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 - 기아와 미식 사이, 급변하는 세계 식량의 미래
이주량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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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와 미식 사이, 급변하는 세계 식량의 미래' 라는 부제를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그야말로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온통 전쟁중이다. 이토록 풍요로운 세상에서 왜 누구는 굶어죽고 누구나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가. TV화면에서는 먹지 못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아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야말로 삶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 세상은 저자가 꿈꾸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거라는 거였다. 너무 많은 인간을 먹여 살리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는 말에 공감한다. 저자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산업은 농업에서 시작되었지만 작금의 우리는 농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금새 알 수 있는 일이다. 농업, 혹은 농촌을 그저 도시의 팍팍함에서 벗어나 잠시 머물러 쉬어갈 수 있는 곳 쯤으로 해석되어지는 우리의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 많은 인간을 먹여살리기에는 역부족일테니. 아무리 GMO가 어떻고, 대체육이 어떻고, 식용곤충이 어떻고 떠들어댄다해도 한번 편리함과 안일함에 젖은 인간은 쉽게 변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이익만을 창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극심한 자본주의 시대에? 이 책은 격변하는 시대에 맞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농업이 우리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농업이 근본이 되어야 모든 것을 받쳐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이, 우리의 사회가 과연 얼마나 변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현재 인류는 역사상 유일하게 가장 많이 먹고, 가장 싸게 먹고, 가장 멀리에서 가져다 먹는 짧은 행운 타임을 누리고 있다, 는 말은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이든 너무 흔한 세상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산업화는 인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것을 위해 희생되어진 것들이 너무 많은 듯 하다. 대자연이 언제 그 대가를 요구할지 지금은 알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이미 청구서는 날아오기 시작한 것 같다. 현재의 지구가 겪고 있는 이상현상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음이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유기농에 관한 어설픈 지식이 부끄러웠지만 여러 방면으로 배울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여러 요인들이 겹쳐서 이미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곡물을 가장 비싸게 수입하는 나라가 되었다. 원인 중 하나는 곡물 엘리베이터처럼 곡물 수입에 필요한 인프라를 대부분 빌려쓰고 있기 때문이다. --- 식량 사정이 나쁠 때는 생산과 운송의 리스크 프리미엄까지 붙은 가격으로 살 수밖에 없고 그외 별다른 대안도 없다. 에너지는 해외 개발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있지만 식량은 상대의 조건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92쪽)

스타 품종들이 써내려온 영광의 역사 뒤에는 생물 다양성 급감이라는 반대급부가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1900년대 미국 전역에서 재배되던 종자의 다양성이 100이라고 한다면 지금 미국에서 재배되는 종자의 다양성은 4에 불과하다. (-227쪽)

과학자들은 지구인들이 지금과 같은 농업과 삶의 방식을 지속하려면 지구가 1.6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인들처럼 살려면 다섯 개의 지구가 필요하고, 한국인처럼 살려고 해도 최소 세 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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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세계문학 6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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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느낌이 좀 이채롭다. 등장인물들도 특이하지만 그들의 사랑법 역시 특이하다.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 한번 보라는 듯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랑의 속성일까? 솔직하게 말한다면 몰입도가 좋은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혀지는 속도감은 있다. 그것처럼 소설속의 세월도 빠르게 바뀌는 까닭이다. 다시 말하자면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도 될 터다. 쓸쓸하고 적막한 마을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지금은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그 카페의 여주인 어밀리어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키가 180으로 남자못지 않은 골격을 가졌다. 게다가 힘도 세다. 성격은 또 인색하고 야비하다. 오로지 돈을 위해라면 그녀는 무엇이든 만들고 팔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 마을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녀에 의해 뚝딱 만들어지기도 하고 아픈 곳을 치료해주기도 한다. 그녀에게 한가지 흠이 있다면 한번 결혼을 했었다는 것인데 그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고작 열흘동안이었다는 것이다. 그녀와 결혼했던 메이시는 성격이 비뚤어진 직조공이었으나 어밀리어를 짝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착실한 사람으로 변한 메이시는 어밀리어에게 청혼을 하고 마침내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메이시는 어밀리어와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하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떠도는 말로 들려오던 소식은 그가 예전의 망나니 생활로 돌아갔다가 결국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어밀리어의 카페에 꼽추 한명이 찾아온다. 자신이 어밀리어의 먼 친척이라고 말하며. 라이먼이라 불리우는 그 꼽추는 어찌된 일인지 어밀리어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 와중에 메이시가 교도소를 나와 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어밀리어와 메이시, 그리고 라이먼...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저들의 관계를 삼각관계라고 표현되어졌지만 그리 단순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상한 점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그 어떠한 이유도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시가 왜 어밀리어를 사랑했는지, 그리고 어밀리어는 결혼까지 했으면서도 왜 그에게 곁을 허락하지 않았는지, 게다가 어밀리어가 꼽추인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 연유까지 그 어떤 것도 작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하게 된 사람의 마음만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무슨 까닭일까? 이 글을 쓰면서도 궁금하다. /아이비생각

미국 남부에서 태어나 뇌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온갖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해온 카슨 매컬러스는 이처럼 일반적인지 않은 신체나 독특한 성격을 가진 소외된 이들을 작품의 주요 인물로 무대에 세웠다. 범상치 않은 열망을 가진 이 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비정상적인 광기’의 캐릭터로 읽히기보다 우리 자신의 분신처럼 다가온다. 매컬러스는 그들의 사랑을 조금도 ‘이상하지’ 않게 그려내며 인간의 열망과 고독을 이야기한다. ‘아픈 자’가 ‘아픈 자’들의 드라마를 형상화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아픈 자’임을 환기시킨다. (-책의 소개글에서)

그래서 우리들은 대부분 사랑핟기보다는 사랑하기를 원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간단명료하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힘들고 불편하게 느낀다.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연인을 속속들이 파헤쳐 알려고 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는 아무리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한 모든 관계를 맺기를 갈망한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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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그 화석이 된 흔적들
홍긍표 지음 / 반달뜨는꽃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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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기억과 추억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고. 기억속에서 끄집어내어 가끔 들여다보며 웃음짓기도 하는 한 페이지를 추억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追憶... 쫓을 '추', 생각할 '억'이라는 한자를 보면서 든 생각이기도 하다. 유년시절의 포근함이 누구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이런 책을 통해 작은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는 그랬었지, 하면서 함께 겪었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책을 읽으면서 옛날 생각에 살짝 웃음짓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정말 그때는 그랬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 어릴적의 놀이들이 저렇게도 표현될 수 있는 거구나, 했었다. 사실 그 때는 오징어게임이 아니라 오징어 가이상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었지만.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때의 시절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학교를 가던 그 시절이었다. 가난했던 까닭에 육성회비를 제때에 납부하지 못해 집으로 쫓겨가는 경우도 많았었다. 그 때는 집으로 보내는 담임선생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이 나이되도록 그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책 속에서 언급되어지던 놀이들을 지금 아이들은 모를 터다. 말뚝박기, 말타기, 고무줄놀이, 오징어가이상, 비석치기, 사방치기, 술래잡기, 다방구,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추운 겨울에도 누렇게 흘러나온 코를 소맷부리로 쓱 닦아내면서 엄마가 부를 때까지 집으로 가지 않고 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불리고 있다. 옛문화만을 바라보는 부모세대와 이제는 변해버린 문화속에서 자라난 자녀세대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해서 낀세대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우리의 옛문화를 온전히 바라보고 이어갈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레트로 열풍이 불었을 때 그 시절의 힘겨움과 풍요롭지 못함이 제대로 전달될 수 없음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지만 살아보지 않은 시절을 어찌 알까 싶어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려니 한다. 생각해보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이었을까? 지독히도 가부장적인 사회였기에 그리 아름답게만 생각되어지지 않는 유년 시절이었다. '꽃상여' 이야기나 '똥장군' 이야기가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신작로'라고 불리워지던 큰 길들이 경이로웠던 것은 그리 오래된 시절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이제는 작은 오솔길이며 둘레길을 찾는 시절이 되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고, 상전벽해 桑田碧海 라는 말이 딱 맞는다. 그래도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참에 옛날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이나 한번 더 볼까나?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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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세트 - 전2권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개정판)
공지영.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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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한국 작가와 일본 작가가 함께 썼다는 작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묘한 제목이 시선을 끌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이 소설이 '한일 우호의 해'를 위해 쓰였다는 걸. 읽으면서 두사람이 사랑하는데 무슨 역사가 나오고 사과가 나오는지 조금은 껄끄러웠던 까닭이다. 이미 많은 민족이 엉킨채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속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감정만큼은 오래된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해도. 책을 펼치면서 살짝 기대가 되었다. 그 뻔한 사랑이야기를 이 소설은 어떻게 풀어나갈까 싶어서. 우선 그여자 최 홍의 이야기부터 들어본다. 헤어진지 7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남자 준고를 내려놓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출판사를 운영하는 홍은 어느날 일본 작가와의 통역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항으로 나간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일본 작가가 하필이면 준고라니.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통역을 하는 홍. 그런 홍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준고. 여전히 그들은 서로를 잊지 못했다. 준고가 들고 왔던 책의 제목이 '한국의 친구, 일본의 친구'라는 책이었는데 자신과 홍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에 유학을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홍과 준고는 그것이 자신들에게 찾아 온 운명임을 눈치챘다. 하지만 두사람이 그동안 살아왔던 환경과 문화는 그들의 사랑이 지속되는 걸 원치 않았다. 부유하게 자란 홍과 이혼한 부모를 두고 정서적으로 힘겹게 자란 준고는 어쩌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게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3일동안 준고는 홍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홍의 마음속에서는 숨겨두었던 준고를 향한 사랑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팬사인회로 바쁜 준고와 그를 외면하는 홍. 그들은 과연 서로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읽다가 제목이 잘못된 거 아냐? 싶었다. 차라리 '이별 후에 오는 것들'이라고 하지? 그만큼 작가의 필체가 섬세하게 느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홍의 절절한 사랑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낸 듯 하다. 읽으면서 아직 이별하지 못한 홍의 간절함이 전해져온다. 그에 비해 츠지 히토나리의 준고 이야기는 의외로 담담하게 다가왔다. 요란하지 않지만 홍을 향한 깊은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공항에서의 만남은 기적이 아닐 것이다. 두사람의 마음이 항상 서로의 곁에 남아 있었기에.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으로 곁에 남을지는 두사람의 선택이다. 마지막에 두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달린다. 해피엔딩일까? 작품속에서 출판사를 하는 홍의 아버지는 일본 작가의 책을 소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앞선 세대가 겪었던 아픔만큼은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고. 가끔은 궁금할 때가 있었다. 일본 소설이 한국에서 많이 읽히듯 한국 소설도 일본에서 많이 읽힐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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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감각 -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미시나 데루오키 지음, 이건우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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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가리킬 때 앞에 '잡'자가 붙으면 그것은 우리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한다. 이름을 몰라서, 혹은 도움이 되지 않아서, 혹은 지금 당장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이 세상에 '잡초'는 없다고. 그저 당신이 이름을 모를 뿐이라고.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잡것'들도 그럴 것이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 그 쓸모를 잃어버리거나 관심을 받지 못해 '잡것'으로 전락하는 것들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잡것'은 아니었을 존재들. 하지만 어떤 이는 그 '잡것'들에게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고 누구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야말로 별 것도 아닌데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부여받는다.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저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의미있는 것으로 보여질까? 이런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물건과 물건 사이가, 1초 전과 1초 후가 조금만 달라도 가치가 생겨난다. 잡화는 멈출 줄 모르고 늘어만 간다. 사실은 진화도 퇴화도 아니건만 우리는 차이를 끊임없이 소비함으로써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꿈을 꾸고 있다.(-28쪽) 지금은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바뀌었지만 오래전의 황학동시장 시절부터 내내 잡화들을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다니는 지인이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 따라가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내게는 무리였다. 어떻게 그런 '잡화'들 속에서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했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가치가 다른 까닭으로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저자가 말하는 것이 잡화에 대한 가치부여가 아니라 너무나도 풍족한 세상에서 버려지고 또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단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금의 소비문화에 대한 일침? 혹은 너무 가벼운 사람들의 가치관? 각설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소 씁쓸한 기분이 계속 따라왔다. 너무나 쉽게 얻고 너무나 쉽게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까닭이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 '레트로'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아무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지나왔던 시절의 의미는 담아내지 못한다. 단순히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시절의 의미가 가끔은 서글픈 느낌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잡화감각은 점점 도구를 감염시켰다. 가급적 원시적인 물건, 자질구레한 물건부터 노렸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 많은 제조사가 무설비 제조, 즉 '공장이 없는 기업 형태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 이런 무설비 제조화가 훗날 잡화의 폭발적인 중식을 뒷받침 했다. ... 이렇게 하여 물건과 정보로 꾸역꾸역 채워진 사회가 도래한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게 넘칠 만큼 많아지면 수많은 선택지로부터 다양한 물건이 손에 들어온다. 전후와 비교하면 꿈같은 삶인 한편, 시장은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물건과 정보량을 크게 초과하고 만다. 사람들은 많은 선택지 앞에서 당황하면서도 소비를 가속화한다. 그리고 한 물건에 흥미를 느끼는 길이도 점점 짧아진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한계 수용력을 초과한 소비자는 어떠한 대상에서 흥미를 잃는 것과 새로운 무언가를 손에 넣는 것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확대해가는지 축소해가는조차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도구를 가르치는' 설교 따위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90~91쪽) 어라? 처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잡화에 대한 단상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뒤로 가면서 저자의 말은 음악과 미술과 여러 분야에 대해 이리저리 헤맨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의 어린시절을 채워주었던 레고에 대한 이야기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다 버려도 그 시절의 레고만큼은 버릴 수 없었던 저자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마음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지나간 것들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때로는 현재와도 연결된다고. 그것이 오히려 더 나은 현재를 만들수도 있는 거라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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