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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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더위라는 말이 실감나는 여름이다. 이런 여름엔 뭔가 시원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서운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하고, 무서운 영화를 찾아 보기도 한다. 가끔은 더위를 잊을 수 있을만큼의 집중력과 재미, 스릴을 느끼게 해주는 추리소설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시원함이 묻어 있다. 수박향기... 에쿠니 가오리라는 낯설지 않은 이름과 함께 찾아 온 이 책, 사실 단편집이라는 것 때문에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작가의 이름이 오랜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흔히들 감성적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문장속에 나의 이 무더운 여름을 녹여낼 수 있을까?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는 말도 되겠다.

 

한여름 방학때면 내려갔던 시골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고 밤이면 모깃불을 피워놓은 채 툇마루에 모여 앉아 수박을 먹으며 할머니께 옛날이야기 해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면 할머니는 할 듯 안할 듯 망설이다가 은근 분위기를 잡으며 말씀을 시작하신다. 흠흠, 옛날에 말이다, 들판에 커다란 이층집이 있었는데 거기에 엄마와 딸이 살았단다. 어느날 엄마가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아장 아장 걸어다니던 아이가 그만 베란다 난간에 올라가 떨어질 것 같았대. 깜짝 놀란 엄마가 냉큼 뛰어가서는 아이를 잡으려고 했는데 그만 아이가 떨어져 죽고 말았지.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은 수박 먹는 것도 잊은 채 그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그리고 삼년 뒤에 두번째 아이가 베란다에 올라가 놀다가 또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만거야. 엄마는 예전 생각이 나서 얼른 뛰어가 아이를 잡았는데.... 잡았는데?  잡았는데.... 어떻게 되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아주 느리게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이가 엄마를 보면서 그랬다는구나... 이쯤에서 침넘어가는 소리, 꿀꺽!  왠지 으스스한 할머니의 목소리.. 엄마, 그 때 왜 나를 밀었어?  한동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무서운 이야기인지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잠시 어리둥절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다. 열 한가지의 짧은 이야기들이 모두 비밀이야기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한 비밀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누구나에게 한번쯤은 있었으나 굳이 말하지 않았던 그런 소소한 비밀이라면 딱 맞겠다. 첫번째 이야기 '수박향기'를 읽으면서 문득 떠올랐던 게 앞에서 말한 옛날 이야기다. 그때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비밀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마음 깊은곳에 묻어둔 작은 상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오래된 상처 하나쯤 끄집어내어 보듬어 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괜찮을 것 같다.

 

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에 대한 흥미도가 높아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낚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런 순간말이다. 그런데 대체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가의 경우가 거기에 해당된다. 그렇게 낚이는(?) 경우 책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그 작가에 대한 실망도 함께 따라온다. 상업적인 발상이 그런 결과를 낳는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 책 또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이건 오로지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나와는 다르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비밀을 공유하기 위해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는다, 는 소개글이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의 비밀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냥 들어주기만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괜찮다. 오랜만에 만나는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앞에 그녀와 비밀 이야기를 공유할 사람은 많을테니.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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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을 그리다 - 문학과 회화의 경계
위안싱페이 지음, 김수연 옮김 / 태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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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峯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이란 시가 있다. 제목은 <四時>. 창경궁 함인정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 함인정 내부 천장쪽으로 사방 벽에 걸린 현판이다. 東西南北 방향으로 春夏秋冬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풀이하자면 이렇다. ' 봄 물은 사방 연못에 가득하고,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도 많도다.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드날리고, 겨울 산마루엔 한그루 소나무가 빼어나도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하면 각 계절마다의 그림이 머리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자연을 노래했다는 글은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그만큼 마음을 담아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詩는 도연명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 연구하시는 분들에 의해 유명한 중국화가 고개지의 작품으로 정정되었다는 말도 들린다. 도연명... 우리가 자주 듣는 이름임에는 분명한데 그 이름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찾아보니 두보나 이태백과 같이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말이 보인다. 내친김에 한번 더 찾아보았다. 이 세사람의 공통점이 보인다. 세상과 뜻이 맞지않아 오랜동안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는 것인데,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의 어떤 틀에도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았던 듯 하다. 그러니 당연히 자연주의적인 글이 많았을 터다. 자연을 담아낸 글도 많았을테고, 그들이 느꼈던 자연의 이치가 또 그 안에 담겼음은 당연지사다. 중국에서도 한때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도가사상이 열풍을 일으켰던 시기가 있었다. 신선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했던.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는 맞지않는 하나의 이상세계였으며, 그 환상은 오래도록 후대를 잇는 이상세계로 남은 것 같다. 이 세상은 끝도없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틀에 맞춰야만 살아낼 수 있으니 그것에 환멸을 느끼거나 반항심이라도 생겼다면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건 기정 사실이다. 저 세사람의 이름이 후대에까지 추앙받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보통사람들이 꿈꾸어오는 자연인으로써의 삶을 살아낸 까닭일 것이다.

 

그런 도연명을 그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도연명을 그리다>라는 제목에서 나는 '그림을 그린다'라는 느낌보다는 그사람의 일생을 쫓는 하나의 일정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속에서 만난 건 도연명을 그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림을 통해 도연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그사람을 그린 사람들의 화풍이 시대별로 변해가고 있는 회화사에 더 많은 중점을 두었다. 도연명이 관직을 사임했을 때 노래했다던 <귀거래사(歸去來辭)> 가 이 책의 중심축으로 등장한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 자체에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게 詩를 쓰면서도 그 안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는 작품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전원생활을 주제로 한다. 문득 일전에 읽었던 책에서 끄적거렸던 말이 생각났다.  '시대와 더불어 사물은 변하고 사물의 변화에 따라 그에 대처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는 말인데, 그리고자 했던 사람이 살았던 시대에 맞춰 도연명을 그리는 방법 또한 변했던 모양이다. 그리는 방법은 달라졌을지언정 도연명이라는 이름이 안고 있는 깊은 철학만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태어난 작품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안견이 그렸다는 <몽유도원도>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보면 그렇게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도연명에 대한 부러움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대별로 잘 정리되어진 중국의 화화사... 하지만 내게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문화를 공부하면서도 회화부분에서만큼은 왜 그렇게 정리가 안되는지 머리가 아팠던 기억도 있으니 오죽할까...  예술적인 작품을 보는 안목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자주 접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는 것도 또하나의 핑게거리가 될 것 같다. 어찌되었든 전원생활이나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사람은 지금도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고 생각만 할 뿐이다. 현실이라는 벽을 뚫고 나간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겠지만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는 게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녹녹치않은 일임엔 분명하다. '힐링 healing '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는 요즈음, 도연명이나 두보, 이태백과 같은 사람이 아닐지라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은 아마도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지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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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박성신 지음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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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느낌이 왠지 껄끄럽다. 이야기의 흐름도 그렇고, 왠지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아 털어내고 싶은 무언가가 내게 묻은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어쩌면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아니 외면해서는 안되는 우리의 속사정일런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와 이미 마주하고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라고 말들은 하지만,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돌아서고나면 표정이 바뀌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옛날이라고 불리워지는 시절과 지금은 '가족'이라는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지금 우리 생활속에서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가족'.... 흔한 생각처럼 그렇게 따뜻한 의미일까? 힘들때 다가서면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존재일까? 흐르는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그런 존재일까?  정말 위험할 때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울타리같은 존재일까? 지금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그 '가족'의 틀을 망가뜨리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묻고 싶어지는 까닭이다.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려 보지만 그 사회 역시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니 누구를 탓할 일도 못된다.

 

열등감, 범죄, 실업, 빈곤, 無錢有罪有錢無罪라거나 아웃사이더Outsider 등과 같은 사회병리현상에 관하여 말하고자 했던 책은 많았다. 그런 영화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현상에 공감하거나 동조, 혹은 적대시할 뿐 변화를 모색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해야 되겠다'거나 '나라도 해야지'하는 마음보다는 '나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식이 이미 만연하는 세상이다.  정말 '나만 아니라면'  왠만한 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세상. 그러다 '나'에게 닥친 일이 되고나서야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하는 반응만을 보일 뿐이다.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속에도 그렇게 가슴을 아프게 하는 상황이 너무 많이 보인다. 속깊은 정은 없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이미 자연스러움을 잃은지 오래다. 단지 내가 만들었으니 내 맘대로 흘러가야만 하는 그런 의미일 뿐이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관계는 늘 불안하다. 무언가에게 쫓기듯 늘 초조하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놓은 것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다.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늘 허덕인다.

 

30년.... 완벽하지는 않지만 늘 꿈꾸어왔던 '가족'을 만들기 위해 걸린 시간이다. 그러나 그 '30년'이란 시간은 공백이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이럴 것이다, 라는 나름대로의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연이어 발생하는 사건의 원인은 오직 한가지다. 만들어진 이 틀을 깨고 싶지 않다는 것.. 오래도록 꿈꾸어왔던 것이기에 어찌되었든 '가족'이라는 틀을 지켜야 한다는 것 뿐이다.  솜털같이 보송보송한 아이의 손길에서 거짓이지만 그 '가족'의 일원으로 잠시나마 살고 싶었던 연쇄살인범 강대도.. 버림받았던 오랜 세월의 고통을 이겨내고 나만큼은 완벽한 '가족'을 이루어 살아보겠다고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아나섰던 신민재..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삐걱거렸다. 서로 나누는 마음이 없고 자연스러움이 없는 상태는 삐걱거릴 수 밖에 없다.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나서야 서로의 마음을 보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았을 때 그 자연스러움은 생겨난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비로소 행복이라는 말을 찾아낸다. 다른 말이 주는 의미도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가족'이라는 말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속에는 우리의 현실이 펼쳐져 있다. 조금은 아프게 각인되어질 우리의 현실. 지금은 진정 '대화'가 필요한 시기다. '너나 잘하세요'가 아니라 '내가 잘 할게요'가 필요한 시기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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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 - 주말이 즐거운 서울 근교 산행 가이드
구지선 지음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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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릎에 이상신호가 와서 등산을 접었지만 한때는 나의 모든 일상이 산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산을 포기했을까? 아니다. 등산이라는 게 굳이 높은 산, 험한 산만을 오르는 걸 말하는 건 아닌 까닭에 근처 작은 동산에라도 오를라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가다가 힘들면 중간지점에서 하산하는 경우도 있다. 내게는 그 순간이 더없이 행복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더 오르지 않아도 미련은 없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풍경이라해도 해마다 그 얼굴을 달리하고, 어떤 마음으로 오르냐에 따라 그날의 표정이 또 달라진다. 그러는 중에 이 책을 만난 건 나에겐 행운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본 순간 목차를 훑어보고 이거다 싶었다. 이제 막 등산을 시작하려는 초보자를 위해 선별했다는 코스들이 정말 '주옥같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시선을 빼앗겼던 책이 수없이 많았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대중교통편을 소개해주는 책이 많이 보여 도움을 받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주변 볼거리와 대중교통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책을 펼치면 안전한 산행을 위해 산에 오르기전 체크할 사항부터 말해주고 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는 필수다. 요즘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패션이 유행한 건 사실 그다지 오래된 일은 아닌데, 갈수록 경쟁적으로 보여지는 여자들의 패션은 정말이지 좋은 구경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멋보다는 실용성이 우선이라는 걸 잊으면 큰일난다. 비상약을 챙기는 것도 잊으면 안되고, 갑작스럽게 변하는 날씨를 생각해야하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 어떤 산에 오르는 가를 주변에 알려야 한다는 것, 너무 늦게 내려오지 말 것, 되도록 천천히 걸으며 올라야 한다는 것도 절대 잊어선 안되는 항목이다. 종종 귀에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끼고 걷는 사람을 보게 된다. 부탁하건데 산에 오르면 오로지 산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열어보라.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산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거기에 필수적으로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야호~ 소리를 지르는 건 안된다. 먹고 남은 음식이나 과일 껍질 따위도 썩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나하나만 안버리면 산에는 절대로 쓰레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또한 왠만하면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 갔으면 좋겠다. 산은 나 한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까닭에 우리에게는 산을 지켜야 하는 의무도 있는 것이다.  


북한산부터 시작해서 그리 멀지 않은 역세권 위주로 코스가 잘 짜여져 있다. 코스에 따라 상중하로 난이도도 체크해 놓았다. 하나둘 살펴보니 가보지 않은 곳이 딱 한군데 있다. 안그래도 문학산성 때문에 한번 가야지 했던 곳인지라 반가웠다. 여름방학이 되면 아들녀석과 강화 마니산을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아무래도 이 책을 들고 가야할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다녀오긴 했지만 너무 어렸을 적의 기억이라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여, 기왕에 가는거 고려궁지까지 답사를 하고 올 예정이다.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말 그대로 친절한 등산책이다. 가고는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중이라면 여기서 소개하는 코스를 하나씩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다. 주변볼거리까지 소개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코너가 있었다. '성격 유형별로 즐기는 산행'이다. 화끈한 언니형, 지적인 언니형, 얌전한 언니형, 과묵한 언니형... 제목만 봐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테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슬며시 미소짓게 한다. 가만 있어보자, 그럼 나는 어떤 유형인거지? 일단 주변에 답사할 곳이 있어야 하고, 사람소리보다는 자연의 소리를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고, 너무 힘겹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기다려준다면 더없이 좋을 테고... 화끈한 언니형만 빼고 다야? 이래서 한번 웃는다. '산'은 생각만해도 행복한 이름인 까닭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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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레 오늘의 일본문학 10
호시노 도모유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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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레 : おれおれ

오레오레 おれおれ 는 일본말이다. '나'라는 뜻의 '오레おれ' 를 두 번 연달아 쓴 말인데 '나야, 나'라는 의미라고 한다.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나야, 나"라고 말하며 아들인 척 흉내를 내 노년층의 돈을 뺏는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으로, 일명 '오레오레사기'가 성행하면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말이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좋지도 않은 말을 책의 제목으로 썼을까? 얼핏 생각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인 병리현상을 말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때문에 내심 조바심이 났다. 초반부에서의 상상력으로 순간의 몰입도는 좋았다. 그 상상력이라는 것이 현실과 부합된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복되어지는 단어 '나'가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헤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복잡하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아니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애( 自己愛 )의 덩어리. 상처입은 프라이드를 애지중지 끌어안고 다른 사람 옆에는 다가려고도 하지 않는..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자기 자신에게만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상처를 핥고, 세상하고는 다르니 어쩌니 하고 있으면서 거기에 무슨 진심이 있다고.. 책속에 나오는 말이다. 결국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 같지만 누구나 똑같은 가슴앓이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누구나 개성과, 나 자신만의 어떤 것을 꿈꾸지만 결국엔 그것조차도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길들여져 끝내는 같아지는 그 어떤 것들.. 사실이 그렇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모두가 목소리를 맞춘듯 이야기한다. 개성시대라고. 그러나 작금의 시대에는 개성이 없다 (이 말은 물론 나만의 생각일 뿐이고,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없다는 건 아니다!). 세상이라는 톱니바퀴를 굴리면서 행여나 나만 튀어나오게 될까봐 묘하게 자신만의 그 어떤 것을 변화시키는 카멜레온같은 존재. 그러면서도 나는 나일뿐이라고 목소리만을 높이는 시대.. 그 아픔이 이 책속에 녹아있다.

 

책장을 덮고나니 펼쳐지는 표지의 그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똑같은 얼굴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줄을 지어 나온다. 모두가 '나'이면서 '너'이기도 하고, '우리'가 된다. 그리고 다시 나의 복수형인 '나들'이 된다. 결국 '하나'가 되어버리고 마는 그 상황이 조금은 멋쩍다. 손을 들어 나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없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 세상의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 함께 굴러가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고 난 뒤에야 속이 뒤틀린다. 왠지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그 속을 꾹꾹 누른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아니 어쩌면 내 속을 들킨 것 같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독자적 존재였던 내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박해지면서 마치 좀비처럼 동일한 생각과 동일한 행동을 하는 '나'로 변해가는 설정을 얼핏 카프카의 <변신>생각나게 한다- 옮긴이는 말하고 있지만, 내 경우에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눈 뜬 자들의 도시>를 동시에 생각나게 했던 책이었다. 상황설정은 다르지만 내게 다가왔던 느낌이나 남겨진 여운이 왠지 모르게 겹쳐졌던 까닭이다.  '나를 죽여 나를 살린' 마지막 장이 인상적이었다. 결국은 그거였구나 싶었다.  세상은 '나'만으로도, '너'만으로도, '우리'만으로도 만들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 셋의 묘한 어울림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를 인정하고, '너'를 인정해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우리'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만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만들어진 것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만들어진 것들'을 무작정 따라가는 텅 빈 얼굴을 책표지의 그림에서 보게 된다. 세상은 복잡한 것일까, 단순한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각자의 모습 그대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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