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동화사의 담선(談禪)법회에 갔었다. 법회는 "참선(간화선)수행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행해지는데 총 12회에 걸쳐 토요일마다 열린다. 어제는 호진 스님이 논주로, '초기 불교의 선사상과 실천'이라는 주제로 법회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호진 스님은 초기 불교의 수행과 참선 수행과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그것을 연결할 어떤 것을 이야기하기보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후 1년 정도 기간을 한정해서 깨달음의 핵심은 무엇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은 무엇이었나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깨달음의 핵심은 연기법이며, 그 실천은 바로 8정도라는 것이다.

여러 논객들이 공통적으로 쟁점으로 삼은 것은 호진 스님이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법의 이해이며, 해탈은 고를 소멸시킨 상태로,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며 열반은 체험의 영역으로 구분하신 것이다. 여러 논객들은 해탈(열반)이 연기법을 이해한 후에 일어나는 상태가 아니라 연기법을 통찰한 것이 즉 해탈이라고 보고, 깨달음과 해탈은 서로 포함하는 관계임과 동시에 깨달음의 내용이 해탈이며, 해탈의 내용이 깨달음이라는 견해를 펼쳤다. 이 문제는 급기야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문제제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 주제는 다음 주에 다시 거론될 문제였기에 마무리되었다.

또다른 쟁점은 8정도를 수행하는 데 있어 정견으로부터 정정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수행하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도 역시 논주인 호진 스님이 순차적이라고 주장하신 데 반해 여러 논객들은 일곱 번째의 정념(마음챙김)이 화두 참선과 거의 유사하다고 보고, 정념을 강조하고 순차적인 수행이 아닌 동시다발적인 수행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나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펼치기는 어렵지만 나도 거의 논객들과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견해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다. 동화사에서 제공한 장소가 너무 울림이 많아 다소 산만한 점이 있었지만 관심이 있던 내용들이고 해서 나로서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다음주의 주제는 북종선과 남종선에 관한 것이라 본격적으로 참선수행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어제 급히 접었던 돈오점수니 돈오돈수니 하는 문제도 거론될 것이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나의 모호함을 확인시켜 주고, 그것이 또한 즐거움을 준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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