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의 금강경 풀이(감산 지음, 오진탁 옮김, 서광사, 1992)

이 책이 알라딘에 없어 리뷰를 여기에 적는다

 

감산 스님의 글은 언제나 나를 흥분시킨다. 금강경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금강경을 읽으면서 "왜 갑자기 이 대목이 나오는 걸까?"하고 의심이 많았던 나를 만나시기라도 한 듯이 금강경의 한 분마다 [의문]이라는 난을 만들어 한 대목에서 다음 대목으로 넘어가는 데 무리가 없도록 해놓으셨다.

금강경을 자주 읽는 나에게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겨우 이틀만에 책을 다 읽었다. 가슴이 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 그러나 아직 바른 견해를 갖지 못한 내게 의문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 부분도 많았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작은 포스트잍을 준비한 뒤 다시 읽은 금강경에는 색색의 표시지가 대롱대롱 달렸다. 이해력이 부족한 것일까? 읽다보니 내가 불교의 주요단어들의 뜻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면화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상(四相)이나 삼신(三身: 법신, 보신, 화신) 등...

그런데 읽는 데 또다른 어려움은 해석에 있었다. 이런 책을 옮겨 한글로 편하게 읽게 해준 옮김이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옮긴이는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해 같은 단어를 다르게 표현하는 배려를 했지만 그것이 내게는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역자의 주가 달려 있다. 그래서 같은 단어를 다르게 해석했을 때는 그것에 대해 역주에 설명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지 않아서 왜 갑자기 이 대목에서는 찌꺼기가 망상이 되고, 다른 곳에서는 분별이 되는지 근거를 알 수 없었다. 주로 사상을 설명할 때 여러 군데에서 그런 부분이 있었다. 같은 한자에 대해서도 "몸이 크다"와 "키가 크다"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는데 특별히 다르게 쓸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었다. 오히려 이러한 해석태도는 감산스님의 강해를 읽을 때 의혹을 더하기만 했다. 또 역자가 같은 단어에 대해 다르게 설명하고 있는지 않은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금강경 원문만이 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송찬우 님이 번역한 또다른 책이 있는데, 그 책을 구해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같은 책을 두 권 사는 느낌이라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금강경을 부지런히 읽지 않았다면 이런 의문이나 번역에 대한 꼬투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속이 시원할 정도로 이 책이 좋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읽으면 읽을수록 꼬투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늘어나기를.

금강경은 전체가 화두다. 읽고 또 읽는다. 내가 금강경이 되든지, 금강경이 내가 되든지, 금강경도 나도 다 있는 것이든지 없는 것이든지... 깨닫고 또 깨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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