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타 베를링 이야기
셀마 라게를뢰프 지음, 강윤영 옮김 / 다산책방 / 201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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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그날을 덮었다. 그럼에도 나는 밤이면

내가 그녀를 품에 안고 입을 맞추었던

그 자리를 찾는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달빛에 환한 베란다 지붕뿐. 그러나 나는 잊지 않으리

바로 저 달이 그녀의 젖은 눈시울 또한 비추었던 것을.

내 사랑은 떨리는 입술로 이별을 고하고 떠났다.

이 고통! 어째 씻어야 할까.

이 순결한 여인의 가슴에 번뇌를 불러일으키고

그녀를 내게 묶으려 했던 죄를.

 

 

당신은 곧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험에 동참하려면 기꺼이 영혼을 팔아야 한다. 구성과 문체의 특이, 형식과 스토리의 파괴, 서정성과 향토성으로 중무장한 고전의 향기, 전해내려오는 전설과 지방 지주와의 조우, 마녀와 요정의 활약까지, 파우스트, 돈 후안, 아서 왕으로 대변되는 전설적인 이야기의 구조에 환상이라는 양념을 버무려 편지글 형식으로 구운 이 작품에 몰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 시도가 얼마나 새로운 것이었는지는 알 것 같다. 희대의 낭만주의자를 창조한 셀마 라겔뢰프는 라틴문학에서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이 등장하기 전 이미 스칸디나비아반도 출신의 독보적 여류작가가 된다. 자국 최초의 노벨상을 거머쥔, 그것도 노벨상 최초 여성작가였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 특유의 윤리와 구원을 바탕으로 자연과 도덕에 맞서는 인간의 호전적 성향과 베름란드 지역 특유의 색채를 조화시킨다.

 

미남의 노랫소리는 모든 여자를 홀린다. 1820년 스웨덴의 작은 시골마을 베름란드를 배경으로 시간적으로는 근대와 현대, 공간적으로는 도시와 시골의 비교를 통해, 지배와 예속, 소유와 경작, 보편과 특수를 초월하는 '선과 악'을 운명과 저주라는 파격적 형식으로 그린다. 몽환적인 문체에 녹아든 '전설의 원형'에 살을 붙여 만든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펼쳐지는데 뇌가 아찔해질 정도의 현기증에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읽고 있는가, 를 실현한다. 영국 고전주의와 독일 낭만주의를 합친 한편의 모험담을 듣는 기분이다. 장원의 기사들은 교구의 세력가 에케뷔 소령 부인의 지배 아래 하나같이 술과 도박에 미친 한량의 비권력을 지향한다. 빼어난 외모와 달콤한 말솜씨로 가는 곳마다 여자의 환호를 받는 예스타 베를링 역시 그 중 하나다. 윤리를 소거하고 타락과 방종을 부추기는 선과 악의 모호함이 파스텔톤 입자로 부유한다.

 

 

"이 원고 안에서는 신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고 그 중에는 사랑의 신도 빠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육체적 욕구 외엔 뭐랍니까? 어째서 육체의 다른 욕구보다 사랑이 고상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지요? 그렇게 치면 굶주림이나 피로도 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들 또한 사랑만큼 가치 있는 욕구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도 끝납니다! 진리만이 살아남을 겁니다!"

 

 

구전과 설화, 민담과 신화를 차용한 개성적 스토리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당시(1820년대)를 사로잡았던 사랑과 모험, 죽음에 대한 인식과 세계관을 짐작가능케 한다. 사실적이고 자연적인 문학이 주가 되던 스웨덴 사회를 서서히 뒤흔들게 된 것 역시 낙관과 낭만을 중요시하는 작가의 인간을 보는 방식이 특출났기 때문인데, 100년 이상 흘러버린 지금 그들이 이 소설에 보낸 환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새로운 문학지평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그 위치를 상정해볼 수 있을 듯하다. 1858년에 출생한 셀마 라겔뢰프는 태어나기 전인 1820년대를 배경으로 쓴 이 소설을 1891년 발표했는데, 막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로, 1차산업(농장, 광산의 자급자족)이 2차산업(기계화)으로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던 때였다. 베름란드는 작은 시골마을이었으므로 그 변화가 도시보다는 조금 더뎠을테고, 지역으로부터 전해내려오는 민간설화들이 많았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흠투성지만 멀리서 보면 각자 사랑스러운 구석을 한두가지씩은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을 환상의 세계로 데려다놓고 지역 설화와 접목시킴으로서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는 전설 속 영웅들을 재탄생시키고 문학사를 재배열하는 효과를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사랑을 지상과 하늘이 벌이는 싸움, 천당과 지옥의 힘겨누기로 표현한다. 절대힘을 가진 숲의 곰을 잡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남자, 그 기회를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거부당하는 청년에게 넘겨주고 아쉬워하는 남자, 욕망과 허세를 형상화하고 있다. 내가 하면 영웅이 될테지만 불쌍한 저이를 위해 내가 영웅이 될 기회를 과감히 포기하겠어, 라는 거창한 선심. 곰을 잡고도 장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청년을 보며 괜히 기회를 넘겨줬어, 하는 알량함. 그 덧없는 순간의 자만을 도덕으로 착각하는 찌질함. 사랑은 또 어떤가.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사병을 앓는 고상한 마음이 아니라 나의 매력과 유혹이 어디까지 통할 것인지 시험하는 차원에서의 그것. 사랑의 부수물인 고통과 번뇌, 영혼의 흔들림을 오래된 수수께끼처럼 소중히 여긴다. '문학의 미적범주'로 따지면, 숭고미와 비장미, 우아미와 골계미가 고루 섞여 일련의 미적범주를 완전히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환상은 인간의 선한 본성과 과거와 미래를 향한 낙관으로부터 온다. 둘다 지독히도 근거가 없는데, 초자연적 현상의 미스터리를 초현실주의적 서술함으로서 한가지 해석과 이해를 의도적으로 방해한다. 그러니 파악이 어려울 밖에. 애초 그렇게 쓰여진 소설인데 왜 그렇게 썼냐고 따지는 건 조악한 평가다. 밤에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할머니의 회유와 협박이 사실은 사랑이었던 것처럼, 예스타 베를링의 시간 역시 작가의 독특한 배열 안에서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해석이 불가능한 지점을 수두룩하게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이다. 쓰다보니 이렇게 쓰여진 게 아니라 철저히 의도하고 썼을 거란 짐작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독서로만 따지면 파우스트, 돈 후안, 아서 왕에 대해 읽은 기억이 없는, 유럽신화의 원형에 대해 거의 모르는 내가 말하기에는 여러 모로 해석의 힘이 딸리는 어려운 텍스트였다. 제아무리 노벨문학상인들 책 한 권 읽자고 고이 간직해온 영혼을 팔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야, 너는 사랑을 했지만

더 이상은 사랑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리라.

영혼아, 한때 정열의 폭풍이 너를 뒤흔들었다면

이제는 안심하라, 안식이 찾아왔으니.

영혼아, 너는 더 이상 천상의 기쁨을 향해 날갯짓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안심하라, 안식이 찾아왔으니.

더 이상 고통의 밤 속으로 침잠하지 않아도 된다.

아,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이야, 너는 사랑을 했지만

더 이상은 네 영혼이 불길 속에 타오르지 않으리라.

불타버린 초원처럼

너는 한순간에 불꽃으로 채워졌다.

재와 연기가 만들어낸 숨 막히는 구름에

새들은 놀라 울부짖으며 달아났었다.

돌아오라. 이제 너는 더 이상,

더 이상은 불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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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5-30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유럽 신화는 기독교 전파 이전의 유럽을 알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하죠.특히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신이 많다고 합니다.

라게를뢰프 작품 중에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중편 <늪텃집 처녀>일 것입니다.정말 재밌게 읽은 작품입니다.요즘도 나오려나...워낙 오래전 것을 읽었거든요.

아이리시스 2013-05-30 18:15   좋아요 0 | URL
노자님은 정말로 안읽은 책이 없으시군요! 지금 읽고 계신 책이 뭔지도 궁금하고, 안보신 책이 뭔지도 궁금하고, 보니까 동화로도 유명하던데 저는 처음 들어서 역시 저는 멀었구나..싶었어요.

그래서 읽기도 어렵고 두발 담그기도 어렵고 리뷰쓰기는 더 어렵고 그랬군요. 북유럽 신화는 북유럽을 동경하면서도 이질적인 질감 때문에 읽지 않고 있었는데 정말 북유럽 신화를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게임이랑도 연관되고, 기독교 전파 이전의 유럽을 알기 위해서도 중요하다면 더더욱이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