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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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백제를 잃어버렸을까?  아니 우리는 왜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려야 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어쩌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 한번쯤은 해봤음직하다. 그것은 아마도 고구려의 북진정책에 의한 중국땅으로의 영역넓히기 때문이겠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 역시 중국땅으로 진출했던 나라였다는 것을. 거기다가 단순히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해상무역을 하며 단단한 터전을 마련했었다는 사실을... 언젠가 모방송을 통해 보았던 다큐멘터리 속 백제의 모습보다 한층 더 커지고 넓어진 백제를 보는 것은 새로움과 설레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전쟁은 영역다툼이다. 제 영역을 더 넓히기 위해 다른 영역을 빼앗는다. 그런데 빼앗고자 하는 영역이 기름진 땅이라면 더더욱이나 욕심이 난다. 빼앗고자 하는 땅이 교통의 요지라면 죽기살기로 한번쯤은 치고 보아야 한다. 그런 영역, 그 기름지고 교통까지 편한 영역을 먼저 다스렸던 나라가 백제였다는 것만 보아도 우리가 잃어버린 700년의 역사가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말이다.

얼마전부터 모방송에서 백제의 전성기를 다루는 드라마를 시작했다. 그 드라마를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은 염려스럽기도 했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백제에 대한 기록이 많이 않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런 까닭에 너무나도 소설적인 이야기를 펼쳐보여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형편없는 역사지식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닐지 한편으로는 노파심도 일었다. 역사를 드라마로 다룰 때는 정말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것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해질 진실 또한 가벼이 여기면 안되는 까닭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백제와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남의 나라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서글픔도 함께 다가왔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비춰지는 백제의 모습.. 왠지 허탈함마져 느끼게 했지만 그렇게해서라도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멋진 일이라는 위안을 삼게 된다. 유적지 발굴을 통해 속속 밝혀지는 백제의 역사. 그 역사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다 보여줄 수는 없었겠지만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백제는 불국토를 꿈꾼 나라였다. 36년에 걸쳐 지었다는 역사상 최대의 사찰 미륵사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종교를 떠나 한 나라의 뿌리깊은 사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불교는 백제의 기반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불교에 의지했던 나라 백제. 삼국의 잦은 영토분쟁으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질 때도 불교는 백성들에게 내세에서의 더 나은 삶이라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백제의 불교문화는 웅장했고 섬세했다. 미륵사는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3금당 3탑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금당은 법당을 말한다) 불경에 먼 미래에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세 번 설법을 마치고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할 것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륵불이 이 땅에 내려와 세 번에 걸쳐 설법할 금당을 미리 구현해 놓은 곳이 미륵사라는 말이다. 세 곳의 금당에서 세 번의 설법을 마친 후에 불심 깊은 백성들을 구원해달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또한 이상세계를 향한 기원을 엿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미륵사탑을 복원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의 한 귀퉁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백제의 무왕과 신라의 선화공주에 얽힌 서동이야기였다. 무왕의 왕비가 신라의 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 사택지적의 딸이었다는 기록이 사리장엄 발굴시에 나온 것이다. 또한 백제의 유물을 통해 면직물이 고려시대보다 더 일찍 우리에게 사용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 기정사실로 발표될 경우 역사는 다시 쓰여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듯 불교는 백제의 구석구석에 존재했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우는 서산 마애삼존불이 그를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골짜기에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불교문화의 웅장함만이 아니라 백제가 해상왕국이었다는 것은 더 놀라웠다. 해상왕국이라 하면 우리는 이제껏 발해를 생각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백제가 웅진으로 도음을 옮기 뒤부터 한강이 아니라 금강이나 태안반도를 통해 중국과 교류했다는 것을 우리는 놓쳐버린 듯 하다. 태안반도를 통해 바닷길을 열기도 했던 백제의 뱃사람들은 관음보살을 의지했다. 인간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관세음보살의 존재를 통해 두려움을 잊고자 했던 사람들. 백화산 자락에서 1500년동안 바다를 지켜봐 온 태안마애삼존불이 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불상 배치로 한창 연구가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나도 한번 찾아가 볼 요량이다.  지도를 통해 보여주는 백제의 해상경로가 실로 경이롭다. 책표지의 뒷면을 보라. 백제가 얼마나 큰 해상왕국이었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을테니... 동아시아로 뻗어나가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백제인들. 그들에게는 우수한 항해술과 조선술이 있었음이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세계제일의 조선소를 갖고 있다는 것도 어쩌면 조상들의 그같은 면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아닐까?  그렇게 우수했던 백제의 모든 것들이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일본이 우리와 같은 핏줄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저들이 우리보다 앞서간다는 사실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섰으면 하는 욕심도 부려본다.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에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해상 강국으로써의 백제는 국제화 정책에 능했다고 보여진다. 중국이나 왜와 거리낌없이 무역을 했던 것만 보아도 닫힌 나라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또한 넓은 대륙을 꿈꾸었으며 주변의 부족국가와 소통할 줄 알았던 고구려 역시 그랬음이 분명할게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큰 것을 잃고 작은 것을 얻었다는 그런 느낌처럼.  이 책은 백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었다. 멸망한 백제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기착지로 삼았다는 것이야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들이 전해주었거나 가져갔던 백제의 문화가 함께 그곳에 정착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었던 듯하다.  역사의 진실을 담고자 애썼다는 이 책은 역사다큐멘터리 <대백제> 5부작의 방송 내용을 정리 보완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한다. 많지 않았던 백제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이 겪어야 했을 어려움이야 우리가 어찌 안다고 할 수 있으랴 싶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는 점에는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아주 멋진 시간이었다. 아울러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줄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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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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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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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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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은 영주 부석사의 금당이다. 얼마전 영주 부석사를 찾은 이유도 바로 이 책때문이었다. 도대체 무량수전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도대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일단은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갔고 무량수전을 바라보았으며 거기 그 배흘림기둥을 만져보았다. 안타깝지만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속깊은 사랑이 없이는 느낄 수 없는 저자만의 그 깊은 울림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배흘림기둥이라 함은 아래쪽은 가늘고 중간부분은 굵으며 위로 올라가면서 다시 가늘어지는 형태의 기둥을 말한다. 그리고 민흘림기둥이 있다. 민흘림기둥은 아래쪽은 굵고 위로 올라가며 가늘어지는 형태다. 배흘림기둥이 구조상으로 안정과 착시현상을 교정하기 위한 수법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나같은 초보자가 보기에는 솔직히 민흘림기둥쪽이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주관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지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최순우 선생께서 느끼는만큼 우리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거라고... 우리문화를 공부하는 분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책 한권을 빌미로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문화유산에 대해 그토록이나 심오한 경지를 욕심낸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럽기도 했다. 어찌되었거나 일단 읽기 시작한 것이니 책장을 넘겨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장 한장을 넘긴다는 게 그리 쉽진 않았다. 나름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왠만하면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집중을 하지 않으면 그리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여지없이 막혔다. 더딘 진도때문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던 순간도 사실은 많았다. 

늣늣이, 맵자하다(모양이 제격에 어울려서 맞다), 소산하다(흩어져 사라지다)... 이런 표현을 만난다는 게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집에 변변한 국어사전하나 없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 기회에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다짐도 해 보면서... 저자만의 표현법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얼만큼의 사랑을 필요로 했을때 저만큼의 커다란 의미를 담은 표현을 쓸 수가 있는 것인지. 필자가 본 우리문화유산은 정말 대단했다. 무심코 지나쳐 갈 수 있는 소소한 것까지 필자의 눈에는 소중한 것으로 비쳐졌다.  무엇을 이렇게 그리고자 한 계산도 없고 또 그런대로 따지고 봐도 별로 서운한 구석도 없어 보이는 점에 오히려 마음이 쏠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473쪽)  필자가 백자 풀무늬 편병을 보고 한 말이다. 그런데 무식한 내가 보아도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림도 조악해보이고 백자라고는 하지만 세월탓인지 흰빛이 흐르지도 않는다. (물론 백자라고해서 흰빛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깊은 사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이다. 백자 용무늬 항아리는 또 어떤가! 잘 빚은 항아리에 마치 어린아이가 되는대로 그림을 그려넣은 듯한 모양새를 보고도 필자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나 그릇을 쓰는 사람이나 마음이 모두 함께 천하태평이었다고 한다. 그리해서 멋을 만들고 멋을 즐길 줄 아는 복받은 족속이 한국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자 모란구름무늬학 베게,백자 구름무늬 베갯모... 나는 청자나 백자로도 베개를 만들며 베갯모를 만들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목침은 있다. 나 어릴적에 할아버지께서 베고 누우셨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청자 베개라니! 거기다 백자 베갯모라니!  물론 이것을 상용하지는 않았겠으나 우리의 선조들은 모든것들을 생활속에 녹아들게 했다는 말도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작은 기왓장에도 여러가지 무늬를 새겨넣어 자연과의 합일점을 찾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자신들의 염원을 표현하기도 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공예품이나 탈을 통해, 그리고 여성들의 자수병풍을 통해 한국의 미와 얼을 느낄 수 있었던 필자의 안목에 존경심마져 인다. 도자기를 보고 살결의 감촉이라 표현했으며 온돌방이나 장판을 통해 한국의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회화나 전통건축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선은 정말 깊다. 이렇다저렇다 설명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사랑을 표현해놓았다는 것이 정말 기가막힐 뿐이다.

일제시대 진고개의 어느 일본인 골동품 가게 안채에 참기름을 팔러 온 개성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골동상 주인 사나이가 무심코 내실에 들어왔다가 기름이 담긴 백자병을 보고 기절할 뻔했으니- (중략) 그 기름장수 아주머니는 단돈 5원에 팔고 좋아라 하면서 돌아갔고 그것을 산 일본 사람은 수전증 난 사람처럼 와들와들 떨었을 것이다. 그 뒤에 병의 때를 빼고 광을 내서 놀라운 값에 팔아 넘겼는데 간송 선생이 이것을 사들일 때는 1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511쪽) 바로 그 기름병이 백자 국화무늬 병이었다는 말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해외로 빼돌려진 우리문화유산들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는 현실속에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는 우리문화유산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와 과연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어찌된 일인지 우리문화유산의 대단함은 정작 우리손을 벗어나서 더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것이기에 소중한 것을 모른다는 말일까?  얼마전 고려불화전을 국립박물관에서 보았다. 스님의 해설로 만나는 불화 한 점 한 점이 내 가슴 한쪽에 응어리처럼 박혀들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말로만 듣던 고려불화는 정말 대단했었다! 

책장을 덮기전에 최순우선생의 안타까움이 베어있는 글을 다시한번 읽어본다. 고래로 우리나라 정원에는 작고 큰 과목들과 활엽수들이 자리를 잡아서 봄이면 변화있는 신록과 꽃, 여름이면 풍성한 녹음과 열매를 맺고 가을이면 다시 홍엽, 그 뒤를 이어 겨울이면 빈 가지의 소산한 숲의 아름다움 속에 설경을 즐겼다. 분별없는 무딘 눈과 분별없는 무딘 손들이 조상들의 명원을 송두리째 뒤덮고 유치한 왜식의 손길이 이것을 함부로 더럽히는 것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히 불행한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좋은 안목을 지닌 사색하는 눈들이 우리의 명원들을 건사하고, 좋은 손을 가진 원정(정원사)들이 흥겨워서 우리 정원의 혼탁한 때를 벗겨줄 때가 되면 우리 후원 별당에 겨울 한밤 내 다시 촛불이 밝혀질 것인가. (87쪽) 
언제쯤이면 우리도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깊어지려는지... 선생과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적어지는 날,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놓는다고해서 그것이 복원은 아니라던 말이 새삼스럽게 울림을 전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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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반한 우리 미술관 - 풍속화에서 사군자까지 우리 옛 그림 100 한눈에 반한 미술관
장세현 지음 / 거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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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그림을 다시보면서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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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반한 우리 미술관 - 풍속화에서 사군자까지 우리 옛 그림 100 한눈에 반한 미술관
장세현 지음 / 거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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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술, 아니 미술이라는 말은 말만으로도 머리아프다. 그림에 취미가 있어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아니니. 학창시절에 미술시험을 이론으로 본다고 하면 한숨부터 나왔던 기억이 난다. 시대적인 장르부터  연대별로, 인상파니 추상파니 하며 요상한 그림을 들이대는데는 두 손 들었다. 차라리 그냥 수채화 한점 그려내는 것이 더 속편했다. 얼마전 과천 현대미술관을 들러 볼 기회가 있었다. 그림도 보고 조각도 보고 나름 열심히 관람하다가 인솔했던 교수님께 한 작품에 대해 여쭈어보니 대답이 참 명언이다. 무슨 뜻인 줄은 나도 모르지요. 단지 자신이 보고 좋다고 느끼면 그것으로 족한거랍니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기 보다는 무언가 다른 게 있을 거라는 선입견부터 생겨나는 까닭에 작품을 본다는 것에 대한 울렁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차치하고 우리 미술이라는 말은 왠지 가까운 듯 하면서도 꽤나 멀게 느껴진다. 수묵담채화를 보면 묵직한 무엇과 마주한 느낌이고, 민화나 풍속화를 보면 왠지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에 기준을 두고 봐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우리 문화를 공부하자면 필수적으로 한국의 회화를 보게 되니 그냥 스쳐지날수도 없고 해서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책이 없을까 헤매다가 찾게 된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처럼 우리 옛그림에 대한 설명을 세세하게 해준다.  화자의 말투가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식이다보니 더 가깝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보는 걸 무슨 어른이 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어려울수록 쉽게 풀어 설명하는 쪽이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훨씬 수월하다. 우리 문화라고해서, 혹은 우리 문화재라고해서 어려운 한자나 고전용어만을 앞세울 필요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한눈에 반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한가지 좋은 점은 우리 미술이다보니 어디선가 한번씩은 보았던 그림이라는 거다. 책장을 넘기면서 열심히 설명을 듣다보면 어, 이건 전에 어디서 본건데...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하다못해 지금은 많이 볼 수 없는 연하장이나 카드를 통해 만나 보았던 그림도 꽤나 많다. 그러니 그다지 멀리 있는 그림만은 아니다. 

들어가면서 우리의 옛그림을 보기 위해 필요한 다섯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우리 옛그림은 보는 그림이면서 동시에, 읽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시험에 붙으라고 엿을 사주는 것처럼 그림을 보는 동시에 그 그림이 의미하는 것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 우리 옛그림은 우리가 보통 보아오는 서양의 그림과는 보는 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나 읽을 때 우리에게 익숙한 가로쓰기나 왼쪽에서 오른쪽을 읽어가는 방식과는 다르다.  우리의 선조들은 서양과 반대로 글을 쓰고 읽었기 때문에 그림 역시 그렇게 봐야 제 맛이 난다는 말이다. 셋째, 우리 옛그림에는 익살과 해학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익살과 해학이 수많은 전란을 겪어 온 어려움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호랑이가 담뱃대를 물고 있는 그림을 보면서 말도 안된다고 삐죽거릴 일만도 아니다. 넷째, 우리 옛그림은 은은한 멋을 느끼는 그림이다. 어찌보면 채색도 그다지 많지 않아 심심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림속의 풍경이 전해주는 살아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옛그림에는 고결한 선비의 정신이 담겨 있다. 옛날에는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한다는 것이 그다지 대접을 받는 일은 아니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백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갈고 닦는 수단으로 쓰였다는 선비들의 그림속에서 세상의 유혹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꿋꿋한 정신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 모든 것은 자주 보아야 익숙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림 역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그림은 잘 모른다. 볼 줄 도 모르고 하물며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저런 그림, 나도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만드는 그림을 본다. 어떻게 저렇게 그렸을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을 볼 때도 있다. 우리 미술관에서 만나는 그림들을 보면서 작품명과 화가의 이름만을 연결지어 외울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통해 전해받을 수 있는 느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라는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었다.  그림이 주는 편안함이 너무 좋았던 까닭이다. 여백이 많은 그림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왠지 마음이 편해지던 그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자주 그 그림을 들여다 본다. 물론 인쇄된 그림이지만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책을 앞에 두고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처럼 멋진 일도 없을테니까. 풍속화에서 사군자에 이르기까지 여러점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림속에 담겨진 많은 것들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게는 많은 도움이 된 책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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