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A
_변희수
바닥에 떨어지면서 컵이 산산조각이 났다
배울 점이 있다
빙빙 돌려서 말하려다가 정면으로 부딪힐 때
입술을 열고 반짝이는 게 있다
남아서 계속 주의를 요하는 게 있다
컵보다 먼저 손목을, 어리석음을, 날카로움을
긋는다는 것
진심을 다해 무찌른다는 것
여기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컵이 있다
용기에 대해서 조각조각 설명해보려다 아악!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이 있다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
부정이 있다 긍정이 있다
그러니까 말하려는 바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다그치기도 전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사라진 컵이 있어서
이 근처는 뾰족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분명하고 투명하다
다시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른
-변희수, 『거기서부터 사랑을 시작하겠습니다』(시인동네, 2020)
한 서재지인의 글을 읽으며 이 시가 생각났다. 다시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전과 후가 확연히 달라졌을 사람의 이야기. 몇 번이나 그 서재를 서성이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나왔다. 내게도 할 말이 있어요. 나도 말하고 싶어요. 나는 끝내 말하지 못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담담히 말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