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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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자는 아내 역할에만 충실해야 할까?  해도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에 매달려 아침이면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일속에 그여자의 행복은 있는 것일까? 옛날,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시절, 그 시절의 여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과연 여자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문득 찾아왔던 물음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愚問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책속의 아내는 그야말로 아내역할에 충실한 여자다. 하루종일 어제와 똑같은 집안일에 매달리고 가끔씩 찾아오는 이웃과 한잔의 차를 앞에 두고 수다도 떤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남편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이 들어주거나 말거나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그런 그녀가 사는 집은 꽤나 넓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군함과도 같이 넓은 집이다. 남편은 가업으로 이어받은 괜찮은 회사를 운영하니 딱히 이렇다하게 보여지는 문제점이라고는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야기의 흐름속에 미세하게 깔려지는 복선이 왠지 슬프다. 아내만 있을 뿐 그여자 자신이 없는 생활. 자로 잰듯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그녀의 동선은 왠지 공허하고, 퇴근하고 돌아와 아무런 느낌없이 무덤덤하게 저녁을 먹어치우는 남편은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아내의 종알거림따위는 이미 관심이 없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항상 그렇지 뭐, 하고 돌아서는 아내의 허전함이 내게로 전해져와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고 만다. 틀... '틀'이라는 건 참 묘한 구석이 있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그런 묘한 구속력을 가진 탓에 사람들은 그 틀안에 갇혀있음으로써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에게 어느날 문득 찾아온 남자가 있었으니... 여자를 둘러싼 틀을 살풋 비틀어 밖을 내다볼 수 있게, 그리하여 과감히 밖으로 나와 다른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 그 남자와 함께 하는 풍경이 어떤 이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어떤 이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건 삶이 만들어내는 또하나의 모순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내 미야코와 남편 히로시는 그저 그렇게 평범한, 그러나 남들이 보기엔 사이좋은 부부다. 어느날 대학 강사로 일하는 미국인 존스씨가 미야코에게 손을 내밀기 전까지는. 이야기의 끝맺음이 서글프다. 미국인 존스씨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속에서 우리가 미처 손쓸 수 없는 불안이 보여진다.  단순하게 예고도 없이 문득 찾아와 완성되지 못할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라는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부부로 살면서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음이다.  한낮인데 어두웠던 그 방... 그것만이 최선일거라고 생각했던 미야코의 일상이 한낮인데 어두운 방이라는 제목과 겹쳐지며 서글픈 실루엣을 그려내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작품을 몇 편 읽은 기억이 있지만 이 소설은 문장이 주는 느낌이 왠지 어색하다. 착착 와닿는 느낌이 없다. 어린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무척이나 재미없게 들려주고 있는 듯한 할머니의 목소리처럼 그 어색함이 끝까지 남아있어 쉽게 집중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밝히고 싶지 않은 우리의 속내를 스치듯 가볍게 만져주는 일본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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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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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이 한마디가 던져주는 의미가 꽤나 깊고, 꽤나 넓고, 꽤나 크다. 시쳇말로 꽂힌거다. 어느날 문득 내 눈앞에 나타난 너를 보았던 순간, 그길로 너를 마음속에 품어버렸다. 단 한순간이었을 뿐인데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좋아. 처음으로 내 것이었으면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가졌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또 그렇게 나를 가졌으면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기까지 사십육년 걸렸다." .. 그런게 사랑이라고. 사랑... 그토록이나 진부할 수 없는 그 사랑이야기를 어쩌자고 이렇게 대놓고 해야하는 건지. 사실은 내가 쓰고 싶었던 주제를 썼을 뿐이라고 말하던 작가의 말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 어쩌면 우리가 도저히 비켜갈 수 없는 게 사랑이라는 진부함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게 뭘까?  작가의 말처럼 명확하고 간결한 것일까? 그런데 어째서 우리 주변을 떠도는 사랑의 실체는 명확하고 간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사랑은 무슨 맛일까? 사랑은 어떤 냄새를 풍길까? 사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알 수 없다! 단지 다분히 주관적이며 일방적이라는 것만은 나도 안다. 사람들이 모든 좋은 말을 동원하여 포장하고 치장한다고해도 지극히 이기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바로 그런게 사랑이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마흔여섯에 처음으로 찾아낸 사랑은 지독히도 아렸다.

 

뭔가 특별한 게 있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타인들은 모른다. 그래서 묻는다. " 걔, 도대체 뭐가 좋은거야? "  그런 사람을 만나기까지 사십육년이나 걸렸다던 그 남자에게, 어쩌면 그 여자는 한줄기 바람과도 같았을거라는 나만의 느낌은 잘못된 것일까? 어렸을 적 엄마가 뱀술 담그는 걸 본 적이 있다. 좁은 병속에 갇혀 자신에게 파고 들어오는 독기어린 술기운을 받아들이면서도 뱀은 죽지 않았었다. 불쌍한 마음에 코르크 마개에 바늘구멍 하나 내 주면 그 큰 몸을 움직이며 주둥이를 그곳에 대고 한참동안을 그렇게 살아있었다. 조여오는 것, 조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외면할 수 없는 실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디서부터인가 미세한 숨구멍을 느끼게 되면 오직 그것만이 내 모든 것이 되어버리고 조여오는 모든 것에게서 나는 탈출한다. 그남자에게 그녀는, 아마도 그런 숨구멍이었을 것이다.

 

너를 처음 보았던 순간부터 좋아했다고 말했는데 나도 그랬어! 라고 대답한다면 더이상의 미사여구는 필요치않다. 일사천리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때부터라는 걸 많은 사랑은 알지 못한다. '사랑하니까' 라는 말로 상대방를 구속하고 질투하고 가끔씩은 자신과 상대방을 파괴하기도 한다. '보고싶으니까' 라는 말로 무수히 짓밟히는 상대방의 많은 것... 그 짓밟힘으로 인해 상대방이 아파할 거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보고싶어하니까 라는 특혜라도 내려주는 양. 사랑은 많은 것의 공유가 아니다. 나만의 것이 있듯이 너만의 것도 있다는 걸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각설하고 <너를 봤어>라는 말 한마디속에 그토록이나 많은 의미를 담았다는 게 놀라웠다. 다분히 가까이에서 속삭이는 말일수도 있고, 저만큼의 거리쯤에서 은근하게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느끼게도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작가만의 특별한 그 어떤 것에게 말을 거는 것일수도 있다.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사랑의 형태는 속깊은 곳으로부터 많은 공감을 불러왔다. 사랑이라는 건, 혹시 이런게 아닐까? 가 아니라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노라고 무심한 척 말하고 지나가는 사람처럼.

 

<너를 봤어>를 읽고나서 혹자는 "이거 혹시 당신 얘기 아니야?" 하고 은근슬쩍 물어보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그만큼 작가와 출판사가 공존하는 배경이 꽤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이 녹녹치않게 보여지고, 하나의 작품을 포장해서 세상속에 내놓기까지 출판사들의 움직임은 어떠한지, 책을 읽고있는 독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차피 책은 삼박자가 맞아야 하니까. 작가, 출판사, 그리고 나와 같은 독자 ^^. 김려령... 그녀의 작품을 몇 편 읽었다. 이번 작품을 두고 뭔가 다른 시도였다고들 말하고 있지만 결국 외로움이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로우나 외로울 수 없는 가슴들.. 그런 가슴을 안아주고 쓸어주고 싶은 욕심이 많은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살아있으나 튀지않는, 가벼우나 깊은 그녀의 문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팬으로 자처할 수 있는 작가중 한명이 될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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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백파선
이경희 지음 / 문이당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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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제를 앞에 두면 어쩔 수 없이 일본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일본의 역사로 흘러 들어간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백제의 숨결을 일본에서 찾아내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일본땅을 밟으며 동분서주했을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실재하는 백제의 흔적은 보는 순간 무언지 모를 울컥함이 목을 치고 올라오는 걸 느끼게 한다.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도 있다. 직접 보지않고 TV화면이나 사진을 통해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럴까? 하나된 공간속에서 함께 살아왔을, 그리고 함께 살아갈 우리를 같은 민족이라하니 아마도 그런 감정쯤? 그건 아닐 것이다. 분명 우리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왠지 낯선, 혹은 미덥지 않은 그 존재감이 그곳에서 오히려 환대받고 있음이 서글퍼 그럴수도 있겠다는 나만의 생각에 잠시 빠져본다. 그래서 문득 이런 물음표를 던지게 되었다. 역사의 한단면을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명감(?)과도 같은 느낌으로 초고를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그럴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막사발은 말 그대로 막 만든 사발이다. 처음엔 밥이나 국을 담는 그릇이었다가 오래되고 금이 가면 막걸릿잔으로 쓰기도 했다는 막사발. 지금의 우리에게 청자나 백자와 같은 도자기가 그다지 가깝지 않은 느낌으로 전해지듯이 막사발 역시 그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잃은지 오래라 한다. 일본에서는 상당히 높은 값을 받는다는 막사발을 두고, 사실은 막 만든 것이 아니니 막사발로 불러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옛 것을 작금의 시선과 잣대로 평한다는 건 뭔가 잘못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속에서도 백파선의 혼과 정성이 담긴 세 개의 막사발이 등장하지만 바로 그런 의미를 찾아내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굳이 명칭을 바꾸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이야기는 조선의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시작된다. 알다시피 우리의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거나 건너간 것이 어디 한번뿐일까? 예로부터 조선과 중국의 도예기술은 최고였다. 옛날 일본의 실력자였던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우리의 막사발을 얼마나 중히 여겼는가는 여러 문헌상에서 이미 밝히고 있는 일이다. 그것을 만든 우리야 그들이 왜 그렇게 막사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당시 일본사회의 문화적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그릇을 일생 하나라도 만들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던 일본 도공이 있었는가 하면 한번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하니 우리의 막사발 위세가 어떠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에서 '이도차완(井戶茶碗)' 이라 불렸다던 막사발을 만드는 여자도공 백파선의 흔적을 따라가 그들이 어떻게 일본속에 적응하며 살아냈을지 한번 상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 그토록이나 어려운 환경속에서 어떻게 살아냈을지, 그리고 어떤 사랑을 했을지 내심 기대가 컸던 책이다. 거기다 하나 더 보탠다면 가슴 시리도록 아팠을 우리의 도공에 관한 역사를 글쓴이의 남다른 시선과 문체를 통해 보고싶어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읽고나니 뭔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진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 있는 듯한 그런 느낌 말이다. 일본무사와 조선의 여도공 사이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머물렀던 우리 도공들의 아픔. 책은 담담했다. 바로 이거야, 하며 눈앞으로 책을 끌어당길만큼 진한 그 어떤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밋밋함... 그 밋밋함이 이토록이나 강한 아쉬움을 남기는 것일까? 모르겠다.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의 느낌으로 끝을 맺을테니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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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스님의 인도 성지 순례
송강 지음 / 도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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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순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가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성지순례를 나서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 것일까? 그저 종교적인 의무여서?  신의 은총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뿌리를 찾아보려고?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성찰이나 자기수행의 한 방법쯤?  그 마음이 어떨지 잘은 모르겠지만 세계적으로도 성지순례를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기독교성지, 천주교성지, 불교성지... 하기사 종교적인 성지를 들라하면 수없이 많지 않을까 싶다. 성지순례라는 말 하나로 검색해보니 엄청나게 많은 성지가 보인다. 이스라엘성지, 스페인성지, 터키성지, 인도성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성지라는 말조차도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놓은 틀은 아닌지 되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언제 어느곳에 있든 항상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 하는 말이다.

 

스님이 성지순례를 떠난다면 그것은 자기성찰이나 수행쯤일까? 책의 소개글을 보면서 아마도 그럴 거라고 나는 지레 짐작했었던 것 같다. 아니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종교가 어떤 것인지 속깊은 데까지 들여다보고 싶어서일거라고. 그런데 책의 서문을 보고나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왠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말 할 필요없이 내가 순례길을 떠나봐야 그 속을 알겠구나 싶어서였다. 이 책은 글보다 사진이 더 많다고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그만큼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일거라고 나는 느꼈지만... 송강 스님이 인도로 성지 순례를 떠나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날까지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으니 어찌보면 인도 답사처럼도 보여진다. 엘로라 석굴사원, 아잔타 석굴사원, 산치대탑, 타지마할, 마하보디사원, 수자타 마을, 죽림정사, 나알란다 사원, 바이샬리 근본 사리탑, 쿠시나가라, 열반당, 사르나트, 그리고 갠지스강... 여정을 살펴보면 잘 알겠지만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답습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많은 사진이 그 길을 함께 하고 있어 불현듯 내가 그 답사길에 동행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수행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름대로 공감하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거렸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불교신자는 아니니 종교적으로 크게 어떤  울림을 받았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면면히 살펴보면 확실히 수행이라는 말이 맞긴 맞는듯 하다. 지금이야 너무나도 세속적인 맛을 내고 있지만. (어디 불교뿐일까? 기독교나 천주교도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지금은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라는 말이 생겼을까? 말하면 입만 아프다흔한 예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자신을 낮추면서 부처님께 최대의 존경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오체투지나 백팔배, 참선이나 좌선과 같은 형식은 모두 수행의 한 단면임엔 분명하다.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기 때문에 오체투지라고 한다는데 가끔 그 오체투지를 실행하는 사람들을 TV를 통해 보게 될 때는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마조마해질 때도 있었다. 그 절절함이,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그 어떤 것들이 종교의 속성은 아닐런지. 그리하여 힘겨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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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버리기 연습 - 100개의 물건만 남기고 다 버리는 무소유 실천법
메리 램버트 지음, 이선경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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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건이 당신의 삶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말한다면 거기에 수긍할 사람 몇이나 될까?  무소유를 실천하셨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소유욕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자꾸 소유하고자 하는 것일까? 책표지에 보이는 한줄의 글귀가 자꾸만 시선을 끌어당긴다. 잡동사니에 둘러싸여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조용히 내 주변을 둘러본다. 역시 많다! 버려야 할 것들, 버리고 싶은 것들, 버리자고 마음먹었던 것들... 버리자고 마음먹었는데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왜일까? 미련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버려도 괜찮을까? 언젠가는 쓰게 되지 않을까? 수도없이 번복되어지던 말들 때문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함께 사는 나의 반쪽이 바로 잡동사니 수집가(?)인 까닭에 20년 넘게 끊임없이 싸워왔던 주제다. 나?  솔직히 말해 버리는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몇 개를 빼고 왠만한 건 바로바로 버린다. 왜? 신경쓰이는게 싫어서다. 일단 마음에서 멀어진 것들은 다시 들여놓지 않는 성격인지라 한번 눈밖에 나면 바로 버려버린다. 사람도 그럴진대 물건이야 더 하지 싶어서. 그런 내가 왜 이런 책을 보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100개의 물건만 남기고 다 버리는 무소유 실천법이란 말에 이끌려 손을 내밀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그다지 많은 물건이 필요치 않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 내가 보더라도 굳이 그렇게 많은 살림도구는 필요치 않은 것 같다. 최소한의 물건, 혹은 꼭 필요한 물건만 갖고 살아도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개의 물건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버리는 데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공감한다. 버리기만 해도 삶이 바뀐다는 말에도 백퍼센트 공감한다. 얼마전 TV에서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다가 그 물건들에게 집을 내준 사람을 본 적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그 집을 치우고 깨끗하게 다시 꾸미기까지 아마 사흘이 걸려다지? 처음 나의 반쪽이 잡동사니 수집가(?)인 걸 알았을 때는 그저 취미려니 생각했었지만 살면서 자꾸만 쌓여가는 물건들 때문에 툭탁거리기를 몇 번, 설득 끝에 그 많은 것을 버리게 되었던 날이 생각난다. 그 후로도 수집(?)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쟁여놓으면 버리고 쟁여놓으면 버리고...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예전처럼 심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이 책은 크게 4Part로 구분되어져 있다.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체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책의 부제처럼 쌓아놓았거나 어질러진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하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바로 깨닫게 된다. 氣의 흐름도 원만해진다는 말을 곧바로 실감하게 된다.  복잡한 수식어를 쓰지않아도 깔끔하게 정리된 풍경이 바라보는 사람의 기분을 상큼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금새 알 수 있다.

 

책의 말처럼 버리지 못하면 채울 수도 없다. 비워내야 새로운 것이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버리는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버리는 것이 아깝다고 느껴진다면 버리되 기한과 순서를 정해 버리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한꺼번에 많은 걸 버린다는 게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 쓰레기통으로 보내지 말고 꼭 필요한 곳을 찾아 기브하라는 말도 새겨 들을만 하다. 버려보면 안다. 불편함보다는 불편할거라는 선입견이 얼마나 더 큰 불안심리였는지를. 책을 보면서 나도 하나하나 점검을 해 보았다. 잘 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엌, 침실, 욕실, 옷장 위 상자들... 나는 여전히 쟁여놓고 있었던 거다!  가장 골치거리로 여겨질만한 책들은 오히려 문제가 없었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랄까?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남편도 아들녀석도 함께. 아울러 나의 소비패턴에 대한 점검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혹여 무언가에 대한 보상심리로 물건을 구매하고 있는건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다. Simple best!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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