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pm. 22:34
주말에 따스한 봄산 공기를 맡아야겠다던 생각이 갑자기
변한건 진짜, 갑작스럽게 퇴근길 전철안에서였다.
햇수로 20년이 넘은 그 곳을 그간 한번쯤은 가볼 생각을 어찌 안 해 봤을까.
물론, 몇 번 학교를 찾아본 적은 있었다.
달리 회피할 이유도 없고 거리상으로도 지척인 그 곳을 찾아보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그곳에서 느껴질 지나간 세월에 대한 감정 이면에
대한 내 스스로의 감당 능력에의 회피때문이었을 것이다.

내일 일어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릴 지도 모르지만
행동에 옮겨질 수 있다면 샅샅이는 아니더라도 장님 지팡이 짚는
시늉이라도 내 유년시절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부족하지만, 자족의
글귀로나마 남겨볼 수는 있을테니 그 이상 무슨 이유가 필요할지.

8일 pm. 13:20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초등학교 앞쪽으로 해서 뒷골, 내 살던
남방리까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초등학교 벤치에 앉았다.
20여 년전 그때와는 많이 변해있는 학교.
오후 햇살은 따스해서 바람도 선선하고 어딘선가에선 새들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는 운동장에선 몇몇 애들이 공을
차며 농구를 하고 있다.
고만고만한 조무래기들의 뛰는 발자국 소리, 재잘거리는 익숙한 소리들.
내 귓가 옆에선 꿀벌 한마리가 윙윙대고 있다.
국기게양대의 태극기도 변함없이 흔들리는 교정안의 변함없는 풍경.

20여년 전, 그때도 우리는 저 애들처럼 이 교정안을 재잘거리며 뛰놀았겠지.
학년별 달랑 2반이었던 학급은 이제 5반으로 늘어나 4층 높이의
건물 2동과 도서관 건물도 하나 증축되어 있었고
학교 뒤쪽 수돗가만 있었던 자리에는 병설유치원이 들어서 있었지만
우리들 등하굣길이었던 산길은 폐쇄되어 있었다.
학교 앞 논과 밭의 허허벌판도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지금도 한창
공사중인게 이제 학교는 아파트내에 들어선 요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내가 태어나 13년을 살았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고만고만한 집을 사이로 미로처럼 엮어 있었던 골목도 사라져
이제는 몇채의 단독주택으로 변모해 버린 지금.
나 살던 집 앞에 있었던 누군지 모를 봉분 2기만 오롯이 남아있다.
엄마에게 야단맞고 그 봉분옆에서 울다 잠이 든 적도 참 많았다.
그때, 그 골목은 우리들 숨바꼭질 놀이의 주무대였고 이 집과 저 집이
골목으로 서로 연결돼 해가 저물도록 놀다보면 저쪽 어디에서 아무개야,
그만 놀고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소리가 쉽게 메아리쳐 들리던 참, 추억이
많은 그런 곳이었다.
지금 이 집의 아이들은 어디서 무얼하며 놀고 있을까.
아마도 집 안에서 컴퓨터나 게임에 푹 빠져서 지내겠지.
예전 집앞의 군부대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당시 제일 컸던 대진상회는 대진마트로 변해 있을뿐 그대로지만
그 모습도 조만간 없어질 생각이 들 정도로 초라하다.
집 앞 뒷골의 모습도 변함없이 논과 밭 그대로지만 아직도 변함없는
그 모습에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였일까.

뛰놀던 애들도 어느새 다 사라져 버린 운동장 한복판에선
분홍색 티의 조그만 여자애 혼자 긴 머릴 풀풀대며 혼자 뛰놀고 있다.
이 운동장도 내겐 참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다.
공도 많이 찼지만 당시 육상부였던 내게는 주 연습장이였으니.
근력을 키운다고 바람 뺀 자전거 튜브를 철봉에 묶고 뜀연습을 하던
철봉은 위치가 바껴져 있다.
남자애들의 주무대였던 타이어바퀴도 흔적도 없이 뽑혀져 나갔고
그 옆, 언젠가 육상연습후 간식으로 양동이에 가득 라면을 끓여 먹던
자리도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돼 있다.
퉁퉁 불은 그 라면맛은 아직도 내게 군대에서의 반합라면과 함께 가장
맛있었던 라면맛으로 남아 있으니.
쉬는 시간 가끔 애들과 둘러앉아 얘기꽃을 피웠던 학교앞 야산은 이제는
몇몇 나무들로만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월은, 시간은 참 많이도 흘러 많은 변모를 가져왔지만
다행히도 학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학교가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사라진다 해도 세월은, 시간은
내게서 그때의 기억을 앗아가지는 못 할 것이다.
그 기억은 그 시간 전에 이미 내게 형성돼서 시간과 함께 흘러온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이 있다.
유년시절의 기억.
그 기억은 내면 속 깊숙한 향수로 자리잡아 어느 날 불쑥 불쑥, 불청객처럼
찾아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가한 교정안,
그 앞엔 도서관 옆에 조성된 조그만 정자 하나와 그 옆에 식수된
작은 소나무들의 솔잎만 바람에 한가로이 몸을 맡기고 있다.
시야 정면을 막아서고 있는 아파트.
어디선가에선 차 시동 소리가 들리고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는 두 소녀의
재잘거림이 낯선 오후.
두 소녀가 모습을 감추고 난 이후의 정적.
그 시절에도 이리 조용한 정적이 숨어 있었을까.
낯익은 종소리가 갑자기 울린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조잘재잘, 왁자지껄 시끄럽게 몰려들었던
이 운동장의 침묵이 이리도 낯선건 아마도 그 몇배의 나이가 돼서
혼자 남아있는 내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기 때문은 아닌지.

3월초의 따스한 볕 속에서,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조무래기들의 시끄런 재잘거림과 시끌벅적함 그 속에서
조용히 사위어져 가는 한낮 그 가운데에 홀로 벤치에
앉아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


환청처럼 어딘가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야, 일루 패스하라구. 슛! 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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