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5
시모나 바르탈레나 지음, 임동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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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빛과 비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로트렉과 르누아르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다. 태초에 내가 기억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비상(飛上)이 좋았다. 평범한 발음과 입모양도, 발음하고나면 거대하게 솟아나는 근거없는 용기도.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루즈]를 보기 위해 꽃처럼 예뻤던 열아홉의 두 소녀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시내 극장으로 달려간다. 의사를 꿈꾸던 짝꿍이자 단짝이었던 친구, 붉고 강렬하고 어둡고 쓸쓸한 무대, 눈과 귀를 자극하는 춤과 음악, 예나 지금이나 빼어난 외모로 혼을 빼놓는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화면 속 화려한 색채와 강렬함, 밝고 명랑하기만 한줄 알았던 파리의 어두운 이면, 극장을 오르내리던 에스컬레이터와 사먹었던 음료와 팝콘, 비스킷, 오징어까지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놀랍도록 생생한 기억이다. 더 어두운 분위기로 재즈 선율 물씬한 [시카고], 꿈에 관해서라면 따라올 영화가 없을 [드림걸즈]나 [코요테 어글리]를 좀 더 좋아하지만 다시 보고싶은 작품은 단연 [물랑루즈]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도시에 있다. 묶어둘 수도 붙잡을 수도 없었던 어떤 물거품에 대해 말하려면 언제나 파리가 일순위다. 아무 것도 모른다. 오르세 미술관의 몇몇 화가 그리고 낭만과 사랑으로 가득찬 예술과 문화의 도시를 알 뿐이다. 


다들 알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 훗날 파리는 내게 그렇게 정의내려진다.



           



로트렉, 클림트, 베르메르, 고야, 고흐, 무하. 로트렉과 가장 먼저 만난 건 운명이라 불러도 좋다. 우디 앨런의 영화 이후, 바로 그 작품이 이 도시를 설명하는 핫한 근거가 되었고, 더이상 나만의 추억만으로는 거기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된 슬픈 사연을 들이밀어볼까. 아니면 파리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갔던 퐁네프 다리 그것도 아니면 베르사유, 시테 섬에 대해서. 아니다. 몽마르트르와 빨간 풍차에 대해 말해보자. 아, 벌써부터 불쑥 물러나기 시작하는 그리움의 향취라니. 약간의 쓸쓸함과 미각에 느껴지는 소금기가 따끔거린다. 침울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여섯 명의 화가 중 클림트, 고야, 고흐, 베르메르를 먼저 만났다면, 처음이 로트렉이 아니었다면 나는 굳이 EBS의 특집 프로그램 6부작을 찾아보고 빈약한 책장을 뒤져 굳이 한번 더 회상에 잠기기 위해 이 책을 찾아내진 않았을 것이다. 열 권의 미술관 시리즈 중 하필이면 5번이어야 했던 이유, 로트렉의 일부 작품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수많은 색깔의 빛이 세상의 모든 길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곳. 그곳은 전세계 예술애호가들의 정거장이자 정착지였다. 나는 오르세의 공간적 변천이나 기술적 번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릇에 담긴 내용물, 내용물이 숨긴 기호와 상징, 역사에 오롯이 집중할 뿐이다.



                            




툴루즈 로트렉(1864-1901)의 전용관이 있는 파리의 오르세는 문화예술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곰스크 같은 곳이다. 그는 19세기 말 혼란한 사회상 속에 기꺼이 녹아든 하층계급 매춘부와 거리의 여자들을 지상으로 불러냈고, 괄시와 차별에 신음하던 이들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은 인격을 부여하여 세상 밖으로 낚아올렸다. 로트렉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1889년 몽마르트르의 번화가 클리시 거리에 개장한 댄스홀(프랑스어로 '붉은 풍차'의 뜻) '물랑루즈(Moulin Rouge)'로, 담벼락, 풍차, 밤거리, 댄서, 창녀 같은 몇 개의 다른 단어로도 요약된다. 태양보다 화려하고 달보다 황홀한 시계(視界)가 펼쳐졌을 때 그의 눈에 비친 곳이 얼만큼 매력적인 향락의 장(場)이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부모의 근친결혼과 어린 시절 불의의 사고로 얻은 장애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평생 지팡이를 짚으며 뒤뚱거렸던 외로운 아웃사이더의 눈으로 누구도 볼 수 없는 역동과 자유를 포착하기까지 벌인 사투에서 절망의 추격은 또 얼마나 거세고 급했을까. 




하지만 유전적으로 덜 자란 키, 장애로 얻은 걸음걸이로 물랑루즈, 카바레 등의 댄스장과 서커스장까지 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삶과 반비례하는 완벽한 역동성, 무방비한 자세로 쉬는 여자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고단함과 쓸쓸함. 대부분의 파리가 보여주는 화려함에 가려 더더욱 아프고 어두운 그림자. 어디에나 존재하는 양면의 칼날을 잊지 말라는 경고일까. 헝클어진 머리칼, 뼈가 툭 불거진 등, 살짝 벗어내린 상반신, 다소곳과는 거리가 먼 자세까지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갈 듯한 강인함마저 느껴진다. 어느 누가 화려한 파리의 밤거리에서 그들에게 눈길을 두겠는가. 로트렉은 자신의 삶마저 짧고 강렬한 빛으로 휘감았다. 비록 후기 빛의 화가 혹은 인상파, 라고 불리는 다른 수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에 가려져있긴 해도, 그가 보고 듣고 느낀 세상은 남달랐다고 써도 좋다. 서른 여섯에 생을 마친 그를 보고 있으니 또다시 결핍되지 않은 내 안의 수많은 가능성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로트렉의 자세한 설명을 기대한 채 열었던 책에서 이 그림을 만나고, 한 페이지에 간략히 요약된 그의 생애를 듣는다. 그외에도 모네, 드가, 마티스, 세잔, 고흐, 쿠르베, 밀레, 마네, 라투르, 휘슬러, 들라크루아, 카유보트, 시슬레, 르누아르, 피사로, 베르메르, 고갱, 쇠라, 뷔야르, 드니, 앙리 루소 등 수려한 화가들의 작품이 반기지만 간략하고 소박한 소개가 마치 독자와 화가의 결탁과 유착을 기반으로 하는 듯 정중하다.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추는 아첨, 온화로운 환심, 까다롭지도 엄격하지도 않은 서술이 오히려 오르세 미술관의 미로에 갇혀 길을 찾는 지도라도 된 듯 색채와 부피로서의 감정순환에 기여한다. 병약한 와중에 매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생을 마친 로트렉이 가졌던 깊은 교감력과 도피, 자기파괴에까지 이르게 한 감수성을 우린 너무도 쉽게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시키며 대가없이 얻기를 바라지 않던가.



           



또다른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1841-1919)는 들라크루아, 쿠르베, 모네의 기법에 영향을 받아 차츰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한다. 르누아르는 본래 인물화가였는데 점점 전통과 고전 회화의 양식에 눈뜨고, 인물의 심리를 세심하게 담기 위해 애쓴다. 독서, 피아노, 뜨개질, 오찬 등에서 보여지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포착한 르누아르의 장기 역시 빛과 색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표현법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포근하고 따뜻한 마력에서 찾을 수 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색조.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뜨거운 감미로움. 무엇보다 색채의 풍부함이 오래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준다. 흐릿하면서도 또렷한 질감에서 명랑함과 사랑스러움이 듬뿍 묻어나기도 한다. 르누아르가 그린 세상의 인물들은 로트렉과는 달리, 천진난만하고 싱그럽다. 왁자한 전원풍경과 행복 가득한 생기발랄함, 바로 그 낙천성에서 그의 매력을 찾는다. 



           



시슬레와 모네의 그림을 좋아한다. 빛과 어둠, 꿈과 환멸을 그림에서 찾던 어느 날, 고흐와 고갱의 색채 대비나 램브란트와 베르메르의 소박하면서 묵직한 환희에 간혹 흔들렸다. 고흐와 밀레의 낮은 곳을 향한 진지한 태도, 쿠르베의 고집스러움, 휘슬러의 화폭이 전달하는 흰 빛의 녹턴을 잊지 못한다. 사실 오르세는 놀이터 같은 곳이다. 놀이터에서는 그네도 시소도 미끄럼틀도 포기할 수 없다. 매번 새롭다.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화가의 또 다른 작품에 자주 눈길이 멎는다. 터너의 환상적 연금술에 마음을 빼앗기고, 쇠라의 원색질주와 질서정연함에 심장이 뛴다. 이상하다. 눈을 감고 차분히 마음을 달래면 이 미술관(책이 아님)은 매번 새로운 세계로 나를 데려간다.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책이라서가 아니라 내게 특별한 시작을 선사한 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거의 모든 분야에 있지만 돈 많은 남자의 숨겨진 정부처럼 무의식중에 잊혀지는 것들은 많다. 나는 십 년도 훨씬 더 지난 날에 자칫하면 헤어질 뻔했던 엄마가 다음날 사다준 핑크색 테두리가 있는 흰색 긴팔 티셔츠를 생각한다. 소매가 늘어나 몇 년 전 별 고민도 없이 헌옷수거함에 넣었는데, 불현듯 당시의 모든 비극적 상황과 더불어 엄마의 표정과 말투, 티셔츠의 촉감과 디자인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시간이 멈춰버렸다. 갇힌 추억 만큼 애처로운 것도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관용어의 적확함에 덧붙인다. 기억하는 만큼 체화한다. 잊혔던 날들의 기억은 서늘하게 다가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흩어지는 만큼 멀리가고 내려앉는 만큼 은밀하다. 더없이 반가운 가을바람과 아득히 먼 시간들 속에 내가 막 펼친 이 꼬깃함은 누가 접어놓은 페이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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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1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2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1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2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11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11 2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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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 동생은 미술관이 좋아서 한 번 더 가고싶다더군요. 제 입장에선 왠지 지구 반대편에 근사한 꿀단지를 하나 '킵'해둔 느낌. 언젠가 갈 거고, 미술관 소장품들은 분명 환상으로 좋을 테니까요. (아, 왠지 흡족하다..ㅎㅎ)
-로트렉은 왠지 좋지만 아직은 미지의 사람. 르느와르는 왠지 따분하지만 역시나 미지의 사람.. 물랑루즈는 '아름답고, 좋았고, 슬펐'단 기억이 강하네요.

아이리시스 2013-10-18 01:50   좋아요 0 | URL
같은 그림이라도 이국적 분위기에서 그림을 보면 한국과는 느낌이 달라서 좋아요. 사람구경도 재밌고요. 광장도 좋고요. 저도 근사한 꿀단지 만나러 얼른 가보고 싶어요. 비행기 타는 건 지긋지긋하지만.. 속수무책으로 하늘에 떠있는 기분이 너무 답답해요. 예전에는 센티멘탈해지면 화집이나 그림검색을 했는데 요새는 그냥 옛날 영화봐요. 근데 물랑루즈를 쓸쓸한 기분일 때 다시 한번 보려고 했는데 아직이에요 :)

2013-10-20 1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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