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행로(狂人行路)
_심보선

 
길 위에서 나는 두려워졌다. 대낮인데도 어둠이 날 찝쩍댔다. 어젯밤 잠 속에선 채 익지 않은 꿈을 씹어 먹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병에 담아둔 꽃이 다 뜯겨 있었다. 신물 대신 꽃물이 올라오고 발바닥에 혓바늘이 돋았다. 걸음이 떠듬대며 발자국을 고백했다. 나는 두려워졌다. 아무 병(病) 속으로 잠적하고 싶어졌다. 마침 길가에 <藝人>이라는 지하 다방이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전날 샀던 시집을 한 장 한 장 찢으며 넘겼다. 나는 두려워졌다. 종업원이 유리컵에 물을 담아왔다. 거기에 코를 박고 죽고 싶어졌다. 맛을 보니 짭짤했다. 바닷물인가? 아님 너무 많은 이들이 코를 박아서 이미 콧물인가? 나는 두려워졌다. 산다는 게 꼭 누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한숨을 쉬니 입김이 뿌옇게 피어올랐다. 누군가 내 안에서 줄담배를 피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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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5 13: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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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5 15: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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