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 페스티벌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물 위에서 우아하게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한다. 물, 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는 왜 그런지 낭만적이다. 고요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친 얼굴로 달려들기도 한다. 그런 물 위를 정지된 시간처럼 시나브로 움직이는 새들의 모습은 여유로움 그 자체다. 그 수면 밑으로 우리의 생각보다 더 바쁜 움직임이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일단은 보여지는 그림이 멋진 까닭에 그것까지 챙겨야 하는 게 우리 몫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정도의 제목이라면 감춰진 곳, 베일에 가려진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걸 누구나 상상하지 않을까 싶지만  '물밑'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때문인지 색다른 뭔가가 있을것만 같았다. 썩어버린 곳에 과감하게 칼을 댈 줄 아는 일본소설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전에 TV에서 보았던 씁쓸한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마을에서 그 마을 사람에 의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는데 그 일이 밖으로 알려져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찾아가기 시작했다. 무작정 피해자를 찾아나선 방송도 물론 약간의 무리수를 두기는 했다. (항상 그렇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언론은 그것의 본질적인 면을 찾기보다 어떤 사건을 그저 헤집을대로 헤집어 까발리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는해도 당장 자신이 처한 상황조차도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 피해자의 입장보다 그 일로 인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집값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건 왠지 서글프게 보였다. 도덕적 해이... 남의 아픔쯤은 나의 이익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그렇게 차갑고 냉정한 사회의 한 단면이 이 책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몰입도가 상당히 강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 마을의 풍경이 머리속에 그려질 정도로 글은 섬세했다. 등장하는 인물마다 각각의 특성이 그대로 전해져오니 그야말로 스릴과 공포가 느껴진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말 그대로 긴장감과 박진감이 몸을 사리게 한다. 그렇게까지 잔혹하다거나 지저분한 표현은 없어도 그 마을사람들의 마음 하나 하나가 이상하리만치 깊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아무일 없다는듯이 웃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들. 거기에 마지막 반전은 이 소설의 정점을 찍기라도 하겠다는 양 나를 기다렸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속마음은 숨긴채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다는 설정이 섬뜩했다. 투명가면속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표정은 어땠을까? 결국 그 썩은 부위를 오려내기 위해 다부진 결심으로 문을 나서는 주인공의 발걸음이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오랜만에 이런 작품을 만난 것 같다. 단숨에 읽었지만 남는 여운은 길다.

 

몇해 전에 주산지에 가 본적이 있다. 영화로 사진으로 내게는 늘 아름답게만 비춰지던 주산지. 하지만 내가 본 주산지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영화나 사진에서처럼 그렇게 빛나지도 않았다. 물이 빠져버린 그림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거칠게 드러난 나무뿌리는 왠지 쓸쓸했고 불행해 보였다. 사실 물 들어오기전의 모습이 그 나무 본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물속에 갇힌 나무의 모습만을 아름답게 생각해야 했는지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쪽이 좀 그랬었다.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어쩌면 그것과 같은 우리의 잘못된 오류가 아닐까? 다시 느낀다. 만들어진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을. 그 짧은 행복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걸.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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