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이상 남자아이가 여탕에 갈 수 없다는 기사는 만 4세 이상 여자아이가 남탕에 갈 수 없다는 말이지. 이 기사에 얼마나 무수한 사연이 맺히는지. 남자아이는 아빠가 데려가라-집에 놀면서 그것도 못하냐-아빠 없는 아이도 있고 엄마 없는 아이도 있다-집에서 씻겨라-집에 욕조 없는 집도 있다...

 

나도 아이가 둘 다 남자애여서 아빠 없이 놀러 갈 때 곤란했던 적이 많았어. 그러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규정을 정한다는 건 선을 긋는다는 건데 선에 근접해 있을수록 다양한 사연이 쏟아질 수 있겠다 싶어. 같은 나이에도 혼자 하는 애가 있고, 혼자 하기 어려워하는 애도 있고. 그래도 규정이 정해지면 지키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 규정에 맞게 방안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맺힌 사연들이 저마다 일리가 있지만 집에 놀면서 운운, 돈도 적게 벌면서 운운한 댓글이 있어 씁쓸했어. 가족을 돈을 벌고 못 버는 것에, 그것도 많이 벌고 못 벌고로 나눈다는 게. 아파서 돈을 쓰고 있는 사람은 가족도 못 되겠다, 싶은 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엄마가, 아내가 집에서 정말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 죄는 무엇일까

_김사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낳고 젖을 주고 흙을 다지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따닥따닥 붙은 콜센터에서 상냥하게 친절하게

보이지 않아도 웃고 보이지 않아도 참아서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직업소개소를 찾으니

학력 미달 경력 없고 나이 많고 애도 있어

손가락 하나로 끌려나왔다 끌려나가도 그 자리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아이 손을 잡고 광장에 나가지 못한다

네가 죽어도 일을 해야 해서

누가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해서

기약 없는 먼 훗날을 끌어당겨서라도

지금 살아야 해서 촛불을 들 수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쪼들려서, 악착같이, 외로움에, 죄책감으로 찌든

수척한 감정들이 들러붙어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는 파란색일까 까만색일까 붉은색일까

내가 여자를 입었는지 여자가 나를 입고 있는지 

나를 찾아 출구를 더듬거리며 오늘을 걷는다만

여자의 시간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나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김사이,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창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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