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들 세트 - 전2권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개정판)
공지영.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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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한국 작가와 일본 작가가 함께 썼다는 작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묘한 제목이 시선을 끌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이 소설이 '한일 우호의 해'를 위해 쓰였다는 걸. 읽으면서 두사람이 사랑하는데 무슨 역사가 나오고 사과가 나오는지 조금은 껄끄러웠던 까닭이다. 이미 많은 민족이 엉킨채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속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감정만큼은 오래된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해도. 책을 펼치면서 살짝 기대가 되었다. 그 뻔한 사랑이야기를 이 소설은 어떻게 풀어나갈까 싶어서. 우선 그여자 최 홍의 이야기부터 들어본다. 헤어진지 7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남자 준고를 내려놓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출판사를 운영하는 홍은 어느날 일본 작가와의 통역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항으로 나간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일본 작가가 하필이면 준고라니.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통역을 하는 홍. 그런 홍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준고. 여전히 그들은 서로를 잊지 못했다. 준고가 들고 왔던 책의 제목이 '한국의 친구, 일본의 친구'라는 책이었는데 자신과 홍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에 유학을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홍과 준고는 그것이 자신들에게 찾아 온 운명임을 눈치챘다. 하지만 두사람이 그동안 살아왔던 환경과 문화는 그들의 사랑이 지속되는 걸 원치 않았다. 부유하게 자란 홍과 이혼한 부모를 두고 정서적으로 힘겹게 자란 준고는 어쩌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게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3일동안 준고는 홍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홍의 마음속에서는 숨겨두었던 준고를 향한 사랑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팬사인회로 바쁜 준고와 그를 외면하는 홍. 그들은 과연 서로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읽다가 제목이 잘못된 거 아냐? 싶었다. 차라리 '이별 후에 오는 것들'이라고 하지? 그만큼 작가의 필체가 섬세하게 느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홍의 절절한 사랑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낸 듯 하다. 읽으면서 아직 이별하지 못한 홍의 간절함이 전해져온다. 그에 비해 츠지 히토나리의 준고 이야기는 의외로 담담하게 다가왔다. 요란하지 않지만 홍을 향한 깊은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공항에서의 만남은 기적이 아닐 것이다. 두사람의 마음이 항상 서로의 곁에 남아 있었기에.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으로 곁에 남을지는 두사람의 선택이다. 마지막에 두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달린다. 해피엔딩일까? 작품속에서 출판사를 하는 홍의 아버지는 일본 작가의 책을 소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앞선 세대가 겪었던 아픔만큼은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고. 가끔은 궁금할 때가 있었다. 일본 소설이 한국에서 많이 읽히듯 한국 소설도 일본에서 많이 읽힐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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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감각 -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미시나 데루오키 지음, 이건우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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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가리킬 때 앞에 '잡'자가 붙으면 그것은 우리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한다. 이름을 몰라서, 혹은 도움이 되지 않아서, 혹은 지금 당장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이 세상에 '잡초'는 없다고. 그저 당신이 이름을 모를 뿐이라고.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잡것'들도 그럴 것이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 그 쓸모를 잃어버리거나 관심을 받지 못해 '잡것'으로 전락하는 것들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잡것'은 아니었을 존재들. 하지만 어떤 이는 그 '잡것'들에게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고 누구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야말로 별 것도 아닌데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부여받는다.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저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의미있는 것으로 보여질까? 이런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물건과 물건 사이가, 1초 전과 1초 후가 조금만 달라도 가치가 생겨난다. 잡화는 멈출 줄 모르고 늘어만 간다. 사실은 진화도 퇴화도 아니건만 우리는 차이를 끊임없이 소비함으로써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꿈을 꾸고 있다.(-28쪽) 지금은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바뀌었지만 오래전의 황학동시장 시절부터 내내 잡화들을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다니는 지인이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 따라가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내게는 무리였다. 어떻게 그런 '잡화'들 속에서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했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가치가 다른 까닭으로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저자가 말하는 것이 잡화에 대한 가치부여가 아니라 너무나도 풍족한 세상에서 버려지고 또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단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금의 소비문화에 대한 일침? 혹은 너무 가벼운 사람들의 가치관? 각설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소 씁쓸한 기분이 계속 따라왔다. 너무나 쉽게 얻고 너무나 쉽게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까닭이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 '레트로'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아무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지나왔던 시절의 의미는 담아내지 못한다. 단순히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시절의 의미가 가끔은 서글픈 느낌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잡화감각은 점점 도구를 감염시켰다. 가급적 원시적인 물건, 자질구레한 물건부터 노렸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 많은 제조사가 무설비 제조, 즉 '공장이 없는 기업 형태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 이런 무설비 제조화가 훗날 잡화의 폭발적인 중식을 뒷받침 했다. ... 이렇게 하여 물건과 정보로 꾸역꾸역 채워진 사회가 도래한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게 넘칠 만큼 많아지면 수많은 선택지로부터 다양한 물건이 손에 들어온다. 전후와 비교하면 꿈같은 삶인 한편, 시장은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물건과 정보량을 크게 초과하고 만다. 사람들은 많은 선택지 앞에서 당황하면서도 소비를 가속화한다. 그리고 한 물건에 흥미를 느끼는 길이도 점점 짧아진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한계 수용력을 초과한 소비자는 어떠한 대상에서 흥미를 잃는 것과 새로운 무언가를 손에 넣는 것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확대해가는지 축소해가는조차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도구를 가르치는' 설교 따위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90~91쪽) 어라? 처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잡화에 대한 단상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뒤로 가면서 저자의 말은 음악과 미술과 여러 분야에 대해 이리저리 헤맨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의 어린시절을 채워주었던 레고에 대한 이야기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다 버려도 그 시절의 레고만큼은 버릴 수 없었던 저자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마음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지나간 것들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때로는 현재와도 연결된다고. 그것이 오히려 더 나은 현재를 만들수도 있는 거라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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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프레임 - 우리는 왜 가짜에 더 끌리는가
샌더 밴 데어 린덴 지음, 문희경 옮김 / 세계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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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리에 그다지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다. 작금의 세상은 너무 많은 소리때문에 어지러울 지경이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가 너무 많아 TV와는 이미 오래전에 멀어졌다. TV에서 볼 만한 것이 없다는 것도 한몫 했겠지만. 개인적으로 유튜브를 보는 경우도 지극히 드물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흥미거리를 찾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인지 디지털에 저항하면서 산다는 저자의 말이 이채롭게 들렸다. 이 세상에는 의외로 그런 사람도 많을텐데 어쩌다 보니 모두가 한 곳 만을 바라보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 하다. 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늘 마주하는 글이 있다. 우리의 뇌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언뜻 보기에 그럴듯한 것이나 자신이 선호하는 것, 익숙한 것, 혹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말에 더 동요한다는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여러번 반복해서 듣게 된다면 그것은 곧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는 뇌의 오류도 있다. 광고라는 것이 아마도 그 틈을 파고 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고해도 틀리진 않을 것 같다. 각설하고, 이 시대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많은 정보들. 그러나 그 정보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판단과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뇌는 우리가 알거나 전에 본 적이 있는 주장에 진실 가치를 더 높게 부여한다. 연구에 따르면 가짜 뉴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시간이 지나는 사이 잘못된 정보가 진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해 그 정보를 공유해도 윤리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43쪽)

거짓은 날아가고 진실은 절뚝이며 뒤따라간다.(-145쪽)

말 그대로 거짓은 진실이 신발을 채 신기도 전에 지구 반바퀴를 돈다.(-153쪽)

며칠 전에 <댓글부대>라는 영화를 보았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살아내야 할 현실이 너무 무섭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떠도는 가짜들을 누가 만들었을까? 그 거짓들을, 그 가짜들을 우리는 아마도 공기를 마시듯 귀로 들을 것이다. 옛말도 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그러고 보니 거짓말과 가짜를 만들어내는 게 인간의 속성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거짓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한마디가 큰 울림을 준다.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데는 주로 금전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349쪽) 결국 또 돈인가?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면서 신뢰할 만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으면 정신적 모형에 공백이 생긴다. 명확한 설명이 대안으로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일관성 없지만 정확한 정신모형보다 일관성 있고 부정확한 정신모형을 선호한다.(-122쪽)

책의 내용은 솔직히 조금은 장황하다. 거짓(가짜 뉴스)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퍼뜨린다. 그리고 반응을 살핀다. 과연 그 거짓(가짜 뉴스)를 얼만큼의 사람들이 맏는가, 그것을 믿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가, 그리고 한번 믿은 것에 대한 수정은 이루어지는가... 정말 많은 연구와 분석을 통해 결과를 분출해내는 과정들이 이 책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약간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드러난 결과들을 보면서 놀랍기도 했다. 며칠 전에 보았던 그 영화도, 지금 읽은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는 진실은 씁쓸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데는 주로 금전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 많은 연구 과정끝에 다다른 결론은 딱 하나다. 모든 것은 순간이고 세상은 생각하는 것처럼 개인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이상한 착각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행동들. '좋아요'를 없애야 한다는 말도, 소셜 미디어의 운영자들에게도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도 백퍼센트 공감한다. /아이비생각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는 것도 어느 한 사람이 그 정보를 공유하면서 시작되고, 또 한 사람에게서 잘못된 정보의 확산이 멈추기도 한다. 이제 개인의 저항력을 사회의 집단 면역으로 바꿔보자. 당신에게 맡기겠다. 진실이 당신과 함께하기를.(-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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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경제 - 갈등이 경제를 이끄는 시대의 투자법
박상현 지음 / 메이트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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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6장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가장 먼저 공존보다는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저자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부를 둘러싼 세대갈등으로 인해 사회와 정치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말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를 종종 볼 수 있었던 까닭이다. 게다가 변화하는 사회의 현상으로 인한 세대간의 갈등은 더 이상 말 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기 위해 싸워대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꺼야 할 발등의 불이 많다. 너무 빨리 접어든 고령화 사회,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 세대간의 이념 갈등 등... 수도 없이 싸워대기만 하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해 생겨날 사태에 대비를 하고 있기는 한가? 책을 읽으면서 '회색 코뿔소'와 '흰색 코끼리' 라는 말이 시선을 끌었다. 모두 중국으로 인한 것들로 예시되고 있어 그 말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회색 코끼리'는 지속적인 경고로 충분히 알려져 있고 발생했을 때의 파급력이 크지만,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위험을 뜻하는 용어라고 한다. 코뿔소가 달려오면 큰 덩치와 땅의 진동으로 인해 위험을 쉽게 감지할 수 있지만, 두려움 때문에 대응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것에 빗댔다고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작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현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 되어 왔던 것들이다. 늘 그렇듯이 설마~ 그러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임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미리 대처하지 못하는 고질병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건 왜일까? 거기에 '흰색 코끼리'는 처치 곤란한 물건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신성시 되어지는 흰코끼리가 처치 곤란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왕이 불편한 관계에 있는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했던 것이 그 유래라고 전해진다. 코끼리는 평균 수명이 70년인데 하루에 엄청난 양의 먹이를 먹는다. 그러니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키울 수조차 없는 존재인 것이다. 게다가 왕이 선물한 것이니 버릴 수도 없고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 회색 코뿔소와 흰색 코끼리는 중국이라는 국가의 변화가 대한민국에게 어떠한 존재로 바뀔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회색 코뿔소와 흰색 코끼리 리스크가 동반해서 올 수 있다,고. 모든 문제를 차치한다 하더라도 '피크 코리아' 라는 말 앞에서는 주저앉고 싶었다. 앞으로 그런 세상을 살아내야 할 내 자식의 앞날이 암울하게 느껴졌던 까닭이다. 모든 단어 앞에 K- 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작금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떠올린다. 그 수식어를 볼 때마다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거품처럼 느껴져서. 너무 빨리 샴페인 잔을 들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구는 하나라고 '지구촌'을 외쳐대던 세상의 목소리들이 이제는 각자도생이라고 외쳐대고 있다. 그 와중에 묻고 싶어진다. 대한민국은 각자도생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가? 정신 못차리고 있는 국회의 작태가 그저 한심할 뿐이다.

읽기 전에 책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투자보다는 세상의 변화를 읽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저자는 투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단지 세상을 알아야 투자도 할 수 있다고 마지막장에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투자와는 상관없이 집중해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잘파세대라는 말이 이채롭다. 새로운 세대, 잘파세대. 쉽게 말해 디지털과 AI의 완전체 세대라는 말이다. 그들이 살아갈 시대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작품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쩌면 세상이 정말 그렇게 변하지는 않을까? 1932년에 쓰여진 책이니 그런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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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슭에 선 사람은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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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좋아한다. 극적인 트릭없이 담담하게 현실을 그리면서도 은근하게 저며드는 감정이 녹아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던 까닭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게 된 일본 소설이었지만 솔직히 말해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역시 일본 소설이군. 이 소설에는 정말 많은 것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가부장적인 일본의 모습부터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소외된 자들의 아픔,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한 채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주인공 기요세는 어느 날 낯선 전화를 받게 된다. 마쓰키씨를 아느냐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와 줄 수 있겠느냐고. 어떨결에 병원으로 달려간 기요세는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의식불명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마쓰키를 보게 된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두 사람. 어떤 사이인가요? 약혼자입니다만... 마쓰키와 그리 깊은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왜 약혼자라고 했을까? 기요세는 자신에게 반문한다. 그리고 기요세는 자신이 알고 있던 마쓰키라는 사람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도대체 나는 저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기요세가 알고 있던 마쓰키의 모습과 모르고 있던 마쓰키의 생활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마쓰키가 기요세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던 모습들. 가족과의 껄끄러움. 기요세에게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지켜주고 싶었던 친구와의 약속...

강기슭에 선 사람은, 바닥에 가라앉은 돌의 수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기요세는 물밑에 가라앉은 돌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강조차도 모르는 돌이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도. 어떤 돌은 모났고, 어떤 돌은 동글동글 매끄럽고, 또 어떤 돌은 결정을 품고 아련하게 빛난다. 사람들은 돌을 다양한 이름으로 구분 지어 부른다. 분노, 고통, 자비, 혹은, 희망.(-305쪽)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에게 관심도 없을 뿐더러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마다 사는 것에 지쳐 있는 까닭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우리의 뇌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에 대한 지혜가 아니라 사회적인 규칙이나 규범이 입력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로 사회는 공정을 꿈꾸고 공평을 꿈꾼다. 게다가 합리적인 것까지 원한다. 역설적이게도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며 불합리한 것이 사회라는 이름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알게 된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그러나 그런 괴리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관심과 배려라고 이 소설은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조금씩만 마음을 열어 상대방을 본다면 어떨까 묻고 있다. 약자라는 걸 들키기 싫어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그러나 그 거짓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문제에 대한 잠깐동안의 회피일 뿐. 마쓰키에 대해 알아가면서 기요세는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의 감정을 기만하며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는지를.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다는 건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강기슭에 서서 가만히 강물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의 돌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일 것이다. 뭉클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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