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슬픔을 뭐라 할까
낮잠을 잤어. 꿈을 꿨어. 우리 4남매가 다 함께 안방에 있는 꿈이었어. 꿈 밖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작은언니가 목욕을 하겠다고 하는 것만 생각이 나고, 다른 내용은 기억이 안 나. 잠에서 깨고 나서 내가 예전보다 작은언니 생각을 훨씬 덜 하고 지낸다는 걸 알았어. 몸이 아플 때 오래 앓았던 언니 생각을 많이 했는데 내가 요즘 살 만한가 봐.
짧은 꿈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보고 나니 마음이 울컥해. 언니는 서른아홉에 세상을 떠났어.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떠났으니 시간이 많이 흘렀지. 그런데도 생각하면 왜 그때 그 마음이 되는 걸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요”라는 영화가 있었지? 영화 이전에 인간극장에 주인공 노부부가 나왔었어. 그때 할머니가 여섯 살짜리 내복을 사는 거야. 도대체 누구에게 주려는 걸까, 했는데 여섯 살에 죽은 딸에게 그 내복을 태워주셨어. 잃은 지 60년이 지난 딸을 위해 내복을 사셨던 거지. 나도 팔십이 넘어도 언니가 떠났던 그 날 밤을 걷고 있을까.
살아 있다는 게 뭘까? 사라진 과거가 오늘과 함께 숨을 쉬고, 경험하지 않은 미래가 지금을 좌지우지하기도 해. 너는 어딘가에서 잘 지내겠지만 어쩌면 지금의 내게는 존재하지 않잖아. 그런데도 너를 떠올리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편해. 말을 건넬 때마다 과거의 네가, 지금은 내 앞에 없는 네가 나에게 살아나듯이 언니도 그렇게 살아날 때가 있어.
밖이 어둡네. 벌써 10시다. 작은언니는 불면증을 앓았어. 나와 함께 잘 때 언니는 불을 껐다가 내가 잠들면 다시 불을 켜고 새벽까지 깨어 있었어. 자다 눈을 뜨면 늘 방이 환했어. 피로한 불빛이었어. 언니는 깊은 어둠을 지니고 살았던 걸까. 자기 어둠이 너무 짙어서 밖의 어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걸까. 낮잠을 자도 밤잠이 걱정 없는 나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살다가 언니는 더 먼 세계로 가버렸어. 작은언니를 생각해.
미리 귀신
_김혜순
눈에서는 무엇이 나올까
나를 사랑하는 눈물 말고
눈동자는 무슨 맛이 날까
영혼의 맛이 이럴까
눈에서 나오는 빛을 빛이라 할 수 있을까. 눈에서 나왔다고 몸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눈빛은 미리 귀신일까. 아빠 가고 석 달 열흘을 울고 방문을 연 엄마의 눈빛을 뭐라 할까. 280일간 검은 물에 떠 있다가 생전 처음 컬러로 된 내 얼굴을 마주 보던 내 딸의 눈에서 나오던 빛은 뭘까
우리는 영혼의 뒤꿈치로 보는 걸까
우리는 선 채로 꾸는 꿈일까
식기 전에 먹자면서
생물의 시신을 나누는
가족의 눈에서 나오는
빛은 무얼까
바닥에 쏟아진
두 모금의 물이
되쏘는 빛은 뭘까
문 닫은 창 앞에서 서성거리는
별의 눈빛은 어떨까
죽은 다음에도 보는 일을 쉬지 않는
저 슬픔을 뭐라 할까
-김혜순, 『날개 환상통』(문학과지성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