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한옥에 살다
이상현 지음 / 채륜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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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집은 단순히 어떤 목적, 말하자면 편리한 생활을 위한 기능적인 대상이 아니다. 이 집은 조상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신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고, 이웃과 함게 어우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는 집을 생활속에서 실천적으로 해석하며 살아왔다. 한옥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미학적 가치와 삶의 실존적 가치는 끊임없는 생성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자연과 든든하게 이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239-240) 책의 말미를 더듬어 일단 결론이 아닐까 싶은 이야기부터 하고 본다. 어찌되었든 한옥의 아름다움에 정말 공감하느냐 묻던 저자의 물음에 명쾌한 답을 드릴 수 없는 까닭이다. 古宅이나 전통가옥을 찾아갈 때마다 그 안에 숨은 의미보다 형태와 형식만 찾아 헤매며 너무 어렵다고 중얼거리곤 한다. 생소한 명칭들은 왜 그렇게나 많은지, 그런것들을 꼭 알아야만 마치 전통가옥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해서 어렵게 찾아간 곳에 반발짝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그 많은 명칭들은 가옥을 보러오는 사람들을 위한 것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여주는 이나 듣는 이나 그 명칭들앞에서 작아지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보다 한술 더 떠서 이제는 인문학까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내심 불편하기도 했다. 한옥을 그냥 한옥만의 느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을 한옥에 대비시켜보라고 하니 더 어려울 밖에...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너무나도 서양적인 것에만 물들어사는 지금 우리네의 시선에 맞춰 어떻게든 한옥의 아름다움을 이해시켜보려고 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천천히 책장을 넘기긴 했지만... 설령 그렇다해도 내게는 쉽지않았다.

 

언론매체를 통해 종종 중국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이 사는 문화를 보면서 철저(?)하게 사대주의로 살았다는 우리네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그들이 사는 집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한옥이 중국의 사합원에서 비롯되었고 우리의 골목길과 그들의 골목길이 닮아 있다는 말은 상당히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런 말을 보게 된다. 중국의 집은 한옥에 가까울까? 아니면 서양 집에 더 가까울까? 대부분 중국의 집이 한옥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서양 집에 더 가깝다. 중국의 주거문화도 마당이 아니라 중정에 의지하고 있어서 집의 특성으로 보면 많은 경우 우리보다 서양을 닮았다. 의외였다. 여러형태로 변형되어지던 사합원을 보면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그 '중정'의 의미를 새겨보면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앞쪽으로 돌아가 저자의 말을 되새겨본다. 빛을 들이기 위한 중정의 의미가 서양의 건축물 형태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주거문화가 중국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거기에서부터 비롯된 형식일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나무뼈대를 이용하여 집을 짓는 건축 방법을 빼면 중국이나 일본은 오히려 서구적이라는 것을. 집과 난방시설이 별개인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의 가옥은 집과 난방시설이 하나로 톻합되어 있다는 것, 구들이 우리의 것임을 익히 알고 있었으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까닭에 그것을 놓치고 있었구나 싶었다.

 

가끔 전통가옥을 찾아가면 나는 항상 툇마루나 쪽마루에 걸터앉아 처마밑으로 내려앉는 빛과 한동안 노닥거리곤 한다. 살포시 내려앉는 그 햇빛의 따스함이 너무 좋아서. 거기서 그렇게 온종일을 보낸다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전통가옥의 한부분은 사랑채와 마당이다. 특성상 폐쇄적인 듯 보이지만 알고보면 개방적인 그 구조가 나는 참 좋다. 막아놓은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모두가 열린 그런 분위기는 낮은 담장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빛을 받아들여 다시 건물로 쏘아보낸다는 어설픈 설명이 없어도 파란 하늘을 마당안 가득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얼마나 멋있는지... 한옥의 미는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립된 비례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 속에서 가치를 가지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기반하고 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는 저자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자연에 가장 잘 어우러지는 선, 그것이 바로 지붕선이란 말에 주목한다. 답사를 갈 때마다 전통가옥을 보면서 쭈욱 뻗어나간 지붕선의 아름다움에 빠져보라는 말은 늘 들어왔던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지붕선이 무엇을 얼마나 아름답게 담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의 가옥이나 궁궐은 그 자체만 보면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조금은 먼 발치에서 바라봤을 때 자연과 어울어진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던 어떤 이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문을 열면 그 주변의 풍광이 집안으로 모두 들어와 그 집과 하나가 된다는 설정 자체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죽했으면 借景이라는 말을 썼을까? 경회루내에서 보는 모습이 최고의 借景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가옥에서 바라보는 借景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건 분명한 일일 것이다.

 

저자가 말한 '대충'의 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안성 청룡사의 기둥이 보고 싶어 찾아갔던 때를 더듬어보면서. 기둥도 대충, 대들보도 대충 만든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안에 깃든 목수의 마음을 놓치면 안된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막돌을 주춧돌로 삼은 것도 마찬가지다. 나무의 생김새를 그대로 기둥으로 썼거나 아무렇게나 생긴 돌로 그 기둥을 받친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움'과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의 열풍으로 유행처럼 부석사를 찾아갔던 시절이 있었다. 부석사를 찾았을 때 정말로 배흘림기둥에 기대서 있던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무엇을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했었다. 나도 한번 기대서볼까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었는데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다가서고 싶은 우리의 마음, 그것 또한 또다른 하나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문화가 形의 문화이기보다 象의 문화 라는 저자의 말이 가장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形과 象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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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 열린 강좌 2014-07-04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옥연구소 대표 이상현 님의 강연이 있어, 한옥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고자 글을 남깁니다.

저자 초청 열린 강좌 - 이상현(한옥연구소 대표)의『인문학, 한옥에 살다』(채륜서 刊) (7월 15일 오후7시)

장소 : 서울 지하철5호선 마포역 4번출구 앞 불교방송 건물 3층 다보원
일시 : 7월 15일 화요일 저녁 7시
참가 문의 및 신청 : 02-719-2606
네이버 카페(화요 열린 강좌, http://cafe.naver.com/dharin.cafe)

*모두에게 열린 무료 강좌 입니다.*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 우리 내면에 숨은 무의식의 정체
김현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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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자주 하는 말중에 하나가 '꿈 좀 안꾸고 자봤으면 좋겠다' 는 말이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해 힘겨워한다. 지인에게서 수면을 유도하는 방법에 관한 책까지 선물받았던 적도 있다. 그만큼 밤마다 꿈에 시달린다. 꿈이라는 게 참 묘해서 기분좋은 꿈보다는 쫓고 쫓기는 힘겨운 상황을 더 많이 보여준다. 어떤 때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자각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꿈을 꾸고 있는 나를 내가 불안하게 바라보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날에는 영락없이 한두시간밖에 자지 못한다. 그러니 아침이 상쾌할리가 없다. 그럴때마다 남편이 말했었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말해서 함께 해결하자고. 그렇다고해서 내가 걱정거리가 많은 건 아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생활에 크게 불만은 없다는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일종의 정서불안일거라고 내 스스로에게 처방을 내려보기도 했었다. 이 책은 그런 이유로 내게는 엄청난 끌림으로 다가다. 이 놈의 개꿈만 꾸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거라고 생각하며 펼쳐들었는데 처음부터 한방 먹었다. 글쓴이의 첫마디가 개꿈은 없다는 거였으니 하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잘 몰라서 하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개꿈도 꿀 수 있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하도 꿈을 꾸다보니 이제는 그 꿈을 가지고 자체분석도 한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내가 모르는 내 마음이 꿈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갈등을 치유하거나 결핍을 눈치채게 하기 위해 꿈으로 표현되어진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하지만 뭔가 정해놓은 듯한 학설(?)처럼 누군가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그다지 공감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것이 다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도 자체분석한 꿈해몽으로 상황에 따라 조심하기도 하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긴다면 기대가 충족되는 것이니 그것도 나쁠게 없으니 하는 말이다. 일종의 꿈해몽처럼 펼쳐지는 책의 내용이 내게는 깊은 울림을 주지 못했다. 길몽이든 흉몽이든 그 꿈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한번쯤 뒤돌아볼 수 있다는 건 괜찮은 일임에 분명하다. 책의 말미에 나와 있는 꿈 체크리스트를 통해 나의 불안지수를 알아보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다지 체크할 만한 항목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체크리스트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확시랗게 이렇다 저렇다 답을 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조금 애매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구구절절 꿈에 관한 나의 지론을 말했던 거다. 개꿈도 분명 있다고.

 

"무심코 흘려버린 당신의 꿈에 담긴 놀라운 비밀" 이란 말처럼 어쩌면 나는 나의 꿈을 통해 내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 책을 펼쳐들기 전날에도 나는 꿈을 꾸었다. 앞서가던 아들녀석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녀석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아주 작은 꼬마하나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라오던 꿈이었다. 요즘 아들과 엄청난 신경전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것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가는 아이의 정서를 인정해주지 못하고 마냥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한번 묻게 된다. 꿈이 우리 내면에 숨은 무의식의 정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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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와 결혼해 주세요
히구치 타쿠지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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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만약에'라는 말은 참 묘하다. 다분히 부정적인 주제를 불러오기도 하고  예상치못한 즐거운 주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 대체적으로 즐겁고 행복한 일보다는 부정적이고 힘겨운 일에 더 치이며 사는 까닭인지, 그 '만약에'라는 말이 불러오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화제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경우는 상당히 적은 편인 듯 하다.  이 소설의 제목, 참으로 발칙하다.  언젠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나와 어떻게 그런 제목을 붙일 수가 있는거냐고 한동안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대놓고 내 아내와 결혼해 달라고 한다. 무슨 일인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음직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만약에 내가 어느날 갑짜기 시한부인생을 선고받는다면?  이 말은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당신은 무얼 하겠느냐고 묻는 것보다 더 무섭다. 그런데 정말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만약에 내가 정말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리고 나는 말했었다.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연명치료를 하기 위해 내 몸에 주사바늘을 꽂고 싶지는 않다고. 그러니 그 남은 시간만큼이라도 당신과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비록 몸은 아플지라도.

 

그런데 다 읽고나니 이 소설, 상당히 낭만적이다. 당신에게는 앞으로 6개월간의 생명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생명을 좀 더 연장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인공 미무라 슈지는 의사의 관대한(?) 처방전을 무시한 채 과감히 병원문을 나서 다시 세상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혼자 남을 아내를 위해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느닷없이 자신의 아내와 맞선 볼 남자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이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끝까지 자신의 병을 숨기고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왠지 처절하기까지 하다. 결국 맞선 상대를 찾아냈다! 맞선이라는 게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들통나버린 상황에서 계획에 포함된 모든 이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만, 자신이 왜 그래야만 했는가를 말하며 아내를 설득하고, 아내와 맞선 보기로 되어 있던 상대를 설득하는 그의 무모함은 오히려 상대방들을 눈물나게 만들어 버린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이 모두 미무라 슈지와 같다면? 문득 이런 웃지 못할 물음표를 던져본다. 그렇지 않은게 우리의 현실임을 알기에 멋적은 웃음 한번 지어보고 생각을 접었지만....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나였더라면, 정말 그 사람이 나였더라면...  언제부터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죽음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이제는 좀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묻고 있는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모든 아픔과 모든 고통을 주인공의 솔직함과 유머로 포장해버렸지만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보여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에만 매달려 살아왔던 중년의 남자, 미무라 슈지. 중요한 것은 그도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같이 있었으면 하고 기대할 때는 늘 없었으니까,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남편, 아버지인 척 으스대지 마라. 부탁이니까 우리의 생활리듬을 깨뜨리지 마라. 잘해보자고 생각해서 하는 일들이 솔직히 성가시다. 당신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냥 모른 체하는 것. 이런 말들이었던 것 같다. (-175쪽)   미무라 슈지의 중얼거림이긴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은가?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오던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이 소설은 우리 주변의 아픔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드리고 있다. 지금 누군가로 인해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면, 가슴 한가운데로 구멍이 뚫린 것처럼 찬바람이 들어온다면 글쓴이 히구치 타쿠지가 권한 이 노래를 한번 들어보면 어떨지... /아이비생각

 

 
When you're down and troubled And you need some loving care
네가 침울해 있거나 힘들 때 누군가가 그리워지거나
And nothing, nothing is going right
모든 것이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려 할 때는
Close your eyes and think of me And soon I will be there
눈을 감고 나를 떠올려봐 나는 바로 옆에 있어
To brighten up even your darkest night
어떤 어둠도 내가 환히 비춰줄테니까
You just call out my name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돼
And you know wherever I am I'll come running to see you again
그러면 난 어디에 있든 너에게 달려갈 테니까
Winter, spring, summer or fall
겨울이든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언제나
All you have to do is call And I'll be there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돼 곧 달려갈 테니까
You've got a friend
나는 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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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미술로 떠나는 불교여행 인문여행 시리즈 12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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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종교일까? 많은 사람이 불교를 종교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종교와 신앙의 차이는 무엇일까? 느닷없이 불거져나온 이 의문점.. 그래서 한번 찾아봤더니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종교는 神이나 절대자의 힘을 통하여 인간의 고민을 해결하고 삶의 근본적인 목적을 찾는 문화 체계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화현상이라는 것이다. 어느정도는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런데 신앙의 의미가 재미있다. 성스러운 존재에 대한 믿음과 무조건적인 복종을 말하기도 하며 불확실한 것을 주관적으로 확실하다고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라고 나온다. 한번쯤은 곱씹어 볼 말인듯도 하고... 他종교처럼 절대자를 내세우지 않으니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종교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의미한다는 말에 한표를 주고 싶다. 종교가 되었든 신앙이 되었든 어떠한 절대자를 전제로 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 나만의 지론인 까닭이다. 불교가 종교인지 철학인지 따져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두가 길어졌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추구하는 바를 어떤 형태로든 보여주고자 했던 표현방식들이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하는 아잔타 석굴 또한 세계가 인정하는 불교미술의 보고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있으니 어디에서 비롯되어졌는가, 어떤 목적을 두었는가가 중요한 일임엔 분명한 모양이다.

 

불교의식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불교미술은 불상이 없었던 초기에는 불상을 대신해서 佛足이나 法輪을 그려 놓거나 보리수 등의 상징적 대상물에 예배했다. 佛塔이나 佛像은 그 이후 체계를 갖추어가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인도에서 발생된 불교가 여러나라로 전파되었지만 그 나라만의 역사와 사상에 알맞게 서로 다른 특징과 믿음의 문화를 형성하였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렇지만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불교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보는 아잔타 석굴 사원부처의 전생이라는 자타가를 통해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타가는 붓다의 전생 이야기로 붓다가 깨닫게 된 원인이 전생에 쌓은 선행과 공덕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당시 인도의 민간에 널리 유포되고 있던 전설과 우화 속의 인물 하나를 붓다의 전생으로 꾸며서 불교 설화로 변경시킨 것이라 한다. 자그마치 547가지의 전생 이야기가 수록되어져 있는 경전도 있다고 하니 우리의 일상속에 얼마나 깊숙히 들어와 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음이다.  전생이나 윤회, 선악응보의 사상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지금의 내가 선행으로 덕을 쌓으며 자기희생과 인내를 바탕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내게만큼은 그다지 커다란 반감을 불러오지 않는다. 아잔타 석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자타카 이야기 역시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탄생한 것일게다.  

 

이 책은 아잔타 석굴을 찾아가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알고 가야 하는 가를 말해주고 있다. 아잔타 불교 석굴 사원이 어떤 곳이며, 벽화는 어떤 기법을 썼고 어떤 색채를 위주로 그렸는지, 그곳에 그려진 벽화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조금은 외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그림의 의미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설명을 한다. 석굴사원인 까닭에 어두웠던 실내에서 촛불이나 한줄기 빛을 이용하여 조각품들의 예술성을 어떻게 보여주고자 했는가를 살펴보는 부분은 신비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잔타 벽화에 그려졌다는 자타카는 우리가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이야기들이다.  윤회사상을 그리고 있어 어떤이에게는 반감을 불러올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부처의 전생 행적을 따라 불교미술 순례여행을 떠났다는 글쓴이의 발길이 부럽기도 하다.  죽기 전에 한번은 보아야 한다는 아잔타 석굴을 나는 언제쯤에나 볼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불교를 대표하는 석굴암과 고려불화를 떠올린다. 아잔타 석굴은 인도의 석굴 양식이지만 우리나라 석굴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고려불화가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이 또한번의 안타까움을 불러온다. 몇 해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았던 고려불화전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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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강의 -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과 그의 제국 이야기
왕리췬 지음, 홍순도 외 옮김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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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황제라는 말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세계를 움직이는 왕이란 말이 흥미롭다. 그만큼 그를 통해 이루어진 일이 많다는 말도 되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평가하는 잣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말일터다. 그래서일까? 700쪽이 넘는 두께에 압박(?)을 당하면서도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은근하다. 不老長生을 꿈꾸었던 사람. 출생의 비밀을 안고서도 자신의 욕망을 펼쳐낼 수 있었던 사람. 그가 일구어낸 결과들이 과연 그의 진정한 꿈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난 의문점이다. 그가 천하통일을 꿈꾸었던 게 아니라 어쩌면 시대가 천하를 통일하고자 했던 거라고. 책을 읽으면서 슬며서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게 되는 건 세상을 떠도는 수많은 일화가 등장했던 까닭이다. 이 이야기가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되어진 것이로군, 아하! 이건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지... 함께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 기나긴 중국의 역사속에서 하나 둘씩 등장하는 우리의 역사를 발견하는 재미도 괜찮았다. 

미리 말했듯이 시대가 통일을 꿈꾸었던 거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천하통일을 향한 발판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처럼 이 책은 진시황만을 다루지 않았다. 최초의 황제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무런 힘도 없던 그의 선대들이 진시황을 탄생시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또한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는 진시황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어느 한 부분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흔히 들어왔던 책사들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탄식과 한숨을 뱉어냈다. 그가 조금만 더 살았었더라면, 그의 전략이 조금만 더 성공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도 함께 한다. 상앙, 한비, 염파, 조사, 이목, 손빈, 방연... 참으로 많은 책사가 시대의 흐름속에서 활약하고 있었음이다.

 

하 - 상(은) - 주 - 진 - 한 - 위진남북조 - 수 - 당 - 송 - 원 - 명 - 청.... 중국은 단일민족도 아니고 어느 한곳에서 분연히 일어난 나라가 아니다. 임금, 순임금, 우임금과 같이 우리가 잘 알고있는 선양제의 주인공들이 바로 나라를 만들었다. 주변의 여러 부족들을 융합해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로 발전할 수 있었던 부락연맹제가 바로 하나라인 것이다. 비록 미희들에게서 헤어나지 못한 채 나라의 이름을 바꾸어야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분봉제를 시행했던 주나라 시기에 주요 봉후국으로 위(衛), 노(魯), 제(齊), 송(宋), 진(晉), 연(燕)나라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에 주 천자를 보위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했던 齊나라의 환공, 宋나라의 양공, 晉나라의 문공, 秦나라의 목공, 楚나라의 장왕을 일컫는 춘추오패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제의 환공, 진의 문공, 초의 장왕, 의 합려, 의 구천을 춘추오패라 부르기도 한다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진의 목공이 바로 진시황의 선대였다는 것이다. 바로 그 나라들의 전쟁이 이 책속에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어 마치 장대한 영화를 보는 듯 하다. 각 제후국 간의 전쟁으로 혼란이 그치지 않았던 전국시대를 거쳐 일곱 제후국만 남게 되었고, 이들 戰國七雄이 바로 위(魏), 한(韓), 조(趙), 진(秦), 초(楚), 연(燕), 제(齊)나라이다. 초기에는 한, 조, 위 세 나라가 동맹을 맺어 강했으나, 동맹이 깨지면서 제나라와 진나라가 강해졌다. 이에 소진은 6국이 종적으로 연합하여 진의 강성에 대항할 것(合縱)을 주장했고, 장의는 진과 6국이 개별적으로 횡적 동맹을 맺을 것(連橫)을 주장했다. 전국 후기에 진나라의 세력이 더욱 강해진 이유가 바로 합종연횡의 결과였다.  특히 상앙의 변법은 진나라를 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최초의 통일 국가를 건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反秦운동에 중심 역할을 했던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다. 상앙이란 인물은 은연중에 중종때의 조광조를 떠올리게도 한다.  
 
조희와 여불위를 통해 생각해보는 진시황의 출생비화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진시황의 곁에서 세상을 주물렀던 이사와 환관 조고의 마지막을 바라보면서 권력을 향한 인간의 속성을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은 씁쓸하다. 썩은 생선과 함께 돌아왔던 진시황의 죽음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 듯 하다. 지금까지도 진시황을 욕되게 하는 분서갱유의 바탕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한사람을 통해 이렇게나 많은 역사의 흔적을 들춰낼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마지막 장에서 '어떻게 진시황을 평가할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시대적인 평가를 다루고 있지만 그 평가라는 게 그리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들이대는 잣대는 저마다 다를 것이기에. 두껍기는 하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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