아닐까 싶었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이미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의 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작가는 자연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의인화시킨 자연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울림이 있었다. 자연속에 머무는 생명체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의 속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위주로 정해놓은 수많은 틀을 깨지 않는 한,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찾지 못한채 포장지속에 갇혀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일기를 통해 보여지는 세사람의 과거와 연희와 세중이라는 연인을 통해 보여주는 현재는 그다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랑은 정말 환상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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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기억, 지도 - KBS 특집 다큐멘터리 지도에 새겨진 2,000년 문명의 기억을 따라가다
KBS <문명의 기억, 지도>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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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통해 방영되었던 지도 이야기는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다. 역사이야기와 맞물려 있는 탓에 나를 TV앞에 앉혔던 프로그램이기도 했지만, 방송을 보면서도 참 놀라웠었다. 와, 저런 것까지 어떻게 취재할 수가 있었지? 하며 감탄사를 쏟아내기도 했었다. 그런데 책으로 나왔다. 방송으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은 판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내가 놓친 부분이나 좀 더 알고 싶었던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던져버릴 수가 없었다. 사실 방송에서 놓쳤던 부분을 다시 책으로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내용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용과 함께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지도들, 그 사진이 얼마나 귀하게 얻어진 것인지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분명 우리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 박물관에 있어야하는 아픔은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저 많은 지도와 만나기 위해 눈물까지 흘려야했다던 그들의 후기가 한편의 드라마같다.

 

1부 달의 산, 이 부분에서는 세계를 그린 우리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어떻게 우리나라의 지도에 아프리카를 그려넣을 수 있었는지, 그것이 정확하게 그려진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 지도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이기도 하다.<혼일강리도>를 중국에서 들여와 이 지도에 우리 나라와 일본을 추가하여 새로 편집한 지도다. 처음 이 지도를 보았을 때 너무나도 크게 그려진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고 뜨악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야 그 연유를 알게 되었고 수긍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 지도가 보여주는 여정을 따라가면서 역시 여러모로 컸던 중국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땅덩어리도 크고 사람도 많았으니 좀 더 넓은 세계로의 진출을 꿈꾸었다는 게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지내는 우를 범하고 말아 조금 늦은 발전을 꾀할 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들의 저력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부 프톨레마이오스,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로 천동설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위도와 경도의 개념을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고, 지도 투영법 이론을 제시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그린 지도는 훗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2부에서는 지도를 따라 걸으며 인류문명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를 되짚어보게 된다. 세계지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흥미롭다. 지도 한장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맞춰 재탄생되어지는 세계사가 재미있다. 결국 종교를 끼고 시작되었지만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필요조건을 충분히 채웠다고 생각이 들면 사라지거나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지도가 그랬던 것 같다. 필요에 의해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차츰 차츰 변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사람이 필요성을 느끼게 된 지도가 첨단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일게다. 유럽인들이 미지의 나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찾아내기까지, 그리고 그들이 그 곳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지도를 통해 너무도 선명하게 길을 보여주고 있다.

3부 프레스터 존, 지도때문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종교적인 의미가 앞섰다. 밀리고 밀리는 종교전쟁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또다른 종교적인 힘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이 찾아헤맸던 존재가 저 먼 동양의 어느곳에 있다는 이야기가 생겨나고, 결국은 유럽인들을 동양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종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니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지도도 생겨났다. 하지만 종교적인 의미보다 현실적인 의미가 더 강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서,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들이 필요로 했던 것이 지도였기 때문이다. 지도 한장으로 인하여 많은 돈을 벌 수가 있었고 그 이익을 따라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도 한장으로 인하여 새로운 문명,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역사라는 과거가 그렇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지금처럼 지도를 통해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종교를 통해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하나의 물품을 통해 역사를 되짚어나가기도 한다. 같은 이야기 같은 결론인데도 불구하고 그 과정이 흥미로운 건 무엇을 매개체로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4부 지도 전쟁, 지도를 가진 자, 세계를 지배하리라.. 별 것 아닌 것 같은 저 한 문장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모두 그렸다는 일본. 그 일본이 그린 지도가 지금까지도 미국의 어느 박물관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식민지시대를 열면서 그들이 제일먼저 우리의 역사를 연구했다는 건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역사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구석구석까지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다. 우리가 굳세게 빚장을 걸어놓고 있을 때 그들은 먼저 세계로 향하는 눈을 떳다. 자의든 타의든 다른 세상의 문명에 눈을 떳을 때 그들도 지도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이제는 그 지도 한장으로 인하여 비롯되어질 수 있는 일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종이에 불과한 지도에 어떻게 선을 긋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하면, 단 한 줄의 선으로 인해 불행과 고통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도 있으니. 당장 선 하나를 두고 남과 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만 보더라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지도를 펼쳐놓고 세계여행을 한 기분이다. 내용이 너무 딱딱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다시 읽기를 잘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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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뒤흔든 20가지 전쟁 1 - 고조선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생각을 담는 역사 3
이광희 지음, 곽재연 그림 / 생각을담는어린이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솔직히 전쟁 이야기는 재미있다. 전쟁이 참혹하고 잔인한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해도 말이다. 전쟁의 속성이 결국 경제적인 것에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다 이해타산적인 면에서 비롯되는 건 맞다고 본다. 내게 이득이 되니 전쟁이라도 일으켜 빼앗아야 하고, 빼앗기면 잃는 게 많기 때문에 죽으라고 그 전쟁을 치루어낸다. 어쩌면 인간사가 그렇게 좀 더 나은 삶을 지키기 위하여 앞세우는 필요악이 전쟁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전쟁이야기를 발판으로 펼쳐나가는 우리의 역사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 시대에 머물지 않고 역사의 고비를 넘어가는 그 순간마다 있었을 전쟁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역사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속내가 엿보인다. 요즘의 아이들에게서 엉뚱하게도 배우의 이름을 들먹거려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사의 엇박자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와 곁들여 제대로 된 역사의 배경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이미 드라마로도, 영화로도 우리에게 익숙한 전쟁이야기가 펼쳐진다. 나 어릴적에는 연도와 왕의 이름을 외우는 게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많은 변화를 거쳐 그때와는 다르게 접근한다. 황산벌 전투에서 비장한 각오로 가족을 죽였던 계백. 그가 했던 행동은 과연 옳았을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라는 논제를 펼쳐놓고 아이들끼리 서로 토론도 한다고 하니 좋은 일이다. 잠깐이나마 그 당시의 계백이 되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건 멋진 일일게다. 너무 무겁고 복잡하게만 다가오던 역사를 이제는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는 손길이 많이 보여 개인적으로는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전쟁이야기는 1권과 2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1권에서는 고조선부터 통일 신라까지, 2권에서는 후삼국부터 한국전쟁까지를 다룬다. 이름만 대면 아하, 하고 반색할 전쟁이 총망라되어 있다.  지나가는 말로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통일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에서도 토론 형식을 통해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것 저것 살펴보면 요즘의 한국사는 나 어릴적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많이 변하기도 했겠지만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속에서 바라보는 역사에 대한 시각에도 많은 변화가 왔을거라 생각한다. 요즘들어 가장 안타까운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인데 우리도 너무 늦지 않게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를 설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곁들여진 만화가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리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 같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통일신라 시대냐 남북국 시대냐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대목이었다. 7세기 말에서 10세기 전반까지 남으로는 신라가 북으로는 발해가 있었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은 우리의 역사속에 발해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 와서 실학자 유득공이 <발해고>라는 책을 통해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주장했다는데... 발해를 두고 중국과 러시아가 제각각 자신들의 역사라고 한마디씩 한다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발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리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자신이 있는지. 주먹구구식으로는 되지 않는게 지금의 현실이니 역사에 관해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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