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조각 같은 이야기

 

 

저녁에 가족들이 모두 나가 집 근처 운동장에서 운동을 해. 나와 남편은 운동장을 돌고, 아이들은 몇 바퀴 돈 후에 야구나 축구를 조금 하다 들어가. 아이들 친구들이 나오면 좀 더 놀다 들어가고. 요즘 그 친구들이 안 나와. 큰애는 혼자 테니스공으로 벽치기를 해. 야구 글러브 끼고. 작은애는 내 옆에 붙어 함께 운동장을 돌아.

 

그제는 전쟁과 독도, 태양과 지구에 대해 이야기 하더니 어제는 신에 대해 이야기를 해. 이런 이야기를 친구와도 하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은 모두 게임 이야기만 한다고 해. 어쩌면 답이 없는 이야기를, 아니 답이 멀리 있는 질문을, 이 아이는 좋아하는 걸까. 여섯, 일곱 살 때부터 산타와 신의 연관성에 대해 고민하더니 급기야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나 봐.

 

그러면서 묻더라. 사람들은 왜 교회에 가고, 절에 가냐고. 없을 확률이 높은데 어째서 신을 믿느냐고. 천국도 지옥도 환생도 없는 거 아니냐고. 사람은 죽으면 흙 아래 그냥 가만히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서도 그건 싫대. 그냥 흙 아래 있는 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고릴라로 태어나면 어떨까요? 하기에 모든 삶에는 고단함이 있다는 투로, 고릴라 수컷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제일 낫겠다고 해. 여기까지 이야기 했을 때 우리는 운동장을 다 돌고 샌드위치 가게 앞까지 와 있었어. 오늘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를 사고, 이야기는 그렇게 끊겼는데...

 

그나저나 나도 11살 때 저런 생각을 했던가. 12살에 개척교회에 가본 적이 있으니까 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찬송가 음정 못 맞춘다고 나온 걸 보면 저렇게 진지하지 않았던 걸까? 이 아이는 자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자기 아빠가 아침마다 절하는 걸 봤는데 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학교에서 체육 수업 외에는 다 재미없다는 애가, 작은 머리로 얼마나 광활한 세계를 휘젓고 다니고 있는 건지.

 

나는 아이에게 엄마를 잃은 아이가 엄마의 영혼이 자기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하지 않겠냐고, 그러니까 하느님은 더 굉장한 존재니까 훨씬 든든하게 생각돼서 믿는 게 아닐까, 대답했는데 아이는 영혼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라고 해.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어떤 질문에도 확답을 하지 않았어. 할 수도 없었고.

 

다행이야. 내가 모른다는 게, 확신할 수 없다는 게, 확신이 없어서 아이를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게, 그 질문들이 낯익은 것이라는 게, 그래서 두런두런 답 없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친구들이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내가 들어줄 수 있다는 게.

 

 

 

반딧불

_윤동주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가자.

 

(19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