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무리야가 찾아 왔다. 화가 나서. 

어제 저녁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고 한다. 아주 반가운 마음에 근처 술집에 가서 한 잔 했다고. 10여 년만에 만난 터라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무리야가 산에서 추락할 뻔한 그 친구를 목숨을 걸고 구해준 이야기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 친구, 그런 일이 없다는 거다. 무리야는 목숨까지 걸고 구해냈는데...기억도 없다?!!! 무리야는 정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산에 간 적도 없다는 것이다. 무리야는 점점 화가 났다. 어떻게 그런 일을 잊을 수가 있는가? 자신은 적어도 그 친구가 자신에게 아무 보상도 해주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늘 감사하고 있으리라 여겼는데...머리를 내저으며 헤어졌다고.

나는 물었다. 그 친구에게 화를 냈냐고. 다행히 그 친구 앞에서 화를 내진 않았지만 기분이 몹시 상해서 연락처도 묻지 않고 왔다고. 내가 말했다.

화를 내지 않았다니 다행이야. 이봐, 무리야...산에서 추락할 뻔한 친구는 그 친구가 아니라 바로 나야. 그 친군 그 산에 가지도 않았어.

 

무리야의 이야기 하나 더. 

무리야가 기도를 하고 있다. 무리야가 어떤 여자를 사랑한다. 그래, 사랑해라. 근데 그 여자, 안 만나고 기도만 한다. 그 여자가 건강하기를, 평안하기를, 그 여자의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기를, 그 여자의 언니가 시험에 합격하기를......그 여자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으니 이제 그 여자를 만나러 가자. 근데 그 여자, 어떤 남자와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고 있다. 무리야, 화가 난다.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저 여자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데..내가 사랑한다고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데...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

정말, 이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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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꽃을 보낸다. 100일 동안. 100일이 지난 후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을 한다. 여자, 거절한다. 남자, 화가 난다. 청혼도 안 받을 거면서 왜 100일 동안 꽃을 받았느냐고 여자에게 따진다. 여자, 당신이 꽃을 줬잖아요. 당신이 줘서 받은 것 뿐이에요. 

그 남자, 100일 동안 꽃 주면서 기뻤을 것이다. 그러면서 꽃을 하나 주면 여자가 마음도 한 토막씩 주는 줄 알았을 것이다. 100일 동안 기뻤던 것은 어디로 가고, 그 여자를 철면피처럼 여기는가...잘못된 기억처럼 가끔 타인에게 무언가를 잔뜩 주었다고 착각한다. 그 착각은 지나쳐서 어떨 땐 화가 나기까지 한다.

사실 무리야가 추락하는 나를 구해준 건 사실일지라도 그가 목숨을 걸고 그런 것은 아니다. 우연히 내민 팔을 내가 미친 사람처럼 잡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로서는 고맙게 여겨야 했겠지만 무딘 나는 감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무리야가 그것을 기억하고, 저렇게 분개하다니...그것도 다른 사람한테...!!

무리야의 두 번째 이야기는 행위가 없는 마음으로 한 것마저도 보상을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마음과 행위가 만들어 놓은 "좋은 의도와 베품"에 집착하여 본드에 발이 붙은 것 마냥 움직이질 못한다. 그래서 행하면 행할수록, 기도하면 할수록 더 굳어지고, 더 분노한다. 

[장자]에 이런 비유가 있다. 우리가 발을 딛는 땅은 정말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면 딛고 있지 않는 땅들은 모두 불필요한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불필요해 보이는 그 땅이 없어지면 딛고 있는 작은 땅조각도 사라진다. "내"가 중요한 것 같고, "내 마음, 내 행위"가 중요한 것 같지만 모두 한 덩어리 땅이다. 내 땅만 남기고 다 없어져 하면 내가 디딜 땅도 없어진다. 우리는 그냥 땅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걸어간 그 땅이 "내 땅"이거나 "내 기억의 땅"이 된다면 머리가 어지러울 것이다. 얼만큼 걸어왔는지 자꾸 돌아보면 길만 비뚤비뚤해질 뿐이다. 그냥 사랑을 다해 걷자. 그 대단한 "나"를 지고 걸으면 얼마나 무거울까...얼마나 화가 날까... 

잘못된 기억과 착각을 보시와 공덕으로 여기는 이 끔찍한 어리석음....안녕, 잘못된 기억들...무리야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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