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명상 카툰
배종훈 글.그림 / 담앤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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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글귀중에 이런게 있다. 사랑하라, 지금 이순간과 지금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남을 먼저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을 더 먼저 사랑하라는 말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고 나는 여전히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늘 불만이고 늘 투정이다. 누가 그렇게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은 늘 한다. 그 모든 것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지는 것임을. 욕심이 너무 많은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누구나 나처럼 착각하며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정도를 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것...  바로 그런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이렇게 지천명의 나이를 받아들었다. 뒤돌아보아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 뒤돌아보는 수고마저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조차도 버려야만 한다고.

 

해야 할 일은 하기 싫어 힘들고 안될 일은 하고 싶어 괴로우니 삶이 곧 수행이라는 그 말씀이 참 깊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을 한번 눈감아 주거나 봐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다시 새긴다. 그러나 어쩌랴 거기까지인걸.... 책장을 넘기다가 바로 이거다 싶은 장면을 눈앞에 두고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모두 벗고 모두 내려놓으라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기에 그러지 못하겠다는 그 말이 어쩌면 그리도 참진리로 다가오던지! 내려놓음에 얽매이는 것부터가 이미 나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웠음을 인정해야만 했다는 말이다. 그렇구나,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를 어딘가에 가둬두고 사는구나 싶었다. 무소유를 이야기할 수록 더 많이 갖고 싶은 인간의 욕심을 어찌 탓하랴! 마음의 주인의 되라는 말이 어찌 틀린 말일까만 내 것인데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마음이다보니 숨이 붙어있는 한은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이 바로 그 진리로구나 싶었던 거다. 어리석게도.

이제 또 새로운 계절이다. 새롭다는 건 뭔가가 다시 시작되어진다는 의미도 포함되리라. 몇해 전부터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활짝 열어 지난 일이년간 한번도 꺼내입지 않은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었다. 그리 많지도 않은 옷인데 한번도 꺼내입지 않은 옷이 있었다는 게 처음엔 신기했다. 한해한해 정리를 하면서 알았다. 때마다 마음조절을 하지 못하고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그러나 그렇다고해도 그 옷을 버리지 못한 채 또 한해를 묵힌다. 이제는 그 묵힘의 시간이 어느정도 짧아져가고 있지만 마음조절은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 잊지않고 찾아와주는 한마디가 있다. 어쩌다 눈에 띄는 네잎크로버의 행운만을 찾지말고 늘 곁에 머물러주는 세잎크로버의 행복을 갖는 것이 훨씬 더 빠른 길이라는 말.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사랑할 줄 아는 마음. 그래서 바로 이순간은, 내 곁에 머물러 나를 있게 해주는 사람들은 모두 소중할 수 밖에 없으니....

먼 옛날 어느 마을에 현자가 살았다. 하루는 동네 아이 대여섯명이 빵한조각을 들고 찾아와 골고루 나눠주기를 청했다. 현자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인간의 뜻대로 나눠줄까? 신의 뜻대로 나눠줄까?" 아이들이 대답했다. "신의 뜻대로 나눠주세요!"  대답을 들은 현자는 말없이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에게는 아주 조금, 어떤 아이에게는 조금, 어떤 아이에게는 많이, 어떤 아이에게는 단 한조각도 나누어주지 않았다. 빵을 받은 아이들이 현자를 바라보았다. "바로 이것이 신의 뜻이란다!"  얼마전에 들은 이야기 한토막이다. 정해놓은 것은 인간의 틀일 뿐이다. 그러니 그것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질 수 있는 연습을 한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일듯 싶다. 법정스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을테니까. 이 책의 산뜻한 표지만큼 내게도 산뜻한 계절이 찾아오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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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훈 2014-03-1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명상카툰 작가 배종훈입니다. 너무 멋진 서평을 남겨 주셨네요. 감사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혹시 페이스북을 이용하신다면 페이스북에서 친구에게 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아이비 2014-03-15 16:21   좋아요 0 | URL
카툰을 좋아하는데 그 작가님의 흔적을 보니 행복해지네요 ^^*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그 말씀들이 마음에 와닿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접하려고 노력중이랍니다. 좋은 책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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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원로대신인 황보 인, 김종서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을 일러 계유정난이라 한다. 靖難이라 함은 나라가 처한 병란이라거나 위태로운 재난을 평정한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역모가 어찌하여 靖難이 되었던 것일까? 명태조 주원장은 왕실의 안녕을 위하여 공신을 배제하고 종실의 황자 25명을 전국 요소에 영주로 보냈다. 그러나 태자가 일찍 죽고 어린 손자인 혜제가 건문제로 즉위했다. 흥미로운 것은 건문제가 할아버지 주원장의 유지에 따라 숙부들에게  문상을 오지 말라고는 사실이다. 너무나 커져있던 숙부들의 세력을 끊으려 억압책을 취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간신을 제거하여 왕실이 처한 위험을 제거한다" 는 이유로 연왕이 북경에서 군사를 일으키게 된다. 건문제가 실종되자 스스로 제위에 올라 '영락제(3대황제)'라 칭했다. 간신을 몰아내고 난을 다스렸다하여 '靖難'이라 일컫고, '靖難史'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중국에 전한다. 사신으로 갔던 신숙주를 회의하기 위해 수양대군이 들려주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를 했지만 수렴청정을 할 사람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니 이미 선대왕으로부터 자식의 안녕을 부탁받았던 김종서나 황보 인등에게 정권이 넘어갔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수양대군에게는 이것이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린 단종부부에게는 평생을 한으로 남을 운명의 올가미가 되었을 거라는 말이다. 이 책속에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있다. 하나 더 보탠다면 단종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 치욕적인 삶을 살아내야 했던 단종비의 애끊는 사랑이 절절하게 녹아있다.

 

청령포로 유배갔던 단종이 죽자 동강에 버려진 시신을 모셔 장사 지낸 후 도망을 갔다는 영월사람 엄흥도와 그의 자식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슬프다. 눈물 없이 소리만 큰 호號도, 눈물과 소리가 함께 있는 곡哭도 하지 못하여 소리없는 읍泣으로 눈물만 뚝뚝 흘렸다던 단종비의 말이 서럽다. 이후에 엄흥도는 단종의 옷가지를 수습하여 동학사를 찾아가 김시습과 함께 제사를 올리 후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니 어찌 이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처럼 이 책속에는 수많은 野史가 숨겨져 있다. 그것을 하나 하나 찾아내어 그 의미를 반추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세조를 가리켜 '나으리'라 하였다는 박팽년의 말에 세조가  "그대가 나에게 이미 '臣'이라고 칭하지 않았느냐?" 고 하자, "나는 상왕(단종)의 신하이지 나으리의 신하는 아니므로 충청감사로 있을 때에 한번도 '臣' 자를 쓴 일이 없다." 고 대답하였는데 충청감사 때 올린 장계를 실제로 살펴보니 과연 '臣'자는 하나도 없없다는 이야기, 고문을 받으면서도 성삼문이 세조가 준 녹祿은 창고에 쌓아두었으니 모두 가져가라 하였다는데 그가 죽은 후 집에 가보니 정말 그랬다는 이야기, 단종의 폐위소식을 듣고 스스로 책을 불태워버린 후 머리깎고 바랑을 짊어진채 방랑의 길에 올랐다는 김시습의 일화, 세조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일화, 단종비가 정업원으로 들어갔으니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 옷감에 물을 들이는 염색일을 하였다는 일화도 책속에 전한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것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건 아닌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애당초 어리석은 일도, 결국 그 이치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닐는지요... ( -130쪽)

​책을 다 읽고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말이다. 김별아, <미실>의 작가로 더 유명한 이름이지만 나는 사실 <미실>을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끌림이 없으면 손을 내밀지 못하는 나의 습성탓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야 '미실'이라는 여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궁금해진다. 느껴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겨나는 건 왜일까?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를 찾아 서울 시내를 누볐을 그의 발자취를 나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49란 숫자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진행이 왠지 나쁘지 않았다. 49재를 떠올리게도 한다. 죽은 뒤에 좋은 곳으로 갔기를 바라는 마음,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는 그런 아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오롯이 담은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이 죽으면, 몸을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간다는 魂과 시신과 함께 땅속에 묻힌다는 魄으로 나뉘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 魂이 자신이 살던 몸, 魄을 내려다보며 시작하는 그 넋두리가 처음부터 나의 마음을 빼앗아간 것 같다. 혹시나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아 鬼가 되지는 않았느냐고 지아비였던 단종에게 담담히 묻고 있는 그녀의 말투가 진정 서글프게 다가왔다. 그녀의 넋이 누구의 제재도 없이 시간을 다시 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는 설정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잔잔한 감동이 있다. 너무 흔한 소재, 너무 흔한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진실로 안타까운 그런 것.....알 수는 없지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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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타고 떠난 그 차 - 김태진 전문기자의 자동차 브랜드 스토리
김태진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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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애마는 작은 차지만 큰 기쁨을 준다. 이쯤 이야기하면 대략 어떤 차인지 짐작할 것이다. 가끔 큰 차를 갖고 싶지 않느냐고 넌지시 묻는 남편에게 나는 그냥 피식 웃곤 한다. 그런쪽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두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전자제품도 기능 많고 모양만 요란한 걸 싫어하는 내 성격에는 작지만 큰 기쁨을 주는 차가 딱이다. 자동차를 이야기하다보면 항상 떠오르는 실화가 하나 있다. 어느 대사부부가 마티즈를 끌고 호텔에 갔는데 나올 때에 보니 차가 보이지 않더란다. 그래서 차를 어디에 두었는지 묻자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저 귀퉁이 어디쯤에선가 차를 꺼내오더라는 이야기다. 실용적인 것보다는 겉치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던 그 대사부부의 말에 한동안 가슴이 아렸었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겉치레에 속지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려는지... 또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20대에 만난 후배 하나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언니, 나는 40대가 되면 모피코트를 입고 벤츠를 운전할거야.."  그녀의 희망사항은 지금 이루어졌을까? 가끔 만나면 내가 반놀림으로 묻는다. " 벤츠 어디다 세워두고 왔니? "  그만큼 좋은 차, 멋진 차는 사람들의 꿈인 모양이다. 하지만 조심해야만 한다. 벱새가 황새 쫓다가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으니. 각설하고 이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하는 건 아니다. 내노라하는 차들에 대한 역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으니 일단은 호기심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라. 눈이 호강할 수 있도록 멋진 차의 이미지 또한 가득하다.

 

글쓴이가 자동차 전문기자이다보니 좋은 차를 추천해 달라는 사람이 많단다. 그런데 그가 이러이러한 차가 좋다고 말하면 대개의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는다는 말이 재미있다. 멋진 차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그 이름들이 아닌 까닭이라고 하니 그러면 그렇지 싶어 나도 실소를 터뜨린다. 형편에 맞아야 한다는 글쓴이의 말에 백번 동의하고도 남음이 있음이다. 얼마전 뜨겁게 화제로 떠올랐던 람보르기니 사건이 떠오른다. 장난감처럼 예쁘게 생겨서 그 위에 올라가 놀았을 뿐이라고 말하던 그 꼬마녀석들의 마음값, 다시말해 수리비가 1억원이 넘는다는 말에 나는 그만 입이 떠억! 제일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 그 차의 주인이 어떤 사람일까였다. 그렇게나 좋은 차를 어떻게 주차장에 세워둘 수 있었는지, 착착 접어서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거실에 펴놓을 일이지 왠 민폐란 말인가? 이 책속에 등장하는 차의 이름들은 나도 들어는 봤다. 람보르기니라는 차가 '자동차 마니아의 드림카' 라고 되어 있는 걸 보고 그제서야 아하! 했다.


BMW, 랜드로바(이 차는 놀랍게도 농부를 위한 차였다!),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아우디, 재규어(마크가 생동감 있다), 페라리, 포르쉐, 폭스바겐(딱정벌레차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푸조-시트로엥, 제네럴모터스(우리의 대우자동차를 먹어버린 GM이다), 크라이슬러-지프, 포드, 닛산, 스바루, 토요타, 현대기아차, 혼다... 많기도 하다.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에 우리나라도 있다고 하니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해보인다. 그 많은 차에 대한 소개 또한 굉장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하게 내노라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써의 한국차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다. 생김새 하나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는 특색있는 디자인도 그렇지만 저마다 얼굴에 문신처럼 달고 다니는 마크가 눈에 띈다. 문득 <트랜스포머>라는 영화속에 등장했던 차들이 생각난다. 그 영화때문에 나는 노란차 범블비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었다. 회사명인지 브랜드명인지도 잘 모르던 나인데도 모형차라도 갖고 싶어서 얼마나 애를 태웠었는지... 되돌아보면 우습기도 하고.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좋은 차의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형편이나 주변(차를 운전할 수 있는)에 맞추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 아닐까 싶다. 여러가지 형편에 맞는 차가 좋은 차라는 글쓴이의 말을 다시한번 되새겨볼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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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천 -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
이상각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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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八賤, 말 그대로 조선시대의 여덟가지 천한 것들이다. 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 거기다가 궁녀마저도 우리도 노예였다고 외치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중얼거리듯 말씀하시던 친정어머니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 참, 옛날에는 너무 했어. 어린 것들이 나이 많은 노인네 이름을 함부로 불러가면서 이래라 저래라 했다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 했지."  노비라는 게 가까운 시절까지 존재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노비의 변화된 형태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 옛날처럼 노비라고는 하지 않지만 하는 일이 딱 그렇다는 말이다. 한번 찾아보라, 생각보다 그런 류의 직업이 얼마나 많은가를 짧은 시간안에 느낄 수 있을테니. 역사라는 건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까닭에 나는 늘 나와 같았을 백성들의 모습이 궁금했었다.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당시로써는 천하디 천한 것들이어서 감히 이름조차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존재들의 이야기, 천하디 천한 것들이어서 감히 고개를 들어 똑바로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역사를 알게 되면 뒷맛이 정말 씁쓸해진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었느냐고 그 시대의 지배층들에게 따져보고 싶다는 감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는 너희들은 얼마나 잘나서 그랬느냐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사람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내 속을 아프게 한다.

 

노비였으나 출세했던 사람도 있긴 있었다. 얼자(모친이 천인인 자녀)들을 면천시키기 위해 눈물나는 노력을 했던 양반도 있긴 있었다. 노비도 같은 노비가 아니라고 계층을 나눠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노비가 하나의 재산목록이었다는 건 정말이지 기가 막힐 일이다. 그나마 말 두마리 값이었으니 돼지 한마리 값에 불과했다던 유럽의 집시보다는 나은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몸으로 느끼고 있는 유교문화의 흔적들은 모두가 조선대의 후기에 만들어진 문화였음을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잘 다스리지도 못하고 지켜내지도 못했던 위정자들이 그들의 허물을 덮기 위해, 그럴싸한 하나의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들의 잘못을 뒤돌아보지 않고 백성들의 반발과 저항만을 막아내기 위해 찾아냈던 방편으로 그런 세상이 펼쳐졌다는 걸 보면 위정자들의 언행이 후대에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저항과 반발은 당연했을 터다.

 

'해어화(말을 알아듣는 꽃)' 라는 별칭으로 불렸다던 기생도 그렇지만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던 장인들마저 천인으로 불렸다는 건 지독한 모순이다. 백정의 유래를 살펴보면 유목민족의 후예들이 조선의 백정으로 변화하게 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로써는 그야말로 한많은 조선에서의 삶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편하게 다스리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말도 안되는 법을 만들어냈던 조선의 위정자들을 보면서 치를 떨게 되는 순간도 생겨난다. 광대나 승려들을 우려먹었던 양반층, 유교만이 제일이라고 하며 멸시했던 불교마저도 저들은 편할 때는 불러서 쓰고 쓰고나면 언제그랬냐는 듯이 얼굴색을 바꿨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필요할 때는 옆에 있어야 했고, 불필요하면 칼로 베듯 그렇게 버렸다는 말이다. 八賤이라는 노비, 기생, 백정, 광대,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 거기다가 궁녀마저도 그들이 필요하다 싶을 때마다 이용했다는 사실이 역사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조선에서 천대받던 사기장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장인으로 우대를 받으며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그냥 생겨난 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어찌 기 막히지 않겠는가!

 

힘겨운 삶에 지쳐 도망가거나 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법이 '세습'이었다. 그런 법이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다는 성종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결국 백성들을 희생시켜서 얻어낸 결과였다는 말일테니.. 그토록이나 도망치고 싶었던 일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엄청 났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더 도망치는 사례가 많았을 것은 뻔한 일일 터다. 이 책에 등장하여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외쳐대던 천인들의 문화가 지금의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단하다. 그토록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살아남았으니 밟혀야 강해진다는 논리가 맞긴 맞는 걸까? 우스개소리로 옛날에 천대받았던 존재들이  이 시대에 와서 그 한을 풀고 있다는 말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닌 듯 하여 실소를 머금게 하지만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싶기도 하다. 부록처럼 붙여놓은 세계의 천민(인도의 달리트, 일본의 부라쿠민, 유럽의 집시)편도 흥미로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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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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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세계 최초, 세계 최대 따위의 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는 보여지는 면에 치중되어 살고 있다는 말은 맞다. 단순히 보여지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마네킹 효과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런 의미의 최고나 최초, 그것도 아니라면 동양 최고나 최대와 같은 수식이 붙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는 많은 듯 하다. 우리나라를 일러 '기록의 나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세계기록문화유산을 보더라도 꽤많은 우리의 문화유산이 등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다. 그것을 우리는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것으로 증명했다. 일찌감찌 목활자를 썼던 중국이 활자를 최초로 개발한 나라이긴 하지만 금속활자를 최초로 개발한 것은 우리나라였다. 인쇄를 말하면 실과 바늘처럼 따라오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78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여전히 구텐베르크의 이름을 앞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쇄기술의 발달은 그 나라 문화의 척도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많이 본 민족은 유식하다는 말일까?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에는 그 옛날에도 책을 많이 만들어냈을까? 그리고 그 만들어낸 책을 많은 사람이 읽었거나 읽을 수 있었을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의 문맹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된 역사가 아닌 까닭이다. 어쩌면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나라가 교육강국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이책은 알고 싶었으나 너무나 무거운 주제였던 탓에 감히 도전(?)해보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너무나도 흥미롭게 다가서고 있다. 읽는 내내 긴장감이 나를 조여왔다. 마치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각 장마다 상세한 설명도 설명이지만 부연설명처럼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은 정말 놀라웠다. 그 사진들이 각 장의 설명을 좀 더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던 인쇄술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책을 만들었지만 오늘날처럼 팔지 않고 몇사람만 나누어 가졌다. 왕이 누군가에게 내려주는 방식이었다는 말이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한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활자자체가 복잡하고 활자 만들기가 어려웠던 탓에 책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에다 유교문화이다보니 정신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실제생활에 도움이 된다 하여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종대에 만들었다는 <농사직설>과 같은 책도 농민이 아닌 양반이나 관료층들만 읽었으니 오죽했을까?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지식을 지배층만의 전유물처럼 생각했다. 거기에 비하면 독일의 경우는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알파벳 26자는 활자 만들기가 쉬웠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인쇄하기도 쉬워서 많은 책을 만들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에게 책을 팔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읽고 지식을 넓힐 수가 있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들은 물질중시의 문화였다.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빠르게 발전시켰음은 당연지사다. 인쇄술의 발전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종교, 시민,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던 역사를 생각해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인쇄, 출판 문화의 큰 변화가 시작된 시기는 고려말이다. 사대부의 나라를 꿈꿨던 정도전의 기획은 인쇄와 출판으로만 가능했기에 정도전은 금속활자로 서적을 찍어내 그꿈을 이루고자 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한글을 만든 세종의 시대는 금속활자의 시대이기도 했으나 책을 출판하는 일을 국가가 독점했던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었던 탓에 이렇다하게 커다란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고려의 과거제도나 사학의 발달은 분명 책의 수요층이 방대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수요와 공급은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책을 유통시킬 서점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중국은 송대에,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이후에 민간서점이 출현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에는 서점이 없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책을 만들었으며 읽었을까? 대체적으로 중국은 책을 수출했으며 조선과 일본은 책을 수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책들이 사라졌다. 많은 외환과 내란은 책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조선의 도서관이라는 홍문관의 책들도 임진왜란을 통해 모두 재로 변해버렸다.

 

조선은 왜 나라에서 금속활자를 독점했을까? 한마디로 말해 그들은 체제유지를 위한 책만 찍어냈기 때문이었다. 책을 찍고 유통시키는 주체가 바로 왕과 관료들이었던 까닭에 금속활자 인쇄술은 오로지 극소수의 지배층이나 양반을 위한 것이었던 셈이다. 중종대에 성행했다는 <삼강행실도>만 보더라도 그렇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지극한 효의 형태로 알려주던 '단지'의 형태라거나 허벅지 살을 베어내는 등의 경우는 사실 기본적으로 올바른 윤리관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여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보면 모순 그 자체인 것이다. 실행대상이 힘없는 백성들이거나 양반가의 여자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걸 보면 결국 그마저도 극소수의 지배층, 즉 강자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 된다. 활자조차도 자신들만의 세상이 지속되기를 원했던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 중 많이 찍어냈다는 불경서적이나 농민을 위한 책조차도 백성과는 무관한 책이었던 것이다. 책을 출판하는 것조차도 지배계급의 이익이 먼저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사찰이나 서원조차도 실재적인 인쇄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사찰은 고려시대에, 서원은 조선후기에서나 인쇄의 주체였다고 하니. 백성들은 이래저래 학문과 지식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왕과 관료들만을 위해 책을 만들어내는 것도 문제였지만 책이 있다해도 글을 읽을 수 없었으니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을 때 관료들의 반대를 생각해보면 백성들의 무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책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논 두서너마지기를 주고 책 한권과 바꾼다는 건 정말이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종이를 만들어내는 일이 어렵고 까다로웠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아무런 댓가도 없이, 그것도 농번기에 일을 시키니 그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테니 책값이 비쌌던 것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당장 먹고 살 일도 힘겨운 일인데 어찌 책과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종이를 만드는 일도, 책을 인쇄하는 일도 모두가 백성들의 차지였지만 그들이 한 일에 비해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이 되니 이래저래 괴로운 건 백성들뿐이었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각 장을 따로따로 읽는다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듯 하다.   '조선은 왜 나라에서 금속활자를 독점했을까?', '서울의 인쇄·출판 기관-주자소와 교서관', '조선의 도서관, 홍문관',  '서점은 왜 실패했는가?' 와 같은 부분은 다시 생각해봐도 상당히 흥미롭다. 마지막부분의 '임진왜란이 조선·중국·일본에 미친 영향' 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지배층이 어떤 사상을 가졌는가에 따라 너무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고.  많은 것이 조선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고려가 좀 더 힘을 써서 부국강병의 나라로 발전했더라면, 임진왜란만 없었더라도, 실학에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더라면.....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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