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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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칙칙한 뒷골목에서 훗날 두 도시를 빛낼 위대한 싹이 트고 있었다. 그곳은 버려져 있기도, 선택되기도, 생채기나기도, 아물기도 했다. 쥐와 사람이 동시에 같은 곳에서 살았다. 마부와 마차, 붉은 포도주, 쿰쿰한 냄새가 가시질 않는 다락방, 낡고 녹아내려 만질 때마다 붉은 찌꺼기가 묻어나오는 철계단, 두 도시를 오고가는 거대한 도버해협, 뱃길, 악악거리며 대거리하는 소리, 가난 속에서 흘러넘치는 침울, 울음을 가장한 진짜 울음소리, 진흙탕에 넘어진 사람 머리 처박기, 뚝뚝 떨어지는 비애와 그나마 거리를 밝히는 푸른 별빛과 노란 달빛. 한 남자는 숙녀와 함께 오래 전 잊혀진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비정한 도시에 온다. 만나기로 되어있는 사람은 런던의 유명은행에서 일하는 남자가 파리지점에 근무했을 때 알던 남자다. 어떤 연유로 유령 같은 삶을 살았는지는 모른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앓아온 정신착란을 숨기지 못한 채 노쇠하고 허약해진 다 썩어가는 눈빛으로나마 딸을 안는다. 찢어발겨진 1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그들은 이제 함께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두 번 읽었다. 절망과 타락 그리고 영광은 언제나 함께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타락한 도시조차 디킨스의 도입부는 멋지게 그린다. 비가 오는 거리를 미친 척 맨발로 뛰어다니던 적이 있었다. 다 커서는 아니고 학생 때 비오는 날 단짝친구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놀다(분신사바 유행중) 나오는 길에 그만 교문이 닫혀, 지나가는 분의 도움으로 교문을 넘다가 어차피 젖은 교복 그냥 쫄딱 맞고 강아지처럼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비는, 피하려 할 때 어렵지, 맞기 시작해서 홀딱 젖고보니 그만큼 마음 놓이고 편하고 행복하고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적이 없었다. 이상했다, 비는. 아마 이 도시의 타락과 절망의 냄새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책을 펼치며 여기 앉아 뜨겁고 달콤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꽤 오랫동안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을 듯한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해협 하나 사이에 두고 닿아있는 두 나라의 정반대 분위기는 그곳을 좋아하는 일부의 이유 정도는 되었다. 환상 속에서는 유럽 보다 더 이질적인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미가 더 좋지 않을까. 그곳들의 하늘은 곧 머리 위로 부서질 것 같은 색깔이다.

 

어느 도시에 머물 때 폭격 맞은 대성당이 우뚝 선 바로 그곳, 불탄 자국 성당 샛길로 마차가 지나갔다. 케른트너 거리였던 것 같다. 영국도 파리도 아닌 곳에서 홈즈의 시대를 떠올린 건 잠시 뿐이었지만, 그 맛에 여행의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분명했다. 몽타주와 오마주가 군데군데 기시감으로 나타나는 현상, 그게 여행이었다. 온 세계 배낭여행객들이 하는 인도앓이를 유럽 어느 도시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걸 보고서 실감했달까. 본인에게 익숙한 풍경과 가장 이질적인 곳에서 누구나 한 번쯤 앓게되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인도와 영국이 아니고, 베트남과 프랑스도 아니다. 런던과 뉴욕도 아니고 파리와 뉴욕도 아닌, 많은 것을 공유했지만 많은 것에서 대립했을 런던과 파리, 비슷한 과거를 가졌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천차만별일 두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밤. 제법 많고 깊은 시대적 배경지식을 요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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