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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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반전에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그저 가만히, 한참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제목을 선뜻 소설의 내용과 연관시킬 수 없다. 그저, 음악 먼저 들어보고 읽을껄, 생각했을 뿐이다. 누가 말렸던 것도 아닌데 괜한 심통이다. 거기다 [카스테라]의 박민규만 알던 나는 한방 먹은 기분이다. 박민규가 이런 소설을 썼다니. 물론 인터넷 서점에서 온라인 연재될 때부터 읽기는 했다. 그다지 성실한 독자는 아니어서 그 때는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란 걸 몰랐을 뿐이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뒤에 첨부된 씨디와 엽서도 끝내 뜯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의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 요한의 작품 속 이야기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자 아팠던 청춘의 고백이다.  

연재소설의 완성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괜시리 "미리 써놓고 분량 나눠 올린 거 아냐?" 생각한다. 아예 시비조다. 오랜만에 정통 한국소설을 읽은 나는 새삼 친정에 온 새색시가 된 느낌이다. 장르나 소재는 타 국가에 비해 한정적이지만 국내작가는 우리나라 사람의 감수성에 딱 맞는 언어를 사용한 감동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재주를 가진 것 같다. 오랫동안 머리맡에 두고 표지와 제목만 읽곤 했는데 이제와 그 시간들이 왜 후회가 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와 그녀와 요한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모를 것이다. 지금 흐르는 청춘의 아까움을 모를 뻔 했다. 계획하는대로만 살아지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을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다.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오늘날의 청춘을 궁지로 내모는 감정들인지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와 그녀와 요한이 청춘이던 시절, 휴대폰과 이메일은 왜 없는 거냐며 발을 동동 구르던 나는 예상 못한 결말에 비로소 나를 내던질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뜨겁게 타오르는 가슴과, 어딘가로 분출되어야 마땅할 열정과, 부족함이 주는 용기의 아름다움이 목숨보다 소중해진 까닭이다. 또 그와 그녀와 요한의 청춘과 삶을 믿는다. 박민규 작가는 이 소설이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첫 번째 소설이 될 거라고 했다. 그 말이 참 슬펐다. 그와 그녀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나와 너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때, 가엾던 청춘을 위해, 단지 상대를 위해, 사랑이란 이름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아련한 추억이 눈물에 번지는 것 마냥 촉촉하고 잔잔하게 적셔지던 단아한 스무 살 연애감정과 단순히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희망에 관한 이야기, 또는 삶의 절망. 청춘이라 해서 절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이상 그와 그녀의 사랑을 질투하지 않는다. 다만 외로워하는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면 두 말 없이 건네고 싶은 책 한 권이 생겨 좋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뭐냐고 묻는 이에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들이밀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 읽고 나서 <HOPE>라는 간판이 보이는 <BEAR>라는 호프집에서 켄터키 치킨과 마른 오징어를 안주 삼아 함께 맥주를 마시자고. 외롭다. 삶은 누구나 외롭다. 그러나 외로워하지 말자. 청춘은 고독하다. 그러나 절망하지는 말자. 청춘은 누구나 그런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것이다. 상처받은 사랑의 추억은 애틋하되, 살아갈 수 있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살다보면 알게 된다. 모두,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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