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얼굴

 

 

오래전 지인이 고위 공무원에 임명된 적이 있어. 청문회를 해야 하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대통령과 동향이어서 언론에서 검증이 좀 있었어.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는 작은 뉴스였겠지만 나는 아는 사람이라 그런지 기사가 눈에 띄더라고.

 

갖고 있던 부동산이 문제가 되었어. 지방에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을 몇 채 합쳐야 서울도 아니고 지방에 있는 괜찮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집이었어. 어쨌든 투자용으로 의심을 받아 지인이 해명했어. 그 집은 할머니 때부터 살던 집이고, 본인이 장남이라 상속받은 건데 지금은 노모가 살고 계셔서 팔지 않는다고. 그랬더니 기자가 어머니는 어머니 명의의 집이 있는데 왜 그 집에 살겠냐고 해명을 믿기 어렵다는 투로 기사를 썼어.

 

뭐지? 이 기자? 기사를 서류로 쓰나? 난 의아했어. 그분 집안에 사정이 있어 어머니 집에는 다른 형제가 살고 있었거든. 지인 명의의 집과 그 어머니 명의의 집이 같은 동네라 와서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만 봐도 어느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일인데 해명까지 한 일을 추측만으로 다시 기사를 쓰다니.

 

다 자기 일로 바쁜데 일일이 신경 쓰고 확인하는 사람이 몇 있을까? 기자들이 잘 취재해서 우리에게 알려 준다고 믿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보기엔 기자들이 더 바빠. 인터넷에 기사를 띄워야 하니까 무조건 빨리 써야 하나 봐. 그게 뭐라도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 같으면 사실이든 추측이든 의심이든 일단 쓰는 거지. 그래도 기자잖아. 누구 딸이 특례로 입학했는지 일반으로 입학했는지 알아보면 알 수 있는 거잖아.

 

의혹만 가득 적은 기사들이 유령처럼 포털을 떠돌아. 하느님만 아실 수 있는 일도 기사가 돼. 가서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은데... 열심히 하는 기자도 있겠지. 그렇지만 이제 유령이 너무 많아서 진짜 사람을 갖다 놔도 누가 유령인지 누가 사람인지 모를 지경이야.

 

 

 

방부제가 썩는 나라

_최승호

 

모든 게 다 썩어도

뻔뻔한 얼굴은 썩지 않는다

 

 

-최승호, 방부제가 썩는 나라(문학과지성사, 2018),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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