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

 

 

대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났어. 많이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기억이 안 나. 기억나는 건 사진이야. 그 친구가 거의 2년 만에 만나면서 사진을 들고 나왔어. 어수선한 교실에 창을 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찍은 거였어. 그 아이가 나라고 했어. 사진 속 뒷모습이 나라는 것보다 휴대폰도 없던 때, 사진기를 학교에 들고왔다는 게, 하필 뒷모습을 찍었다는 게, 2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는 게 더 신기했어. 근데 그 사진을 나한테 줬던가?

 

어쨌든 창을 내다보고 있는 건 나였어.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늘 창문 가까이 있었어. 사진은 교실 창문이었지만 복도 창문에 더 자주 나가 있었어. 중학교 때 한 친구는 내가 도대체 왜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나와 바깥을 보는지 궁금해서 자기도 쳐다봤다고 했어. 그래서 뭘 보고 있었더라?

 

기억이 안 나. 내가 본 게 뭔지. 운동장이나 학교 옆 저수지나 뒷산에서 본 건 기억이 나는데 창문으로 본 건 모르겠어. 어쩌면 그저 교실에 있기 싫어서, 여기가 아닌 곳을 보고 싶어서 창을 내다봤는지도 몰라. 자주 가슴이 답답했거든.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강렬하지 않지만 창문을 보면 여기가 아닌 곳이 가까이 있어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 시절 내게 창문은 여기에 있으면서 여기를 벗어나게 해주는 책 같은 것이었을까?

 

쓰다 보니 내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 멀어. 그래도 겹치는 장면이 있지. 나는 지금도 창을 내다봐. 독서실과 교회와 가로수와 하늘과 바람이 있어. 창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어. 시원한 바람이네.

 

 

 

_김현승

 

 

창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창을 잃으면

창공으로 나아가는 해협을 잃고,

 

명랑은 우리에게

오늘의 뉴우스다.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12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김현승, 김현승시선집(민음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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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2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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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2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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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2 1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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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5 1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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