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세트 - 전2권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알베르 카뮈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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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우스개소리처럼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단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하고 되묻게 된다. 나라면 그냥 평소처럼 내일을 맞이할 것 같다. <페스트>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의 작품으로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게 했다. 1947년에 쓰여졌다는 <페스트>는 그의 작품 <이방인>과 함께 당당히 세계의 명저속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세계명작에 빠져 닥치는대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느낌이 어땠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도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는 주제를 어린 나이에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페스트>에는 인간이 공포에 대처하는 모습과 길들여짐이 함께 하고, 희망과 절망이 평행선을 달리며, 나와 우리가 함께 한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이 몰고 온 공포가 덮쳤을 때 사람들은 설마했다. 그들은 절망했다가 괜찮아질거라는 희망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그러들기는커녕 사망자의 수치는 겉잡을 수 없이 늘어가고, 어느새 그 상황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은 오히려 평온함을 되찾게 된다. 인간의 적응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를 보며 페스트를 의심했던 의사 리외.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랑시의 사람들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환자를 돌보며 평온한 듯 평온하지 않은 그의 일상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오랑시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던 랑베르에게 리외는 이렇게 말했었다. "어쩌면 저 역시 행복을 위해 뭔가 하고 싶기 때문"(-54) 이라고.  그의 한마디가 랑베르에게 혼자만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결말을 불러왔지만 나는 랑베르가 탈출시도를 멈추겠다고 말했을 때 왠지 모를 단절감과 절망이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랑베르의 직업이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기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그렇게 오랑시의 사람들에게 공토와 희망과 절망을 안겨주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마릴린 체이스의 <격리>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페스트>의 배경이 프랑스의 오랑시였다면 <격리>의 배경이 된 도시는 샌프란스시코라는 점이다.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전염병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지쳐갔다. '남의 불행을, 남의 고통을 이렇게까지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이 속히 끝나기를 바랐다. 마음을 다해.  전염병과 맞서 싸우며 끝까지 함께 했던 친구 타루를 희생시키고 드디어 페스트의 기세가 사그러들며 희생자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세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온갖 부조리함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카뮈는 자신을 실존주의 작가라고 규정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아이비생각 

 

화자이기도 했던 의사 리외에게 친구 타루가 했던 말이다.

" - 중략-  그래요. 저는 이 세계를 알아요. 리외, 저는 단언할 수 있어요. 사람은 저마다 자기 안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그 누구도 페스트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자칫 방심하면 다른 사람의 얼굴을 향해 오염된 숨을 내쉬죠. 타인을 전염시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단속해야 해요. 병균은 이 세계의 섭리고, 따라서 치명적일 정도로 자연스럽죠. 그외 것들,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건강, 성실, 결백, 정직, 순수 따위는 의지, 그러니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의지의 산물인 거죠. 존경할 만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죠. 페스트 환자의 삶은 번거롭습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삶은 그보다 훨씬 더 번거롭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로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더군다나 감염된 페스트와 싸우기 위해서는 극도의 피곤을 경험해야 하죠. -중략- " ( -119~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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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그렉 올슨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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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는 사랑이라는 의미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린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다.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엄청난 스트레스와 수면부족이 불러왔던 부주의로 인해 리즈는 이웃집 아이 찰리를 차로 치고 말았다. 찰리는 이제 겨우 세살이었다!  뒤에서 무엇인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고 차에서 내려 확인한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지, 아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지... 그러자니 어쩌면 늦을수도 있는 시험시간이 자꾸만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번 시험을 위해서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국 그녀가 내린 결론은 자기자신이 먼저였다는 거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 그녀가 시험을 제대로 치룰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렇다면 이미 늦어버린 사고의 뒷처리를 어떻게 했을까? 아니 그녀는 시험을 제대로 치르기는 했을까?

 

누구나 실수는 한다. 누구나 부주의로 사고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실수를, 그런 부주의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각자 다를 것이다. 혼란스러움속에서 그녀가 의지하고 싶은, 아니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그녀의 남편 오웬은 아내의 사고가 불러올 자신의 앞날을 먼저 걱정한다.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돼. 성공이 바로 앞에 있다고! 그러니 이번 사고는 없었던거야. 방수포에 덮여있던 어린 찰리의 희미한 숨결을 확인했으면서도 오웬은 아이가 죽은 것처럼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시체를 마을 후미진 곳에 유기한다. 그리고는 차에 남아있던 사고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린다. 어린 아이를, 그것도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의 어린 아이를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속에 리즈는 점점 폐인처럼 되어버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찰리의 엄마 캐롤은 리즈에게 의지를 하고....

 

우리는 잘 안다.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불러온다는 것을. 작은 거짓말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책감에 빠진 아내가 혹시라도 사실을 인정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남편 오웬의 모습은 작금의 우리 모습인 듯 하다.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었다는 상황이 주변 사람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비추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지만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과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표정이 다르다는 것을. 그 사고가 들춰낸 이면에는 부부라는 끈으로 이어진 남녀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합리화의 늪에 빠져버린 사람들. 인간에게 부와 명예는 얼만큼이나 중요한 것일까?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게 그토록이나 어려운 일인 것일까? 돈앞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보게 되어 뒷맛이 쓰다.

 

이야기의 흐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왠일인지 살짝 지루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작가는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다' 는 말이 불러올 인간의 숨겨진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나만 아니면 되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그 사고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20년전 어린시절의 리즈가 겪었던 일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사고의 유형만 달랐지 다를 게 없어보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은 똑같다.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모두가 가해자인 세상의 모순을 보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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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민족 도감 지도로 읽는다
21세기연구회 지음, 전경아 옮김 / 이다미디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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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미리 눈치챘어야 했다. 세계민족도감... 이 한마디에 모든 걸 담았다는 걸. 사진이나 그림으로 실물을 볼 수 있도록 만든게 도감이다. 한조각의 픽션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딱딱할 것이고, 그러니 어느정도 흥미가 없다면 지루할 것이고... 그래서 조금은 힘들었다.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아서.  어쩌면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한눈에 세계의 민족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말을.  중국의 소수민족을 따라 여행하던 프로그램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생활속에 독특함이 묻어 있었다. 꽤나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남아 있다.  일정한 지역에서 같은 말을 쓰고 같이 생활하면서 만들어냈던 그들만의 문화. 바로 그런 문화를 공통적으로 가진 사회집단을 민족이라고 한다는데... 문득 우리 사회에서 툭하면 튀어나오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동안 수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야 했던 대한민국은, 조선은, 고려는, 혹은 그 위의 선조들은 정말 단일민족이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가끔은 정색을 하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수많은 민족을 만날 수 있다. 더러는 같은 종교로, 더러는 같은 언어로, 더러는 같은 지역이라는 이유로.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한족을 제외한 중국의 소수민족은 55개나 된다. 그 민족들이 분리와 독립을 원하고 있는 까닭에 중국은 끝도없이 골머리를 앓아왔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예로 티베트를 보면 알 수 있다.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워 지금까지도 국제사회에 호소를 하고 있지만 이 책은 말한다. 티베트는 이미 중국화되어가고 있다고.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며 난민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란의 현실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사실 그렇게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소수민족의 유래와 그들만의 신화를 알고 싶었다. 그 때 방송으로 보지 못했던 그 어떤 부분들에 대한 아쉬움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궁금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다. 단지 아주 재미없는 선생의 강의를 들은 듯한 뒷맛이 조금 씁쓸할 뿐. 

 

왠만하면 모두를 포용했다던 힌두교에 대해 다시한번 들여다보는 건 흥미로웠다. 아울러 고대인도에서 '베다'경전을 근거로 했다는 브라만교와 그에 따른 카스트제도에 대해 속깊이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토착민족과 소수민족의 차이는 뭘까? 이민족에 의해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났거나 홀대받았던 그들의 문화가 이제는 관광상품으로써 새롭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건 현대사회의 모순일까? 과거에는 민족과 언어가 밀접한 관계였다는 말이 보인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언어중 90퍼센트가 앞으로 100년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말도 보인다. 세계사에서 그토록 자랑스럽다는 우리의 한글. 과연 살아남기는 할까? 작금의 세태에 비추어보니 왠지 서글퍼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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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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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겐지모노가타리를 읽었었다. 일본문화의 단면을 보고 싶다는 욕심에 읽은 책이었다. 헤이안시대에 무라사키시키부라는 작가가 쓴 연애소설이다. 후궁의 아들로 태어난 겐지라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당시 일본의 시대적 배경이 흥미롭기는 했다. 400년정도 이어졌다는 교토의 역사를 헤이안시대라고 한다. 일본은 이 시기에 문학적으로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고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대립의 시기이기도 했으니, 헤이안시대를 거쳐 막부시대가 열린다. 국유지는 귀족들의 사유지가 되어가고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다이묘를 중심으로 한 무사계층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경호를 담당했던 사무라이는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실질적으로 무사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쇼군들이 세력다툼을 벌이면서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를 거친다. 일본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임진왜란을 통해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바로 그 때가 이 소설의 시대배경이다. 우리에게는 울분을 토하게 하는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조선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을 통한 엉뚱한 당파싸움의 현장. 결국 임진왜란은 일어났고, 그 당시 가토 기요마사를 따라 선봉장으로 조선으로 들어왔으나 귀순하여 역으로 왜군을 치게 되는 사가와라는 인물을 그렸다. 그가 조선으로 귀화해 받은 조선이름이 김충선이다. 책의 말미에 김충선에 대한 연혁이 보인다. 이기고 싶으면 적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속에 그려지는 시대적인 배경이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 관료층의 아들 석운으 태어났으나 일본인 히로로 길러지는 아이. 그에게 찾아왔던 정체성의 혼란에서 안타까움이 전해지기도 한. 팩션이기에 어느정도는 작가의 상상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흥미로웠던 점은 조선의 입장이 아니라 일본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굵직한 둥지에서 가지처럼 뻗어나오는 이야기들은 책장을 넘길때마다 살짝 궁금하게도 하지만 왠지 진부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뒷맛은 그리 개운치가 않았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만나지는 일본문화의 단면들이 시선을 끌었다. 노가쿠, 앵앵전, 가케무사, 데루마사의 그림자... 노가쿠는 중국의 경극과 같은 일본의 전통 가면극이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 보고싶은 욕심이 생긴다. 가케무사는 말 그대로 그림자무사다. 적을 속이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무사를 자신처럼 꾸며 비상시를 대비하는 것이다. 앵앵전을 찾아보니 장생과 앵앵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로 중국 당나라 시대의 소설이라고 나온다. 덕분에 노가쿠의 시작이 중국의 산가쿠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대배경을 같이 하는 조선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 난은 말이야. 습도가 높은 것을 좋아하나 뿌리가 늘 젖어 있으면 썩고 만다.

귀하고 비싼 것이라고 생각되어 매일 애지중지 들여다보면서 물을 주는 초보자는

난을 반드시 죽이게 되지.

그렇다고 해서 너무 오래도록 물을 주지 않으면 탈수로 죽고.

그래서 언제가 물을 주기에 적합한 때인가를 안다는 것은

난을 키우는 첫걸음이면서 이해와 교감의 첫 관문이라는 거지.

2~3일에 한번씩 분의 표토로부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깊이의 식재를 뒤적여 본 뒤

젖어있지 않으면 그 때가 물을 줄 적기라는 거야."

105쪽. 히로를 아꼈던 겐카쿠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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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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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화라고 하면 동식물 혹은 사물을 인격화시켜서 그들의 움직임속에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숨겨놓는다. 하지만 동식물이나 사물에 빗대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람을 바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울림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화나 동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오랜만에 받아보는 선물 같았다. 寓, 부칠 우.. 이 글자를 찾아보면  부치다, 보내다,  맡기다, 붙어 살다, 머무르다, 핑계 삼다, 구실 삼다 등의 뜻이 나온다. 이야기를 핑계삼아 우리에게 교훈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뜻일게다. 일단 그림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저리도 동글동글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202쪽)

 

바보들만 사는 마을에 똑똑한 사람이 가면 누가 바보일까?  책을 읽다보면 마치 바보들만 사는 마을에 내가 들어간 느낌이 든다. 전혀 바보같지 않은 바보들의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여전히 바보같이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내려놓기, 비우기를 아무리 외치고 살면 뭐하나 싶은 생각에 슬그머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웃음이 항상 떠나지 않았던 물장수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속상했던 것은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느 날 닭 한마리를 팔아 생긴 돈으로 작년에 셔츠에서 떨어져 나간 단추를 사기 위해 가족 모두 근처 도시로 나갔다. 단추 하나만 바꾸면 될 것을 점원은 그 새 단추에 어울리는 셔츠로 바꾸라고 말했고, 그 셔츠에 어울리는 바지로 바꾸라고 했다. 다시 또 새것에 어울리게끔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처지에 이른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었던 것은 단추 하나를 살만한 동전 하나뿐었으므로 단추 하나만 빼고 모든 것을 다시 제 자리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 상실감을 어찌해야 할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들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그들은 깨달았다. 모든 것이 그 단추 한개때문이었다는 걸. 그 단추가 없어도 그들은 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들은 그 단추를 버렸다!  우리는 항상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것에 더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사실은 내게 없어도 되는 것인데도.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던 무소유의 개념은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갖고 살라는 말씀이셨는데... 단추를 버릴 수 있었던 물장수의 마음... 그래서 나는 물장수의 현명함앞에 없어도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나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그 위치에 그대로 놓아두는게 더 좋은 것이 있다. (208쪽)

 

인간 세상을 바라보던 신이 마침내 두 명의 천사를 내려보냈다. 한 천사의 임무는 지혜로운 영혼들을 모아 어리석은 자들이 사는 곳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그 임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영혼을 모두 자루에 담아 데려와야 하는 또 한 천사의 임무는 너무 어려웠다. 숫자가 너무 많기도 했지만 그들이 자루에 들어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자루가 가득 찬 천사는 지체없이 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 올랐다. 하지만 그 자루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키 큰 소나무에 걸려 자루가 찢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자루속의 어리석은 영혼들은 쏟아져 내렸고 그들이 떨어진 곳은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이었다. 그렇게해서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한 곳에 모여살게 되었다. 이 책은 그 헤움이라는 마을에서 살게 된 바보들의 이야기다. 가만히 책을 읽다보니 그림때문일까? 마치 작은 인형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머리와 마음을 맞대는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구수했다. 아름다운 달빛이 사라지지 못하게 달을 우물에 가두는 이야기도, 해시계를 보호하기 위해 지붕과 가림막을 설치하여 해와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도  전혀 바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속에는 우리가 지금의 세상을 살면서 외면하거나 잃어버렸거나, 잊고 살았던 마음의 속삭임이 들어있었다. 남보다 나를 우선시하고, 나와 다른 면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이야기속에 있었다. 나의 어리석음은 보지 못하고 남의 어리석음만 탓하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과, 어리석은 것을 진리라 말하며 우겨대는 현실적인 정치인의 모습도 들어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씁쓸함이 남고 말았다.

 

<하루 단어 사용량>과 <흔하디 흔한 생선 가게에 생긴 일>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지혜로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의미한 잡담과 수다에 열중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의 모습. 말이 많아진만큼 소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의회는 하루에 250개의 단어만 말하기로 법을 정했다. 헤움의 사람들은 그 규칙에 반대하지 않고 무의미한 말들과 언쟁을 자제했다. 세상에~~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로써 말을 이겨내는 이 시대야말로 그런 규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장사가 시원찮아서 고민하던 생선장수가 '매일 신선한 생선 판매'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다. 신선하지도 않으면서 신선한 생선을 판다고 하느냐,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팔지 그럼 뭘 파느냐, 생선이라는 글자때문에 비린내가 더 나는 것 같다느니...  이렇듯 생각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얼마나 큰 무게 실리는지에 대한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말의 가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일지 모르겠다. 서글프게도.

 

이야기는 가벼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하는 울림은 크고도 무겁다. 흥, 지금같은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게 가당키나 하냐? 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너나 그렇게 살아라, 한다해도 역시 할 말은 없다. 딱히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건 아닐테니까. 그러나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잊고, 무엇을 잃어버렸는가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해 볼 일이다. /아이비생각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만 더 소개하고 싶다. <세상의 참견쟁이들>이란 이야기다. 젊은 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아이가 세 살도 되기전에 아내를 잃었고, 아이는 잘 생긴 청년으로 자랐다. 세상에 둘도없는 부자관계였다. 더 많은 세상을 알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에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마을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마을을 떠나 길을 걷던 부자는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먼저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사람, 더 늦기전에 아이에게 어떤 기술이라도 익혀야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사람. 왜 아이를 혼자 보내지 못하고 따라다니느냐는 사람, 빈둥거리면서 인생을 낭비한다는 사람.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신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사람.... 마침내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이제 우린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우리 삶에 대해 참견하고 지적하지 않을까요? 전 이해가 가지 않아요. 자신들의 일도 아닌데 왜 우리 일에 나서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버지는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죠?"

 

"아들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참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보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긴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헤움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곳이야말로 사람들이 자신의 지혜에 따라 살면서 필요할 때 도움을 주되, 함부로 참견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도록 허용하는, 세상의 유일한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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