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바도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8
미켈라 무르지아 지음, 오희 옮김 / 들녘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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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카바도라'라는 이상한 제목보다 더 시선을 끌었던 것은 '안락사' 라는 말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가 '안락사'와 '입양'이라는 것, 과연 세상은 '안락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했던 까닭이기도 했다.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본다는 '호스피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 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자체가 쉽지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안고 마지막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는 듣고, 말한다. 죽음과 삶은 하나라고. 그래서 모두가 숭고하고 존엄하다고. 그런데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픈 몸과 싸워가며 처절하게 살아내는 그 짧은 동안의 삶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과 그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의 느낌은? ..... 지금도 우리는 주변을 통해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래서는 안된다느니, 그래야 한다느니, 그럴 수 없는 일이라느니... 이 문제에 있어서 내 생각은 이렇다.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안락사'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사고는 그들이 어떤 문화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냐가 가장 큰 문제이지 싶다. 장례풍습만 보더라도 그렇지않은가 말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안락사'에 관한 문제는 오래도록 싸워야 할 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내 삶의 마지막을 살고 싶진 않다. 가끔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미련없이 '안락사'쪽을 택하게 해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가족들에게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환자의 고통보다는 자신들이 겪어내야 할 마음의 고통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걸 보게 된다. 할 만큼은 해 봐야 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환자의 고통은 처절해진다. 그리고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그 인간성이라는 것을 모두 잃고난 후에야 죽음이 허락되어지는 모순은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오래전에 읽었던 김정현의 <아버지>라는 글이 생각났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준 의사와 가족들에게 책을 읽고 있던 나조차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리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그 아버지의 마지막은 행복했을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랬기에 이 책속에서 상대방의 고통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내 주었던 보나리아에게 나는 진정한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비록 자신의 양녀에게 이해받지는 못했어도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양어머니의 곁을 떠났던 마리아가 결국 다시 돌아와 양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설정속에서 알 수 없는 진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내가 마시지 않는 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마라"... 보나리아의 이 말을 이해하기까지 마리아에게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끝내는 평안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 보나리아의 마지막은 눈물겨웠다. 비록 양녀였으나 마지막까지 곁을 지킬 수 있었던 두사람사이의 끈끈함이 고여있는 듯 했다.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결국 자신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 역시 자신의 몫이다. 그런 모든 일속에 상대에 대한 마음이 기본적인 배경으로 깔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리아와 보나리아의 사랑, 서로에 대한 그 마음을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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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함께하는 세상 여행 - 한옥연구가가 들려주는 문화 이야기
이상현 지음 / 채륜서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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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내 머리속을 맴돌던 건 두가지였다. 하나는 '자긍심(또는 자부심)'이라는 말이었고, 또 하나는  다산 정약용이 지냈다는 '여유당'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한옥 (혹은 고택)을 돌아보면서 이 집에서는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느꼈던 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유당'이었다. 지금 찾아가보면 그 옛날의 풍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집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홍살문도 그렇고 느닷없이 펼쳐지는 배다리 모양이라니... 우리문화를 사랑하자 하면서  있는 것 없는 것 모두를 한데 합쳐놓는 걸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억지스럽다고...  두번째로 '여유당'을 찾았을 때 그 뜬금없던 배다리를 보면서 얼마나 당혹스러웠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허황하다. 긍지를 느낀다는 말은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당당함을 말함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자긍심'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던 이유는. 책 속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느낌을 전해받기도 한다.

 

한옥으로 세상 읽기한옥 밖에서 한옥을 본다 는 주제로 우리의 한옥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제 막 한옥에 대한 호기심에 눈을 뜬 내게는 멋진 여행이었다.  소소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중국사나 세계사를 들춰내며 우리의 한옥을 다시한번 바라보고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고 있음이다. 잘 몰라서 그랬겠지만 내가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구들에 관한 부분에서 그토록이나 커다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따로이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들려주었던 '여담'은 큰 울림을 주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나를 찾아왔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수 있게되어 나름대로는 좋았던 부분이기도 했다. 토기 하나, 그림 한점을 보더라도 우리의 정신을 찾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은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 같다. (그정도가 되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야할테지만 말이다)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와 넓은 마당이 있는 곳에서 뒹굴며 놀았던 아이는 분명 다를 것이다. 집이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한옥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조차도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 끝없는 우리의 욕심을 보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처음 '여유당'을 찾았을 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바로 그 '여유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던 사랑채였었다. 세상사는 것이 살얼음판을 밟는 것과 같으니 항상 조심하라는 뜻으로 지었다는 그 이름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었던 까닭이었다. 그토록이나 힘겨운 삶의 여정을 지나왔으면서도 저렇게 활짝 열린 사랑채를 갖을 수 있다는 자체가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세상사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해도 '타인'과 어울어지지 않으면 그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뻔한 진리를 내가 놓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자연스러운 소통의 공간을 한가득 안고 있는 곳이 한옥인 것이다. 신이 함께 하는 집이면서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우리의 한옥이었다는 말이다. 찾아갈 때마다 작든 크든 마당이 있어 좋았다. 흙으로 만들었든 돌로 만들었든 얕은 담장이 있어 좋았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소통'이라는 그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한옥,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한옥의 성주신은 城主神이 아니라 星主神이다. 산으로 내려오신 하느님의 아들 단군이 이 땅에서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산신이 되어 사라져야 했던 우리의 역사가 아프다. 일단 자신의 하느님을 잃으면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보기가 쉽지 않다.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역사도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다. 지금도 우리는 다른 나라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밖에 없다. 유대인이나 일본인이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건 그들이 한 번도 그들의 하늘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중국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던 우리는 이 시대에다시 미국이나 일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건 아닌지. 하늘을 다 내주고 겨우 돈벌이 굿판이나 벌이고 있는 건 아닌지. 한옥의 성주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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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 : 근현대 - 한 권으로 읽는 쉽고 재미있는 한국사 여행 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
박광일.최태성 지음 / 씨앤아이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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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껄끄럽다는 근현대사를 어떻게 풀었을지 몹시 궁금하지만 아직 가보진 못했다. 얼마전 신문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열기까지 기획을 담당했다던 총책임자의 기사를 읽었었다. 이 박물관을 만들면서 정말 힘들었노라고. 보수와 진보의 의견대립이 엄청 심했었노라고. 그러니 박물관이 문을 열면 박물관장을 맡아 일하실 분의 어깨가 많이 무거울거라고. 하긴, 그럴만도 하겠다 싶은 마음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기사를 읽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겁게만 볼 일도 아니다. 우리가 근현대사를 껄끄럽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그것에 대해 평가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어 하는 말이다. 이렇다저렇다 내 식대로 평가하다보니 다른 의견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근현대사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던 분들이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그러니 섣부른 평가보다는 왜곡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가슴속에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생각해보면 답사랍시고 참 많이 다녔다. 그런데 이 답사가 말처럼 그렇게 쉽진 않았다. 어떤 때는 정말 심심했고 어떤 때는 정말 지루하기까지 했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중에 '아는만큼 보인다' 는 말이 있다. 정말 그랬었다. 내가 찾아가고자 하는 그 현장에 대해 얼만큼을 알고 갔느냐에 따라 즐거움의 차이는 컸다. 단순히 밟고 있는 현장만을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과 얽힌 다른 이야기를 함께 안고 간다면 즐거움은 배가 되었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도 나는 정말 함부로(?)로 답사를 다니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맘대로 재미있는 곳, 재미없는 곳 점수를 주면서 다니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니 아직 나의 답사는 깊이가 빤히 들여다보인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 책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는 듯 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첨부된 많은 사진이 그렇고 아울러 둘러보는 근처의 현장답사가 그렇다. 답사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 답사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고 있다. 거기에 맞춰 내용 또한 깊이 있게 다가온다. 한장의 사진, 한 곳의 답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려주고 있다는 말이다. 직접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이 절로 일어난다. 내가 다녀온 곳도 많았지만 내가 놓친 부분도 있어 보는 내내 재미가 쏠쏠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며칠 전에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선거를 끝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내 앞으로 달려온 우리의 근현대사는 내게 또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내가 학창시절에 겪었던 일도 그 안에 살아있으니 어쩌면 남다른 느낌이 찾아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시 생각한다.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그러니 왜곡되지 않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재미있는 답사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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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혜 - 공존의 가치를 속삭이는 태초의 이야기
김선자 지음 / 어크로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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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제발 그냥 내버려두세요!...

 

자연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단지 우리가 못 알아듣고 있을 뿐이다. 자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다 보면 혹시 알겠는가? 그들의 말이 들려올지.(-249)  정말 그럴 것이다. 어쩌면 입술이 부르트도록 외쳐대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척 외면하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천번 만번을 말해도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한 이야기라서 결론부터 말해버리고 말았다. 신화라고해서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겠거니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손에 잡게 된 것은 아직도 어줍잖게 자리잡은 동양의 신화를 좀 더 알고 싶다는 욕심때문이었다. 그리스로마신화에게는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신화는 저멀리 밀쳐두었다는 죄책감(?)으로 우리신화를 찾아 헤맨적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토록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왜 진작 찾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싶었던 기억이 있다. 그저 단순히 전래동화쯤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정말 멋지게 다가왔던 우리신화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준 이 책이 고마울 뿐이다.

 

자연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제대로 된 자연속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까닭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번도 애틋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겠지 싶어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었던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새로 생겨나는 아파트 단지를 걸을 때가 있다.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만들어진 모습으로 불쑥 불쑥 나타나는 아주 작은 '자연덩어리'들이 역겨웠었다. 나무 몇 그루, 꽃 몇송이, 얼마 못가 말라버릴 작은 물줄기... 그래서 그런지 아파트 단지마다 심겨지는 나무의 종류나 꽃의 종류는 거기서 거기다. 똑같이 생긴 집, 똑같이 생긴 나무와 꽃속에서 살다보니 생각조차도 똑같이 해야하는거라고 믿어버리게 된 건 아닌지... 그래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와 다르면 배척부터 하는 습관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공존의 가치를 속삭이는 태초의 이야기-를 만나는 시간은 정말 황홀했다. 그리고 아팠다. 일전에 읽었던 <숲의 왕국>이 생각났다. 우화형식으로 쓴 글이었는데 인간의 욕심을 그대로 자연속의 나무에게 옮겨 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보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들려주고 싶어하는 말은 그런게 아니다. 애초부터 자연과 하나였던 우리의 모습, 자연과 서로 어울어지며 살아왔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는 작은 부족민들의 오래된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한다. 신화라는 게 그렇다. 어디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곁에 머물러주던 자연속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우리에게 자연은 신과 같았다. 바람을 보내고 비를 내려주고 빛을 나누어주었던 신들의 모습이 바로 자연이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연과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보듬어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내가 사랑할 영화를 이 책속에서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았다. 나 역시 작가의 말처럼 그런 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멧돼지의 모습을 하고 인간세계로 질주해오던 자연신의 모습은, 그 영화 <모노노케 히메 : 원령공주>를 볼 때마다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영혼의 나무가 보여주었던 그 관대함은 자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영화 < 아바타>는 말하고 있다. 작가의 말에 정말 완전히 공감한다. 굳이 누군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연을 버린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자연과 함께여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고 뼈아픈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미래를 만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작가의 밀알같은 신화는 안스럽기까지 하다.

 

단순한 옛날이야기겠거니 하며 목차만 훑어보려고 펼쳤었는데 곧바로 모든 것을 잊은 채 책장만을 넘기게 했다. 그만큼 작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책속에서 나를 맞이해준다.  그런 이야기들을 가슴속에 품어 안은채 살아가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삶이 나는 부러웠다. 실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마치 문명만이 우리가 살길인양 무작정 달려가기만 하는 현실은 암담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던 신들의 이야기를 빌어 왜 우리가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지 말해주고 있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 왔다. 눈길과 마음길 모두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언제쯤이면 진정한 아픔으로 다가올 이야기가 될런지... 천번 만번을 반복해도 과하지 않을, 그래서 너무 늦지 않게 실천에 옮겨야 할 우리의 무거운 숙제를 다시한번 펼쳐본 느낌이다. /아이비생각

 

자연에 대한 애틋함을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만 보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볼 줄 안다면. '고성장'과 '발전'만을 외쳐오던 우리가 '저성장'이라는 것이 그렇게 피해야만 할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면. 그러나 또한 기억할 일이다. 너무 늦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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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보낸 편지 -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윤해환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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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소설속의 주인공이려니 했었다. 하긴 추리소설을 그다지 즐겨읽는 편도 아니니 어찌 그 무식(?)을 탓하랴 싶어 한번 찾아보았다. 김내성... 소설가이자 전 신문기자로 1909년에 출생하여 1957년에 사망한 평안남도 사람이라고 나온다. '타원형의 거울'이라는 작품이 아마도 그의 대표작인 모양이다. 그런데 더 살펴보니 의외로 작품은 많았다. '마인', '청춘기담', '유곡지', '백사도', '연문기담', '제일석간'... 솔직히 그의 이름을 몰랐으니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우리에게 멋진 추리작가가 있었다는 자체가 왠지 모를 뿌듯함을 전해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다지 즐겨읽지 않았던 추리소설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 것은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한마디 때문이었다. 더구나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과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리게 될 명탐정 셜록 홈즈를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설정은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할 만 했다. 소설의 배경은 우리가 가장 아프게 느끼는 일제강점기로 누구나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밑바닥에 숨겨두고 있다. 평양과 일본이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와세다대학을 나왔다는 김내성이란 작가의 이력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일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복을 입은 꼬마와 파란눈의 꼬마가 서로 만나 살인사건에 접근하게 되는 초반부의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까닭에 조금은 당혹스러운 느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성장해버린 김내성과 마주서야 했으니 그 당혹스러움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17년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살인사건을 가슴속에 품은 채 살아왔던 그에게 다시한번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파란 눈의 소년... 그렇게해서 어른이 된 두 사람의 추리여정에 나도 동참하게 되지만 어디에서도 긴장감이나 마음을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주어진 주제는 너무나 간단했다. 어떤 의미가 되었든 그럴싸하게 펼쳐지는 반전을 그리며 다가가는 것이 추리소설의 묘미일거라 생각했었던 나의 편견이 오롯이 깨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픈 과거이면서 그 당시를 살아냈던 사람이라면 조금은 공감할 수도 있었던 그런 이야기였다는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진실을 허구로, 허구를 진실로 만드는 것.. 모두가 보고, 그저 생각하게 하는 것..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도 단죄할 수 없는, 그러나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아픈 시대의 재조명쯤이었다고 말한다면 틀린 말일까?  뻔한 내용이 펼쳐졌지만 그 끝에 남는 여운은 있었다. '조선 최초의 추리소설가 김내성에게 바치는 오마주' 라는 말이 보인다. 이 책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을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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