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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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부제가 주는 느낌이 이채롭다. 여기라면 어디일까? 그것도 1900년대라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1900년대라면 우리가 흔히 근대라고 말하는 시기다. 근대화의 시기라하면 어떤 게 가장 먼저 떠오를까? 모던 보이나 모던 걸? 전차? 소소하게 떠오르는 것들이 모두 18C 말에서 19C 초의 것들이다. 그만큼 시끄러웠을 것이다. 저마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을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서. '시사만평으로 읽는 대한제국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시사만평, 대체로 단 한컷의 만화로 표현되어지는 세상의 이야기다. 어렸을 적부터 신문 한쪽에 실리는 만화가 좋았다. 그 습관이 지금도 웹툰만 보면 마음을 빼앗겨버리게 만들었지만 몇 장 되지 않는 그림으로 많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그것이 정말 좋았다. 그 당시의 사회상을 그림 몇조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자(?)들에 대한 부러움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시사만평 혹은 만화만평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여지없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고바우 영감>이 있다. 위로 삐죽하게 솟아오른 머리카락 한올이 매려적인 아저씨가 주인공인데 풍자도 풍자지만 불합리한 모순에 대해 속시원하게 비판하기도 했던 모습도 볼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동아일보에 이 만화가 실렸었는데 지금이야 모든 신문이 그게 그거라는 의식이 팽배하지만 나 어렸을 적만해도 신문과 신문의 차이는 확실하게 있었던 듯 하다. 그때까지만해도 각 신문마다 저만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모두 <대한민보>에 실렸던 이도영화백의 시사만평과 그에 어울리는 사회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책속에서 보여지는 한 컷의 만화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찌보면 어리숙해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조금 부족해보이기는 해도 속감정을 불러낼 정도의 공감대가 깊을 때도 많았다.

그렇다면 <대한민보>는 어떤 신문이었을까? 1909년에 '대한협회'를 배경으로 창간된 신문이다. 친일단체인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자강회'의 후신이라고 한다.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던 독립운동가 오세창이 사장이었다고 하니 그 신문의 성격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창간호부터 1면에 이도영 화백의 목판 시사만화를 연재하여 신문사상 첫 기록을 세웠으며, 일본인의 난행에 대한 풍자나 경고로 일반의 인기를 끌었으나 한일합방되던 해에 일본에 의해 폐간되었다는 말도 보인다.


1장에서 권모술수의 달인들로 표현되어졌던 무당과 점쟁이편을 보면서 내내 씁쓸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신을 찾는다는 글이 지금의 시대를 말하고 있는 듯 하여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악의 편에 줄을 서며 기생하는 족속은 어느 사회든, 어느 시기든 다 있게 마련이다. 이 책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온 기회주의자들의 모습 또한 기시감을 불러와 영 개운치가 않았다. 글쓴이의 말처럼 책속에 소개되어진 많은 이야기를 우리의 역사책에서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의 역사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것이 현재의 모습을 반추하는 거울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이념의 실천만으로 인민의 삶이 행복해지리라는 착각에 빠진 일부 개화파와 국민의 살림살이보다 사익 추구를 위해 권력에 줄을 대는 사이비 보수파는 어쩐지 닮아 있다. 한일병합이라는 어수선한 틈을 타 난립했던 각종 단체의 이권 챙기기는 지금의 선거철 풍경과 멀지 않다...는 글쓴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것이 단지 소문이었다고, 왜곡된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말하기에는 뒷맛이 너무 쓰디쓴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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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 - 아이와 함께 가는 옛건축 기행
최경숙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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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원래 느리게 하는 게 맞다. 요즘의 우리 삶은 그야말로 팍팍함 그 자체다. 그래서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자주. 그러나 그 일탈의 시간은 우리가 꿈꾸는 것만큼이나 자주 와주지 않는다. 시간이 와준다해도, 혹은 힘겹게 그 시간을 만들었다고 해도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러니 느림여행이라는 것 역시 쉽지 않을터다. 그래서 부러웠다. 가족을 동행하는 느림여행처럼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거기다가 자신의 전공을 접목시킨다면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궁금했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을 어떻게 전해주려는지가. 글쓴이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상당히 많은 곳에 머물게 된다. 가는 곳마다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주니 어느정도의 궁금증도 해결하면서 동행할 수가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그 이상의 어떤 특별한 느낌을 그다지 전해받지 못해 조금은 섭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보면서 내가 다녀왔던 곳에 대해 다시한번 반추해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기는 했다. 나 역시 많은 곳을 다니면서 느림여행을 꿈꿨었다. 남편과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다녔던 곳은 아직도 꿈결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반면 답사팀과 함께 다녔던 곳은 여전히 정신이 없다. 그래서 나 역시 느림여행을 꿈꾼다.

 

크게 주제를 나눠본다면 이렇다. 옛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통가옥과 우리 역사의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사찰 찾아보기, 조선의 시대정신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서원과 정자 역시 빼놓지 않았다. 거기다가 풍수지리나 전통건축의 용어정리까지... 한동안 고택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전통건축의 용어에 목을 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용어를 몰라 고택을 둘러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것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마음을 내려놓기도 했다. 집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정신을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에 대해 조금 알고 찾아간다면 괜찮치 않을까 싶다. 사찰을 둘러볼 때는 가기전에 그 사찰이 안고 있는 설화를 하나쯤 알고 가면 재미있다. 거기다가 그 사찰공간에서 숨쉬는 역사적인 사건을 정리해본다면 꽤나 흥미로운 공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찰의 구석구석에 놓인 것들 모두가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듯이 기본적인 사찰정보만 알고 가도 생각처럼 따분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서원과 전통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명심할 것은 지금의 시선, 지금의 생각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답사는 옛사람들의 삶속으로 들어가보는 여행이다. 그러니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금의 현실에 꿰어 맞추려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책을 읽다보니 여러 장면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이런 곳에까지 정자를 지었구나 하는 경탄을 자아내게 했던 정선의 구미정과 바위위에 정자를 지어 풍류를 즐겼다던 예천의 선몽대, 탑의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스럽게 알려주었던 익산 왕궁리 5층석탑과 석탑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던 장하리 삼층석탑, 하얗게 쌓인 눈 위를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며 좋아라 했던 빙계서원과 정말 멋진 상상을 하게 만들어주었던 외암리 민속마을의 건재고택과 송화댁, 남편과 아들을 옆에 끼고 올랐던 성흥산성에서 백제를 함께 이야기했던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황홀하다. 나는 여전히 느림여행을 꿈꾸며 산다. 아마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많은 것을 보러가는 게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을 느끼고 싶은 욕심일 뿐이다. 여행은 느리게 하는 것이 맞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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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람들은 왜 피곤하지 않을까 - 피로 없이 맑게 사는 스웨덴 건강법
박민선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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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 진짜로?" 책의 제목을 보면서 소리나지 않게 외친 질문이다. 세상에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그말은 곧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말일텐데 정말 조금의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제목이 하도 기가막혀서 그저 씁쓸하게 혼자 지껄여보는 말이긴 했어도 정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피곤할까? 도대체 왜 하루가 멀다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갈까? 우리는 흔히 말한다. 마음을 비우라고. 그리고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그것은 이론일 뿐이다. 득도의 반열에 오른다면 모를까 그리쉽게 마음을 비울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인 까닭이다. 그러나 감히 말하지만 어느정도는 비워내고,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낭비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풍요속의 빈곤을 외쳐대는 작금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되새겨봄직한 질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책은 우선 스웨덴 사람들이 어째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밖에 없는지부터 말한다. 많은 나라가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스웨덴의 복지제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따라오는 그 복지제도가 어쩌면 그리도 탐이 나던지... 도입부에서 국가의 투명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왠지 낯설었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꿈같은 이야기일수도 있는 일이 그곳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펼쳐진다는 사실이 그런 느낌을 받게 했던 모양이다. 이제 막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스웨덴에서 이직률 1위를 달리는 직업이 공무원일까? 너도 나도 공무원이나 해보자고 달려드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서글퍼진다. 모두가 제 이익만 챙겨보겠다고 툭하면 집회를 열고 파업을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그림의 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나 알기 쉽고 편하게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국가제도(재정)의 투명성이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가 국민의 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듯 하다. 길어지는 수명으로 인해 자꾸만 불안해지는 노후의 삶을 걱정하게 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볼 때 혼자여서 더 즐거운 노년이 좋다고 말하는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어느정도 문화의 차이를 차치한다해도 부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우리가 늘 들어왔던 말을 그들은 일상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식품을 그대로 먹었고(여기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필수다!), 평생 운동하며 체험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이 부분은 어린시절부터 그런 생활태도를 만들어주는 어른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 그곳이라고 인터넷이 안될리 없건만 그들은 스마트기기와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인데 그들은 되고 우리는 안된다는 사실이 속상하기도 했다. 수면부족에서 탈출해야 한다거나 스트레스를 잡아야 한다거나 혈액순환을 개선하라는 말들은 솔직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던 까닭이다. 피곤할 때는 당연히 피곤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나이에 따라 그 피로의 모습도 달라진다고? 그걸 모르는 사람,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피곤한 것인 문제인 것이다.

결국은 삶의 방식이다.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너나 잘하세요"나 "너부터 해보세요", "나만 아니면 돼" 가 아니라 " 우리 함께 해봐요"를 외쳐야 가능한 피로없는 삶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럴려면 바뀌어야 할 우리의 문제점이 너무 많은 듯 하여 책을 읽으면서도 왠지 답답했다. 우리나라도 공무원이 이직률 1위를 달리는 직업에 속하는 그날이 올 수 있을까? '눈먼 돈'이라거나 "새는 세금"이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아득하기만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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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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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라는 놀라움을 뒤로한채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동안 늘 마음깊이 새겼다던 이 한마디의 말이 나는 사실 더 두려웠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작금의 일본의 행태를 보면서 저 말이 진실이 아니길 은연중에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변해가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한번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심정은 절박하기까지 했다. 사실 일본의 만행이라는 게 어디 한둘일까? 731부대의 진실을 통해 드러났던 그들의 잔혹함 또한 우리는 잊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책의 제목에 시선을 고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설까? 종종 우리는 역사는 누구에 의해 쓰여지는가를 묻곤 한다. 역사가 승리한 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것쯤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렇다면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설까? 예나 지금이나 힘있는 자, 가진 자에게는 많은 사람이 함께 해 왔다. 그러니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듯 하다. 그 불편한 진실이 이 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음이다. 외세의 침입으로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에게도 한번 묻고 싶었다. 과연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설 것 같으냐고.

 

책을 읽으면서 20세기 최악의 사건 중 하나라는 <킬링필드>가 오버랩되었다. 캄보디아에서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가 4년 동안 양민 20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었는데 그에 관한 다큐를 보면서 얼마나 기가 막혔었는지. 그러나 난징의 강간은 그렇게 해야만 할 아무런 목적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엄연하게 드러난 진실마저도 날조된 것이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는 일본의 만행을 보면서 저들에게도 과연 심장이 뛰고 있을까 싶었다. 책속에서 보여지는 일본군의 만행에 경악했다. 전쟁의 참상이라고 알고 있었던 수많은 전제를 모두 뒤엎어버릴만큼 경악스러웠다는 말이다. 현재까지도 역사의 증인으로 살아남아 생생한 증언을 남기고 있다는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떨렸을까? 그 목소리를 들으며 이 모든 것을 준비했던 저자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책장을 넘기면서 충격적인 사진 몇 장으로 내 가슴은 이미 떨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설마'하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겼다면 거짓일까? 정말 그랬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사람이었다면.... 이 책은 난징의 강간과 대학살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토록이나 처참하고 치욕적인 홀로코스트를 우리가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혹은 잊혀진 듯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 배경에 대해서도 차분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말하고 있다. 역사는 과연 누구의 편에 서는가를. 새삼스럽게 치밀어오르는 반미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게 솔직한 말일 것 같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미국의 실체를 다시한번 속깊이 들여다 본 듯 하여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현재의 동아시아의 정세에 대한 움직임을 보면서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인 진실에 대한 사실규명이 더 논의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역사의 증인들이 아직 살아 있을때 치유의 역사 또한 다시 써야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그저 지나간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엔 상처의 골이 너무 깊다. 아울러 우리도 기억해야만 한다. 역사는 진실로 약한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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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이 인류를 멸망시킨다 - 당질 제한에 대한 생명과학적 고찰
나쓰이 마코토 지음, 윤지나 옮김 / 청림Life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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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빵, 면보다는 차라리 고기와 튀김을 먹어라' 라는 책띠의 글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하나 있다. 요즘 한창 광고를 통해 들어야 했던 밥, 빵, 면, 면, 밥, 빵을 반복해서 외치던 그 광고말이다. 결국은 맨날 똑같은 걸 순서만 달리한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시장에 가면서도 오늘은 또 뭘 먹어야하나 고민하는 주부의 입장에서는 색다르게 들렸던 광고였다. 매일처럼 고민을 하지만 결국 오늘도 그다지 색다를 것 없다는 게 아마도 모든 주부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오늘 저녁부터 당장 밥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될 것이다' 라는 책의 소개글을 읽으면서도 설마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 지금과 같은 식생활 패턴을 고수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에 머리를 저었다. 원래도 좋아하지 않던 초코렛과 같은 단것들에게서 한발 더 물러난 건 사실이다. 소화기능이 약해 될수록 피했던 면종류를 더 멀리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이런류의 책을 보게 되면 은근 화가 치민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야? 하고 되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너도 나도 이 의견만이 진짜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것조차도 저들만의 잔치에 내가 흔들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에필로그를 통해 어느정도의 가설임을 밝히고 있지만 여러사람의 체험효과를 예로 보여주고 있으니 살을 빼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도전해볼만 한 주제일거라는 공감대가 꽤나 컸다.

 

도대체 우리 삶의 주변에 널려있는 지식들은 어느정도의 사실성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저마다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잘못된 것들도 멋들어지게 포장하여 마치 사실인양 외쳐대고 있는 게 어디 한둘이냐 말이다. 포장광고의 홍수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이번에도 속았군, 을 중얼거려야 했던 허망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바로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의 뭔가를 끌어낸다. 제목에서 보이는 '탄수화물'의 존재가 단순히 탄수화물이라는 영양소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일전에 읽었던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 라는 책이 떠올랐다. 지금과 같은 배부른 세계의 종말이 바로 앞에 와 있음을, 그리고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우리의 식량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에서도 이 책과 마찬가지로 곡창지대의 침체는 우리에게 다가올 위기의 징조라고 말했으며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변화를 말하고 있었다. 곡류로 인하여 인류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으나 그 곡류로 인하여 인류에게는 또다른 재앙이 시작되고 있었음을 이 책에서도 아주 현실감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밥이나 빵, 면과 같은 곡류보다는 고기가 소화가 더 잘된다거나 우리몸에 좋다고 수없이 들어왔던 뿌리채소는 당질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잎채소를 먹어야 한다거나 밥이나 빵, 면과 같은 곡류만 줄여도 살이 빠지는 걸 알 수 있다는 말은 사실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흔히들 3백을 피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설탕을 피하고 소금을 피하고 밀가루를 피하라는 말인데 이건 그것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진화라고 불렀다. 지금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을 생각해보게 된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우화가 떠오른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모두가 가고자하는 오직 하나의 방향. 어쩌면 우리 인류는 나비가 되어보기도 전에 그 욕망의 애벌레탑만을 쌓다가 무너져내리는 게 아닐까? 요즈음의 시대를 둘러보면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인류의 적은 인류이며 지구 최대의 적 또한 인간이라는 말이 새롭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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