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얼마 전에 할아버님 제사를 다녀왔어. 가족 친지가 모이고, 음식을 장만하고, 축문을 읽고... 이런 형태의 제사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어릴 때 큰집에 일이 있어 제사를 지내기가 어려웠어. 우리 집으로 제사를 가져오려고 했는데 어른들이 점집에서 알아보셨는지 제사를 가져오면 큰집에 안 좋다고 했어. 그래서 엄마가 음식을 다 장만해서 박스에 담아뒀다 자정 가까이 되면 그걸 들고 택시를 타고 제사를 지내러 갔어. 어쨌든 제사는 꼭 지내는 것이었어.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가족 친지가 모여 그분을 기리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그 당시엔 각 가정의 사정과 형편에 관계없이 반드시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 제사를 안 지내면 조상님이 벌을 내리는 건지, 저승에서 힘을 못 써 자손들에게 뒷배가 못 되어주시는지 모르겠지만 제사를 잘 지내야 자손이 잘 된다는 생각이 컸거든.

 

넌 교회를 다녀 들어보지 못했을지 모르겠지만 제사를 정성스럽게 지내지 않아 그 집 손자가 다친다는 말도 들었어. 그러니까 손자가 다치면 며느리가 정성이 없는 거지. 언뜻 생각해도 엄마가 음식 장만하고 손님 맞느라 아들에게 신경을 못 써 다쳤을 것 같은데 어쨌든 마음마저 정성을 다하라고 그런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있었어..

 

그렇지만 요즘은 시간 조정은 물론이고 제사를 합치고 윗대 제사를 없애는 일이 비일비재해. 내 친구가 종갓집 종부인데 시부모님 돌아가시고 윗대 제사를 없앴어.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늘 이 제사는 아들에게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해. 부모님들이 연로하시거나 돌아가셔서 제사를 받는 친구들이 늘었어. 근데 그 애들이 다 종부인 친구처럼 자기까지만 지낸다고 해.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진 것처럼 제사에 대한 강박도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아.

 

이런 걸 보면 지금 시댁이나 친정에서 지내는 제사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했을 때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된 할머님 제사를 지냈는데, 평일이고 자정에 지내는 제사인데 손님이 마흔 명이 넘었어. 지금은 경기도에서 지내니까 친지들이 많이 오시진 않는데 제사가 많아. 이번 제사 때 보니 형님도 환갑이 넘어 힘들어 보이고, 남자 조카도 없는 상황이라 수년 후에는 다른 형태로 지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친정에도 엄마가 다리가 불편하셔서 내년부터 오빠가 제사를 모셔 간다고 하고.

 

오래전에 시댁 제사 때 제사 방식에 대해 이견이 있는 친척들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큰형님이 그러시데. 원칙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산 사람이 화목하길 돌아가신 어른도 다 바라시는 바가 아니겠냐고.

 

교회 다니는 네게는 제사 이야기가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문벌門閥

_이상

 

 

분총墳塚에 계신 백골白骨까지가 내게 혈청血淸의 원가상환原價償還을 강청强請하고 있다. 천하天下에 달이 밝아서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도처到處에 들킨다. 당신의 인감印鑑이 이미 실효失效된지 오랜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으시나요-하고 나는 의젓이 대꾸를 해야겠는데 나는 이렇게 싫은 결산決算의 함수函數를 내 몸에 지닌 내 도장圖章처럼 쉽사리 끌러 버릴 수가 참 없다.

 

-이상, 『날개-오감도』(상아, 1992),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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