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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하느님을 못 본다는 것과 같은 말이야.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아가지. 하루가 지나면 내일이 오고. 그러다 어느 날 느닷없이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던 사람,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을. 하지만 그는 제단에 전 재산을 쌓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하고, 이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가슴에 묻혀 있던 것을, 결코 완전히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잃어버릴 수도 없는 그 무엇을 보게 되지. 그것이 그 순간이야. 바로 그 순간 말이야. 우리가 오래도록 기다렸으나 두려워 했으며, 우리를 유일하게 구원해 줄 수 있는 그 순간. (p.202)
위 문장은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 중 두 번째 작 <국경을 넘어> 중 내가 뽑은 가장 희망적인 구절이다.
어느날 포크너, 멜빌, 헤밍웨이와 비견되며 현대 미국문학의 대가라 불리는 낯선 이름이 문학계에 불쑥 나타났다. 1933년생 매카시의 긴 문학인생 중 최신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의 세계적인 인기는 이제껏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과거작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했는데, 두 작품 모두 어렵고 힘들게 본 기억이 있는 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기대 한편으론 걱정도 많았다. 황폐한 땅과 거룩한 자연에 도전하다 모든 것을 이끄는 신의 힘에 결국 순응해가는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과 신의 구원을 무겁고 담대하게 그려낸 카리스마에 푹 빠지기도 했지만 특유의 건조한 문체와 삶에 대한 희망없음, 구원을 찾아 떠나는 밑도끝도 없는 지루한 발걸음이 그 못지않게 불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황량한 사막에서 사소한 욕망으로 쫓고 쫓기는 인간 대 인간의 밑바닥 삶을 드러냈다면, <로드>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내세워 인간이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관통당하는 것 마냥 생생한 고통과 구원의 목소리가 아름답고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되는 것이 영 달갑지만은 않았던 것도 인간의 이중성과 도달불능성, 한계와 잠재성을 이야기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어>는 열 셋에서 스물, 빌리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모험담이다. 또래 답지 않은 고집스러움과 목표로 자신의 맹세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국경을 넘으려다 의도치 않은 온갖 수난을 감내하게 되는 빌리의 성장통이기도 하다. 카우보이이던 빌리의 가족들에게 문제가 닥친다. 근처 목장의 송아지들이 멕시코 쪽 산에서 내려온 늑대에게 물려죽는 일이 종종 발생하자 빌리의 아버지와 빌리는 늑대를 산 채로 잡아 소의 희생을 막고 이득도 남기려 한다.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에 뛰어든 늑대는 빌리가 국경을 넘는 발단이 된다. 혼자 늑대를 사냥하러 간 빌리는 온갖 사투 끝에 사로잡지만 느닷없이 되돌려 보내주기로 마음 먹는다. 멕시코에서 넘어온 늑대를 다시 멕시코 땅으로 가서 풀어주기로 한 것이다. 늑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경을 넘는 빌리에게는 모험과 수난이 기다리고 있다. 늑대를 빼앗거나 이용만 하려던 사람들에게서 늑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빌리는 자신이 늑대를 지킬 수 없음을 깨닫자 결국 자신의 총으로 쏴 죽인다. 그저 늑대가 온 곳으로 가서 풀어주려 했을 뿐인 빌리의 수난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은 습격한 강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동생 보이드만 살아남았다. 이후 말을 훔쳐 달아난 강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두 형제는 길을 떠난다. 가는 도중 아버지가 아끼던 몇 마리를 되찾기도 하지만 여러마리의 말을 데리고서는 쉽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무 것도 갖지 못한 두 형제를, 또한 말을 욕심내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빌리를 적으로 여긴 낯선 이에게 총을 맞은 보이드는 형이 자신을 두고 가던 길을 계속 가기를 바란다. 보이드를 두고 혼자 떠난 빌리는 강도를 찾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동생을 찾아가지만 이미 죽고 없다. 묘지를 파헤쳐 동생의 유골을 찾아오던 중 강도를 당해 이번에는 타고 다니던 말이 부상을 당한다. 빌리는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채로 쉬지 않고 길을 간다. 이제 빌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빌리의 여정에는 목표가 없다. 갈 곳도 없고, 반겨줄 사람도 없다. 그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갈 뿐이다. 이동 중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는 빌리에게 재산이다. 매카시는 이제껏 내가 읽은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빌리의 확실한 미래를 보여주지 않은 채 끝맺는다. 늑대를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주려는 단순한 목표에서 시작된 빌리의 국경넘기는 순수한 소년을 인생만사 다 겪은 청년으로 변신시켰다. 부모님과 동생을 잃고, 갈 곳마저 잃은 그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매카시의 소설은 그래서 아름답다. 여운과 감흥이 뒤따라오는 건조한 문체는 매력적인 유혹이기도 하다. 그래서 또 다시 읽게 된다. 그는 군데군데 희망을 심어두었지만 행과 행, 문장과 문장, 구절과 구절 사이를 흘려 읽는 사람에게는 발견되지 않는다.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또렷하게 다가오는 인간을 넘어선 생명체, 생명체가 존재하는 자연, 자연 너머의 신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부단한 욕망과 어지러움과 무질서의 평형을 맞추는 신의 힘을 느끼자. 독서를 즐기지 않거나 매카시의 건조한 문장 때문에 기승전결이 따분하다면 차선책으로 영화라도 보자. 살아있는 미국문학의 대가인 매카시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