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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반한 우리 미술관 - 풍속화에서 사군자까지 우리 옛 그림 100 ㅣ 한눈에 반한 미술관
장세현 지음 / 거인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미술, 아니 미술이라는 말은 말만으로도 머리아프다. 그림에 취미가 있어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아니니. 학창시절에 미술시험을 이론으로 본다고 하면 한숨부터 나왔던 기억이 난다. 시대적인 장르부터 연대별로, 인상파니 추상파니 하며 요상한 그림을 들이대는데는 두 손 들었다. 차라리 그냥 수채화 한점 그려내는 것이 더 속편했다. 얼마전 과천 현대미술관을 들러 볼 기회가 있었다. 그림도 보고 조각도 보고 나름 열심히 관람하다가 인솔했던 교수님께 한 작품에 대해 여쭈어보니 대답이 참 명언이다. 무슨 뜻인 줄은 나도 모르지요. 단지 자신이 보고 좋다고 느끼면 그것으로 족한거랍니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기 보다는 무언가 다른 게 있을 거라는 선입견부터 생겨나는 까닭에 작품을 본다는 것에 대한 울렁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차치하고 우리 미술이라는 말은 왠지 가까운 듯 하면서도 꽤나 멀게 느껴진다. 수묵담채화를 보면 묵직한 무엇과 마주한 느낌이고, 민화나 풍속화를 보면 왠지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에 기준을 두고 봐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우리 문화를 공부하자면 필수적으로 한국의 회화를 보게 되니 그냥 스쳐지날수도 없고 해서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책이 없을까 헤매다가 찾게 된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처럼 우리 옛그림에 대한 설명을 세세하게 해준다. 화자의 말투가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식이다보니 더 가깝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보는 걸 무슨 어른이 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어려울수록 쉽게 풀어 설명하는 쪽이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훨씬 수월하다. 우리 문화라고해서, 혹은 우리 문화재라고해서 어려운 한자나 고전용어만을 앞세울 필요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한눈에 반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한가지 좋은 점은 우리 미술이다보니 어디선가 한번씩은 보았던 그림이라는 거다. 책장을 넘기면서 열심히 설명을 듣다보면 어, 이건 전에 어디서 본건데...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하다못해 지금은 많이 볼 수 없는 연하장이나 카드를 통해 만나 보았던 그림도 꽤나 많다. 그러니 그다지 멀리 있는 그림만은 아니다.
들어가면서 우리의 옛그림을 보기 위해 필요한 다섯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우리 옛그림은 보는 그림이면서 동시에, 읽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시험에 붙으라고 엿을 사주는 것처럼 그림을 보는 동시에 그 그림이 의미하는 것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 우리 옛그림은 우리가 보통 보아오는 서양의 그림과는 보는 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나 읽을 때 우리에게 익숙한 가로쓰기나 왼쪽에서 오른쪽을 읽어가는 방식과는 다르다. 우리의 선조들은 서양과 반대로 글을 쓰고 읽었기 때문에 그림 역시 그렇게 봐야 제 맛이 난다는 말이다. 셋째, 우리 옛그림에는 익살과 해학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익살과 해학이 수많은 전란을 겪어 온 어려움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호랑이가 담뱃대를 물고 있는 그림을 보면서 말도 안된다고 삐죽거릴 일만도 아니다. 넷째, 우리 옛그림은 은은한 멋을 느끼는 그림이다. 어찌보면 채색도 그다지 많지 않아 심심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림속의 풍경이 전해주는 살아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옛그림에는 고결한 선비의 정신이 담겨 있다. 옛날에는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한다는 것이 그다지 대접을 받는 일은 아니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백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갈고 닦는 수단으로 쓰였다는 선비들의 그림속에서 세상의 유혹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꿋꿋한 정신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 모든 것은 자주 보아야 익숙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림 역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그림은 잘 모른다. 볼 줄 도 모르고 하물며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저런 그림, 나도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만드는 그림을 본다. 어떻게 저렇게 그렸을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을 볼 때도 있다. 우리 미술관에서 만나는 그림들을 보면서 작품명과 화가의 이름만을 연결지어 외울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통해 전해받을 수 있는 느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라는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었다. 그림이 주는 편안함이 너무 좋았던 까닭이다. 여백이 많은 그림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왠지 마음이 편해지던 그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자주 그 그림을 들여다 본다. 물론 인쇄된 그림이지만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책을 앞에 두고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처럼 멋진 일도 없을테니까. 풍속화에서 사군자에 이르기까지 여러점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림속에 담겨진 많은 것들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게는 많은 도움이 된 책이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