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비에 꽃들이 씻겨 내리고 나무의 연두빛은 더 선명해졌다.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간다. 젖은 아파트 주차장에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린다. 차 바퀴에 깔리지는 않을까, 옮겨 놓을까 하다 그냥 지나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면 뭐하러 지렁이를 염려하나, 이런 건 염려도 아니지. 호기심일 뿐이지. 찜찜한 마음에도 이미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아이들을 기다리며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를 읽는다. 책 제목을 듣고 친구가 크게 웃었다. 아마도 전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는다고 했던 게 생각났나 보다. 죽는 얘기를 하고, 죽는 책을 자주 읽다 보면 죽는 얘기도 유머가 될 수 있다. 책 제목만으로도 빵 터지는 거 봐. 햇살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림자가 없는 것은 빛이 없는 것이다. 죽음이 아주 가벼운 일은 아니지만 딱 삶만큼의 무게일 것이다. 삶이 조금 더 익숙한 것일 뿐. 모르는 것은 두렵기 마련이다. 산 자들은 경험하지 못했고, 경험한 자들은 여기 없으니. 

 

벌써 목요일이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간 적이 없다. 왜 일까? 너무 많은 것들을, 유일한 순간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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