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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의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무의미하고 부적절하다. 그저 끝까지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픈 사랑을 경험한 것 마냥 허망하고 쓰라리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야 진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지만 [체실 비치에서]의 두 주인공이 더 아름다운 이유는 이언 메큐언이라는 작가가 만들어내는 언어와 언어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클래식 음악선율 같이 은은하고도 열정적인 문체 때문이다. 섬세하게 다듬어진 감정들에서 구슬같이 찬란한 방울소리가 난다. 플로렌스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현악오중주 D장조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순수하고 떨리던 사랑, 마침내 결합하게 된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식, 그리고 첫날 밤. 너무 사랑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날 밤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서로의 어긋남을 서서히 알게 되는 두 사람의 절규같은 외침은 결국 파경으로 치닫게 된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그렇게 헤어진다.
40년 후 추억하는 사랑. 에드워드는 젊은 날 한 순간의 선택으로 잃었던 사랑이 진정 사랑이었음을 안다. 사소한 오해로 가지 않았던 길, 실망과 두려움으로 선택하지 못했던 길, 그 끝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평생을 그리워한 사랑이지만 이제는 가 닿을 수가 없다. [체실 비치에서]의 사랑은 과거와 현재의 철저한 교합으로 한층 예술성을 갖는다. 잔잔하고 은은하기에 더욱 품격있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기억된다. 결혼 여덟시간만에 신혼여행지에서 이별하고 돌아서는 두 남녀의 슬픈 사랑은 어긋나고 비껴가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대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의 순간과 아련한 기억의 순간을 마주하는 일은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답고 아름답다.
누구든 가지 못한 길을 다시 갈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충실한 현재에 발을 들여놓는 길 뿐이다. 후회없이 사랑하고 후회없이 이별하자. 그것만이 민트빛 체실 비치 저 멀리 연보랏빛 드레스를 휘날리며 서 있는 플로렌스와 그녀를 홀로 두고 뒤돌아보지 않고 걷는 내내 그녀를 사랑했을 에드워드를 기록하고 사랑하고 추억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