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 서비스센터를 다녀왔어. 사용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닫으려고 하면 모니터 케이스 부분이 갈라져 부서질 것 같았거든. 전에도 이래서 수리한 적이 있는데 또 이러네. 이렇게 전자 제품이 문제가 생기면 난 항상 수리 기사께 여쭤봐.

 

제가 사용할 때 부주의한 부분이 있나요?”

 

전자 압력밥솥이 고장 났을 때도, 로봇청소기 센서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노트북 CD롬이 열리지 않을 때도 물었어. 그때마다 기사의 대답은 한결같아.

 

아뇨, 고객님이 어떻게 사용하시든 전자 제품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자꾸 내가 뭘 잘못해서 물건에 문제가 생기는 것만 같고, 내가 뭘 잘못했어야 다음에 그 잘못을 안 해서 제품을 오래오래 쓸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매번 같은 질문을 하게 돼. 답은 쓰던 대로 그냥 쓰면 된다는 건데.

 

전자 제품에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생활에서 생기는 문제도 누구의 탓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생기는 일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 그런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미신과 기복이 끼어들 여지가 생기는 게 아닐까.

 

몇 달 전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난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제사를 오빠가 지내게 된 것 때문에 사고가 생긴 건 아닌지 생각하시더라고. 나는 그 제사를 지낼 사람이 지내게 되었는데 그게 문제가 된다면 문제가 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정말 제사 때문에 사고가 난 거라면 난 아버지한테 따져야겠다고 말씀드렸어. 그제야 엄만 웃으시더라고.

 

우리 엄마만 그런 게 아냐. 습관 같아. 무언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나도 내게 무슨 잘못이 있나, 돌아보게 돼. 특히 아이들에게 그래. 아이가 아플 수 있는데, 아이가 아프면 내가 마음을 덜 썼나, 다른 데 집중하고 있었나, 돌아보는 거야. 사람은 누구나 아프기 마련이고, 비를 맞고도 좋다고 뛰어노는 아이는 더욱 그러기 쉬운 건데.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큰애 때문에 마음을 많이 썼어. 그때 아이들이 쌍둥이여서 죄책감을 덜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 태교를 달리할 수 없는 상황인데 태어나자마자 둘이 이렇게 다르니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내 탓이라면 유전자의 문제이지, 내 태도의 문제는 아니다, 라고. 그러니까 결국 내가 뭘 잘못했는지 여러 번 돌아봤다는 말이지.

 

엄마나 나나 자신의 역할을 잘 못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어. 어찌 보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역할이나 존재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지도.

 

흔히 원인을 알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깊고 깊은 원인 따위가 없는 문제가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싶어. 물론 모든 경우는 아니겠지만 많은 경우에 문제에만 집중해서 해결하는 게 단순하고 덜 피로하게 지내는 법일 지도.

 

 

 

나도 안타깝다 대답 없이

_페르난도 페소아

 

 

나도 안타깝다 대답 없이.

하지만 결국 내 잘못은 아니지

네가 사랑한 내 안의 딴사람에게

내가 부응하지 못하는 게.

 

우리 각자는 모두 여러 사람이지.

내게 난 내가 생각하는 나,

남들에게는-각자 느끼는 대로

판단하겠지, 그리고 그건 엄청난 착오지.

 

, 다들 날 좀 조용히 내버려둬,

날 꿈꾸지도, 딴사람으로 만들지도 말아.

나도 나를 찾고 싶지 않다는데,

남들이 나를 찾길 원하겠어?

(1930.8.26.)

 

-페르난두 페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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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8 19: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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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9 1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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