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참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2년만에 만나는 거라고해서 반가움에 덥석 손부터 내밀었지만 한쪽에서는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다. 전경린... 그녀의 이름은 왠지 모르게 무겁다. 그녀의 이름을 앞세워 만나는 작품은 왠지 쓸쓸하다. 삶의 언저리를 돌며 우리의 아픔을 직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숨기고 싶은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더 마음을 사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속마음을 파헤치고자 작심하고 달려드는 작가에게 내 마음을 들켜버릴까봐 늘 노심초사다. <최소한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앞에두고 이미 나는 기싸움에서 밀려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너무 쉽게,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없이 툭툭 내뱉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라는, 아주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그 말.. 그러나 어느 누구도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그 진실을 어쩌면 이 책속에서 마주치겠구나 싶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우울증에 시달린다. 조급증에 시달린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의 시대가 바로 지금이라고 했던가? 무엇이고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결핍에 시달리는 이상한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그 결핍의 원인을 똑바로 바라보려하지 않는 듯 하다. 두려운 까닭이다. 숨기고 싶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칠까봐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숨어버린 또하나의 자신과 만나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만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다고 에둘러 말했던 많은 소리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주인공 희수가 어린 시절에 잃어버렸던 배다른 동생 유란을 찾아나서고, 유란이 머물렀던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사실은 일부러 잃어버린 동생이었다. 새엄마의 딸 유란은 그렇게해서 결국 희수의 집에서, 희수의 삶속에서 버려졌다. 자신의 죽음앞에서 딸을 찾아달라던 새엄마의 부탁이 있었다는 건 어쩌면 하나의 핑게였을지도 모르겠다. 유란을 버렸던 그 날부터 그녀의 마음도 이미 닫혀버렸기에.
"어차피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잔인한 거예요. 힘들지 않고 사는 존재가 어디에 있어요?"
말처럼 어차피 살아간다는 건 누구에게나 잔인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잔인함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더 잔인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유란은 너무도 긴 시간동안을 아팠다. 사랑을 하면 더 아파지는 병.. 사랑을 하면 쇼크가 일어나는 희귀병.. 그랬어도, 그렇게 힘들었어도 끝없이 사랑을 갈구했던 유란의 아픔은 버림받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만물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은 가슴 깊숙한 통증을 느끼게 한다.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이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던 어떤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조차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소리치며 가질 수 없었던 유란과 희수는 어쩌면 같은 병을 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내가 여기서 기다린다고 유란에게 전해주세요."
그 때 그렇게 너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었다고, 그러니 지금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돌아와 달라고 희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린 유란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다시 찾아갔던 그 성모상 아래의 그림자가 왜 그렇게 깊었는지를 이제는 안다고. 희수가 유란을 찾아가 머물게 되는 북쪽 끝마을 파주는 추웠다. 생면부지의 그 장소에 자신을 내려놓고 차츰 유란처럼 되어가는 희수의 일상속에서 나도 희수처럼 유란의 속마음을 보았다. 유란을 기다리며 유란을 대신해 살아가던 날들은 닫혀져 있던 희수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유란을 기다리는 동안 또하나의 자신과 만나게 되는 희수의 여정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내가 희수가 되고 유란이 되고, 과거가 되고 현재가 되었다.
<최소한의 사랑>은 상처를 준 사람과 상처를 받은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는 끝도없이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건 상처를 입었다는 것 뿐이다. 상처를 입었다면 나도 그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을거라는 건 외면해버린다. 유란에게 이제는 혼자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던 희수처럼. 솔직히 말해 작가가 파놓은 우물이 너무 깊었다. 두레박을 어느정도나 내려야 하는지 가늠하면서 그 우물을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이다. 약간은 환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던 작품속의 공간이 내게 온전히 느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내게 필요한 것, 아니면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속에서 상담사가 했던 말을 다시한번 찾아본다. 모든 문제를 최소한의 것들을 되찾게 해서 푼다던.. 많은 고통과 상처가 가장 최소한의 것을 지키지 못해 생긴다던..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데 최대한의 욕망을 품어 스스로를 아프게 한다는.. 내게도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 최소한의 사랑만 있으면 되는데 그것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하여.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