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봄핀아이들 글, 최숙자 엮음 / 사분쉼표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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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깜짝 놀란다. 내 몸에 뭔가 변화가 온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게 뭐지? 팔다리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아. 으악!.... 카프카의 <변신>이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야말로 가족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문득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가족의 냉대다.  그때 그때 달라요~하고 말하던 광고카피를 문득 떠올린다.  산다는 건 그야말로 그때 그때 달라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리라.

내가 학창시절에 주변 어르신들께서 툭하면 하시던 말씀이 있다. 그래도 가방들고 학교 댕길때가 가장 좋은거이다. 아 느그덜이 무신 걱정이 있겄냐아.. 그때는 그 말씀이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모른다. 맨날 새벽같이 일어나 콩나물시루같은 버스에 몸을 구겨넣으며 시작되는 하루들이 좋긴 뭐가 좋다고?  그놈의 시험은 왜그리도 자주 있는지 툭하면 시험공부를 해야하고 쯧쯧쯧.... 그랬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학교 다닐때가 가장 좋은거란다. 아니 너희들이 지금 뭘 고민하면서 사니? 그저 한가지 오로지 공부만 하면 되는거야. 아무 생각없이 그저 공부하나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싫으냐? 한다.  그 옛날의 어르신들께서 나에게 주셨던 말씀을 내가 지금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만큼의 세월이 그만큼의 인생을 깨닫게 해주신 스승이 되어버렸다는 말일게다. 아마도.

처음 "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라는 책제목을 보았을 때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책을 읽으며 느꼈던 이미지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부모는 저편에 밀어두고서 오로지 자신들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나의 생각은 그야말로 부모세대다운 발상에 불과했던 거였다.
abracadabra... abracadabra.. abracadabra.... 신화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신이지만 마술을 부리는 악마로 표현되어진다는 아프락사스의 신비로운 주문을 외어서라도 아이들은 처해진 지금의 쳇바퀴같은 현실속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들의 생각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그리스신화속에서 만났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떠오른다.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에 초대한다고 데려와 쇠침대에 눕히고는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 버렸다던 프로크루스테스.. 이 이야기는 곧잘 회자된다. 언제?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비유할 때에.. 결국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자신도 똑같은 상태로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우리는 어떤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속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들은 말하고 있다. 자신들이 마치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묶여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이상과 꿈은 저멀리로 내던져둔채 부모가 원하는 것, 혹은 우리의 교육현실이 원하는 길로만 가야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책속의 아이들은 말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나는 뜨끔했었다. 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하면서 묻고 있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힘겨운 시간속을 걸어가고 있을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엄마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엄마의 존재성에 대하여 묻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책속에서 아이들은 묻고 있었다. 엄마, 우리들의 꿈은 모두 어디로 갔나요? 라고.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안타까웠다. TV를 보지 못해서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아들녀석의 말이 생각났다. 아직 어린 녀석임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부재를 호소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지 싶어서 TV보는 것을 허락했던 날이 있었던 까닭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야 뻔하다. 게그나 코미디 프로그램...하지만 엄마들은 어떤가? 봐도 꼭 저같은 것만 본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 본다고 잔소리에 또 잔소리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 많은 시간중에 단 한시간만, 컴퓨터를 하며 단지 한시간 머리를 식혔을 뿐인데.... 지겹다는 의미로밖에는 다가서지 못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내포하고 있는 것은 진정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도 잔소리꾼인 엄마이기에.. 오죽하면 엄마의 필살기는 잔소리라고 아들녀석이 말할까?

창공의 섬, 라퓨타에서 나는 지금 살고 있다고 말하던 아이가 책속에 있었다. 땅 위에 떠 있긴 하지만 해와 바람을 절대 보고 느낄 수 없는 곳. 라퓨타가 과학의 신비한 힘의 결정체였다면 내가 사는 이곳은 어른들의 작품이라면 작품이라고 아이는 말하고 있다. 잠시라도 해를 보고 싶어하는 우리의 마음을 어른들은 절대로 모를것이라고 아이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탈출하고 싶다고..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나 자신에게 떳떳해질 수 없다는 걸 용남할 수 없기에 그럴수 없다고 책속의 아이는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서글픈 현실!  어찌 하겠는가? 그런 길을 가야 하는 아이들도, 그런 길을 걷게 해야만 하는 어른들도 모두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니 서로가 조금씩 양보를 해가면서 마음을 한데 모으는 방법밖에는 없을 듯 싶다.  이 아이들의 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를 고민하기보다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주는 어른의 입장에서 읽어도 좋을 듯하다던 엮은이의 말로 한가닥 위안을 삼아본다. 모쪼록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어른들의 세상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던 엮은이의 바램에 나도 마음으로나마 힘을 실어주고 싶은 것이다. /아이비생각

아이들은 할 말이 많았다. 자신에 대해, 사회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어른들에 대해 해야만 하는 말들이 태산처럼 쌓여만 갔다. 그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별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금지된 장난에 대한 유혹과 세상의 어른들에 대한 편견은 서로의 간극을 더욱 멀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의 생각은 무한궤도를 달려야만 하는 협궤열차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을 가혹하게 채찍질하면서 '학원'의 벽 앞에서 한없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스스로를 정화시켜나갈 줄을 알았다. <9쪽 엮은이의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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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
해리스 로젠블라트 지음, 최진성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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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 어쩌면 성경에 관한 색다른 맛을 느껴볼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성경속에 나오는 여인들의 이야기가 어디 하나, 둘뿐이겠는가 말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색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주려니 생각했었다. 책을 받자마자 작가의 이력을 먼저 살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심리치료사로서 지속적인 성경연구를 하는 사람이라고 나왔다. 왠지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하는지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것은 그야말로 여자들의 이야기, 여자들의 삶, 여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것들, 그리고 여자였기에 가능했었던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의 일생이란 말에 담긴 의미는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여자와 남자라는 아주 단순한 분류기준 앞에서 왜 여자들은 그토록 가혹한 삶의 여정속에 자신을 버려야만 했을까?

굳이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성경속의 여인들 이야기. 그 많은 일화들 앞에서 문득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던 그 순간부터 여자라는 원죄의 업보를 어찌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이 책속에서는 의외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자의 모습으로 이브를 그려주고 있다. 뱀이 이브를 꼬여 선악과를 따먹게 하던 그때에 이브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순간의 선택을 했었던 건 아니었다고 당당하게 비추어주고 있다. 많은 생각, 그 행위로 인하여 생겨날 문제들에 대해 곱씹어 본 후에야 선악과를 먹게 되었다는 해석과 이브가 주는 선악과를 아무 생각없이 덥석 먹어버리는 아담의 행위에 대한 해석은 나름대로 멋진 설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문제를 앞에 두고서 세심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여자의 특성과 그렇지 못한 남자의 특성을 비교해주고 있음이다. 여자들의 어머니이자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사라의 선택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의 힘겨운 마음속 고통을 대변해주고 있는듯 하다. 자손을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바로 옆 남편의 천막안으로 자신의 여종을 들여보낼때의 서러운 아픔을 남자들은 알까? 이미 오래전 우리네 생활속에서 만나지던 여인들의 고통과 무관하지 않음이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시대였다면 어림없는 이야기이리라.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여자들의 이름이 낯설지는 않았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성경에 관한 혹은 성서를 이끈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한때 성경이야기를 파고 들었던 적이 있었던 까닭에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이미 알고 있어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으나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겉으로 들어나는 여인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강인했고 또한 용감했으며 모든 역경을 빠르게 극복해 나갔던 여인들의 숨은 공로를 파헤쳐주고 있었던 거다. 당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세상이 아마도 남성 중심의 사회였을 것이다. 그런 남성중심의 사회속에서도 항상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삭을 만나기 위해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과감하게 따라나섰던 여인 리브가가  나이차이와 성격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쓰던 모습, 장자우선 원칙에 의하여 에서가 받아야 했을 이삭의 축복조차도 자신이 사랑하는 야곱에게 주어버린 그녀의 모습속에서 대리만족이랄까? 뭐 그런 상태를 살짝 엿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야곱이 사랑했던 여인 라헬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마음속의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되묻고 있다. 진정 사랑했으나 장인의 속임수로 인하여 라헬의 언니 레아를 본부인으로 맞아들이는 야곱이 자신이 진정 마음속 깊이 사랑했던 여인 라헬을 위하여 다시 7년이란 세월을 참고 인내하여 결국은 결혼을 하게 되는..... 라헬과 레아, 두 자매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정의는 다시한번 생각해 볼만 하다. 과연 우리는 마음하나만 믿으며 얼만큼의 사랑을 줄 수 있는것인지... 하지만 나는 현실을 무시한 사랑이란 관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서글프게도..

다말이나 다윗의 아내 아비가일, 밧세바, 세바 여왕등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지혜와 미모로써 스스로 자신의 인생길을 바꿔 자신이 원하는 삶의 길을 걸어가는 여자들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는 시대를 초월한 여인들의 당당함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 책속에는 그토록 당차고 멋진 여자들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삼손을 유혹하여 처참하게 망가뜨리는 여자 들릴라의 이야기나 욕망의 끈을 잡고 끝도없이 못된 짓을 저지르는 악녀 이세벨의 이야기도 있다. 허황된 한순간의 욕망을 위해 자신을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쳐져 안타깝기도 했던 대목이 아니었나 싶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성경속의 여인들이지만 작가는 성경을 단지 모티브로 삼았을 뿐이다. 그 성경속의 여인들을 빌려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아주 철저하게 분석하고 비교하여 주고 있다. 시대적인 배경을 떠나서 그야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않고 살았던 여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어쩌면 여자이기에 더없이 가깝게 느껴질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먼저 다루었던 이브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느냐? 하고 신께서 물었을 때 아담이 대답했다. 여자가 그 열매를 주기에 먹었습니다. 이브도 대답했다. 뱀이 저를 꾀어서 따먹었습니다 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속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다를게 무엇이 있을까  작가는 말하고 있다.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문제는 우리네 인간사회에서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사회나 개인이나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의 결정과 선택은 없었던 것인양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작가는 뼈아프게 힐책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시적인 평화보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나오미와 룻의 일화속에 보여지는 고부간의 사랑과 믿음은 지금 우리에게도 지극히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 싶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따스한 마음을 주고 받을 때 진정한 평안의 시간을 나눌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음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성서이야기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관점으로 보며 생각할 수도 있는거구나 싶어 좋았다. 눈앞에 보여지는 하나의 단면만 보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속내까지 들춰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어디 그렇게 하기가 쉬운일인가 말이다. 그러니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책속에서 만났던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질투, 유혹과 욕망에 갇혀버린 인간의 모습은 인정하고 싶지않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작가가 보여주었던 여인들의 삶을 통해 힘겨운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지혜를 배워볼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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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 떠난 소년
마티외 리카르 지음, 권명희 옮김 / 샘터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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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른들이 읽는 동화쯤으로 생각했었다. 제목부터가 그랬고 소개글도 우화라고 써있었던 까닭이었지만 정말 그랬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던게 솔직한 내 심정이기도 했다. 그런 장르라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해도 어느정도는 무겁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책의 무게가 전해져와 힘겨운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소년에 비유되어진 모습을 한 어떤 존재에게서 얼핏 구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 혹은 귀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길을 떠난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의 영원한 화두이기도 한 행복... 행복은 무엇일까? 도대체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행복은 모습이 있기나 한 걸까? 행복은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그 어떤 물질로 만나지는 것일까? 아니면 형체도 없이 그저 바람같은 걸 찾아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아닐까? ... 어쩌면 영원한 화두가 될지도 모를 행복을 찾아서 길을 떠난 소년.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행복은 좀 더 깊은 의미의 행복인 것 같다. 세상속에 얽매인 행복이 아니라, 물질로써 만나지는 행복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우리 마음속에서 만나지는 행복을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무겁게 가라앉을 것만 같았던 책의 무게를 어찌하지 못한채 헉헉거리며 한장 한장을 넘겨가야 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작가 마티외 리카르는 원래부터 불교에 귀의한 사람은 아니었다. 분자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파스퇴르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했던 경력이 있었을만큼 그야말로 과학적인 지식의 소유자였다는 것이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참으로 놀랍기도 했고, 왜? 라는 물음표를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철학자라는 소개글을 보면서 아하! 그럴수도 있는 일이었군, 했다. 참 신기하게도 불교를 생각하면서 파란눈의 스님을 연관짓는다는게 어렵기도 하거니와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얼굴도 아닌 까닭이다. 그것도 물론 지독한 편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내면의 행복은 어떤 것일까? 소년을 한번 따라가보기로 했다.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부탄왕국의 작은 마을에 데첸이란 소년이 살았고, 어느날 산악지대에서 은자로 지내던 외삼촌을 따라 눈의 왕국으로 길을 떠나게 된다. 소년이 길을 떠나게 된데에는 물론 구도자가 되기 위한 내성도 갖추어져 있었지만 그저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음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찾아헤매이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금강석처럼 천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진 소년의 이름 데첸 도르체에서조차 우리네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만 같았다.

글의 배경을 알고 싶어서 부탄왕국을 찾아보았더니 남부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 동쪽에 있는 나라라고 나온다. 정식명칭이 부탄왕국인데 북쪽은 히말라야산맥의 높은 산으로 중국의 티베트와 접하고, 동쪽에서 남쪽은 인도의 아삼지방, 서쪽은 네팔과...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평야가 거의 없다고 한다. 최근까지 인도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티베트 문화권에 속하고 티베트와 같이 쇄국정책을 써왔다고 하니 글의 배경이 될만한 요소는 충분히 가지고 있음이다. 그야말로 순수하다는 말로써 표현되어져도 부담스럽지 않을 그런 나라일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외삼촌 잠양을 따라 나섰던 험난한 여행길을 마치고 드디어 은둔자들이 머물고 있는 눈의 왕국에 도착한 소년은 스승이 될 독덴 린포체를 만나게 된다. 린포체라는 건 아마도 고도의 수행끝에 어느정도의 단계에 오른 수행자를 이르는 말인듯 하다. 그리고 소년은 명상하는 것을 배운다. 드디어 수행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오직 끈기를 갖고서 수행하고 또 수행하라는 스승의 말을 가슴속에 새겨둔채로 혼자 산으로 들어가 은거를 하며 수행에 정진하게 된다. 동굴속에 홀로 남은 소년이 수행을 하는 과정은 좀 무리하게 보여지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혹시 책속의 소년이 작자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테지만 책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까닭이다.

집착을 버리는 것만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단지 그 집착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악한 생각과 어리석음, 탐욕,허영, 질투심을 심어서 고통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뿐이라던 스승은 영적 수행의 바탕을 이루는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선한 마음을 갖고 관대하게 행동하라는.... 소년을 향해 던져지는 스승 독덴 린포체의 말들은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독덴 린포체를 통해 부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가 죽음에 이르는 장면은 가히 환타지적인 요소를 갖고 있음을 묘사하는 대목도 있으니.... 그렇다하여도 후광을 업고 무지게처럼 빛으로 산화되는 스승의 죽음을 아주 잠깐동안 바라보았던 소년의 가슴속에는 어떤 전율이 흘렀을까?

얼마전에 보았던 <쿤둔>이란 영화의 한장면이 생각났다. 양쪽 발에 족쇄를 채운채 엎드려 고행의 몸짓을 하던 한사람의 수행자를 보면서 달라이라마는 두손을 모아 합장으로 인사를 해 주었었다. 그 영화속에서뿐만 아니라 매스컴을 통해서라도 몇번을 본 적이 있었던 고행의 길.. 육체적인 고행과 정신적인 수행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연 그들이 얻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역자후기에서 보면 깨달음이란  살면서 마음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게 아닐까 라는 말이 나온다.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나를 느낀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마음을 조금씩 바꾸어 간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닐테니....

어찌되었든 소년은 은둔자의 생활을 끝내고 의젓한 청년이 되어 자신이 살았던 마을 꼴마로 되돌아온다.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매순간 이런 의문을 마음에 지니도록 하세요. '죽는 순간 아무런 후회도 없으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라고요...그가 마을사람들에게 했던 지혜의 말씀은 다시한번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후에 소년은 다시 길을 떠난다. 부탄에서 가장 위대한 성지들을 찾아 떠도는 순례자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어 더없이 좋았고 즐거웠던 마을 생활을 버린 것은 농부가 된다거나 가정을 이룰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는 어쩌면 현실속에 안주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책 중간중간에 삽입되어진 그림들은 상상의 세계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나의 경우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책의 늪에서는  무언가 의지할만한 것들이 필요한 순간들이 많다. 그런 나를 위하여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몇편의 삽화가 도우미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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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둔... 아주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목마름을 잠시 채워주었던 <티벳에서의 7년>을 보면서도 이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다. 왜 그랬을까? 뭔지 모를 끌림을 부정할 수 없다. 달라이라마... 지혜의 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티벳에서의 7년>이 달라이라마의 일면성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달라이라마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환생을 믿는 나라, 불교의 나라, 비폭력을 대표할 수 있는 달라이라마가 살았던 곳에서 만나는 불교 혹은 종교에 대한 정의는 나로하여금 되돌아보게 하여 작은 깨우침을 준다.

달라이라마의 환생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입적하기 전에 달라이라마가 쓰던  물품을 하나씩 골라내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좀 안스럽기도 했지만 어디든 종교라는 테두리안에 갇히다보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가 있기도 하니 어쩌겠는가 싶었다. 환생하였음을 예시하는 환영을 보았다는 레팅 린포체를 통해서 아직 어린아이인 달라이라마를 찾아나서는 승려들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들의 가슴속에는 아마도 가슴 벅찬 환희와 기대가 가득찼을 것이다. 스승이 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받아줄 그런 존재의 의미였으니 말이다.  라모.. 불과 다섯살에 쿤둔으로 불려워지는 소년. 그가 나중에 제 14대 달라이라마가 된다. 소년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려야 했던 아이는 결국 영적인 존재로써 키워짐을 받아들였고, 그토록 험난한 역사속으로 한걸음씩 걸어가게 된다. 자신과 자신이 안아주어야 할 중생들의 앞날일랑은 모두 부처님께 맡기운채로... 다섯살 소년이 쿤둔으로서의 첫발자욱을 뗐던 순간과 이미 성인이 되어 18세에 즉위하는 달라이라마로서의 소년은 그 의미자체가 너무도 달라보였다. 그가 짊어져야 할 짐만큼 그의 어깨와 가슴도 넒어져 있었으니 말해 무얼할까.

영화속에서는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로 만들어져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대하게 그려주고 있다. 무언가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우리네 여린 가슴을 알기라도 하듯이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가는 그 모습이 왠지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변해야 한다고, 이제는 우리도 변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입을 통해서 어쩌면 티벳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침입으로 티벳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리는 가운데 정치와 가까워지지 말라던 시종의 한마디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중국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던 까닭에 힘겨운 망명길을 선택해야만 했으니... 인도로의 망명길을 계획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여정이 아직은 어렸던 달라이라마에게는 너무도 힘겨운 고통이었으리라...  고통이 무엇인가 물으니 그것은 집착하고 했었던가?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시작되고 멸하니 오직 나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법을 했었던가? 그 고통의 크기를 어찌할까?

중국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티벳에서도 독립을 하기 위한 치열한 반란은 계속 되었고 그 와중에 너무나도 많은 생명들이 사라져 갔다.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겠으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한다던 시종의 말을 들으면서도 끝까지 티벳의 국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했던 달라이라마의 마음. 그가 인도로 망명길을 올랐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찡하게 눈물고여지는 순간도 있었다. 안타까움에 두손을 모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진 장면들이 아직도 나의 시선속에 갇힌채로 머물러 있다.

인도로의 망명길을 떠나 무사히 국경에 이르니 국경수비대가 다가와 묻는다.

감히 여쭈오니 그대는 누구시옵니까?

보시다시피 미천한 비구일 뿐이오.

당신이 부처이시옵니까?

나는 그림자일뿐이오.

물 위에 비친 달처럼 나를 통해서 그대들 자신의 선한 그림자를 보길 원할 뿐.

아직도 달라이라마는 티벳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산다고 한다.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백개, 천개 준들 무슨 소용일까? 돌아가고 싶은 제 나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부처님도 남의 죄를 씨을 수 없으며

남의 고통을 대신 덜어 줄 수 없으며

대신 깨쳐줄 수도 없나니.

중생은 오직 진리를 통해서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이것이 궁극의 진리이니라.

종교..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건데 그토록이나 인간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가..
알 수 없는 하나의 존재를 앞세워 목소리만 높일게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것이 종교가 아닐까?
감히 말하건데 어떤 형식적인 면만을 앞세워 마음을 다스릴 수는 없을것이다.
마음을 유혹하는 존재로써 우리곁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 종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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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을 엄청 좋아한다. 그래서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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