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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평점 :
세계 최고, 세계 최초, 세계 최대 따위의 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는 보여지는 면에 치중되어 살고 있다는 말은 맞다. 단순히 보여지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마네킹 효과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런 의미의 최고나 최초, 그것도 아니라면 동양 최고나 최대와 같은 수식이 붙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는 많은 듯 하다. 우리나라를 일러 '기록의 나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세계기록문화유산을 보더라도 꽤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이 등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다. 그것을 우리는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것으로 증명했다. 일찌감찌 목활자를 썼던 중국이 활자를 최초로 개발한 나라이긴 하지만 금속활자를 최초로 개발한 것은 우리나라였다. 인쇄를 말하면 실과 바늘처럼 따라오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78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여전히 구텐베르크의 이름을 앞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쇄기술의 발달은 그 나라 문화의 척도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많이 본 민족은 유식하다는 말일까?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에는 그 옛날에도 책을 많이 만들어냈을까? 그리고 그 만들어낸 책을 많은 사람이 읽었거나 읽을 수 있었을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의 문맹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된 역사가 아닌 까닭이다. 어쩌면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나라가 교육강국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이책은 알고 싶었으나 너무나 무거운 주제였던 탓에 감히 도전(?)해보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너무나도 흥미롭게 다가서고 있다. 읽는 내내 긴장감이 나를 조여왔다. 마치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각 장마다 상세한 설명도 설명이지만 부연설명처럼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은 정말 놀라웠다. 그 사진들이 각 장의 설명을 좀 더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던 인쇄술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책을 만들었지만 오늘날처럼 팔지 않고 몇사람만 나누어 가졌다. 왕이 누군가에게 내려주는 방식이었다는 말이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한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활자자체가 복잡하고 활자 만들기가 어려웠던 탓에 책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에다 유교문화이다보니 정신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실제생활에 도움이 된다 하여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종대에 만들었다는 <농사직설>과 같은 책도 농민이 아닌 양반이나 관료층들만 읽었으니 오죽했을까?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지식을 지배층만의 전유물처럼 생각했다. 거기에 비하면 독일의 경우는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알파벳 26자는 활자 만들기가 쉬웠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인쇄하기도 쉬워서 많은 책을 만들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에게 책을 팔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읽고 지식을 넓힐 수가 있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들은 물질중시의 문화였다.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빠르게 발전시켰음은 당연지사다. 인쇄술의 발전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종교, 시민,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던 역사를 생각해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인쇄, 출판 문화의 큰 변화가 시작된 시기는 고려말이다. 사대부의 나라를 꿈꿨던 정도전의 기획은 인쇄와 출판으로만 가능했기에 정도전은 금속활자로 서적을 찍어내 그꿈을 이루고자 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한글을 만든 세종의 시대는 금속활자의 시대이기도 했으나 책을 출판하는 일을 국가가 독점했던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었던 탓에 이렇다하게 커다란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고려의 과거제도나 사학의 발달은 분명 책의 수요층이 방대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수요와 공급은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책을 유통시킬 서점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중국은 송대에,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이후에 민간서점이 출현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에는 서점이 없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책을 만들었으며 읽었을까? 대체적으로 중국은 책을 수출했으며 조선과 일본은 책을 수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책들이 사라졌다. 많은 외환과 내란은 책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조선의 도서관이라는 홍문관의 책들도 임진왜란을 통해 모두 재로 변해버렸다.
조선은 왜 나라에서 금속활자를 독점했을까? 한마디로 말해 그들은 체제유지를 위한 책만 찍어냈기 때문이었다. 책을 찍고 유통시키는 주체가 바로 왕과 관료들이었던 까닭에 금속활자 인쇄술은 오로지 극소수의 지배층이나 양반을 위한 것이었던 셈이다. 중종대에 성행했다는 <삼강행실도>만 보더라도 그렇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지극한 효의 형태로 알려주던 '단지'의 형태라거나 허벅지 살을 베어내는 등의 경우는 사실 기본적으로 올바른 윤리관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여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보면 모순 그 자체인 것이다. 실행대상이 힘없는 백성들이거나 양반가의 여자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걸 보면 결국 그마저도 극소수의 지배층, 즉 강자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 된다. 활자조차도 자신들만의 세상이 지속되기를 원했던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 중 많이 찍어냈다는 불경서적이나 농민을 위한 책조차도 백성과는 무관한 책이었던 것이다. 책을 출판하는 것조차도 지배계급의 이익이 먼저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사찰이나 서원조차도 실재적인 인쇄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사찰은 고려시대에, 서원은 조선후기에서나 인쇄의 주체였다고 하니. 백성들은 이래저래 학문과 지식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왕과 관료들만을 위해 책을 만들어내는 것도 문제였지만 책이 있다해도 글을 읽을 수 없었으니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을 때 관료들의 반대를 생각해보면 백성들의 무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책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논 두서너마지기를 주고 책 한권과 바꾼다는 건 정말이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종이를 만들어내는 일이 어렵고 까다로웠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아무런 댓가도 없이, 그것도 농번기에 일을 시키니 그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테니 책값이 비쌌던 것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당장 먹고 살 일도 힘겨운 일인데 어찌 책과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종이를 만드는 일도, 책을 인쇄하는 일도 모두가 백성들의 차지였지만 그들이 한 일에 비해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이 되니 이래저래 괴로운 건 백성들뿐이었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각 장을 따로따로 읽는다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듯 하다. '조선은 왜 나라에서 금속활자를 독점했을까?', '서울의 인쇄·출판 기관-주자소와 교서관', '조선의 도서관, 홍문관', '서점은 왜 실패했는가?' 와 같은 부분은 다시 생각해봐도 상당히 흥미롭다. 마지막부분의 '임진왜란이 조선·중국·일본에 미친 영향' 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지배층이 어떤 사상을 가졌는가에 따라 너무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고. 많은 것이 조선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고려가 좀 더 힘을 써서 부국강병의 나라로 발전했더라면, 임진왜란만 없었더라도, 실학에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더라면.....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