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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감각 -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미시나 데루오키 지음, 이건우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평점 :
어떤 것을 가리킬 때 앞에 '잡'자가 붙으면 그것은 우리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한다. 이름을 몰라서, 혹은 도움이 되지 않아서, 혹은 지금 당장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이 세상에 '잡초'는 없다고. 그저 당신이 이름을 모를 뿐이라고.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잡것'들도 그럴 것이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 그 쓸모를 잃어버리거나 관심을 받지 못해 '잡것'으로 전락하는 것들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잡것'은 아니었을 존재들. 하지만 어떤 이는 그 '잡것'들에게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고 누구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야말로 별 것도 아닌데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부여받는다.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저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의미있는 것으로 보여질까? 이런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물건과 물건 사이가, 1초 전과 1초 후가 조금만 달라도 가치가 생겨난다. 잡화는 멈출 줄 모르고 늘어만 간다. 사실은 진화도 퇴화도 아니건만 우리는 차이를 끊임없이 소비함으로써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꿈을 꾸고 있다.(-28쪽) 지금은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바뀌었지만 오래전의 황학동시장 시절부터 내내 잡화들을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다니는 지인이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 따라가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내게는 무리였다. 어떻게 그런 '잡화'들 속에서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했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가치가 다른 까닭으로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저자가 말하는 것이 잡화에 대한 가치부여가 아니라 너무나도 풍족한 세상에서 버려지고 또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단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금의 소비문화에 대한 일침? 혹은 너무 가벼운 사람들의 가치관? 각설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소 씁쓸한 기분이 계속 따라왔다. 너무나 쉽게 얻고 너무나 쉽게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까닭이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 '레트로'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아무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지나왔던 시절의 의미는 담아내지 못한다. 단순히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시절의 의미가 가끔은 서글픈 느낌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잡화감각은 점점 도구를 감염시켰다. 가급적 원시적인 물건, 자질구레한 물건부터 노렸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 많은 제조사가 무설비 제조, 즉 '공장이 없는 기업 형태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 이런 무설비 제조화가 훗날 잡화의 폭발적인 중식을 뒷받침 했다. ... 이렇게 하여 물건과 정보로 꾸역꾸역 채워진 사회가 도래한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게 넘칠 만큼 많아지면 수많은 선택지로부터 다양한 물건이 손에 들어온다. 전후와 비교하면 꿈같은 삶인 한편, 시장은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물건과 정보량을 크게 초과하고 만다. 사람들은 많은 선택지 앞에서 당황하면서도 소비를 가속화한다. 그리고 한 물건에 흥미를 느끼는 길이도 점점 짧아진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한계 수용력을 초과한 소비자는 어떠한 대상에서 흥미를 잃는 것과 새로운 무언가를 손에 넣는 것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확대해가는지 축소해가는조차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도구를 가르치는' 설교 따위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90~91쪽) 어라? 처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잡화에 대한 단상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뒤로 가면서 저자의 말은 음악과 미술과 여러 분야에 대해 이리저리 헤맨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의 어린시절을 채워주었던 레고에 대한 이야기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다 버려도 그 시절의 레고만큼은 버릴 수 없었던 저자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마음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지나간 것들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때로는 현재와도 연결된다고. 그것이 오히려 더 나은 현재를 만들수도 있는 거라고.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