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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
후루타 쇼킨 / 현음사 / 1993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만 봤을 땐 혜능의 일대기를 읽기 편하게 다룬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다보니 그런 게 아니다. 책의 말미에 혜능의 연표를 길게 붙여둔 것이나 몇 페이지나 되는 참고문헌이 말해주듯 자료를 분석하고 비교하는 형식으로 혜능의 삶을 추적한 글이다.
다 읽고나니 기억에 남는 것은 혜능에 대해 기록한 인물이 금강경 계통의 사람인지, 열반경 계통의 사람이었는지에 따라 기록이 달라진다는 것 뿐이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나 기록이 기록자에 의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혜능의 참모습이 무엇이었을까? 참모습이란 무엇일까? 내가 그와 같지 않으면 내가 보는 모습일 뿐 참모습은 아닌게다. 어쩌면 모든 것은 참이지만 내 그림자 때문에 그 참들은 그저 어두워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이런 책을 읽으면 여러 기록을 통해 재구성되고 있는 혜능을 사랑하고, 그 혜능을 더 잘 알고 싶어 [단경]이나 [신회어록]이나 [조당집] 등등의 여러 책들을 읽고 싶은 열망이 일 만도 한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이 기록들에서 자유로운 그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고개를 돌리면 그가 있을 것만 같은데, 왜 돌려지지 않는걸까?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혜능이 말하는 무념이란 모든 대상에 있어서 마음이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혜능이라는 대상과 이름에 물들지 않은 채 무념 상태에 있다면 그를 만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그이게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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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무념을 세워서 종(宗)으로 삼는가. 단지 입으로 견성을 말해도,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가지며, 생각 위에서 문득 삿된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일체의 망상은 이것으로부터 생긴다. 자성은 본래 한 법도 얻어야 할 것이 없다. 만약 얻는 바가 있어서 망녕되게 화와 복을 말한다면 곧 쓸데없는 삿된 생각이다. 고로 이 법문은 무념을 세워서 종으로 삼는다.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