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와서 그런건지 한동안 잊고 지낸 바나나씨가 떠올라

불쑥 책 두 권을 연달아 읽고는 두어권쯤 장바구니에 또 담았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우연에서 생겨난 한때의 틈새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괜찮다. 이미 끝나 버렸기에 가치가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인생은 길게 느껴지는 것이니까.

눈을 감은 채 귀 기울이고 있던 나는 초록색 바다 깊은 곳에 있는 기분이었다. 온 세상이 밝은 초록으로 빛나 보였다. 투명하고 유연한 물의 흐름, 그 안에 있으면 아무리 괴로운 일도 살을 스치고 지나가는 물고기 떼 정도로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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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나가쓰키 아마네 지음, 이선희 옮김 / 해냄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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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는 따듯한 소설이었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그리운 얼굴들이 자꾸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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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전의 폭풍 - 로마 공화정 몰락의 서막
마이크 덩컨 지음, 이은주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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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했던가요, 이전엔 의식하지 못했던 책 속 로마의 잔재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포진해 있다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즘입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 중 로마와 관련된 인물 또는 지명이 언급되지 않은 책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이제야 뒤늦게 적잖이 놀라고 있어요. 이 책을 받아들고는 무미건조하기만 한 역사서이면 어쩌나 내심 걱정스레 책을 펼쳤는데 의외로 흥미롭게 읽히는 기록이었어서 저같은 역(사)알못인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인가 싶을 정도였고요.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고 다음엔 좀 더 진중하게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읽으며 만났던 인물들을 다시 만나 조금 반가웠는데요. 단지,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점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빈약한 역사서였다는 점이랄까요. 그라쿠스 형제부터 술라까지,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물들의 행보를 따라가본 로마 역사 속으로의 여행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했습니다. (영업엔 소질이 없지만...)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어려운 역사서들보다 쉽고, 간결한 문체로 쓰여져서 좋았어요. 역시, 저같은 역(사)알못들을 위한 책임이 분명하단걸 읽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아이밀리아누스는 그 어떤 권력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모든 제국은 필히 무너지게 되어 있으며, 그것은 한낱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일임을. - P49

언제든 돈주머니가 자신의 정치 견해를 좌우하도록 내버려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 P167

유구르타는 로마를 돌아보며 그의 유명한 비평을 내뱉었다. "팔려고 내놓은 도시이니 구매자만 나타나면 빠른 파멸의 운명을 맞을 것이다." - P179

더 많은 영광을 향한 채워지지 않는 열망은 마리우스를 파멸로 몰아갔으며, 결국 이후 몇 년 안에 그는 "가장 잔인하고 흉포한 노령의 기슭에 닥쳐온 돌풍처럼 휘몰아치는 열정과 때에 맞지 않는 야심, 만족을 모르는 탐욕에 이끌려... 전장과 포룸에서의 더없이 빛나는 경력 위에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왕관"을 얹게 된다. - P280

탐욕은 잔혹함의 동기를 제공했으며 범죄의 규모는 그 사람이 가진 재산의 규모로 결정되었다. 재물을 지닌 사람이 악이 되었고 매번 그자의 살해에 상금이 걸렸다. 요컨대 이익을 가져오기만 하면 어떤 짓도 수치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 P422

원로원 내부에는 옛 공화정이 부활되리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공화정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았다. 기원전 78년에 술라는 자신이 공화정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믿으면서 죽었다. 그러나 일견 새 시대의 여명처럼 보였던 것은 사실상 로마 공화정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전 마지막 순간에 비친 빛이었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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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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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다소 적은 분량에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두 여인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탓이리라,

현실적으로만 본다면 부족의 결정을 나쁘다 할 수 만은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부족장의 맘아픈 결정으로 인해

더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닌가 제3자의 입장으로 말해본다.

 

부족 내에서 보호받고, 우대받으며 지내오던 두 여인은

사실 불평불만은 많고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던 건 자명하다.

그렇기에 냉정하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과 잊고 있었던 열정을 되살릴 수 있었던 거였다고.

두렵고 혹독했던 현실을 이길 힘이 있었음에도

그저 소홀히 안일하게 지내왔던 지난 날을 버리고

본인들마저 잊은 채 스스로의 가능성과 미래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감히 존경과 경외심 또한 말하고 싶다.

 

아마, 그런 현실이 두 사람 앞에 닥쳐오지 않았다면

후일 부족이 힘들어진 그 상황에서조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으로 손놓고 불확실한 내일을 버티고 견디며 살아갔으려니,

희망이나 밝은 빛이 아닌 음울하고 고통스러운 미래를 받아들이며 살았을지도.

 

와, 이렇게 쓰다보니

정말 두 늙은 여인은 정말 위대하고 대단한 공로자들이 아닌가.

물론 모든 일은 겪을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지나고 보면 어떤 식으로든 피와 살이 되는 경우가 있다더니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그저 막막하고 눈앞이 캄캄했던 현실에 직면하여

그들은 삶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하루하루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기 시작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래, 이 죽음이란 게 우리는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약점을 보이는 순간 우리를 움켜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말이야.

나는 당신과 내가 겪을 그 어떤 고통보다도 그런 죽음이 두려워.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우리 뭔가 해보고 죽자고! p.45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가까워지는거야.

오늘 나는 몸이 좋지 않지만, 내 마음은 몸을 이길 힘을 갖고 있어.

내 마음은 우리가 여기서 쉬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p.69

 

 

더이상의 미사여구는 필요없다.

직접 읽고 두 늙은 여인의 생존기를 체험해보시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 오히려 너무 평탄할 지경이라 삶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고 있는 건 아닌지,

좀 더 열심을 다하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될테니까.

 

사실, 우린 스스로의 잠재력을 너무 간과하고 있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본 일이 있었는지

가슴에 손을 엊고 생각해보면 알게 될테지.

 

 

시간이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이고,

그림을 그림이게 하는 것 역시 원근이 아니라 깊이(메를로 퐁티)라는 것을

칙디야크와 사가 그들이 본 여든한개의 여름과 일흔여섯개의 가을로 확인해준다.

 

몇번째인지 모르지만 깊이를 더해가는

그대의 봄 앞에 이 이야기를 드린다.

그대의 눈신발, 그대의 바라봄, 그대의 연어 껍질 주머니,

아직 오지 않은 그대 삶의 절정을 위해! p.171

 

 

작가의 말이나, 옮긴이의 말을 빼놓지 않고 읽는 편인데

역시 어김없이 이런 주옥같은 글을 싣으셨기에

아낌없이 밑줄 쫙.

 

 

#두늙은여자 #이봄출판사 #벨마월리스 #뭔가해보고죽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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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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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했다.

 

이런 부류의 소설을 읽는게 너무 오랫만인지라

가볍게 읽어야지 했는데 역시나, 이 맛이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게 만들고야 마는.

(사실, 이 느낌이 좋아서 추리스릴러물을 끊지 못한다는거 하하)

 

* 눈 색깔은 아마도 밝은 파란색.

웃으면 뺨에 깊은 주름이 생기고,

죽었을 때는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어라, 익숙하다 싶더니

앞에서 읽었던 부분이 뒷장에 바로 한번 더 읽힌다.

묘한 인상을 받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한눈팔 틈조차 주지않고 사건은 내달린다.

대낮에 벌인 무차별살인사건, 그것도 역광장앞에서 5명이나?

물론, 이정도쯤이야 익숙한 패턴일 수 있지

대수롭지 않게 다음장을 펼치면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그 와중에 정치인들이 오가고

경찰과 생존자, 용의자, 그 주변인물들을 탐색하며 내용이 진행된다.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이 또한 이쪽 소설을 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묘미인걸로.

 

아마, 어쩔 수 없는거구나 싶다.

사람의 호기심이란, 그리고 나의 호기심?

궁금한 건 어쩌겠어, 봐야지

그걸 참을 수 있을만큼의 성인군자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재밌다.

이정도 흡인력이라면 가히 칭찬해줘도 될 법 하지 않나.

 

고로 스포는 금물.

온몸으로 직접 이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란다.

 

미미여사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이번 오타 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됨에 또 하나 기쁨을 표해야겠다.

기대된다. 초기작이라고 들은 이 책이 이러할진데,

과연 앞으로는 얼마나 더 대단한 작품들을 들고 나올지

기다리는 시간 또한 하나의 즐거움으로 아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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