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이 보인다. 작은 총이다. 작은 총이라도 목숨을 가져갈 수 있다. 크든 작든 총은 총이다. 총알만 있다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혹은 죽을 수 있다. 공포만 없다면, 누구나 아주 짧은 시간에 선택을 할 수 있다. 달라이라마도 작은 총을 갖고 있다. 그냥 갖고 싶었다고 한다. 사용하지는 않는다. 총을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냥꾼이라 해도 정해진 장소에서 사용한다. 그들은 죽인다. 모든 써진 글은 누군가에게 읽혀지기 위해서다. 모든 총들은 쏘여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이 위협일 뿐이라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존재가, 그 존재 자체가 죽음을 부른다. 모든 사물이나 사물의 형태는 그 나름의 에너지를 갖는다. 총의 에너지...그게 아주 작은 총일지라도 총은 쏘여질 것이다. 너를 향해, 혹은 나를 향해. 시간문제다.
그러나 총은 저절로 발사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이용한다. 총은 총 나름의 에너지로 총을 쏠 사람을 찾는다. 누구를 쏠 것인가, 누구에게 쏘라고 할 것인가? 총은 선택할 수 없다. 그냥 그 자신의 에너지 때문에, 그 자신의 만들어짐 때문에 사용된다. 누구도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떨어뜨리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들어진 것은 이용된다. 만들지 마라. 만들면 만들수록 그 사물들이 나를 움직일 것이다. 참을 수 없을 때, 때로 참을 수 없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통제되지 못한 감정들...그 틈에서 그 사물들이 뛰어 들어온다. 그것이 혹여 총이라면 아주 빨리 상황이 끝난다.
다행히 나에게는 총이 없다. 내게 보이는 총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다. 장난감...왜 이런 것들을 복사하고 싶은가? 달라이라마가 가진 작은 총은 그에게 장난감일까? 이제 달리 말해야 한다. 내게는 장난감 총이 보인다고. 작은 총이다. 장난감총은 아무리 커도 목숨을 가져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안심한다. 삶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공포만 없다면 총이 없어도 누구든 죽을 수 있다. 공포가 있더라도 누구든 죽는다. 미리 죽으려고 발버둥치는 무리들...미리 죽이려고 발버둥치는 무리들...우리는 모두 죽는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역사 속의 유명한 사람들도, 우리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언니도 죽었다. 누군가는 그냥 죽고, 누군가는 죽음을 당했고, 누군가는 스스로 죽었다. 어쨌든 모두 죽었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오늘은 2012년 3월 30일이다. 비 온다. 기형도의 시처럼 가랑비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조금씩 젖어든다. 우리에게 조금씩 젖어드는 죽음. 어떤 이에게는 소나기처럼 퍼부어 내린다. 잎들.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잎사귀들. 뿌리가 뽑혀도 나무에 붙어있는 그 잎들. 그 푸른 잎들. 가을이 되면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조용히 떨어질 그 잎들. 그 잎들을 보며 슬펐다. 준비된 죽음은 고요하기만 하다. 갑작스런 태풍은 뿌리가 뽑혀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그곳으로 간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이야기다. 총구가 보인다. 이제 놀라지 않는다. 이건 장난감 총이니까. 장난감 총에 죽은 사람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면 모두 웃을까. 비가 그쳤는지 모르겠다. 하늘은 흐리다.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지만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