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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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은 영주 부석사의 금당이다. 얼마전 영주 부석사를 찾은 이유도 바로 이 책때문이었다. 도대체 무량수전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도대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일단은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갔고 무량수전을 바라보았으며 거기 그 배흘림기둥을 만져보았다. 안타깝지만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속깊은 사랑이 없이는 느낄 수 없는 저자만의 그 깊은 울림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배흘림기둥이라 함은 아래쪽은 가늘고 중간부분은 굵으며 위로 올라가면서 다시 가늘어지는 형태의 기둥을 말한다. 그리고 민흘림기둥이 있다. 민흘림기둥은 아래쪽은 굵고 위로 올라가며 가늘어지는 형태다. 배흘림기둥이 구조상으로 안정과 착시현상을 교정하기 위한 수법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나같은 초보자가 보기에는 솔직히 민흘림기둥쪽이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주관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지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최순우 선생께서 느끼는만큼 우리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거라고... 우리문화를 공부하는 분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책 한권을 빌미로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문화유산에 대해 그토록이나 심오한 경지를 욕심낸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럽기도 했다. 어찌되었거나 일단 읽기 시작한 것이니 책장을 넘겨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장 한장을 넘긴다는 게 그리 쉽진 않았다. 나름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왠만하면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집중을 하지 않으면 그리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여지없이 막혔다. 더딘 진도때문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던 순간도 사실은 많았다. 

늣늣이, 맵자하다(모양이 제격에 어울려서 맞다), 소산하다(흩어져 사라지다)... 이런 표현을 만난다는 게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집에 변변한 국어사전하나 없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 기회에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다짐도 해 보면서... 저자만의 표현법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얼만큼의 사랑을 필요로 했을때 저만큼의 커다란 의미를 담은 표현을 쓸 수가 있는 것인지. 필자가 본 우리문화유산은 정말 대단했다. 무심코 지나쳐 갈 수 있는 소소한 것까지 필자의 눈에는 소중한 것으로 비쳐졌다.  무엇을 이렇게 그리고자 한 계산도 없고 또 그런대로 따지고 봐도 별로 서운한 구석도 없어 보이는 점에 오히려 마음이 쏠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473쪽)  필자가 백자 풀무늬 편병을 보고 한 말이다. 그런데 무식한 내가 보아도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림도 조악해보이고 백자라고는 하지만 세월탓인지 흰빛이 흐르지도 않는다. (물론 백자라고해서 흰빛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깊은 사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이다. 백자 용무늬 항아리는 또 어떤가! 잘 빚은 항아리에 마치 어린아이가 되는대로 그림을 그려넣은 듯한 모양새를 보고도 필자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나 그릇을 쓰는 사람이나 마음이 모두 함께 천하태평이었다고 한다. 그리해서 멋을 만들고 멋을 즐길 줄 아는 복받은 족속이 한국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자 모란구름무늬학 베게,백자 구름무늬 베갯모... 나는 청자나 백자로도 베개를 만들며 베갯모를 만들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목침은 있다. 나 어릴적에 할아버지께서 베고 누우셨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청자 베개라니! 거기다 백자 베갯모라니!  물론 이것을 상용하지는 않았겠으나 우리의 선조들은 모든것들을 생활속에 녹아들게 했다는 말도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작은 기왓장에도 여러가지 무늬를 새겨넣어 자연과의 합일점을 찾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자신들의 염원을 표현하기도 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공예품이나 탈을 통해, 그리고 여성들의 자수병풍을 통해 한국의 미와 얼을 느낄 수 있었던 필자의 안목에 존경심마져 인다. 도자기를 보고 살결의 감촉이라 표현했으며 온돌방이나 장판을 통해 한국의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회화나 전통건축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선은 정말 깊다. 이렇다저렇다 설명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사랑을 표현해놓았다는 것이 정말 기가막힐 뿐이다.

일제시대 진고개의 어느 일본인 골동품 가게 안채에 참기름을 팔러 온 개성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골동상 주인 사나이가 무심코 내실에 들어왔다가 기름이 담긴 백자병을 보고 기절할 뻔했으니- (중략) 그 기름장수 아주머니는 단돈 5원에 팔고 좋아라 하면서 돌아갔고 그것을 산 일본 사람은 수전증 난 사람처럼 와들와들 떨었을 것이다. 그 뒤에 병의 때를 빼고 광을 내서 놀라운 값에 팔아 넘겼는데 간송 선생이 이것을 사들일 때는 1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511쪽) 바로 그 기름병이 백자 국화무늬 병이었다는 말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해외로 빼돌려진 우리문화유산들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는 현실속에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는 우리문화유산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와 과연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어찌된 일인지 우리문화유산의 대단함은 정작 우리손을 벗어나서 더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것이기에 소중한 것을 모른다는 말일까?  얼마전 고려불화전을 국립박물관에서 보았다. 스님의 해설로 만나는 불화 한 점 한 점이 내 가슴 한쪽에 응어리처럼 박혀들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말로만 듣던 고려불화는 정말 대단했었다! 

책장을 덮기전에 최순우선생의 안타까움이 베어있는 글을 다시한번 읽어본다. 고래로 우리나라 정원에는 작고 큰 과목들과 활엽수들이 자리를 잡아서 봄이면 변화있는 신록과 꽃, 여름이면 풍성한 녹음과 열매를 맺고 가을이면 다시 홍엽, 그 뒤를 이어 겨울이면 빈 가지의 소산한 숲의 아름다움 속에 설경을 즐겼다. 분별없는 무딘 눈과 분별없는 무딘 손들이 조상들의 명원을 송두리째 뒤덮고 유치한 왜식의 손길이 이것을 함부로 더럽히는 것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히 불행한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좋은 안목을 지닌 사색하는 눈들이 우리의 명원들을 건사하고, 좋은 손을 가진 원정(정원사)들이 흥겨워서 우리 정원의 혼탁한 때를 벗겨줄 때가 되면 우리 후원 별당에 겨울 한밤 내 다시 촛불이 밝혀질 것인가. (87쪽) 
언제쯤이면 우리도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깊어지려는지... 선생과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적어지는 날,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놓는다고해서 그것이 복원은 아니라던 말이 새삼스럽게 울림을 전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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