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를 털면서
_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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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분 기적의 독서법 - 2016 특별보급판, 1% 비범한 당신을 만드는 "48분 기적"의 프로젝트
김병완 지음 / 미다스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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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생을 바꾸기 원한다면 3년만 1,000권의 책에 미쳐라.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p.179

이것이 책의 핵심이고, 이 핵심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 다독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시간을 내서 읽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틈을 내서 읽으라는 내용이 와 닿았다.

그런데 근래 읽은 철학적 사고에 대한 책이나 독서에 대한 책이 가리키는 것이 글로벌 인재가 되거나 성공으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 철학적 사고와 독서를 말하는 거 같아 조금 힘이 빠진다. 아무래도 성공은 좋은 것이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니까 독서를 권하기에 좋은 도구였으리라 생각한다. 독서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희열에 대해 얘기하는 건 자기계발서로서는 너무 뜬구름 같은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 기쁨이 없었다면 다독도 어려웠을 것이니 그런 건 기본이라 애써 언급할 만한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책 읽는 걸 말하는 책이 출세한 사람들의 얘기로 가득차 있는 게 좀 각박하게 느껴진다.

책을 굉장히 대충 읽었는데도 갸우뚱 한 것 하나. 189쪽에 이지성 작가 얘기가 나오는데 20살에 글쓰기 시작해서 30년 동안 작가로서 가능성이 안 보이다 30세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구절. 게다가 작가로서 인정 받은 게 글쓰기 시작한 지 13년 지난 후라고. 숫자들이 맞지 않는다 30년이 아니라 3년인 걸까. 뭔가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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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어머니와 친구와 나. 셋이서 일년 가까이 산 적이 있다. 내가 얹혀 산 거였는데 식구처럼 잘 지냈다. 친구가 결혼하고 힘든 일이 생겨 친정에 왔을 때 어머니를 뵀다. 그때 친구 어머니가 그러셨다.

˝너랑 우리 셋이 살 때 고스톱 쳤잖아. 그때가 제일 좋았어. 그때가 내가 살면서 제일 좋은 때였어.˝

한번씩 이 말이 생각이 난다. 셋이서 고스톱 칠 땐 내 친구 결혼 늦다고 걱정을 그렇게 하시더니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지금 어떤 근심이 있어도 어쩌면 하찮은 일이거나 시간이 해결하거나 걱정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일 지 모른다.

그래, 지금이 제일 좋은 때다. 특별한 일 없이 지나는 오늘이, 몇 번이고 웃을 수 있는 하루가, 지금이 제일 좋은 때다.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친구 어머니 그 말씀이 생각이 났다. 조금 더 자주 떠올리고 싶어 여기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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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깨어있으면 무언가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대개는 말할 필요가 없는 얘기거나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없거나 말할 수 없는 얘기... 아직 밖은 차다. 어둠이 몰고 다니는 서늘함. 조금만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는 하나마나한 얘기일 수도.

언젠가 오빠가 한 말이 생각 난다. 내가 스트레스 용량이 적다고. 그러니 그때그때 비워내라고. 나도 담대해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어른의 옷을 입은 아이다. 일상에 능숙한 듯 생활하면서도 속으론 때로 버겁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나 같을지도 모른다. 모두 쉬쉬하고 있어서 서로 모르는 것일지도.

아무 일도 없다. 강박증 환자나 실제보다 몇 배의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처럼 내가 힘든 건 가상일 뿐이다. 마음이 지어내는 것, 습관이 지어내는 것, 업이 지어내는 것.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처럼 마음이 지은 허상은 무시하는 것 외에 뾰족한 답이 없다.

자야겠다. 뇌와 눈에게 휴식을 줘야겠다. 잠들 수 없는 심장에게 깨어있는 이유를 묻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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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소년를 위해 쓴 글들에서 어색한 무언가를 느끼곤 했는데 중학생이라 그런지 내 사춘기 때가 또렷이 떠오른다. 죽었다고 상상할 때 이 삶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선생님의 말을 따르는 또래가 얼마나 비겁하게 보이는지,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자유를 갈구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엄마가 감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런 이야기들이 이 책을 채우고 있다. 친구가 죽은 후 남긴 일기장과 그 일기장을 읽는 아이. 두 아이의 속마음을 통해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

내 사춘기 때는 무엇을 고민했었는지, 나는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내 사랑은 얼마나 절실했는지...그야말로 질풍노도였던 그때. 나도 재준이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영원 같은 단어를 좇으며...이런 생각들 위로 내 아이들이 겪을 그 시간이 엷게 겹쳐진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나만큼, 나보다 더 방황할 수 있으리라. 무엇으로도 감옥이 될 수밖에 없다면 나는, 나는... 
 

p.50  저 지옥! 저러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단지 이 아이들은 비겁하고, 소심하고, 타협적인 것이다. 지난 학교의 아이들은 배짱이 있었다. 그래서 때릴 테면 때려라, 나는 자야겠다고 나왔던 것이고, 아이들이 모두 그러자 선생 쪽에서 항복하고 만 것이었다. 사실 그게 합리적이지 않은가? 졸음이 안 오는 애들이나 열심히 들으면 된다. 선생님도 그런 애들만 신경 쓰면서 가르치는 쪽이 훨씬 보람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모두들 지옥처럼 졸음의 고통에 싸우면서 오직 매가 두려워 안 자는 척 기를 쓰고 있다. 하긴 나라도 먼저 배짱을 부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사실 나도 그런 일을 시작하기가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사실 나도 그런 일을 시작하기가 귀찮았다. 몽둥이로 맞는 일도 기분 좋은 일은 분명 아니니까.

p.55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다. 그냥 말이다. 성실함과 능력이란 것 역시 아빠 속에 녹아 있는 한 부분이지, 성실함과 능력을 싹 도려 낸 나머지 아빠만 사랑한다는 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p.95 이걸 잘 하냐 못 하냐는 오로지 그걸 즐기느냐, 버티느냐의 차이야. 즐기면 오래 가지만 버티면 금방 끝나. 그게 요령이야.

p. 149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짜증이 난다. 무섭고, 화만 내는 엄한 엄마보다 어쩌면 우리 엄마처럼 약하고, 잘 다치는 엄마가 더 무서운 엄마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소리지르고, 매를 드는 법이 없지만 우리를 꼼짝 못 하게 한다. 엄마는 나한테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p.149 그래, 우리 엄마 역시 내게는 감옥이다. 모든 걸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 같지만 그러기에 나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곧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반항할 필요가 없는 대신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건 또 하나의 감옥이다. 결국 모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다 감옥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p.151 나도 알고 있다. 정소희가 훌륭한 아이여서 내가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런 왜? 모르겠다. 사랑하는 데 이유는 필요 없다. 그냥 내 마음이 그러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나는 소희 생각으로 미칠 것만 같은데, 걔 옆에만 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하루 종일 그 애가 보고 싶고, 이 세상에서 그 애가 제일 예뻐 보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p.166 나는 참 보잘것 없는 남자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나, 공부를 잘 하나, 운동을 잘 하나, 달리 뾰족하게 잘 하는 게 있나......기껏 채플린 흉내를 조금 낼 줄 알지만 그거 가지고 인생을 살아 나가기란 벅차다. 하긴 게임도 조금 잘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로 먹고 살 수는 없다. 나는 정말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p.12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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