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비/ 김복희

 

 

 비가 많이 오는 날 나는 차를 훔쳤다 문이 열려 있으면 적당한 차. 문이 잠겨 있으면 적당하지 않은 차다 사실 차를 잘 모르니까

 

차가 아닌데 차처럼 보이기만 해도 상관은 없었고

차가 어떤 사람의 희망이나 절망을 싣고 있든지 모를수록 좋았지만

차에 돈이 실려 있던 건 다른 문제다.

돈은 원한 적이 없다.

 

차를 운전해 간 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나에게는 차와 돈이 있다.

오는 날 입었던 옷과 비 오는 날 지나갔던 길이 있고

 

오는 날 찍혔던 감시 카메라도 있을 것이다.

돈 때문에 다 망칠지도 모른다.

 

왜 이런 짓을 했어요 물어보면 문이 열려 있어서요. 그렇게 적당한 비처럼 대답하려고 했는데

하는 수 없다. 다른 누가 차를 훔쳐 가도록 문을 적당히 열어두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시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눈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돈이라면 만질 수 있어야 하는데.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듣기 좋다. 오늘은 많은 비. 전역. 골고루 오는 날. 누가 차창을 두드린다 등록되지 않은 시체를 등록하라는 내용의 고지서를 들고 왔다. 요즘 누가 차를 그냥 가지고 다닙니까 뭣하면 제가 해드릴 수 도 있는데 여기서는 개인정보 보호법상 이게 불법이에요 어려우시면 경찰서 나오셔서 같이 하세요.

 

내가 원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비 오는 날 시체를 업고 도로에 나섰다. 차를 끌고 다니는 모두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혼자 있는 사람을 절대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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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비, 적당한 차라는 게 있을까? 사실 차를 잘 모르듯 사람에 대해서도 모른다. 적당해 보이는 삶을 훔치고 싶지만 적당하게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적당해 보일 뿐 누구에게나 돈과 시체가 있다. 죽은 이가 없는 집은 없다. 누구나 그립거나 슬프다. 죽음은 시체를 남기고, 남은 자들은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행정적으로. 적당하게 처리했다고 믿을 수는 있지만 죽은 이들은 적당히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 함께 있다. 우리는 그들을 숨기기도 하고, 업기도 한다. 혼자 있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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